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야의 발자취를 찾아서/靑石 전성훈
잃어버린 왕국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길은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다. 무심한 세월의 흐름이 덧칠한 비좁고 거친 길이기에 오히려 담담하다. 천오백 년도 훨씬 넘는 머나먼 옛날, 척박한 생활 터전에서 맨몸으로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왔을 이 땅의 민초들 모습을 그려보는 일은, 잃어버린 슬픈 자화상을 찾아가는 힘들고 어려운 길과도 일맥상통한다. 올해 도봉문화원 인문학 기행은 우리나라 역사상 한 나라의 수도였던 곳을 찾는 여정이다. 이번에는 “대가야의 꿈이 이곳에 서리다”라는 표제로 산고수령(山高水靈), 산 높고 물이 맑은 살기 좋은 고장, 경북 고령(高靈)이다. 학창시절 배웠던 여섯 가야의 하나인 대가야지역을 찾아가는 탐방이다. 계절이 6월 중순이라 새벽 5시경부터 바깥이 훤하다. 또 하루가 밝아왔음을 알려주는 이글거리는 태양의 빛이 찬란하다. 평일임에도 길이 많이 막히는 탓에, 오전 6시 반 도봉문화원을 출발한 관광버스가 수락산터널을 지나 중부 고속도로 만남의 광장까지 가는 데 1시간이 걸린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따가운 햇빛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서 커튼을 치고 이른 아침의 붉은 기운을 느껴본다. 문경휴게소에서 한동안 쉬면서 주위 경치를 둘러보니 온 산이 푸르디푸른 물감을 뒤집어쓰고 있어 마음이 편안해진다.
고령에서 처음 찾은 곳은 개실마을이다. 개실마을은 예로부터 마을의 풍경이 아름다워 한자 ‘아름다울 가(佳)’와 ‘골 곡(谷)‘자를 써서 ’가곡‘(佳谷)이라 부르던 것을 한글로 음차하여 ’개애실‘으로 불리다가 개실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전통한옥 14동을 개량한 마을은 관리가 잘 되어 깨끗하고 민박 체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문충세가(文忠世家)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점필재 종택 마루에 앉아서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대문 앞 건너편 산봉우리를 바라본다. 산의 정령이 집안 가득히 감싸고 있는 듯 하다. 종택 부근 잎이 무성한 커다란 나무에 열매가 달려있어 무슨 열매인가 궁금해 사진을 한 컷 찍는데, 옆에 있던 분들이 ’복숭아‘다, ’살구‘다 하는 이야기가 들린다. 어떤 분이 복숭아가 아니고 살구 열매라고 분명하게 알려준다. 도봉문화원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은 조선왕조 4대 사화의 첫 번째인 무오사화(戊午士禍)의 실마리를 제공한 문충공(文忠公)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선생의 후손들 집성촌이다. 점필재 종택(宗宅)에는 김종직 선생의 후손이 살고 있다. 김종직 선생이 20대 중반에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은 연산군 시절 무오사화의 발단이 되는 사초로, 중국의 고사( 초한지 주인공 항우가 초나라 의제를 죽임)를 인용하여 의제와 단종을 비유하면서 수양대군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난한 글이다. 김종직 선생은 무덤을 파헤쳐 시신의 목을 베는 부관참시(剖棺斬屍)의 수모를 당했으나 중종반정(中宗反正) 때 신원(伸冤) 되었다. 후손이 잘되어 치욕스러운 과거도 복권되어야만 역사의 인물로 그려지는 법이거늘, 점필재 선생은 조선 선비사회 영남학파의 조종으로 불린다. 햇볕이 너무나 뜨거워 바깥을 나돌아다니는 게 무리일 것 같은 날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방은 이루어진다. 매콤한 갈비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나른한 기분으로 오후에는 대가야 왕릉 전시관과 박물관 구경에 나선다. 2023년 9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지산동 고분군에 가려면 땡볕 속에서 한참 걸어서 동산을 올라가야 하기에 몸 상태와 나이를 생각해서 포기하고, 박물관에서 시간을 즐긴다. 고분군 모형을 보면서 순장(殉葬) 풍습을 그려본다. 지산동 44호분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확인된 최대규모의 순장 무덤이라고 한다. 다양한 연령대의 남자와 여자,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딸, 형제자매가 함께 순장되었다고 한다. 무덤 주인공인 왕이 사용했거나 저승 생활에 필요한 각종 물품을 넣어 둔 것을 ’껴묻거리‘라고 하는데, 토기, 무기, 말갖춤, 장신구, 축소모형철기 등이 발굴되었다. 5백년 이상 존속했던 대가야왕국은 신라 진흥왕 때에 정복당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무수한 세월이 흐른 후대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인류의 역사는 잃어버린 자와 빼앗은 자의 흔적이 섞이고 흩어지고 다시 섞이면서 새로운 발자취를 만들어 간다. 인류의 삶은 후세인에게 한 꺼풀 한 꺼풀씩 과거의 벌거벗은 모습으로 유한한 인간의 삶과 기나긴 인류 역사의 헝클어지고 얼룩진 속살을 보여준다. 멸망한 나라의 원한과 슬픔도 새로 시작하는 나라의 수레바퀴 안에서 용광로 속처럼 녹아 들어 하나가 된다. 지나간 역사와 개인의 삶에 깊이 얽매여,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과 불행했던 상처를 곱씹으며 서러워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24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