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유가사]
짐이 왕위에 오른 이래,
절을 짓고 경전을 편찬하고
스님을 만든 것이 이루 셀 수 없이 많은데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아무 공덕이 없습니다
(幷無功德).
어찌하여 공덕이 없습니까?
이것은 인간과 천상의 작은 과보를 받는 유루(有漏)의 원인일 뿐,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아서
있는 듯 하나 실체가 없습니다.
어떠한 것이 진실한 공덕입니까?
청정한 지혜는 묘하고 원만하여 본체가 원래 비고 고요하니,
이러한 공덕은 세상의 법으로는 구하지 못합니다.
어떤 것이 성스러운 진리의 제일가는 이치입니까
(聖諦第一義)?
텅 비어 성스러움이란 없습니다(廓然無聖).
[전등록]
공덕이 없다.
인간과 천상의 작은
과보를 받을 뿐.
아무리 복을 짓더라도
그것은 천상에 태어나거나,
조건 좋은 인간으로 태어나거나 하는
그런 작은 과보만을 받을 뿐이다.
물론 사람들에게는
그런 과보처럼 크고 좋게 보이는 것이 없을테니
큰 공덕이라고 좋아하겠지만,
그것은 유루의 공덕일 뿐,
무루의 공덕에는 미칠 수 없다.
아무리 천상에 산들,
아무리 조건 좋은
인간으로 태어난들,
설사 잘 생기고, 돈 많고, 집 좋고, 가문 좋은
그런 곳에 태어난다고 한들
그것이 그대로 '행복한 삶'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 조건 속에서
괴로움에 허덕이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조건을 뛰어넘어
어떠한 조건이나 상황 속에서도
의연하고, 초연하며, 여여하고, 평화로운
깨어있는 정신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
그러한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아무리 좋은 조건도
실체 없는 그림자요 헛된 환영일 뿐이다.
돈, 명예, 권력, 지위, 계급...
이 모든 것이 다 환영일 뿐이지 않은가.
그러면 참된 공덕은 무엇인가.
청정한 지혜 공덕은
원만하며 고요하고 텅
비어 있다.
비어 있기에
세상의 법으로는 구할 수 없다.
돈이 아무리 많더라도,
지위나 계급이 아무리 높더라도,
청정한 지혜 공덕을 살 수도 얻을 수도 없다.
얻으려는 노력이나 애씀을 통해서도 얻을 수 없다.
세상의 그 어떤 법으로도 구할 수 없다.
모든 것이 텅 비어있다.
빈 것은 따로 얻을 것이 없다.
이미 빈 그대로 충만하다.
빈 것을 또 다시 애써 비울 필요는 없잖은가.
성스러운 진리라는 것도
그와 같다.
성스러운 진리는 맑게 비어
있다고 할 수도
그렇다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금강경의 표현을 빌자면
성스러운 진리는
성스러운 진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성스러운
진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