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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 : 비야르 데 마사리페 – 아스토르가
21일 차(30.1Km)
오늘은 알베르게 문을 1착으로 열고 나오자 정면에 떠있는 보름달.
1시간쯤 걸어가서 보니 뒤에서 동이 트기 시작
까미노는 언제나 서쪽을 향하고 걷기에 오전엔 해를 등지고 걸음
앞에는 달이 지고 뒤에서 해가 떠오르니
갑자기 일본 하이쿠가 생각남
하이쿠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라고 알려졌으며
글자수가 5-7-5 17자로 구성됨
요사부손의 하이쿠
유채꽃이여(5)
달은 동쪽에 있고(7)
해는 서쪽에(5)
붉게 지는 해와 그 빛에 반짝이는 노란색의 꽃들.
그리고 어스름하게 떠올라 있는 달의 색깔을 표현
출발 시 상황은 정반대 (달은 서쪽 해는 동쪽)지만
주위상황이 비슷하여 하이쿠 생각이 불현듯 남
3시간쯤 혼자 걸은 후 마을에 도착하니 순례객 1명 발견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이 있다니?
실망하여 급히 다가가 보니 한국 젊은 여자분
인사하고 어디서 출발했냐 물으니 레온에서 기차타고 방금 내렸다고.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
그녀는 학생인데 휴학 중에 순례한다며,
중간에 쉬기도 하고 차량으로 건너뛰기도 하며 순례 중
오스삐딸 데 오르비고는
오르비고 강이 흐르고, 울창한 검정 버드나무와,
신선한 사탕무, 감자, 과일이 자라는 곳입니다.
이곳은 다리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마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다리는 로마 시대에 처음 축조되어 여러 시대에 걸쳐 변형되었으며
까미노 데 산띠아고에서 가장 긴 다리이기도 합니다.
또한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기사도 정신이 발휘된 곳이기도 합니다.
기사의 약속
후안 2세 시절, 기사 돈 수에로 데 끼뇨네스는
그의 연인인 도냐 레오노르 데 또바르와 기묘한 약속을 했습니다.
그녀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
매주 목요일 목 칼을 차고 다니기로 한 것입니다.
만약 약속을 어기면 300개의 창을 부러뜨리거나
오르비고 강 위의 다리에서 한 달 동안 결투를 하기로 했습니다.
돈 수에로는 이 약속을 지키는데 지쳐서
싸움을 허락해달라고 왕에게 요청하고,
유럽 전역에 있는 여러 명의 기사들에게
자신이 목 칼을 벗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편지를 썼습니다.
이에 수많은 기사들이 싸움에 참가해서 그의 편에 서기도 했고,
그와 맞서 싸우기도 했습니다.
1434년 7월 10일부터 8월 9일까지
7월 25일 성 야고보의 축일을 제외하고
약속대로 한 달간 창 싸움이 이어졌습니다.
수많은 창이 부러졌고 기사들 중엔 부상자도 있었고,
한 명은 사망하기까지 했습니다.
마침내 결투가 끝나자 돈 수에로는 목 칼을 벗었습니다.
그 후 그는 자유의 상징인 도금된 은 족쇄를
성 야고보에게 바치기 위해 산띠아고로 순례를 떠났습니다.
현재에도 산띠아고 대성당에는 그가 바친 족쇄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 결투 중에 사망한 한 명의 기사는 기독교식 무덤에 잠들 수 없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가톨릭이 이러한 종류의 결투를 인정하기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돈 수에로는 24년 뒤 이 다리 위에서
또 다른 결투를 하다가 다른 기사의 손에 죽었습니다.
돈 수에로가 벌인 결투를 기리는 축제가
매년 6월의 첫 번째 주말에 열립니다.
이때에는 도시 전체를 중세 식으로 꾸며놓고 중세식 시장을 열고,
마을의 사람들이 중세 복장 축제를 즐깁니다.
명예로운 걸음의 다리 (Puente del Passo Honroso)
여러 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스무 개 남짓한 아치로 건설된 다리입니다.
최초의 이름은 알 수 없고,
돈 수에로 기사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결투를 치렀다는 이야기에서
다리의 이름이 유래되었습니다.
가장 오래된 것은 13세기의 아치입니다.
다리 중간에는 아직까지 당시의 사건을 설명하는 이야기가 새겨져 있습니다.
간단히 간식 먹고 마을을 벗어나자 또 갈림길
많은 사람이 왼쪽 길을 선택했지만 난 오늘도 외롭게 오른쪽 길 선택
정보에 의하면 가장 평화롭고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7.2킬로가 오른쪽에 포함되었다 함
기대대로 순례자도 거의 없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고요함을 만끽
매일 출발 후 3시간은 가벼운 발걸음이지만
10시가 넘으면 발걸음이 무겁기 시작하고
도착 5킬로 정도에선 발걸음이 힘겨움
오늘 31킬로 먼거리 인데다 햇볓이 뜨겁고 더워
헉헉대며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언덕을 오르자 오아시스가 있음
허름한 집이 있고 앞엔 수박 체리 자두 등 과일과 커피 차 음료도 있었음
주인은 딴 일을 하고 순례객이 자유롭게 쉬고 먹고 세요도 찍을 수 있음(기부제)
옆에 동전 넣는 통이 있어 알아서 지불하면 됨
나는 단숨에 수박 2쪽을 먹었는데
이제까지 먹어본 수박 중 가장 맛있고 갈증을 해결해 줌
다시 힘을 내 조금 걸으니 앞에 병풍처럼 보이는 산맥
아 저것이 내일과 모레 넘어야 할 레온 산맥 해발 1505미터
걱정도 잠시 그건 내일 걱정하자 생각하고
조금 더 걷자 한눈에 제법 큰 마을이 보임
드디어 오늘 머물 아스토르가!
갑자기 경쾌한 기타소리
도시전경 사진 찍고 기타 치는 사람 곁을 고맙다며 지나치려는데
갑자기 기타를 공중에 돌리며 '꼬레아나! 꼬레아나!' 하면서 기타치고 노래
돌아서서 동전 한닢 주고 사진 찍고 작별.
까미노는 작은 즐거움의 연속
숙소도착하자 오늘은 기진맥진.
샤워하고 바로 레스토랑에서 시원한 맥주 2잔하고 일정정리
허리띠가 점점 줄어 바지가 접힘.
몸무게 얼마나 줄었는지 궁금
낮잠 자고 시내 둘러볼 예정
아스또르가는,
다양한 양식의 예술적 유산과 풍부한 역사가 살아있습니다.
까미노 데 산띠아고의 중요한 기념물이 많이 존재하고 있어서
어느 방향으로 도시를 나가든 매력적인 풍경과 훌륭한 건축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 산따 마리아 대성당 (Catedral de Santa Maria)
산따 마리아 대성당은 아스또르가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자
로마네스크와 고딕, 바로크 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최고의 성당입니다.
▼ 주교궁 (Palacio Episcopal)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환상적인 현대 건축물입니다.
원래 주교의 거처로 건축되었으나
오늘날엔 까미노 박물관으로 사용됩니다.
▼ 시청 (Ayuntamiento)
에스빠냐 광장에는
아스또르가 시청과 쌍둥이 탑, 도시의 상징인 시계탑이 눈에 띕니다.
시계에는 마라가떼리아 식으로 입은 두 사람이
망치로 종을 치는 모습이 형상화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꼴로사와 후안 산꾸다라는 두 인물로,
이 시계는 정시는 알려주지만 15분, 30분, 45분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 시계를 만든 장인이 인색한 도시 주민들을 비웃으며
‘시간은 알려주지만 15분은 알려주지 않겠다’라고 결심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6월 9일 : 아스토르가 – 라바날 델 까미노
22일 차(20.3Km)
오늘은 레온 산맥을 넘기 위해 준비하는 날
어제 알베르게는 바닥과 천정이 모두 나무로 되어있고 천정이 사선형,
낮은 쪽은 단층침대, 높은 곳은 2층 침대
물론 나는 단층 배정. 선착순이니까
걸을 때마다 삐걱 소리가 나지만 귀에 거슬리기보단 옛추억이 살아남
초등학교 때 교실이 모두 나무로 되어있어
장난기 어린 우린 여자애들 넘어뜨리려고
복도에 초를 바르고 문질러 미끄럽게 만들었는데,
아뿔싸 선생님이 넘어져 우린 단체로 호되게 매맞았던 기억이 나네.
그때 그 친구들은 어찌되었는지
얼마 전 고향에 가보니 개발이 되고 외지인들이 살고 있었지만
산과 골짜기, 마을이름은 여전.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한 길재 시조가 떠오름
고향 생각하니 농부였던 아버지 생각.
초등 6년에 돌아가셨지만 나에겐 다정다감 했던 분
술을 좋아하셔 술 심부름도 많이 하고,
술을 많이 드시면 무섭기도 했지만
노래 부르기 좋아하시고 옛날 이야기를 많이 알고 계셔
동네 친구들 모아놓고 이야기 해 주셔서 인기만점.
들에 갔다 오시면 지게에
으름, 산딸기, 개암열매, 산복숭아, 방아개비 등 매달고 오시고,
가끔 산토끼 꿩도 잡아 요리해 주신 기억.
특히 족제비 고기를 먹고 노린내가 역겨웠던 기억도 남
저녁 잠자리에선 매일 옛날이야기를 듣고,
새벽엔 스피커(마을에서 유선 연결)에서 나오는
중앙방송국(HLKY)에서 방송한 명심보감 채근담 등과
동서고금의 명언을 낭송하는
성우의 낭랑한 목소리를 듣고 기상하던 일.
그때부터 아침형 인간이 된 듯
까미노를 걷다보면 온갖 상념이 꼬리를 물어
나의 인생여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짐
아침에 마을을 벗어나니 제주도 밭담처럼
밭 경계를 돌로 쌓아 놓은 것 보고 제주도 집 생각
짝꿍 바울리나!
밭의 농작물, 강아지 3마리(짱구, 친구, 민구) 잘 있겠지?
2시간 걷고 산따 까딸리나 데 소모사에서 간식 먹는데
어디서 회색 고양이가 나타나, 내 발 밑에서 빤히 나를 올려다 봄
먹던 내 양식의 일부를 주니 단숨에 먹고 또 쳐다봄.
또 한 차례 주니 이번엔 얼룩 고양이까지 합세
포크로 듬뿍 잘라서 줌.
내 양식은 줄었지만 나누는 기쁨을 누림
나눔의 까미노
▼ 라바날 델 까미노
펠리페 2세가 지나가다가 밤을 지냈다는 방이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는 마을입니다.
라바날 델 까미노는 수많은 전설과 역사가 존재합니다.
또한 마을의 이름에서부터 쉽게 알 수 있듯,
중세부터 순례자들이 찾아오는 마을로
오늘날 까지도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습니다.
▼ 성모 승천 성당의 기적
마을의 성모 승천 성당은 기적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폭풍우가 마을로 다가오면 성당에서는 신도들이 모여
성 바르바라에게 도움을 청하며 성당의 종을 칩니다.
그러면 폭풍우가 마을을 비켜가 해를 입지 않는다고 전해집니다.
▼ 내가 묵은 엘 피라 알베르게
수도원 알베르게는 예약제이고 피정자들의 숙소로 하늘의 별따기
오늘 쉬고 있는 동네 라바날 델 까미노
이곳에서 왜관 베네딕토회 인영균 클레멘스 신부
(순례기 시작할 때 ' 까미노 위에 살면서' 글을 쓰신 신부님)와
2시간 동안 이야기 나눔. 한국인 순례자 7명과 함께
레온산맥 등반의 출발점인 라바날 델 까미노는 한적하고 깨끗하며 고풍스런 마을.
최근 독일에서 조직된 베네딕토회 소속 사제단이 한 건물에 입주해
12세기 지은 성당을 복원해 그레고리안 성가로
저녁기도(7시) 끝기도(9시30분)와 순례자 축복기도를 바침
현재 한국인 수사신부 포함 4분 계시며 5명까지 피정 가능
수도회에서 숙식하며 함께 생활하고 쉬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인기가 있어
T.O 가 나야 들어갈 수 있기에 참가하기는 매우 어려움.
2박 이상 제한 없어 언제 자리 날지 몰라 1주일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기다리다 포기하고 레온산맥을 넘는 경우가 많음.
특히 한국인
로사자매가 4시반에 피정 등 신부님 면담한다기에
얼른 빨래하고 마트에 들러 장을 봐
로사자매와 음식을 만들어 오랫만에 포식.
내가 한 일이라곤 재료비 3유로와 마늘 한통 깐일.
그 자매는 이곳에 1주일 가량 머물며 쉴 예정
수도회 앞에 가니 총 7명의 한국인이 와있음
신부님 안내로 수도원 접견실에 둘러앉아 나눔 시간과 신부님 말씀 경청
신부님은 왜관 베네딕토 수도회 소속 크레멘스 신부로
작년부터 이곳에 살고 계시며, 작년 까미노를 걸으셨고
그 기간중 이형우 아빠스 부음소식 접했다 함
산티아고에는 왜 왔느냐는 것이 공통된 질문으로
한 사람씩 돌아가며 답함.
비신자 1명도 있었음
이후 신부님 말씀
까미노는 정직한 길이다.
나라 나이 성별 등 신분의 구별없이 모두 페레그리노라는 호칭사용.
무슨 이유로 왔건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순례자라 불린다.
목적지가 있고 자기 짐을 지고 자기발로 걸을 수 있을 만큼
한발한발 미지의 세계로 정직하게 걷는 것
그럼 왜 산티아고가 목적지인가?
야고보 사도 유해를 참배하기 위해서
야고보 사도는 누구인가?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예수님의 가장 측근에 있던 제자들임
첫날 3명을 제자로 부르시고,
거룩한 변모 당시 변모하시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고,
올리브 동산에서 피땀 흘리며 기도하실 때
비록 잠에 골아 떨어졌어도 그 장면을 목격했고,
어머니 살로메가 치마바람 일으켰을 때 내가 주는 잔을 마시겠느냐 할 때
야고보는 기꺼이 마시겠다 한 분이며,
천둥의 아들이라 불릴 만큼 정렬적인 사도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 끝까지 기쁜소식을 전하라는 유언대로
당시 세상 끝이던 서쪽 끝 스페인 피네스테레에 야고보 사도가,
동쪽 끝이라고 여기던 인도에 토마 사도가 복음 전파하러 감
(콜롬부스가 동쪽 끝이라고 여기던 인도를 향해 출발했으나 아메리카에 도착.
인도에 도착한 것으로 착각해서 원주민을 인디언이라 부름)
처음 복음전파로 테오도르 아타나시오 두 분을 직제자로 확보했으나
사라고사 전교 시 한명도 확보 못하고 완전실패
강가에서 슬피 우는데 한 여인이 나타나
'염려 마라 이베리아 반도는 장차 대그리스도 국가가 될 것'이라 위로하며
조그만 조각상과 필라르(기둥)를 주고 사라짐.
지금도 2가지 물건이 사라고사 주교자 성당에 보관
당시는 기원후 40~41년 쯤으로 성모님은 살아계셨는데
스페인에 발현하신 것(Bi-Location)
이것이 성모님의 첫 번째 발현이라 하며
스페인에서는 10월 12일을 삘라르 성모님 발현일로 국경일로 경축함
그런 이유로 스페인에는 산타마리아 봉헌 성당이 많음.
10월 12일은 콜룸부스가 신대륙에 첫발을 디딘 날이기도 함
44년 다시 이스라엘에 돌아가 헤로데에게 참수 첫 번째 순교한 사도가 됨
내가 순교하면 스페인으로 옮겨 매장하라고 직제자에게 유언하여
유해를 배에 싣고와 묵시아에 안장 후에 2명의 제자도 함께 매장.
제자들도 죽고 사도유해가 사람들 기억에서 몇 백년 동안 잊혀짐
700년경 한 수도자 꿈에 계시를 받아 유해를 찾아 지금의 산티아고에 매장하게 됨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목숨 바친 야고보 유해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우리가 걷는 길은 가짜 순례길이고
진짜 순례는 우리가 탈출하고자 했던 그곳 현실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가짜인 까미노는 진짜 순례를 위한 방법을 배우는 것.
가짜 순례길에서 우리는 일용할 양식만 챙긴다.
목표를 두지말고 걸을 수 있을 만큼만 걷는다.
모든 것 하느님 섭리에 맡긴다
모든 환경 비 눈 뜨거운 햇살등 온전히 받아들인다.
그렇지 않고 욕심내거나 무리하면 탈나서 포기한다
까마노에서 버리지 않을 것 한가지는
예수님으로 항상 예수님을 짊어지고 가야하는 것
힘드는데 까미노에 왜올까?
좋으니까.
왜 좋은지 모르면서도
이 길은 1500년 동안 수많은 순례자가 걸으면서 생겨난 길로
좋은 기운과 수많은 천사를 만날 수 있는 곳
수많은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곳. 인지하든 못하든
인생길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계획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내가 모든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천사들을 보내 도와주신다
6월 10일 : 라바날 델 까미노 – 몰리나 세카
23일 차(26.5Km)
▼ 도보로 가는 순례자, 자전거로 가는 순례자들의 모습
(자전거길은 도보길과 같이 있거나 상황에 따라 다르다)
좁은 산길 등에서 갈라졌다 만나기를 반복한다.
좋은 내리막 길에서는 자전거 순례자가 가속하면서
'올라!' 하고 지나치면 위험하기도 하다.
▼ 철 십자가 (La Cruz de Ferro)
폰세바돈을 지나는 언덕의 정상에 올라가면
가장 상징적인 기념물 중 하나인 철 십자가상이 나타납니다.
십자가는 심플한 형태로 오래되어 녹이 잔뜩 슬어 있고,
5미터 정도 높이의 지주에 올라가 있습니다.
원래 이 언덕의 정상은 선사시대의 제단이 있었고
로마 시대에 길과 교차로의 신이자 죽음의 신인
메르쿠리우스를 모시는 사제들의 제단이 있었습니다.
로마 여행자들은 메르쿠리우스에게 자칼을 제물로 바쳤고
이 풍습은 갈리시아인들에게 그대로 전해져서
당시 그들이 까스띠야를 여행할 때도 자칼을 제물로 바쳤다고 합니다.
그 후 가우셀모 수도원장이 이곳에 첫 번째 십자가를 세우면서
중세의 순례자들은 십자가에 경배하며 고향에서 가져온 돌을 봉헌했습니다.
현대의 순례자들은 고향의 돌을 가져오곤 했던 옛날의 관습을 바꿔서
자신의 물건이나 사진, 쪽지, 기념물 등을 가져옵니다.
▼ 하인리히 크라우스 기념비 (Monumento a Heinrich Krause)
산띠아고를 향해 자전거를 타고 가다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
독일인 순례자 하인리히 크라우스를 기리는
자전거 모양의 철 기념물입니다.
순례길 곳곳에 순례중 생을 마감한 순례자의
십자가 표시석 등이 많이 있습니다.
몰리나세까
까미노 프란세스에서 중세의 외관과 분위기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마을.
다리, 문장으로 장식된 집이 많은 마요르 거리와 궁전, 전통 건축 때문에
몰리나세까는 자연스럽게 산띠아고 가는 길에 손꼽히는 명소가 되었다.
마요르 거리에는 중세에 만들어진 다리와
까미노 데 산띠아고의 분위기를 간직한 발코니와
문장이 있는 전통 건축과 발보아의 저택,
16세기에 만들어진 순례자 병원 등이 모여 있다.
이 지역 음식은 식도락을 즐기는 순례자라면
충분히 별 다섯 개를 주고도 남을 정도다.
몰리나세까가를 대표하는 여섯 가지 음식은
포도주, 만사나 레이네따(Manzana Reineta; 사과),
삐미엔또(Pimiento; 고추), 보띠요(Botillo; 소시지 종류),
세시나(Cecina; 육포), 뻬라(Pera; 배)다.
레스토랑과 선술집에서는 비에르소의 여러 음식들을 즐길 수 있다.
레온산맥을 넘어 무사히 도착.
생각보다 수월했음
점심먹고 마트에 들러야지
식당 위치가 좋아 손님이 많아 자리가 없을 정도.
3번 주문 30분 기다린 끝에 오징어 튀김 나옴
자리 값인지
욱하는 성질 나올 뻔
참자! 언어도 짧고...
忍一時之忿 免百日之憂
(인일시지분 면백일지우)
한 때의 분함을 참으면
백일의 근심을 면한다고 했으니...
가족에게 보낸 코믹한 표정 연출
출발 때 보다 훨씬 날씬해지고
얼굴과 팔다리도 구리 빛이라고 가족이 전해 옴
바지도 헐렁해 진 것으로 보아 6~7킬로 빠진 것 같음.
완주 후 한국에 돌아와 보니 체중이 10킬로 줄었음.
사진을 보니 면도를 해야할 듯~
첫댓글 와우~ 엄지척!!!
카페 가입하고 첨 접하는 산티아고 성지 순례영상에 심쿵합니다~
덕분에 이국의 이색 정경도 호강하고 수행하시는 건장한 모습이 더욱 부럽네요~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