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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3.26. 주일축복예배 설교문【19 KSN-11[21주 복음 설교 프로젝트]
제목: 왜 구원 초청을 하는가?
Why do you do deliverance invitation?
본문: 에베소서 2:8-10절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8For by grace are ye saved through faith; and that not of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 9Not of works, lest any man should boast. 10For we are his workmanship, created in Christ Jesus unto good works, which God hath before ordained that we should walk in them.
찬양: 250장(통 182장) -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252장(통 184장) – 나의 죄를 씻기는,
254장(통 186장) – 내 주의 보혈은.
할렐루야!!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은총이 교회 공동체 여러분과 교회 공동체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교회 공동체 여러분의 사업과 직장과 학교와 가정과 새신자들 위에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최대의 사건이며 잊을 수 없는 최고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설교의 목적도 구원 복음에 관한 설교를 하고나면 반드시 목사는 적극적으로 구원 초청의 시간을 갖습니다. 특히 한국보다 미국의 경우는 거의 대부분 복음을 전하면 구원 초청을 합니다. 아마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목사님이 한국에 오셔서 전도집회를 했던 것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 당시 목사님의 구원 초청은 강단 앞으로 수천 명이 걸어 나오는 대단한 광경이었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믿기 원하시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나오십시오.’ 목사님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따라하게 하고, 그 기도가 끝난 후 ‘당신은 오늘 구원을 받았다’고 목사님은 선언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그런 순간적 선택이나 방법으로 가능한 것이 성경적으로 올바른 것인가? 혹시 구원 초청에 순종한 사람은 모두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인가? 그러나 만일 목사의 구원 초청을 받지 않았거나 그런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인가? 그래서 우리는 진정으로 구원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 초청은 왜 중요한 것인가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오늘은 구원의 수단이나 방법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본질과 의미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시간을 갖자는 것입니다. 먼저 성경 네 구절을 찾아보겠습니다.
마태복음11: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Come unto me, all ye that labour and are heavy laden, and I will give you rest.”입니다.
요한복음3: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soever believeth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verlasting life.”입니다.
사도행전16:31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And they said, Believe on the Lord Jesus Christ, and thou shalt be saved, and thy house.”입니다.
요한계시록3:20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Behold,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if any man hear my voice, and open the door, I will come in to him, and will sup with him, and he with me.”입니다
지금 함께 읽은 성경 구절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왜 교회에서 이런 말씀을 핵심적으로 강조하느냐면 구원의 믿음으로 이끌기 위한 것입니다. 실제로 이 말씀들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초청, 구원의 믿음, 구원의 약속으로 받아들이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들은 여전히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 구원을 보장해주고 확신하도록 해 줍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교회 공동체들은 내가 그동안 구원을 받은 근거 혹은 믿음이 어떠한 것이었나를 확인해 보면 이 말씀의 의도와 나의 시각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우선순위order of priority가 중요한 것이며 사람의 행위와 의지에 의한 반응reaction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 복음을 이해하는데 풀어야할 중대한 문제입니다. 구원은 개인의 반응에 따라 결정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은 전혀 관계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 의해 구원이 결정된다면 복음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구원에는 믿음이 조건이 됩니다. 그래서 주 예수를 믿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주권을 누가 행사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다르게 됩니다. 본문 8-9절입니다.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8For by grace are ye saved through faith; and that not of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 9Not of works, lest any man should boast.” 구원에서 우선순위란 은혜를 말하는 것이고, 사람의 반응은 행위를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가 단호하게 구원에 대해 100%의 구원과 혼합되고 희석된 50대50%의 구원은 다른 것이라고 단언하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절대 하나님과 사람의 협력, 합의, 분담에 의하여 되는 신인협력설synergism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의 완전 타락, 완전 죄인을 부정하는 것이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는 구원도 부정되는 것입니다. 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선물을 말씀합니까? 구원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시길 기도합니다. 교회에서 구원 초청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책임을 다해 구원 초청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왜 우리는 구원 초청에 대해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보고만 있느냐를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구원 초청을 하지 않을 때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기회조차도 없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구원 초청의 불편함이나 수치, 당황스러움, 두려움, 억지, 부자연스런 태도, 수동적, 억압, 공포와 같은 부작용도 있기 마련임에도 교회는 구원 받아야할 사람들을 위해 초청하는 것은 사명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교회 공동체는 구원 초청을 할 때 새로운 사람들이 구원을 받도록 함께 간절함으로 애원하며 뜨겁게 기도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교회의 목적은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늘어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목적은 사람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복음을 확장시키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 공동체는 구원 초청의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재정립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1. 구원 초청이란 구원의 깊이에 들어가도록 하는 생명으로의 초대입니다.
구원은 나쁜 곳에서 좋은 곳으로 탈출하기 위한 죄 용서의 메시지가 아니라고 존 오트버그 목사는 말했습니다. 우리교회 공동체는 구원의 초청을 받으면 무조건 천국을 가는데 거쳐야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 초청이란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고, 강단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전부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구원 초청의 목적은 그런 가시적이고 형식적인 모습보다 깊은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기회가 주는 의미입니다. 구원의 동의어는 생명이라고 합니다. 구원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초청에 아멘하고 회심기도에 반응하는 것을 넘어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요한복음10:10절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The thief cometh not, but for to steal, and to kill, and to destroy: I am come that they might have life, and that they might have it more abundantly.”입니다. 요한1서2:25절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And this is the promise that he hath promised us, even eternal life.”입니다. 요한1서5:12절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He that hath the Son hath life; and he that hath not the Son of God hath not life.”입니다. 이 말씀들에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진 생명의 역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은 단순히 죄와 사망에서 건져냄을 받거나 해방된 것 이상으로 새로운 생명의 탄생입니다. 구원 초청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새 생명이 시작되게 하신 것입니다. 구원의 초청은 사람의 존재성 자체를 완전히 바꾸는 새 창조입니다. 로마서6:4절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Therefore we are buried with him by baptism into death: that like as Christ was raised up from the dead by the glory of the Father, even so we also should walk in newness of life.”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구원 초청이 있기 전의 상태를 옛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옛 사람이 누구입니까? 죄에게 종노릇 하는 사람을 뜻합니다(롬6:6절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Knowing this, that our old man is crucified with him, that the body of sin might be destroyed, that henceforth we should not serve sin.). 욕심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엡4:22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That ye put off concerning the former conversation the old man, which is corrupt according to the deceitful lusts;). 그런 사람들이 구원 초청을 통해 새로운 생명, 새로운 사람,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거듭남 안으로 들어가는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초청의 목적은 개인의 회심이나 결단을 넘어 새로운 생명을 얻게 하는 새로운 일입니다. 고린도후서5:17절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Therefore if any man be in Christ, he is a new creature: old things are passed away; behold, all things are become new.” 그래서 구원은 행동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영원한 생명을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바로 그 관계가 구원입니다. 이렇게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새 생명입니다. 교회는 날마다 주님의 구원 초청이 이행되는 곳입니다. 교회는 날마다 구원을 통한 생명 역사가 일어나는 곳입니다. 교회는 천국 가는 티켓(ticket)을 팔거나 가도록 부추기는 곳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곳입니다. 요한1서1:2절입니다.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For the life was manifested, and we have seen it, and bear witness, and shew unto you that eternal life, which was with the Father, and was manifested unto us;” 할렐루야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구원입니다. 이 초청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유효하며 누구에게나 동일한 것입니다. 이 생명의 초청에 참여하여 얻는 구원 기쁨과 감격 때문에 복음을 전하려고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 사람이 없는 교회는 이런 영적 축제가 없기 때문에 갖가지 문제들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교회는 계속해서 구원 초청을 기대하고 그들을 위하여 합심해서 기도하고 성령의 임재 가운데 매주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새 생명의 출생이 이어지도록 모두가 힘써야 합니다.
2. 구원 초청이란 외적 형식을 갖추기보다 내적 변화로의 초대입니다.
에베소서2:1-5절입니다. “1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1And you hath he quickened, who were dead in trespasses and sins; 2Wherein in time past ye walked according to the course of this world, according to the prince of the power of the air, the spirit that now worketh in the children of disobedience: 3Among whom also we all had our conversation in times past in the lusts of our flesh, fulfilling the desires of the flesh and of the mind; and were by nature the children of wrath, even as others. 4But God, who is rich in mercy, for his great love wherewith he loved us, 5Even when we were dead in sins, hath quickened us together with Christ, (by grace ye are saved;)” 사람에게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 어느 정도일까? 변화 가운데 가장 불가능한 변화의 영역은 어떤 것일까요? 사람들이 변화에 실패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말하는 속사람에 두지 않고 외적 현상, 형식, 수단, 장소에 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전제 조건은 변화의 영역을 아는 일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나에게 어느 정도까지의 변화가 가능한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우리교회 공동체는 구원을 받은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의 핵심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점진적으로 변화되다가 천국 가기 전에 거의 자격이 될 정도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구원관은 외적인 것에 치우쳐 종교인으로 사는데 익숙합니다. 열심히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일하고 봉사하고 전도하면서 어느 날 믿음이 좋아져서 천국을 갈 수 있으리라는 자격을 얻고 보상으로 어렴풋이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구원 초청이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구원 초청을 한다는 것은 충분하게 복음을 가르치고 변화의 과정을 설명하여 마지막 종착지까지의 전 메시지에 참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방적으로 회중들에게 설교하는 태도에서 회중 한사람 한 사람에게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을 통해 변증하게 하는 설교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변증이란 질문에 답하여 타인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주는 일로 변증은 사람들이 믿는데 도움이 되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구원 초청이 있는 설교를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 설교라고 하며 서로 질문과 답을 주며 바른 목적지까지 연결시켜주게 되는 차원 높은 설교인 것입니다.
사도행전26:18절입니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To open their eyes, and to turn them from darkness to light, and from the power of Satan unto God, that they may receive forgiveness of sins, and inheritance among them which are sanctified by faith that is in me.” 이 말씀이 바울 사도가 말하는 구원 초청의 진수입니다. 구원 초청은 단순히 목사가 요구하는 기대와 부탁에 어쩔 수 없이 반응하는 형식이 아닙니다. 구원 초청의 목적은 내면의 변화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어야 할 사람, 세상의 풍조와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던 사람, 불순종의 사람, 결국 진노의 자녀였던 사람들에게 구원 초청은 완전 변화 안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어 주는 초대인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전적 변화, 완전 변화, 100%의 변화라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나아져 가는 것, 좋아져 가는 것, 착해 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는 그 시간 자신의 전존재, 실존이 완전하게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공동체는 사도 베드로를 통해 이미 수없이 깨닫게 된 구원의 믿음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습니다. 많은 시간 예수님과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장소, 같은 시간, 같은 사건을 경험했음에도 마지막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그의 믿음은 산산 조각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구원의 믿음은 결국 그에게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 새롭게 구원의 복음을 깨닫고 난 후 그는 완전하게 변화되었
습니다(행2:14-36절 14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22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23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4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5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6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27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8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29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14But Peter, standing up with the eleven, lifted up his voice, and said unto them, Ye men of Judaea, and all ye that dwell at Jerusalem, be this known unto you, and hearken to my words: 15For these are not drunken, as ye suppose, seeing it is but the third hour of the day. 16But this is that which was spoken by the prophet Joel; 17And it shall come to pass in the last days, saith God, I will pour out of my Spirit upon all flesh: and your sons and your daughters shall prophesy, and your young men shall see visions, and your old men shall dream dreams: 18And on my servants and on my handmaidens I will pour out in those days of my Spirit; and they shall prophesy: 19And I will shew wonders in heaven above, and signs in the earth beneath; blood, and fire, and vapour of smoke: 20The sun shall be turned into darkness, and the moon into blood, before the great and notable day of the Lord come: 21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whosoever shall call on the name of the Lord shall be saved. 22Ye men of Israel, hear these words; Jesus of Nazareth, a man approved of God among you by miracles and wonders and signs, which God did by him in the midst of you, as ye yourselves also know: 23Him, being delivered by the determinate counsel and foreknowledge of God, ye have taken, and by wicked hands have crucified and slain: 24Whom God hath raised up, having loosed the pains of death: because it was not possible that he should be holden of it. 25For David speaketh concerning him, I foresaw the Lord always before my face, for he is on my right hand, that I should not be moved: 26Therefore did my heart rejoice, and my tongue was glad; moreover also my flesh shall rest in hope: 27Because thou wilt not leave my soul in hell, neither wilt thou suffer thine Holy One to see corruption. 28Thou hast made known to me the ways of life; thou shalt make me full of joy with thy countenance. 29Men and brethren, let me freely speak unto you of the patriarch David, that he is both dead and buried, and his sepulchre is with us unto this day. 30Therefore being a prophet, and knowing that God had sworn with an oath to him, that of the fruit of his loins, according to the flesh, he would raise up Christ to sit on his throne; 31He seeing this before spake of the resurrection of Christ, that his soul was not left in hell, neither his flesh did see corruption. 32This Jesus hath God raised up, whereof we all are witnesses. 33Therefore being by the right hand of God exalted, and having received of the Father the promise of the Holy Ghost, he hath shed forth this, which ye now see and hear. 34For David is not ascended into the heavens: but he saith himself, The Lord said unto my Lord, Sit thou on my right hand, 35Until I make thy foes thy footstool. 36Therefore let all the house of Israel know assuredly, that God hath made the same Jesus, whom ye have crucified, both Lord and Christ.). 그리고 그 후로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Which in time past were not a people, but are now the people of God: which had not obtained mercy, but now have obtained mercy.”(벧전2:10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For ye were as sheep going astray; but are now returned unto the Shepherd and Bishop of your souls.”(벧전2:25절). 이렇게 구원은 내적 변화가 일어나는 전인적인 일입니다. 구원은 감동이나 감정적 터치, 잠시 죄의 용서, 벅찬 느낌, 시원한 쾌감, 흐르는 눈물, 즐거움의 폭발, 고마움과 감사에 매료되는 정도로의 잘되어가고 형통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구원 초청의 목적이 이런 외형적 필요를 채워주거나 조금 더 나은 삶의 수준이나 행복의 조건을 위한 것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결국 땅의 것에 만족하도록 하는 형편없는 구원일 것입니다.
이사야12:2절입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Behold, God is my salvation; I will trust, and not be afraid: for the LORD JEHOVAH is my strength and my song; he also is become my salvation.” 우리교회 공동체가 구원 초청을 받고 부르는 구원의 노래는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원을 위하여 이루어 놓으신 일을 바라보면 얼마나 우리교회 공동체는 구원으로부터 완전한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인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 그분의 권위와 그분의 약속에 의하여 내면 전체가 변화되는 구원을 경험하여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갈2: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I am crucified with Christ: neverthless I live; yet not I, but Christ liveth in me: and the life which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the faith of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3. 구원 초청은 사람의 항복 선언이며 하나님 은혜로의 초대입니다.
본문 9절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Not of works, lest any man should boast.” 구원 초청의 1%의 오류는 전체를 망가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노력, 행위, 열심으로 이루려는 구원입니다. 구원의 적, 구원의 장애물, 구원의 실패가 여기에 있습니다. 왜 구원은 행위를 거부합니까? 구원의 절대성 때문입니다. 구원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행위가 무엇입니까? 로마서3:20절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Therefore by the deeds of the law there shall no flesh be justified in his sight: for by the law is the knowledge of sin.” 갈라디아서2:16절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Knowing that a man is not justified by the works of the law, but by the faith of Jesus Christ, even we have believed in Jesus Christ, that we might be justified by the faith of Christ, and not by the works of the law: for by the works of the law shall no flesh be justified.” 왜 행위를 말할 때마다 율법이 등장합니까? 율법은 지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지키는 역할이지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율법은 철로와 같습니다. 바른 방향을 가르쳐주는 것이 율법입니다. 그러나 철로 자체는 아무런 동력이 없습니다. 그 철로 위에 복음의 열차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달리도록 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래서 율법으로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율법을 지킨다고 구원이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율법 대신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 초청의 목적인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100%의 하나님 은혜로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사람이 율법을 지키듯 행위를 지키고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교회 공동체는 행위가 필요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본문 10절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For we are his workmanship, created in Christ Jesus unto good works, which God hath before ordained that we should walk in them.” 하나님의 사람 창조는 선하셨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 깨졌습니다. 그 이후로 사람은 하나님 앞에 행위를 통해 가는 길이 원천적으로 막혔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이제는 다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예전과 같이 회복되어 예수 안에서 얼마든지 의롭게 살게 되는 삶을 통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Therefore as by the offence of one judgment came upon all men to condemnation; even so by the righteousness of one the free gift came upon all men unto justification of life.”(롬5:18절). 우리교회 공동체가 잘 알아야 할 구원과 행위의 차별이 이것입니다.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고 구원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 이후 우리교회 공동체의 행위는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삶이 가능하도록 회복된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 초청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항복 선언인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가는 의롭게 되는 초대인 것입니다. 디모데후서1:9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Who hath saved us, and called us with an holy calling, not according to our works, but according to his own purpose and grace, which was given us in Christ Jesus before the world began,” 그렇습니다. 구원 초청은 행위의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발견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만일 잘못 이해하여 구원은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된다고 하면 그것은 복음의 무지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Jesus saith unto him, 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no man cometh unto the Father, but by me.”(요14:6절). 구원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사람이 예수님을 대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교회는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쳐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초청을 하지 않거나 없다면 그 교회는 잘못된 교회이며 사람들 스스로 구원의 믿음에 대해 혼란을 느끼고 더 이상 구원에 대한 관심도 없게 될 것입니다. 이미 우리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구원에 초대하는 감동적인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사야서55:1-3절입니다. “1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
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1Ho, every one that thirsteth, come ye to the waters, and he that hath no money; come ye, buy, and eat; yea, come, buy wine and milk without money and without price. 2Wherefore do ye spend money for that which is not bread? and your labour for that which satisfieth not? hearken diligently unto me, and eat ye that which is good, and let your soul delight itself in fatness. 3Incline your ear, and come unto me: hear, and your soul shall live; and I will make an everlasting covenant with you, even the sure mercies of David.”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 여러분, 우리교회 공동체는 오늘 하나님의 구원 초청에 응답해야 합니다. 세상의 죄악 가운데, 어둠과 유혹 속에서, 슬픔과 아픔에서, 절망과 패배 안에서, 타락의 도시와 문화의 지배로부터 우리를 구원으로 초청하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누구이든지 사랑과 긍휼과 은혜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면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 초청의 영광은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예수님을 믿는 것에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교회들은 날마다 구원 복음이 선포 되었고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초청 되어 구원을 받는 사람들로 교회는 차고 넘쳤습니다(행2:41,47절 41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7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41 Then they that gladly received his word were baptized: and the same day there were added unto them about three thousand souls. 47Praising God, and having favour with all the people. And the Lord added to the church daily such as should be saved.,4:4절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Howbeit many of them which heard the word believed; and the number of the men was about five thousand,6:7절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And the word of God increased; and the number of the disciples multiplied in Jerusalem greatly; and a great company of the priests were obedient to the faith,9:31절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16:5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Then had the churches rest throughout all Judaea and Galilee and Samaria, and were edified; and walking in the fear of the Lord, and in the comfort of the Holy Ghost, were multiplied.). 우리교회도 사도행전 교회와 같은 구원 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하는 교회가 되길 갈망하며 구원의 소문이 온 세상을 덮는데 쓰임 받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오늘도 하나님의 구원 초청에 응답하여 100% 복음인으로 사는 행복에 참여하는 믿음이 되길 축복합니다. 아멘
우리교회 공동체는 구원 초청의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재정립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1. 구원 초청이란 구원의 깊이에 들어가도록 하는 생명으로의 초대입니다.
2. 구원 초청이란 외적 형식을 갖추기보다 내적 변화로의 초대입니다.
3. 구원 초청은 사람의 항복 선언이며 하나님 은혜로의 초대입니다.
우리교회도 사도행전 교회와 같은 구원 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하는 교회가 되길 갈망하며 구원의 소문이 온 세상을 덮는데 쓰임 받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오늘도 하나님의 구원 초청에 응답하여 100% 복음인으로 사는 행복에 참여하는 믿음이 되길 축복합니다. 아멘
<복음 선언>
‘복음을 품고, 교회를 품고, 하나님 나라를 품고, 그 영광으로 세상을 뒤덮자!’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교회 공동체는 구원 초청의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재정립하도록 해야 하는 것은, 구원 초청이란 구원의 깊이에 들어가도록 하는 생명으로의 초대이고, 외적 형식을 갖추기보다 내적 변화로의 초대이고, 사람의 항복 선언이며 하나님 은혜로의 초대로, 부르심의 기회를 응답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시어 나의 죄를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변화되어 예수가 나의 주님과 구세주와 그리스도임을 전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침기도: 지금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함께하시는 우리교회 공동체를 사랑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사랑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심이 우리교회 공동체는 구원 초청의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재정립하도록 해야 하는 것은, 구원 초청이란 구원의 깊이에 들어가도록 하는 생명으로의 초대이고, 외적 형식을 갖추기보다 내적 변화로의 초대이고, 사람의 항복 선언이며 하나님 은혜로의 초대로, 부르심의 기회를 응답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시어 나의 죄를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변화되어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과 구세주요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전파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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