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景福34회 제57차 문화답사(3); 國立古宮博物館 상설전시실(2)
(101) 조선시대의 功臣
(102) 이형에게 내린 좌명원종공신 녹권[李衡 佐命原從功臣 錄券 및 函]
-보물 제1657호,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功臣 錄券은 나라에 공이 있는 인물에게 공신으로 임명하는 증서로, 녹권은 太宗이 王位에
오르는데 직접 공을 세운 佐命功臣 다음으로 공이 있는 이들에게 내린 칭호로 潛邸(東宮)에
있을 때 밤낮으로 보좌한 신하들의 공로를 가상히 여겨 포상하고 수여한 原從功臣錄券으로,
太宗 11년(1411) 당시 通訓大夫 判司宰監事였던 李衡에게 발급한 3등공신녹권이다.
太祖 李成桂가 봉한 原從功臣 이후 두 번째로 발급된 녹권으로, 조선 전기 공신에 대한
대우와 功臣錄 양식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103) 이성윤에게 내린 위성공신교서[李誠胤 衛聖功臣敎書 및 關聯遺物]
-보물 제1508호,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李誠胤 衛聖功臣敎書>는 光海君 5년(1613) 3월 임진왜란 당시 광해군을 扈從하는데
공을 세운 承憲大夫 錦山君 李誠胤에게 내린 衛聖功臣敎書이다.
위성공신은 광해군이 폐위된 후 削勳되어 구체적인 내용은 모든 기록에서 삭제되어
인적 사항 등 자세한 사항이 전해지지 않았었는데 이 교서를 통하여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문서는 광해군 때 공신에게 내려진 교서의 형태를 완벽하게 간직하고 있으며 뒷면에는
製進者 및 書寫者가 밝혀져 있어 敎書의 양식과 문체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敎書와 敎旨 외에 이 家門에는 號牌와 牙笏이 전하는데 한 家門의 號牌가
150년(1677-1822)간에 걸친 것이 16개나 남아 있는 것은 매우 드문 일로 號牌史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이며, 牙笏은 李徵龜나 李泰龜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牙笏: 一品에서 四品에 이르는 高位官員이 朝服∙祭服∙公服 차림을 했을 때에 손에 쥐는
手板으로 무소뿔이나 象牙로 만들었다.
(104) 관리의 登龍門, 科擧
(105) 과거시험 답안지[科紙]
肅宗 5년(1679) 儒生 吳世椎가 과거시험에서 제출한 答案紙로 <戊午式年 司馬榜目>에는
오세추가 35세에 합격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106) 과거시험 합격증서, 홍패(紅牌)
紅牌는 과거시험을 치른 최종 합격자에게 주던 증서로 붉은 바탕의
종이에 합격자의 成績∋級·姓名 등을 먹으로 쓰고, 文科·武科의
殿試 합격자에게만 수여했다.
*殿試: 과거시험에서 王이 親臨하여 시행하던 3단계의 최종시험
*生員이나 進士의 경우에는 白牌를 수여했는데 백패는 흰 종이에 官名·
성명·科別(생원·진사·잡과 등) 成績等級이 적혀 있으며,
백패는 雜科·吏科에 합격한 자에게도 수여하였다.
(107) 어사화
御賜花는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 文∙武科에 급제한 사람에게
임금이 下賜하던 종이로 만든 꽃.
(108) 조선의 궁궐(宮闕)
*宮闕이란 용어는 宮과 闕의 合成語로 宮은 天子나 帝王, 王族들이 살던 규모가 큰 건물을,
闕은 본래 궁의 출입문 좌우에 설치했던 望樓를 지칭한 것으로, 제왕이 살고 있던
건축물이 竝存하고 있어 ‘宮闕’이라고 일컫게 되었다.
(109) 궁궐지(宮闕誌) –궁궐지(宮闕志)
宮闕志는 궁궐에 대하여 기록한 책으로 여러 종류가 있으나 대표적인 것은 肅宗 때
편찬되어 憲宗 때 增補∙修正된 것과 高宗 때 편찬된 것이 있다.
憲宗 때 증보∙수정된 <宮闕志>는 5권 5책으로 제1권 景福宮, 제2권 昌德宮, 제3권 昌慶宮,
제4권 慶熙宮, 제5권 都城志로 되어 있고, 궁궐 별로 궁의 創建沿革과 殿閣 別로 건물의
명칭·위치·용도를 밝혔으며, 건물에서 왕세자의 출생·즉위나 왕·왕비의 죽음 등을
기록하였다.
高宗 때 편찬된 <宮闕誌>는 2책으로 경복궁·창덕궁·창경궁을 대상으로 記述하였으며,
각 궁의 전각에 대하여 건물의 칸수, 구조형식과 각 전각 주변에 있던 行閣·月廊 등
부속건물의 규모까지 상세히 기록하였다.
(110) 조선의 五大 宮闕과 위치
(111) 동궐도에 보이는 창덕궁과 창경궁
*東闕圖 -국보 제249-1호, 원본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本宮인 景福宮 동쪽에 있는 東闕인 昌德宮과 昌慶宮을 그린 것으로 東闕圖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궁궐그림이다.
오른쪽 위에서 비껴 내려다 보는 視角으로 산과 언덕에 둘러싸인 두 宮의 殿閣과 다리,
담장은 물론 연꽃과 怪石 등 造景까지 실제와 같은 모습으로 선명하고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배경이 되는 산과 언덕에 대한 묘사는 중국 南宗畵의 皴法을 따르고 있으나, 건물의
표현과 원근 처리는 서양화 기법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皴法: 동양화에서, 산악∙암석 따위의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하여 쓰는 기법. (*皴: 틀 준)
*보물 제596호 궁궐도(동아대학교 소장)가 형식·기법·크기 등이 동일한 것으로 판명되어,
1995년 보물 제596호를 지정해제하고 국보 제249-2호 동궐도로 승격 지정하였다.
*西闕圖案 -보물 제1534호, 원본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西闕은 景福宮(北闕)의 서쪽에 있는 궁궐인 慶熙宮을 의미하며 光海君 12년(1620)
營建된 경희궁의 원래 이름은 慶德宮이었으나, 英祖 36년(1760) 慶熙宮으로 개명하였다.
<서궐도안>은 경희궁의 全景을 그린 그림으로, <동궐도>와는 달리 彩色되지 않은
밑그림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北闕圖: 景福宮의 殿閣 등을 그린 책.
(112) 궁궐의 祥瑞로운 動物像[瑞獸像]
궁궐 正殿과 같은 중요한 건물 곳곳에 多樣한 모습의 石獸가 배치되었다.
景福宮 勤政殿의 月臺는 周易과 陰陽五行의 원리를 적용해 國王의 神聖함과 權威를
나타내고, 근정전의 기둥과 월대의 난간 수(각 36개)는 宇宙[하늘]를 상징한다.
또한 方位에 맞게 勤政殿 천장에는 黃龍을, 上月臺 난간에는 靑龍, 白虎, 朱雀, 玄武를
배치하여 국왕의 神聖함을 표현하였으며, 下月臺 난간에도 陰陽五行과 風水地理에 맞게
十二支像과 獬豸[해태]를 배치하여 厄運을 쫓아내고자 했다.
(113) 잡상(雜像)
*雜像: 기와지붕의 추녀마루 위에 장식하는 土偶로 十神像이 있다.
*十神像: ① 三藏法師 玄奘을 가리키는 大唐師父 ② 孫悟空을 의미하는 孫行者
③ 저팔계(猪八戒) ④ 沙悟靜을 의미하는 沙和尙 ⑤ 麻和尙
⑥ 삼살보살(三殺菩薩) ⑦ 二口龍 ⑧ 천산갑(穿山甲) ⑨ 二鬼朴 ⑩ 羅土頭.
*설치한 雜像의 수는 건물에 따라 다르다.
(114) 경회루 연못 출토 용[慶會樓 出土 龍]. 길이 148.6 cm, 19세기 제작.
1997년 11월 景福宮 慶會樓 연못 준설작업 중에 출토된 유물이다.
*慶會樓는 나라에 慶事가 있거나 외국 使臣을 영접할 때 임금과 신하들이 연회를 열기
위해 사용하던 장소로 1592년 임진왜란 때 燒失되어 高宗 4년(1867) 재건하였다.
경회루의 건축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慶會樓全圖>에 의하면 경회루는 불을 억제하기
위하여 周易의 원리에 따라 건립되었으며 연못에 화재를 방지하기 위하여 구리로 만든
龍 두 마리를 넣었다고 하는데 이 용은 그 중 하나로 경회루 북쪽 荷香亭 앞 연못
바닥에서 발견되었다.
(115) 용무늬 천장 장식[雙龍刻 寶蓋]
寶蓋는 궁궐의 正殿이나 便殿 등 王이 머무는 건물의 천장에 설치된 御座의 莊嚴 장식물로
龍이나 鳳凰은 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想像의 동물로 웅장하고 화려한 彫刻으로
왕의 공간을 장식하여 왕의 神聖함과 威嚴을 강조하였다.
이 보개는 원래 궁궐의 어느 殿閣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건물이 헐리면서
解體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16) 십장생 그림 창호[十長生圖 窓戶], 19세기 후반.
해와 달이 함께 떠있는 十長生 群像圖를 그렸으며, 총 12개의 문짝 앞면에 나누어 붙여
장식했다. 창호의 바탕上端에는 철거할 때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 방위표시가 있는데
왼쪽 것은 ‘東門’, 오른쪽 것에는 ‘南’이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그림 바탕의 방위표시대로 정렬하면 높이가 높은 남쪽 창호를 중심으로 동쪽의 해가
그려진 창호와 서쪽의 달이 그려진 창호가 대칭을 이룬다.
*十長生: 長生 不死를 표상한 10가지 物象으로 해 ·산 ·물 ·돌 ·소나무 ·달 또는 구름 ·
不老草 ·거북 ·학 ·사슴을 말하는데, 중국의 神仙 思想에서 유래되었으며,
10가지가 모두 長壽物로 자연숭배의 대상이며, 原始信仰과도 일치하였다.
(117) 궁궐 주련(宮闕 柱聯)
柱聯은 기둥[柱]마다 詩句나 좋은 글귀를 聯하여 걸었다고 주련이라고 한다.
주련은 서로 짝이 되는 글귀를 판자에 새겨 건물 기둥에 붙인 것으로 건물을 꾸미는
장식으로 좋은 글귀와 글씨는 鑑賞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주로 自然風景을 읊거나 長壽를 기원하는 글귀를 담았으며, 글씨를 잘 쓰는 名士가
직접 쓰거나 유명 書藝家들의 筆跡을 본떴다.
조선 궁궐의 殿閣 기둥에는 그곳에 어울리는 내용의 주련이 장식되었는데
경복궁 勤政殿 行閣에는 君主로서 지켜야 할 德目이, 주변 風光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던 亭子에는 아름다운 神仙世界에 비유하는 글귀로 장식하였다.
(118) 화재를 막기 위한 龍 그림과 ‘水 자’ 부적
=화재를 막기 위한 용 그림[龍 符籍], 高宗 4년(1867).
불이 나지 않기를 기원하며 붉은 색종이에 龍을 그려 만든 부적이다.
용은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는 부적인 동시에 불을 다스리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여겼다.
2001년 勤政殿 重修공사 때 발견되었다.
=화재를 막기 위한 ‘水 자’ 부적[‘水’字 符籍], 高宗 4년(1867).
불을 막기 위하여 만든 부적으로 ‘水’字 한 글자의 큰 윤곽 안에 작은 글씨의
‘龍’字를 가득 채웠다.
(119) 궁궐의 공간구성(空間構成)
(120) 국정의 중심, 正殿
(121) 정아조회지도(正衙朝會之圖)
–正祖 2년(17778)경, 원본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昌德宮의 正殿 仁政殿에서 朝會를 할 때 각 官員들과 器物의 위치를
文字로 표기한 그림으로, 인정전 안에는 왕을 중심으로 史官과 承旨,
五衛將 등이, 건물 밖 前面에는 王世子와 大君을 비롯하여 文∙武班 官僚와
樂器, 儀仗 등이 위치했다.
朝會圖는 官吏의 品階와 업무에 따르는 위치뿐만 아니라 조회 때
사용된 깃발과 가마 등 각종 의장의 종류와 배열을 一目瞭然하게 정리하여
국가관료의 정비와 국왕의 統治體系를 확립하려는 목적으로 제작 되었다.
(122) 왕의 집무 공간, 便殿
(123) 李珥가 왕의 교육을 위해 편찬한 책, 성학집요(聖學輯要)
조선 중기의 학자 栗谷 李珥가 宣祖 8년(1575) 帝王의 學問 내용을 정리해 바친 책으로
8편으로 구성되었으며 <栗谷全書>에 실려 있다.
16세기에 사회와 정부를 主導하게 된 士林派는 개인의 修養과 학문이 사회 운영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新儒學의 理念을 강조했으며, 최고 권력자인 君主의 수양과 학문에 대해서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일반인 교육을 위한 <擊蒙要訣>과 함께, 16세기 후반 사림파의 학문적, 정치적
지도자였던 李珥의 교육에 대한 대표적 저술이다.
성학집요는 이후 經筵의 교재로 실제 국왕의 학문에 많이 이용되었으며 일반 士族들의
학문에도 매우 중요한 저술로 文臣으로 北學派의 선구자인 洪大用은 사회를 운영하는
학문으로 柳馨遠의 <磻溪隨錄>과 함께 이 책을 중시한 例에서도 나타나듯이,
개혁의 방향을 탐색하는 데도 오랫동안 중요한 지침서가 되었다.
(124) 국조상례보편
國朝喪禮補編은 英祖 34년(1758) <國朝五禮儀>의 喪禮에 관한 부분을 洪啓禧 등에게
명하여 補充·改編하여 완성한 책이다.
宣政殿에서 사용하던 각종 祭祀用品의 모양과 배치 圖說이 실려있으며 조선 前期에
便殿이었던 선정전은 後期에는 殯殿, 魂殿으로 사용되었다.
(125) 청기와 용머리장식[靑瓦吐首], 창덕궁 宣政殿에서 收拾.
*청기와는 粘土로 기와모양을 빚은 후 염초(焰硝)로 만든 釉藥을 발라 푸른 빛이 나도록
구운 기와로 조선초기에는 景福宮 勤政殿, 思政殿 등 주요 전각의 지붕을 청기와로
장식하였으나 後期에 들어서면서 奢侈를 止揚하고 백성의 수고를 덜기 위하여 비용도
많이 들고 工程이 까다로운 청기와의 사용을 自制하였다.
東闕圖에는 宣政殿과 澄光樓에 청기와지붕이 보이는데 두 건물은 모두 仁祖 25년(1647)
昌德宮 重建 때 仁慶宮의 正殿과 便殿을 移建한 것이며 昌德宮 宣政殿의 지붕은 現存하는
宮闕 건물 중에서 유일한 청기와지붕이다.
*仁慶宮: 元宗(仁祖의 부친)의 私邸로 사용되던 궁궐로 光海君 8년(1616) 仁王山의 王氣를
누르기 위해 인왕산 기슭에 慈壽宮∙敬德宮과 함께 창건되었으나, 仁祖 元年(1623)에 일시
철폐, 丙子胡亂 뒤 인조 26년(1648) 淸人들의 요구로 弘濟院에 驛站을 만들 때 청나라
사신들의 숙소 등을 건축하기 위하여 인경궁의 기와와 재목을 사용하면서 완전히
철폐되었다.
(126) 世子와 世子嬪의 공간, 東宮
(127) 문효세자 책봉 옥인(文孝世子 冊封 玉印)
正祖 8년(1784) 文孝世子가 重熙堂에서 세자로 책봉될 때 받은 玉印이다.
*文孝世子: 正祖와 宜嬪 成氏 사이에서 태어난 첫 아들로 두 살 때 王世子로 책봉되었나
5세(1786년)에 紅疫으로 경복궁 資善堂에서 凶逝하였으며 사후
文孝世子로 추증되었다.
(128) 문효세자 책봉 죽책(文孝世子 冊封 竹冊)
正祖 8년(1784) 文孝世子가 세자로 책봉될 때 받은 竹冊이다.
(129) 昌德宮 <重熙堂> 편액
東宮에 있는 世子의 공식적인 활동공간으로 세워진 重熙堂은 正祖 6년(1782)
정조가 文孝世子의 書筵場所로 건립하였으며 편액은 正祖御筆이다.
(130) 詩와 學問이 어우러진 공간, 後苑
(131) 天圓地方의 芙蓉池와 芙蓉亭
=昌德宮 芙蓉池
‘芙蓉’은 ‘연꽃’을 뜻하며, 창덕궁 후원의 대표적인 方池인 부용지는 동서 길이 34.5m,
남북 길이 29.4m에 이르는 네모 반듯한 연못으로, 연못 중앙에 소나무를 심은 둥글고
작은 섬이 떠 있는데 네모난 연못과 둥근 섬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天圓地方 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연못은 長臺石으로 쌓아 올렸고, 남쪽 모서리에는 물고기 조각이 하나 있으며, 잉어
한 마리가 물 위로 튀어 오르는 모습을 새겼는데, 이것은 왕과 신하의 관계를 물과
물고기에 빗댄 것이다.
*天圓地方: 동아시아 전통 宇宙論의 기본 命題의 하나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뜻이다.
고대 중국의 수학 및 천문학 문헌인 <周髀算經>에서, ‘모난 것은 땅에 속하며,
둥근 것은 하늘에 속하니,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라고 선언했는데 고대 중국의
여러 문헌에서 비슷한 표현을 찾아 볼 수 있으며 이 명제는 前近代 時期 말까지
동아시아 사회에서 하늘과 땅의 모양에 관한 權威 있는 학설로 받아들여졌다.
=昌德宮 芙蓉亭 -보물 제1763호-
창덕궁 후원의 인공 연못 芙蓉池에 조성된 ‘十’자 모양의 亭子로 조선시대 왕이 과거에
급제한 이들에게 酒宴을 베풀어 축하해 주던 장소로 정조가 신하들과 연못에서
꽃을 감상하고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132) 正祖가 쓴 글
(133) <御題 御筆> 현판
(134) 왕실의 생활
(135) 왕실의 家具
(136) 왕실의 가구
왼쪽부터 1~5 주칠함(朱漆函), 6 黑漆 二層卓子 7 주칠 책장(朱漆 冊欌)
(137) 왕실의 가구, 화각함(華角函)-화각 삼층장(華角 三層欌)
(138) 왕실의 服飾
(139) 왕실의 복식(왼쪽부터)
=翼善冠: 임금이 常服[평상복]으로 갖추어 政務를 볼 때 쓰던 관.
=영친왕 곤룡포: 袞龍袍는 임금이 視務服으로 입던 正服으로 袞服 또는 龍袍라고도 한다.
노란 색, 또는 붉은색 비단으로 지었고, 황색 단(緞)이나 紗에 붉은색 안을 넣었으며,
가슴·등·양 어깨에는 補라고 하는 금실로 수놓은 오조룡(五爪龍)을 붙였다.
=적의본(翟衣本)
(140) 적의본
翟衣本은 大韓帝國 皇后의 적의(翟衣)를 만들기 위해 창호지를 여러 겹 붙여 문양 배열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본이다. (*翟: 꿩 적)
적의본은 深靑色 바탕에 서로 쳐다보고 있는 1쌍의 적문(翟文)을 길이로 12등분하여
彩圖하고 적문 사이에는 李王家의 문장인 배꽃[梨花]을 넣었으며 깃∙도련(저고리나
두루마기 자락의 가장자리)∙수구(袖口: 소맷부리)에는 홍색선을 두르고 雲龍文을
채도하였다.
적의 중에서도 청색 바탕의 적의는 황후의 大禮服으로, 12등분의 적의는 순정황후만
입었고, 9등분의 것은 皇太子嬪 李方子의 것이다.
(141) 英親王妃 적의(翟衣)
翟衣는 조선시대 여성 最高身分의 服飾으로 조선 末期까지 王妃와
王世子嬪의 大禮服으로 사용되었다.
원래는 붉은색 비단으로 지었으나 1897년 大韓帝國 선포로 왕과 왕비가
皇帝와 皇后로 昇格되면서 짙은 靑色으로 바뀌었다. 親愛와 偕老를 상징하는
꿩 무늬를 織造하고 앞뒤에는 금실로 수놓은 龍 무늬 보를 덧붙였다.
(142) 백옥 봉황꽂이[白玉入 鳳簪] (*簪: 비녀 잠)
*봉잠: 비녀 윗부분에 鳳凰의 형태를 새겨 立體感 있게 장식한 禮裝用 비녀로 조선시대
王妃가 예장할 때 어여머리나 낭자에 꽂았으며 금이나 은으로 도금하였다.
英祖 33년(1757) 命婦와 士族의 예복에 보석과 龍鳳 비녀를 쓰지 못하게 하여
사치를 억제하였다.
*어여머리: 조선시대 때 상류층 부인들이 禮裝用으로 하던 머리모양.
*命婦: 조선시대 국가로부터 爵位를 받은 여인들의 統稱.
(143) 백옥 떨비녀[白玉 瓔珞簪](*瓔: 옥돌 영 *珞: 구슬 목걸이 락 *簪: 비녀 잠)
떨비녀는 조선시대 왕비 이하 尙宮들이 예복을 입고 대수머리나 어여머리를 할 때
머리 앞 중앙과 좌우 양쪽에 꽂는 머리 장식품이다.
(144) 진주 머리꽂이
(145) 비녀, 용머리장식 비녀-백옥 호두장식비녀-비취 매조 초롱비녀-난초장식 비녀.
(146) 노리개
여성의 몸치장으로 한복 저고리의 고름이나 치마허리 등에 다는 佩物로 宮中에서는 물론
上流社會와 平民에 이르기까지 널리 애용된 장식품이다.
노리개는 外形上 섬세하고 다채로우며 호화로운 장식이기도 하지만, 정신적인 배경으로는
富貴多男·不老長生·百事如意 등의 시대적인 幸福觀을 바탕으로 한 여인들의 念願이 담겨
있었다.
(147) 흉배. 쌍학무늬 흉배[雙鶴 胸背]-단학무늬 흉배[單鶴 胸背]
*胸背: 조선시대 王·王世子·文武百官의 官服 가슴과 등에 장식한 表章.
=쌍학무늬 흉배: 文官 堂上官의 흉배로 문관을 상징하는 학 무늬를 수놓았다.
*堂上官: 문신은 正三品 通政大夫, 武臣은 正三品 折衝將軍 이상의 品階를 가진 자.
=단학무늬 흉배: 文官 堂下官의 흉배로 高宗 때에는 학의 숫자로 당상관과 당하관의
신분을 구분하였다.
*堂下官: 문신은 從三品 通訓大夫, 무신은 從三品 禦侮將軍 이하의 품계를 가진 자.
(148) 쌍호무늬 흉배[雙虎胸背]
武官 堂上官의 흉배로 무관을 상징하는 호랑이 무늬를 수놓았다.
(149) 호박장 가락지-영친왕비 진주 두루주머니-자수항주머니-금장식 두루주머니
*두루주머니: 아래는 둥글고 위는 모가 진, 허리에 차는 주머니. 염낭.
(150) 봉황무늬 보자기
*궁중보자기[宮褓]: 궁중에서 두루 소용되었던 각종 물품을 싸거나 꾸미는 데 썼던
보자기로 궁보를 통해 궁중이라는 특수 사회의 생활양식 내지 생활 문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婚需品을 비롯하여 각종 儀禮에 필요한 禮物과 일상 생활용품들을 보자기에
정성스럽게 싸서 보관하였다.
궁중 보자기는 최상급 織物과 화려한 色相과 여러 가지 문양으로 造形的인
아름다움을 더했으며, 보자기는 漢字로 褓(*포대기 보), 袱(*보 복), 福(*복 복)으로
표기하여 ‘福’字와 音이 같아 뜻이 통하는 것으로 믿어 보자기에 싸두는 내용물을
福에 비유하여 복을 싸두면 복이 간직된다는 俗信이 보자기의 발달을 더욱
促進시켰다.
-景福34회 제57차 문화답사(4); 國立古宮博物館 상설전시실(3)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