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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살면서 싫음과 없음에 대하여
새해 아침이다. 암에 걸려 내 모습을 잃어버리고 나니 이젠 사람들 기억에서 잊힌 모양이다.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에게서 가끔씩 오던 전화마저도 끊겨버렸다. 온종일 전화 한 통 없다. 바깥소식이라고 해야 밴드에 올라오는 사진이나 소식이 전부다. 만약 그마저도 없다면 절해고도에 위리안치 되어 귀향 살이 하는 거와 다름없다. 살아생전 가장 가슴 아픈 게 욕 듣는 사람보다 잊힌 사람이 되는 거라고 했다. 이런 나를 구원하는 건 나밖에 없다. 너무 외로워 우울감에 빠지지 않으려면 방법은 딱 하나, 나 스스로 존재감을 찾아야 한다. 솔직히 말해 지금은 부르는 곳이 있다고 해도 이런 모습으로 여기저기 다니기도 싫다. 조용히 이대로 살고 싶다. 그렇게 살다가 사람들 기억 속에 핫바지 방귀 새듯 사라져버리고 싶다. 사람들에게 잊히는 건 죽기보다 싫지만, 나 혼자 아무리 발버둥 친다고 해도 사람들 기억에 남길만한 게 없다. 남보다 얼굴이 잘생기거나 성질이 남달라서 기억할 것도 아니고 돈이 많아 좋은 일에 팍팍 쓸 일도 없다. 명색이 수필가지만 글을 잘 써 여기저기 상 받느라 기억될 일도 없다. 내가 생각해도 기억할게 정말 아무것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나에 대한 존재감을 갖게 하는 게 아내다. 아내는 내가 먹을 밥상을 차릴 때 나 먹기 좋도록 해놓고는 밥을 먹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시인이 시를 쓰듯 수필을 쓴다. 나는 그럴 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하루도 그러지 않고 아무 말 없이 그러기가 무척이나 힘들 건데 아내는 그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 제법 오랜 세월이라 지칠 만도 한데 나에게 만큼은 천하장사다. 나는 그게 너무 고마워 매일아침 눈뜨면 밥 먹으러 들어서는 내 모습을 보고 잠깐이라도 아내가 미소 지을 일 찾느라 전신통증으로 온몸이 으스러지게 아파도 이를 악문다. 내가 아내에게 잊히지 않으려고 껌 딱지가 되는 것도 마다할일 아니다. 남은 내 삶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또 다른 세상을 품에 안는 일이다. 거기에 또 하나 수필가도 때가 되면 독자에게 힘이 되는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 그것 역시 자기 존재감을 찾는 일이다.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아픈 몸으로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을 살아보니 다른 사람과 같은 처지로 살던 때와는 달리 지금은 안보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밝게 말하면 시야가 넓어지고 깊어진다. 전에는 예사로 넘기며 보던 것을 지금은 그렇지 않다. 달리 보인다. 전에 없던 눈이 생겼다. 마음에 눈이다.
내 나이 60대 초만 해도 세상이 그런대로 살 만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큰 병에 걸려 내가 나를 잃어버리니 세상이 온통 어둡게만 보인다. 그렇다고 마냥 이대로만 살수 없는 노릇이고 심해에 물고기처럼 나 스스로 지금 내게 주어진 세상에 맞춰 살면 된다. 몸 상태가 이전과 달라졌을 뿐이지 지금도 내 힘으로 못 하는 게 없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싼다. 잘 읽고 잘 쓴다. 생각도 많이 한다. 이만하면 그런대로 살 만한데도 되돌아갈 수 없는 예전 나를 생각하며 눈만 뜨면 어두운 생각으로 오늘을 비관하고 있는 내가 우습다. 정말 아픔으로 고통스러우면 아무것도 못한다. 언젠가 TV 6시 내 고향을 보고 있으니 아흔이 다 된 노인이 나무 한 그루를 마치 자식 키우듯 하는 것을 보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그 모습에 저절로 머리가 숙어졌다. 저렇듯 인생 마지막을 들기름 짜듯 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 부엌 아궁이에서 방 골로 들어가는 장작불처럼 활활 타올라야 한다. 타다만 것은 보기 싫은 법이다. 바람에 날리는 재가 되어야 한다. 나이를 떠나 몸 아파 아무것도 못하는 나를 뒷바라지 하며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는 아내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것을 보고도 고개 숙어지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살았어도 헛살았다.
나는 요즘 내 일상이 차량사고로 막혀버린 고속도로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내 일상이 그럴 것이다. 어찌할 수 없다면 그렇게라도 살아야 한다. 더도 덜도 말고 지금 이대로라면 그냥 견딜 만하다. 그건 내 운명이니까. 나는 그럴 때 죽기 사흘 전에도 주해(注解)를 고쳐 썼다는 주자(朱子)를 생각하는 것이다.
계륵(鷄肋) 같은 것에 대하여
살면서 애지중지하던 것 중에는 계륵 같은 게 많을 것이다. 버리자니 아깝고 안 버리자니 짐 되는 것들이다. 그럴 때는 눈 딱 감고 버려야 한다. 움켜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으면 새로운 것이 얻어지듯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나는 그게 수석이었다. 모양이 특별하거나 값나가는 것도 없다. 쓰레기처럼 내다 버릴 수도 없고 남 주자니 달가워하지도 않는다. 나는 취미 중에서도 최상의 취미라 생각하고 오랜 시간 수석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모은 것을 좌대나 수반에 담아 바라보며 나는 그럴 때마다 사람들에게 돌에서 물소리 바람 소리가 들린다며 고상한 척 너스레떨었다. 사실 그때 그 풍경이 생각나는 돌도 있다. 그러나 그건 혼자 생각이었다. 아무도 그것을 공감하지 못했다. 그때는 왜 그리 돌이 좋았는지 모르겠다. 내 곁에 있는 한 영원히 변치 않을 동반자라 생각하고 아끼고 사랑했다. 그 시절엔 마음 나눌 만한 친구가 없어 무척 외롭기도 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거기에 싫증 난 게 아니라 이보다 훨씬 나를 사로잡는 일이 많았다. 이 모든 게 나 죽고 나면 그걸로 끝이라는 생각도 나를 붙잡지 못했다. 이제 끝내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도 하나둘 곧 내 곁을 떠나려고 한다. 나처럼 돌 좋아하는 사람에게 줄 생각이다. 그러면 나는 박경리 선생처럼 버릴 것만 남아서 홀가분할 것이다.
산 너머로 보는 하늘이 맑고 푸르다. 완연한 가을이다. 이맘때가 되면 강으로 바다로 산으로 돌 찾아 돌아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이제는 영영 그 시절로 돌아 갈 수 없을 것이고 나는 그때를 준비해야 한다. 세월이 변하면 마음도 달라지는 모양이다. 지금은 마음에 쏙 드는 글 한 편 쓰는 일이 돌 한 점 얻는 것보다 즐겁다. 생각만 나면 찾아갈 곳이 있어 외롭지도 않다. 그때는 돌이었지만 지금은 글이다. 어찌 보면 남은 내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 아니다. 만날 땐 반갑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남자처럼 나도 이제 새 임을 맞아야 할 것 같다.
우물과 두레박
우물과 두레박이라고 하면 그것에 관한 생각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블로그 닉네임마저도 우물과 두레박이다. 무슨 깊은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릴 적부터 집 옆에 있는 우물과 두레박을 보며 자란 탓에 심층정서로 남아있어 자연스레 닉네임이 되었다. 우물에는 물이 있고 두레박은 그 물을 길어 올리는 도구다. 둘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인연이기에 우물이라 하면 저절로 두레박을 떠올리게 된다. 만약 우물에 두레박이 없다면 물은 그저 그림의 떡이다. 깊은 곳에서 그냥 물로만 존재한다면 어떤 것에든 실질적으로 도움 되지는 않고 깊은 곳에 고인 물일뿐이다. 두레박으로 그 물을 길어 올렸을 때, 그것은 세상 만물에 없어서는 안 될 생명수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책을 읽고 글 쓰는 일도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긷는 것과 같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으로 우물을 책이 있는 곳이고 두레박은 그것을 퍼 올려 글 쓰는 일이라고 여기며 이 글을 쓴다. 세상 수많은 책을 통한 사유의 우물에서 길어 올리는 것은 당장은 표 나지 않는 물 한 바가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끊임없이 길어 올려 그것을 유용하게만 쓴다면 그 물로 말미암아 사람과 다른 생명을 황폐시키는 수많은 것들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아니면 그것으로 세상 만물을 이롭게 하는 또 다른 생명을 만들어 낼 것이다. 요즘은 혼자 우물에서 물을 긷는 일은 하루도 거르지 않는 게 나의 일상이다. 그렇게 혼자가 될 때 진정한 내 목소리를 듣는다.
사람 중에는 우물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 것이고, 우물에 물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두레박으로 물을 긷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우물을 쳐다만 보고 그 물을 길어 올릴 생각조차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인생길이 있는 법이다. 설령 나와는 길이 다르다고 해도 자신에게 주어진 다른 것으로 열심히만 살았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존경받을 일이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자기만의 우물과 두레박이 있기 때문이다.
등대지기
제법 오랜 시간 문인으로 살다 보니 책 출간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순전히 내 경험이다. 산모가 출산하듯 애써 책을 낸다고 해도 이름 있는 작가라면 모를까 그렇지 못한 작가 대부분은 책이 갈 곳을 몰라 종이상자에 담긴 책을 방 한구석에 쌓아놓고 갈 곳 기다린다. 기대에 부풀어 책을 내보았지만, 생각했던 것과 현실이 영 다르다. 서점에 진열되어 사람들에게 팔릴 것도 아니고 같은 문인이나 자기를 아는 가까운 사람에게 주는 게 전부다. 기껏해야 그것으로 여기저기 소개되고 있는 동안 잠시 이름 알리는 일이 그나마 보람이다. 나머지는 방안에 쌓아놓고 줄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 그것을 바라보며 느끼는 잠깐의 자기만족이다. 어찌 보면 책을 내는 게 딸 시집보내는 것과 같다고 했으나 실제로 내가 책을 내어보니 그보다 더 허무했다. 내 마음은 추수 끝난 들판에 덩그러니 서 있는 허수아비였다. 바람에 떨어지는 벚꽃이었다.
그런 허수아비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벚꽃이 다시 피게 한 것은 살아생전 수십 권 책을 낸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며 내 생각이 비루했음을 알았다. 천박했다. 내가 나에게 부끄러웠다. 왜 그런가를 생각하니 내가 내 책에 만족하지 못해서였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으니 남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런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다. 사랑이란 말없이 전해지는 따스한 봄볕이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딱 하나, 출간할 책을 읽고 또 읽는 책읽기다. 만약 앞으로 책을 내게 된다면 내기 전 서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과 뽀뽀하듯 읽고 또 읽으며 나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읽고 싶다. 한 연구에 따르면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400번을 고쳐 썼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는 못 하겠지만 그 언저리에는 가보고 싶다. 이젠 정말 나를 사랑해야겠다.
책을 쓴다는 것은 인생 역사이고 기록이다. 다른 사람은 그 일을 묵묵히 해낸다. 그러나 이전에 나 같은 사람만 있다면 누구도 책을 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생각이 180도로 달라졌다. 왜 책을 써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아직은 생각이 견고하지 않아 앞서간 사람들의 책을 읽으며 동굴 안에서 잠자고 있는 나를 깨우는 중이다. 어서 빨리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처럼 동굴 밖으로 나와야 한다. 나와서는 무조건 남들이 써 놓은 책을 읽어야 한다. 고전이든 신간이든 가리지 않고 읽되 책다운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은 길을 가르쳐준다. 깜깜한 바다를 항해할 때 만나는 등대다. 책을 지은 사람은 등대지기다. 등대지기가 유능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따지기 전에 내가 등대지기가 되면 된다.
제목 정하기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작가마다 제목정하기는 나름의 생각이 있겠지만, 수필가인 내 경험으로는 제목 정하는 게 먼저였다. 제목을 정하고 나면 제목이 글을 끌고 가게 된다. 군악대 단장이 대원을 끌고 가듯 그렇게. 평소 우리가 읽는 책도 읽기 전 제목을 보면 어떤 내용일지 대충 감이 잡힌다. 제목과 글은 전기 흐르는 전선처럼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제목과 글이 따로 노는 책은 대부분 재미없고 제목과 내용이 짝이 안 맞다. 제목과 글은 반드시 서로 호응해야 한다. 우리가 읽는 고전이나 세계적인 작가들의 책은 제목과 글이 따로 놀지 않는다. 독자가 읽으며 고개 끄덕이게 한다. 책 제목 정하는 것은 사람 이름 짓기보다 힘 드는 일이다. 나도 내 이름이 마음에 안 들어 평생 의기소침한 적이 한두 번 아니다. 그러니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사람 이름이 마음에 안 들면 바꿀 수도 있지만 책 제목은 그러지도 못한다. 한번 지어놓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어떻게 바꿀까를. 그러면 왜 제목이 중요한지, 금방 답이 나올 것이다. 다른 책도 마찬가지다.
나는 글을 쓰다가 쓰던 글에서 제목을 따오기도 하고 좋다 싶으면 써놓았던 글 제목을 그대로 쓰기도 했다. 그러나 제목의 중요성을 알고부터는 생각이 달라졌다.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번 정해놓으면 끝이기도 하지만 독자가 책을 고를 때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곳이 제목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따라 독자의 선택이 결정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어떤 장르의 작가이든 제목 정하기는 바람에 방향을 잘 아는 돛배의 사공처럼 불어오는 바람 따라 배를 끌고 갈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유능한 뱃사공은 불어오는 바람이 어떤 바람인지를 안다. 문인이라면 이런 일을 사람들에게 평생 불릴 자기 자식 이름 짓듯 해야 한다.
참, 쓸데없는 말
속담에 말이 고우면 비지 사러 갔다 두부 사 온다는 말이 있다. 말 잘하고 욕먹는 일은 없다. 같은 말이라도 억양이나 분위기 따라 좋게도 들리고 싫게도 들리는 것이기에 말은 될수록 분명하되 부드러워야 하고 하지 않아도 될 말은 안 하는 게 상책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해 좋은 일을 하고도 마지막에 말을 잘못해 그동안 쌓았던 신뢰가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대로 말을 잘해 없던 신뢰가 쌓이는 경우도 있다.
친구들과 만나면 같이 음식점이나 술집으로 가는 일이 많은데 정말 듣기 싫은 말이 있다. 친구 하나는 자주 가는 단골집이나 처음 가는 집 가리지 않고 안으로 들어서서 손님이 없으면, 어김없이 하는 소리가 큰 목소리로 "우째 이리 손님이 없노, 와 이렇소! 손님이 이리 없어가지고 우짜노." 라며 떠들어대는 것이다. 그러면 주인과 종업원은 하나같이 민망한 모습이다. 장삿집이란 손님으로 크게 붐비는 집이 아니면 손님이 없을 시간도 있고, 때로는 유난히 손님이 없는 날도 있다. 또 어떨 때는 손님이 붐비는 날도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왜 하필이면 손님이 없을 때만 가는가 싶어 내가 민망해진다.
말을 잘한다는 것, 그것은 달변도 아니고 달콤한 말도 아니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를 하더라도 속에서 숙성되어 걸러져 나온 말이라면 잘 익은 술과 같이 언제라도 듣기 좋을 것이다. 그런데 친구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지금도 그렇다. 손님이 없어 설렁한 집에만 들어가면 ‘어, 와이래 손님이 없노, 장사 안 할라카나,’ 큰 목소리로 침을 튀기며 소리 지르는 것이다. 정말 안 해도 될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집 문을 나설 때 종업원이나 주인들은 어김없이 친구에게는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 모습이 나는 보이는데 친구는 왜 모를까. 말 그대로 실컷 좋은 일 하고 뺨을 맞는 격이다. 살다 보면 친구도 언젠가는 자신이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고 느낄 때가 있을지 모르지만. 좀 짓궂은 바람이 있다면 제발 친구도 식당 같은 자영업을 할 때가 있었으면 좋겠다.
밥 먹는 모습
사람이 밥 먹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대부분을 알 수 있다고 한다면 과장된 이야기일까.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밥 먹는 모습 하나만 봐도 그 사람의 신분이나 직업, 더불어 인품을 대충 가늠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밥 먹는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거기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나이 들어갈수록 얼굴에 그 사람의 역사가 드러나듯 밥 먹는 모습에서도 나타나는 그런 흔적은 숨기려야 숨기지 못하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밥 먹는 모습을 보면 부모의 모습이 읽히고 청년이나 직장인이 밥 먹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몸담은 사회나 학교 아니면 직장에서의 정서가 어떠한가를 가늠할 수 있다. 연륜이 제법 쌓인 사람들의 밥 먹는 모습은 그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울려 밥을 먹을 때는 쉽게 판단하기가 어렵지만 각자 따로 놓고 지켜보면 그동안 몸과 마음에 쌓여있는 인생 여력이 각자 가진 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참 사소한 것에 관심을 두는 것에 의아해할는지 모르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보니 그들의 밥 먹는 모습을 통해 내 모습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어릴 적 할아버지 밥 먹는 모습을 떠올리면. 할머니가 차린 밥상을 마주한 할아버지는 가벼운 헛기침을 하고는 밥을 먹는데, 앉은 자세나 밥상을 물리고 숭늉을 마시는 과정이 글 읽는 모습과 다름이 없었다. 그것을 보고 자란 아버지는 밥 먹는 모습이 옛날 할아버지 모습과 다르지 않았고 그 모습을 자식들이 보며 따라 하게 된다. 옛 어른들이 가르치는 가정교육의 첫 번째가 밥상머리 교육이다. 이 시대의 뼈대를 이루는 큰 일물들의 가정교육은 대부분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요즘 식당 같은 데서 아이들이 밥 먹는 것을 보면 이래도 되는 걸까 싶을 때가 있다. 밥을 먹다 수저를 들고 사방을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고 사람들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밥상 위는 한마디로 난장판이다. 더 한심한 것은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부모는 그 모습을 그냥 두고 보기만 하는 것이다. 옛날 같으면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그것을 지켜보면 십중팔구 아이의 부모도 밥 먹는 모습이 어수선하고 단정하지 못하다. 아이는 부모가 하는 것을 보고 자란다. 따갑게 말해 그 아이에 그 부모다.
국수
나는 국수라면 무엇이든 좋아한다. 칼국수든 잔치국수든 물 국수든 비빔국수든 가리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좋아하는 건 물 국수다. 들어 마시듯 먹는 게 내 성질하고도 맞다. 서서 먹어도 금세 한 그릇 뚝딱이다. 비빔국수는 맛은 있어도 비비는 게 귀찮고 천천히 먹어야 한다. 물 국수는 잘 끓인 육수 물이나 물김치 국물에 말아 먹는 게 제격이다. 겨울에 동치미 물에 말아먹는 것도 색다른 맛이다. 뜨거운 칼국수는 또 다른 맛이다. 추운 겨울 입으로 후후 불어가며 먹을 때는 세상 부러운 게 없다. 그때는 춥지도 않다. 건더기를 건져 먹으며 마시는 국물 맛은 어디에 비길 데가 없다. 나에게는 잊히지 않는 기억 하나가 있다.
지난 시절 춥고 배고플 때였다. 집에 쌀이 떨어지면 학교에 가야 하는 자식들을 빈속으로 보낼 수는 없었던 어머니는 아침을 멀건 시래깃국에 밀가루 수제비 몇 알이 떠 있는 죽을 끓였다. 그것을 먹고 학교에 갔었는데 점심시간에는 내놓을 도시락이 없어 매점에 가는 척 슬며시 빠져나와 수도 간에서 물배를 채우고 학교 뒷마당을 서성거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여름이라 덥기도 하고 힘이 빠져 머리가 어지러웠다. 더구나 집으로 가는 길은 오르막이라 평소보다 더 힘들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먹을 것밖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저녁에는 뭔가를 먹을 수 있을지도 궁금했다.
그렇게 먹을 것만 생각하며 한참을 걸어가는데 길가 나무 그늘 밑 평상에 어른 두 사람이 앉아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국수였다. 가까이 지나가며 곁눈으로 보니 큰 양재기에 수북이 담긴 국수가 너무 맛있어 보였다. 몇 걸음 가다 쉬는 척하고 나무 밑에 퍼질고 앉아 안 보는 척하며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건더기를 다 건져 먹고 국물을 마실 때는 나도 따라서 마시는 것 같았다. 내가 국수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다. 지금도 국물을 마실 때는 국물 속에 그때 내 모습이 들어있다. 지나고 보면 배는 고팠어도 그 시절이 행복했다. 지금은 맛있는 게 없다.
아침 밥상 수저 소리
내가 초등학생일 때 우리 식구는 모두 열 한 명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작은 방에 따로 계셨다. 우리는 방 두 칸과 다락에서 서로 복닥거리며 살았다. 그때 우리 집 아침밥 먹는 풍경은 무슨 잔칫집 같았다. 아버지 할아버지 밥상은 따로 차렸다. 할머니를 포함한 아홉 식구는 둥근 둘레 판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아침밥을 먹고는 각자 제 갈 길대로 학교엘 갔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침 밥상에서 나는 수저 소리는 음악보다 정겨웠다. 어머니는 열 장으로 묶인 김을 연탄불에 구워 한 장씩 주셨다. 귀퉁이 떨어진 김을 받을 때는 곁눈으로 동생들 김을 쳐다보곤 했다. 나는 그 김을 여덟 조각으로 나누어 먹었다. 어머니가 연탄불에다 앞뒤로 살짝 김을 구울 때 코끝을 스치는 향긋한 냄새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요즘도 김을 보면 늘 그 생각이 난다. 돌아보면 김 한 장을 여덟 조각으로 나누어 먹던 그 시절이 정말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아이들은 그런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지금도 아내 없이 집에 있을 때는 혼자 밥 먹을 때가 많다. 식탁에 앉아 먹다 보면 혼자 있길 좋아는 내 성질에 딱 맞다 싶어 좋다가도 번번이 쓸쓸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아무 소리 들리지 않는 적막한 식탁에 덩그러니 앉은 내 모습이 겨울 들판의 허수아비 같다. 그러면 밥 먹다 말고 지난날 커다란 둘레 판에 식구대로 앉아 밥 먹던 생각을 하면 그 시절로 나를 데려간다. 숟가락으로 밥그릇 긁는 소리, 젓가락 달그락거리는 소리, 후루룩거리며 국 먹는 소리, 간간이 뒤섞이는 어머니 목소리, 옆방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들리는 환상에 젖는다. 정신이 들어 수저를 들면 입안에 침이 고여 있다. 아버지는 늘 밥을 조금 남기셨는데 그 밥을 서로 먹으려고 동생과 내가 눈치 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버지 밥은 하얀 쌀밥이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 밥을 조금씩 나누어주곤 했는데 칠 남매를 키워낸 내력이 밥 한술에도 묻어있었다. 저녁에는 밥그릇 깨끗이 비우는 아버지가 왜 아침마다 밥을 남기셨는지 아버지 된 사람이면 그때 그 심정을 알 것이다.
인간의 모습
오래전,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 소이다’와 프란츠 카프카의‘변신’을 읽으며 고양이가 인간을 본 모습과 ‘변신’에서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가 인간을 본 모습은 서로 다르지 않았다. 고양이는 주인집을 드나드는 인간을 보았고, 변신의 그레고르는 가족의 모습을 본 것이 다를 뿐 모두가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레고르와 고양이가 본 인간의 실존적 상황은 우리가 언제나 직면할 수 있는 현실적 상황이다. 나이 들수록 절실히 느끼게 되는 것은 상황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모습이다. 우리 너나없이 경험으로 알지 않은가. 자기에게 이득이 된다 싶으면 한없이 살갑게 대하다가 이득이 없다 싶으면 내쳐버리는 것이 인간이란 것을. 인간이 남긴 맥주를 핥아먹고 술에 취해 물독에 빠져 죽는 고양이나 굶어 죽어가는 그레고르의 눈으로 본 인간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일이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고, 보이다가도 안 보이는 신출귀몰(神出鬼沒)한 것이 인간이다. 나와 가까이 있는 인간일수록 멀어져가는 것임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올 때 혼자 왔다 갈 때 혼자 가는 것도 그렇다.
인간이란 도대체 뭘까. 요즘 TV에서 보듯 태어남도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굶어 죽는 아기가 10초에 한 명이라고 한다. 그와는 반대로 서울 강남에서 태어나 풍요로 넘치는 가정에서 사랑받는 아기는 평생을 배고픔을 모르고 산다.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의 글에는 죽음에도 티끌 같은 죽음이 있고 태산 같은 죽음이 있다고 했다. 나는 천당과 지옥 같은 이 두 가지 상황을 두고 어떤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할수록 아득하다. 내 능력으로는 평생을 풀어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다. 어디서는 해가 뜨고 어디서는 해가 지듯이 인간의 들고 남이 끝없이 이어지는 동그라미라는 것밖에는 모르겠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인가 싶다. 그보다 더 깊은 것은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신의 영역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는 무신론자라 그럴 수도 없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일이 사람 사랑하는 일이라 했으니 나도 내 몫만큼만 사랑하다가, 이쯤이다 싶을 때 생각을 접고 싶다.
반풍수
반풍수 집안 망친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것만큼 맞는 말도 없을 것 같다. 세상을 살며 생기는 수많은 일이 이것을 비껴가지 않는다. 제발,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지 말자. 그런 사람 대부분은 대충 아는 것을 잘 아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다. 세상이 달라진 요즘은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다룰 줄 모르면 무식한 꼰대 소릴 듣는다. 젊은 사람에게 무시당하기까지 한다. 그보다도 본인이 모르면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다. 스마트폰은 그렇다 쳐도 나는 컴퓨터 다루는 게 컴맹이라 그런 일로 자주 곤욕을 치른다. 배운다고 배워도 끝이 없었다. 내 능력 밖이었다. 둘 다 나이 먹은 사람이면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그럴 때 있는 게 전문가다. 내 경험으로는 모르는 게 있으면 여기저기 수선 피우지 말고 전문가에게 묻고 배워야 한다. 그게 답이다. 사람 사는 세상 수많은 일이 그렇다. 자기가 모르면 아는 사람에게 묻고 배워야 한다. 그러지 않고 대충 아는 사람(반풍수)에게 물었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어렵기만 한 세상살이에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묻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반풍수를 피하라는 말이다. 특히 의학과 법률에 관해서다. 나는 살면서 이런 일로 인해 안 해도 될 고생을 한 적이 한두 번 아니다. 그것 말고도 일상에서 생기는 사소한 것으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길 가르쳐주기다. 한번은 길치인 내가 승용차를 몰고 어딘가를 가다가 그런 사람에게 길을 물어 뺑뺑이를 돌고 돌다 원래 그 자리로 돌아온 일도 있었다. 정말 기가 막혔다. 순간 떠오른 것이 반풍수 집안 망친다는 말이었다. 잘못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그 말 믿고 간 나에게 있었다. 다시 길을 물어 운전하며 혹여 내가 남에게 반풍수가 된 적은 없었는지를 생각했다. 나는 바보가 되었으면 되었지 반풍수는 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일 무엇이든 옳게 가려면 조금 더디게 가더라도 제대로 가야 한다. 그게 예술이든 학문이든 스포츠든 사람이 하는 일 대부분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 길을 가다가 길을 몰라 헷갈릴 때는 우리가 등산길 표지기 따라가듯 가야 한다. 설령 못 가는 한이 있어도 반풍수에겐 묻지 말자.
사는 날 까지는
인생의 무상함과 빠름을 비유하는 말 가운데 인생 시간은 한 개의 두루마리 화장지와 같다는 말이 있다. 처음에는 천천히 돌아가다 갈수록 도는 속도가 빨라진다. 그러다 마지막 휴지가 풀어지고 나면 딱딱한 종이 한 개만 덩그러니 남는다. 마치 허물 벗은 벌레의 흔적 같다. 추수 끝난 들판에 버려진 허수아비처럼 쓸쓸하다. 휴지가 돌아가는 모습은 사람이 나이 들며 느끼는 세월의 빠름과 어쩌면 이리도 같을까 싶다. 생각해보면 시간이란 우리가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기다릴 때는 그렇게도 안가든 시간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달아나듯 훌쩍 가버린다. 똑같은 시간을 두고도 마음 쓰는 데 따라 이처럼 느리게도 가고 빨리 가기도 한다. 그럴 때는 마음으로 느끼는 시간이 무슨 도깨비 같다.
세월이 빨라도 너무 빠르다. 작년 그믐날 가까운 사람과 덕담을 나눈 것이 바로 어제 같은데 벌써 해가 바뀌어 얼마 안 있으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올 날이 바로 코앞이다. 생이 이울어갈 즈음인 나 역시 두루마리 화장지 돌아가는 소리가 제법 빠른 소리를 낸다. 남은 게 그리 많지 않음을 알리는 것 같아 마음 서글퍼진다. 남은 화장지를 생각하면, 사는 게 몹시 허망하고 외롭다는 생각이 온몸을 휩싸고 돈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남은 것을 한 조각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고 살뜰하게만 쓴다면 혼자서 외로워하거나 허망해할 것도 없다. 오히려 이런 외로움이 삶의 한 토막을 값있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며 보람되게 누려야 한다. 사는 날까지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 우리가 시간을 아껴 쓰는 일은 잘 사는 일과 같다. 다시 말해 잘 사는 것은 잘 죽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잘 살아야 잘 죽는다. ‘아흔 즈음에’를 쓴 인문학자 김열규 교수는 “나는 한 번도 시간의 얼굴을 본적이 없다. 다만 뒷모습을 보았을 뿐이다. 까마득한 길 끝에서 먼지처럼 사라져가는 뒤 꼴을 먼빛으로 보았을 뿐이다.” 나 역시 시간의 뒷모습은 물론이고 시간이 가는 것도 보지 못했다. 시간은 가만있는데, 흐른 건 내 마음이었다.
지난날에는
지난날에는 나이 듦이 안타깝고 괜스레 마음만 바빴는데 그것과 친해지니 지금은 마음 바쁘지도 않고 손잡고 걸을 수도 있다. 마당에 떨어진 떫은 감을 선반 위에 올려놓고 한참 시간이 지나면 달고 맛있는 홍시가 되듯이 내 마음도 나이 들며 익어가니 이처럼 달다. 지난날에는 내가 머물던 이곳을 떠남이 늘 두려웠는데 이것 역시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에 한 가지 조건을 붙이자면 그날까지 아내와 함께 할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것도 없다. 전에는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스승이 없었는데 지금은 세상 곳곳이 스승이다. 세상을 달관한 말 같지만 어쩌면 나이 든다는 것은 인생의 또 다른 즐거움일지도 모른다. 받아들이기 나름이겠지만 사람에 따라 이리도 될 수 있고 저리도 될 수 있는 게 나이 듦이다. 꼰대처럼 근사한 말을 늘어놓기보다는 떠날 때까지는 젊은 꿈이라도 꾸어야 한다. 그 꿈마저도 없다면 인생이 얼마나 쓸쓸할까. 나이 든다는 것은 젊음이 따르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자 탐험과도 같다. 또 다른 세계를 품에 안아보는 일이다.
가슴에 꿈이 살아있는 노년은 귀로 듣던 음악이 마음으로 들리고, 눈으로 읽던 책이 가슴으로 읽힌다. 떨어지는 꽃잎 손에 받아 코끝에 갖다 대면 향기가 나고 입안에 단물이 고인다. 내 소원은 꿈을 꾸다가 꿈속에서 꿈결처럼 가는 것이다. 몸에 닿거나 손으로 만져지는 모든 것에서 생명의 파동을 느낀다. 비 오고, 바람 불고, 노을 지는 모든 것이 새롭다. 남은 인생의 한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내 마음은 이제 이곳에서 몇 번의 봄을 더 맞을까 하는 생각에 서러워진다. 봄날 산비둘기 울음소리를 듣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면 그대(....)가 보고 싶다. 그러다가 그대를 보면 말이 하고 싶어진다. 어떨 때는 그대 뒤에 서서 뒷모습을 바라보며 훗날 내게 드리워질 노을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 노을이 지고 어둠이 내리면 나는 나의 옛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추사(秋史)김정희는 죽기 사흘 전에 봉은사 판전(板殿) 현판을 썼고, 주희(朱子)는 죽기 전날에도 자신이 쓴 글의 주해(註解)를 고쳤다.
행복한 책읽기
글 제목이 평론가 김현의 책 제목이다. 나 역시 책읽기에 대해 제목으로 마땅히 쓸게 없었다. 부끄럽지 않다는 생각에 끌어다 쓴다. 지금까지는 저자(著者)가 책을 끌고 왔지만, 이제는 독자가 끌고 가는 시대이다. 독자의 패러다임이 달라진 것이다. 내 경험으로는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읽게 되는 것은 두 번째 읽을 때이다. 그 느낌은 처음 만났을 때 기억에 남은 사람을 근사한 장소에서 다시 만날 때와 같은 것이다. 나는 지금 나의 진정한 스승 중국 남회근 선생의 책을 읽으며 나 스스로 놀란다. 이번이 세 번째다. 이유는 이번에야말로 진짜로 선생의 책을 읽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먼저도 내 딴에는 꼼꼼히 읽는다고 읽었어도 먹기 편한 죽이나 국수 먹듯 했지, 꼭꼭 씹지 않았다. 지금은 잘 익은 김장 김치를 독에서 꺼내 먹듯 제 맛을 음미하는 중이다. 꺼낸 김치를 보기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선생의 책은 읽어갈수록 점점 깊어져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우물이다. 깊은 우물물은 여름이면 시원하고 겨울이면 따뜻하게 느껴지듯, 선생의 책도 어떨 때는 가마솥 숭늉처럼 따뜻하고 어떤 때는 얼음물처럼 차갑다. 세월 따라 점점 깊어진다.
나는 요즘 세상 그 많은 책 중에 유독 선생의 책을 읽으며 전에는 못 느끼든 행복감을 젖는다. 비유하자면 이전에 지리산 둘레 길을 걸을 때 구간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주변 풍경에 젖어드는 그 마음이었다. 길을 걸으며 어떤 날은 노을이 물드는 서쪽하늘을 보며 걷기도 했고 어떨 때는 아내와 함께 코스모스 흐드러지게 핀 가을 길을 걸었다. 그 기억이 되살아나듯 선생의 책 읽기가 그랬다. 내가 생각하기엔 책 읽기도 전국에 있는 둘레 길 걷기와 같다고 생각한다. 지역마다 풍경과 풍물이 다르고 말이 다르듯 책도 그와 유사하다. 내가 단골로 가는 서점에서 선생을 만나 선생의 책을 읽는 것도 내가 못가 본 둘레 길을 가는 것이다. 길도 자기가 좋아하는 길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각자 좋아하는 곳을 찾아 길 걷는 일이야말로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오늘 나처럼.
바쁜 사람들
몸 아픈 나는 시간이 남아도는데 가까운 문인 중에는 온종일 여기 저기 다니느라 꼭 나와야 할 자리에도 바빠서 못나오는 사람도 있다. 하루하루가 바쁨의 연속이라고 한다. 정말 바쁜 건지 아니면 그냥 바쁜 척하는 건지, 도대체 뭐가 그렇게 바쁜지 모르겠다. 나도 잠깐은 그런 시절이 있었지만 먹고 사는 일 때문이었다. 남을 대신해 궂은일 하는 거라면 칭찬받을 일이다. 관심 있게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모두 나이가 60이 넘은 사람들이다. 젊을 때는 갈 곳이 많아 그렇다고 쳐도 나이 먹은 사람이 그런 것은 이해되지도 않고 그 모습이 보기도 싫다. 옛날로 치면 뒷방 늙은이 취급당할 나이인데 요즘 세상에는 젊은이 못지않게 설치고 다닌다. 무슨 일이 그리 많아 그런가 싶어 눈여겨보면 그리 바쁜 일도 아니고 별것도 아니다.
물잠자리 꼬리 담그듯 얼굴 내 보이는 일과 자기가 왔다는 눈도장 찍기다. 어떨 때는 자기 스스로 일을 만들어 바쁘기도 한다. 모두가 잠깐의 기쁨이나 자기만족이다. 나는 그런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가다가 한 번쯤 바쁜 일상을 잠시만 내려놓고 가슴을 펴보면 안 될까. 내가 이것을 꼭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내가 하면 되고, 남이 하면 안 되는 일인지 한번 살펴보라는 말이다. 어떤 일들은 남이 더 잘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남에게 나 이렇게 오라는 곳도 많고 가야할 곳도 많다며 바쁘게 산다는 보여 주기씩 바쁨을 이제는 거둘 때가 되었다. 나 아니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실속 없는 삶 겉모습만 번드르르한 삶은 탱탱한 풍선에 바람 빠지듯 무너지기 시작하면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쌓아놓은 모래성이다. 나는 이날 것 살면서 내려놓을 때 내려놓지 못하고 계속 손에 쥐고 있다가 무말랭이처럼 쪼그라들던 모습을 참 많이도 보았다. 사람은 잘나갈 때 한발 앞에서 멈출 줄 알아야 한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한다. 있던 자리를 뒷사람에게 곱다시 내주고 떠날 줄도 알아야 한다. 이형기 시인의 낙화 詩句처럼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