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을 사랑하는 유목민
젊고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우리는 꽃사슴을 닮았다고 말한다. 몽골인들은 특히 사슴을 좋아하는데, 그들도 예쁜 여자를 '암사슴'(Sogoo)이라고 부른다. 다리가 길고 곧은 몽골 처녀를 보면 정말 한 마리 꽃사슴을 보는 듯한 생각이든다. 오늘은 몽골의 사슴 이야기를 해보자. 몽골 처녀 이야기가 아니어서 실망이겠지만, 몽골에서 조심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여자 문제이다. 처녀에게 나이를 물어보는 것은 실례인데, 그런 것이야 조금 미안한 정도이지 큰 문제는 아니다. 대신 술이나 성문화가 결합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몽골도 성매매는 불법이다. 밤 12시가 넘으면 술집이든 식당이든 어디에서도 술을 팔지 못한다. 국가가 나서서 강력하게 단속을 하고 있으니 그런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다시 사슴 이야기로 돌아가자.
몽골인들이 사슴을 좋아하는데는 그들의 민족 신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몽골의 가장 오랜 역사서 [몽골비사] 제 1절은 늑대와 사슴 이야기로 시작된다. '푸른 늑대(버르테 치노)'와 '하얀 암사슴(코아이 마랄)'이 만나 몽골인을 낳았다는 것이다. 호랑이와 곰 대신 늑대와 사슴이 몽골인들의 조상인셈이다. 우리 단군 신화와 비슷한 맥락이다. 늑대와 사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트 차강'이다. '힘세고 하얀 사람'이란 뜻이다. 몽골인들에게 '단군 왕검'은 바트 차강이 아닌 '알랑 고아'이다. 바트 차강으로부터 후세로 이어지고 이어지다 '코릴라르타이'가 태어난다. 코릴라르타이는 '활을 잘 쏘는 사람'이란 뜻으로, 우리의 주몽 설화와 닮아있다. 그가 바이칼 호수를 떠나 몽골인의 성지 보르칸산으로 이사를 하는데, 코릴라르타이의 딸이 몽골인들의 어머니 '알랑 고아'이다.
사슴은 보르칸산을 비롯해 몽골 북부 지방에 많이 산다. 하지만 사슴을 사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냥이 법으로 금지된 탓도 있지만 조상의 의미를 가진 동물이기에 해를 입히지 않으려는 신앙 때문이다. 몽골인들은 사슴 사냥을 가장 나쁜 짓으로 생각한다. 사슴을 죽였다고 하면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될 짓을 했다는 뜻으로 쓰인다. 다만 병을 치료하기 위해 꼭 사슴을 잡을 일이 있으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나서 사냥을 한다. 하늘(텡그리)에게 사슴 사냥을 허락받는 것이다. 민간요법이거나 무속 신앙이겠지만, 몸에 기가 다 빠진 사람이 사슴 고기를 먹으면 회복이 된다고 한다. 늑대고기도 먹지 않지만 폐가 좋지 않은 사람은 약으로 먹기도한다.
몽골인들은 길을 가다가 사슴을 만나면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하면서 기뻐한다. 목소리가 좋고 노래 잘 하는 사람을 사슴처럼 좋다고 표현하기도 한다(뻐꾸기처럼 잘 부른다는 표현도 있다). 또한 사슴을 보면 반가운 손님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몽골인들은 집에 손님이 오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데, 손님이 온다는 것은 바깥 세상에서 어떤 일이 있는지, 다른 영토의 초지는 어떤지, 좋은 소식은 없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난 인사가 "좋은 소식 없어요"(소닝 새항 유 밴)라니 그들의 정보에 대한 욕구는 언제 들어도 참 대단하다.
사슴은 [몽골비사]가 쓰여진 13세기보다 훨씬 전부터 몽골인들의 수호 대상이었던 것 같다. 몽골에는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에 그려진 바위그림이 아주 많다. 고비 지역 울지트라는 지역은 산 하나가 모두 바위그림일 정도이다. 백만 점의 그림이 모여 있으니 탁본을 준비할 마음이라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바위그림에 등장하는 최고의 주인공은 사슴이다. 특히 사슴이 많이 사는 아르항가이, 헨티, 흡수굴 지역에 태양과 아름다운 문양의 사슴이 어우러진 바위그림들이 많다. 몽골인들에게 사슴은 태양만큼이나 숭배의 대상이었다.
사슴을 사냥하는 늑대 암각화
사슴은 가정의 화목을 지켜주는 수호천사의 역할도 한다. 가정에서 어머니가 십자수를 뜰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암수 두 마리의 사슴이다. 몽골인들은 초원에 사슴이 한 마리만 있으면 그건 아주 불길한 징조로 날씨가 갑자기 나빠지거나 전염병이 생겨서 가축들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보살핌의 대상인 사슴도 한가지 경우엔 인간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늑대에게 공격을 받을 때이다. 사슴을 사냥하는 늑대를 본다면 그냥 지나쳐 가야한다. 몽골인들에게 늑대와 사슴의 관계는 단순한 포식자와 먹이의 관계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늘의 일이니 하늘이 알아서 할 것, 인간이 간섭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말, 소, 낙타, 양, 염소가 몽골인의 다섯 가축이다. 그들을 기르고, 먹고, 타고, 사랑하면서 유목민들은 살아간다. 가축만이 아니다. 유목민들의 가축 사랑은 새와 물고기에게로 이어진다. 그들은 고비의 척박한 땅을 살아가는 야생동물을 위해 우물물을 길러 물통을 채워놓은 수고를 기꺼이 감수한다. 늑대와 사슴에 이르면 사랑을 넘어 숭배의 대상으로까지 여긴다. 동물과 함께 생활하고 이동하고 사랑하면서 사는 사람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은 '유목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