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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10월 13일 (주)일 긍휼 & 자비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신 4:31) [긍휼]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말하는데 ‘라함’(racham; 자궁)에서 나온 말이다. 이 단어는 ‘같은 태에서 나온 이들에 대한 감정’이라는 기본적인 의미에서 ‘긍휼’, ‘자비’라는 의미로 발전했다. *젖을 빠는 아기에 대한 어머니의 반응(사 49:15), *아버지가 아들에 대해서 가지는 반응(렘 31:20), *형제가 형제에 대해 기대하는 마음의 상태(암 1:11) 등을 나타내는 데 이 단어가 쓰였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감정 차원보다는 사랑의 표현이나 행위로 드러났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죄에서 돌이켰을 때 주어지는 용서의 은혜를 표현할 때 쓰이기도 했다. 신약에서는 긍휼에 해당되는 헬라어로 ‘엘레오스’(eleos), ‘스프랑크논’(splagchnon) 등이 쓰였다. 긍휼은 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치유 속에 드러내신 예수님의 사역에서 잘 드러났다. *1만 달란트 빚진 종을 불쌍히 여긴 왕(마 18:23-35), *방탕한 생활을 하고 돌아온 아들을 측은하게 여기고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춘 아버지(눅 15:11-32), *강도 만났던 자를 불쌍히 여겨 살려낸 사마리아인(눅 10:25-37) 등의 본문에서도 긍휼하신 하나님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또한 예수님은 세리,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비난하는 바리새인을 향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닌 긍휼이라고 하셨다. 이렇듯 긍휼의 정신은 외면한 채 형식만 중시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율법의 핵심으로 말씀하셨던 의(크리시스; krisis), 인(엘레오스; eleos), 신(피스티스; pistis) 중의 하나였다(마 23:23). 바울은 병 치유의 근원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있음을 고백했으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관련해서 구원은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인해 얻는 것임을 말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자들은 긍휼을 베푸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비] 무력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말한다. 인자(창 19:19), 은혜(창 20:13), 긍휼(마 9:13)과 같은 말이다. 구약에서 자비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여러 단어이다. 히브리어 ‘라함’(ra?am)은 긍휼의 감정이며, 주로 ‘사랑’(love)으로 번역되었다. 또 ‘하난’(hanan)은 사랑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적극적인 도움이며, 종종 ‘은혜롭다’(to be gracious) 또는 ‘자비를 베풀다’(to show mercy)로 번역되었다. 주로 ‘인애’로 번역된 ‘헤세드’(chesed)도 ‘자비’(대상 16:41)로 번역된 곳이 있다. 헬라어 ‘엘레오스’(eleos)는 고통에 의해 우러나오는 깊은 정서적 관심을 의미하며, 적극적인 도움을 준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성경에서 ‘엘레오스’를 사용하여 묘사되는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에 의해 마음이 깊이 움직이는 분이시며 우리를 그분과 원수 되게 하는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돕기를 선택하신 분이시다(약 5:11). 자비는 특별히 복음서와 신약의 서신서에 잘 나타난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자비를 간청할 때마다, 예수님께서는 응답하시고 그 사람의 필요를 채우셨다. 예수님께서는 자비가 하나님의 성품의 기본이라고 가르치셨고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라고 선언하셨다.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의 과오 중 하나는 구약 율법의 세부사항을 강조하느라 그 뿌리가 되는 “의와 인과 신”(마 23:23; 12:7 참조)을 간과한 것이었다. 서신서들은 구원이 하나님의 자비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엡 2:4; 벧전 1:3). 우리는 영적으로 무력하므로 구원을 얻기 위해 자신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자비를 온전히 의뢰해야 한다(롬9:16).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은 매일매일 하나님의 자비에 의지해야 하며, 우리에게는 이런 권면이 주어진다. [GoodTV 성경]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비>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 (히 4:15-16, 새번역)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비롭게 대하실 것이다." (마 5:7, 새번역) ♣ - 삶의 한가운데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범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엡 2:4-5, 새번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시다. 하나님께서는 그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산 소망을 갖게 해 주셨으며,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낡아 없어지지 않는 유산을 물려받게 하셨습니다. 이 유산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벧전 1:3-4, 새번역)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긍휼히 여길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사람을 불쌍히 여기겠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 (롬9:15-16, 새번역)
사랑하는 사랑을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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