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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력 돋보기] 참으로 아름다운 성모 대성전 8월 5일 성모 대성전 봉헌기념일
로마의 수많은 성전 중에 가장 아름다운 성전은 어디일까요? 아름다움의 평가는 각자 다를 테니 객관적인 평가가 어렵겠지만, 흥미로운 전설과 역사적, 신학적인 의미를 지니며 따스한 마음의 안식처로 현재까지 로마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성당을 꼽으라면 단연 로마 시내의 성모 대성전(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일 것입니다. 8월 5일은 바로 이 성모 대성전의 봉헌 기념일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로마 교회가 콘스탄티누스 황제로 인해 종교 자유(313)를 얻은 지 얼마되지 않은 352년, 로마의 요한이라는 이의 꿈에 성모님께서 나타나셨답니다. 성모님은 날이 새면 언덕 위에 눈이 내린 장소가 있을 것인데, 그곳에 자신을 위한 성전을 세우라고 분부하셨죠. 로마 시내의 8월 날씨는 정말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덥고 건조한데 그때 눈이 내리다니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당시 교황이셨던 리베리오(Liberio, 재위 352-366) 교황님도 같은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다음 날인 8월 5일에 교황님과 요한이 함께 위치를 확인하니 지금의 로마 중앙역인 떼르미니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인 에스퀼리노 언덕에 실재로 눈이 쌓여 있었답니다. 그리하여 성전을 봉헌하게 되는데 이 성당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도 언급하셨듯이 서유럽에서 ‘성모 마리아께 최초로 봉헌된 성전’인 성모 대성당입니다. 그래서 이 성당의 별칭으로 ‘성모설지전(聖母雪地殿) 성당’, 즉 ‘눈이 내린 곳 위에 세워진 성모님 성당’으로도 불립니다.
이후 식스토 3세(Sixtus III, 432-440) 교황님은 이 성당을 증축하는데, 이때는 성모님이 ‘하느님의 어머니’이심을 공적으로 선포한 에페소 공의회(431)가 막 끝난 시기였기에 이제 성모 대성전은 본격적인 성모님의 모성을 공경하는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이에 걸맞게 성모 대성전의 제대 아래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가 예수님이 태어난 고장인 베들레헴에서 옮겨 온 것으로 전해지는 갓 태어난 예수님을 누인 구유의 일부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구유를 모심으로 인해 교황님들은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를 성모 대성전에서 거행해 왔습니다. 현재 이 구유를 바라보며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교황님 조각이 있는데 그분은 성모 신심이 각별하시고 1854년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 교의를 공적으로 선포하신 비오 9세 교황님입니다.
그렇게 400년대부터 가톨릭 신자들을 어머니의 품으로 감싸 안으며 따뜻한 사랑과 위로를 전해주던 성모 대성전은 20세기에 들어서 로마 신자들에게 다시금 뜻깊은 장소로 기억됩니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이탈리아도 전쟁의 화마에 휩싸이게 된 것입니다. 당시 베네딕토 15세(재위 1914-1922) 교황님은 유럽 각국에 반전 메시지를 선포하며 종전과 평화를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셨는데, 특별히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께 의탁하시며 성모 대성전에 ‘평화의 성모님(Ave Regina pacis)’상을 모셨습니다. 이 성모상은 한 팔로는 예수님을 안고 다른 팔은 앞으로 뻗고 있는데 맞닥뜨린 아들의 위험에 맞서 무기와 위협을 멈추라는 어머니의 강한 메시지가 그대로 전달되는 듯하여 당시에도 현재에도 로마 시민들, 특히 로마 어머니들이 뜨거운 신심으로 찾는 성모상입니다.
물론 전통적으로 성모 대성전에서 가장 사랑받는 성모님상은 ‘로마인들의 구원 성모님(Salus Populi Romani)’ 이콘입니다. 전염병이나 위험이 있을 때, 여러 차례 교황님들은 이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였고,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시기 때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이 성모님상을 바티칸으로 모셔와 기도하고 도움을 청하셨습니다. 이미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선출되신 다음날 아침, 제일 먼저 성모 대성전의 성모님께 가서 교황직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보호를 청한 일화는 유명하며, 요즘도 사도적 방문으로 해외를 순방하시기 전이나 후에 늘 이 성모님상을 찾으십니다. 2023년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무덤은 이미 성모 대성전에 준비되어 있다고 할 정도로 성모 대성전, 또 '로마인들의 구원 성모님'께 대한 신심은 각별합니다.
전 세계에 수많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전이 있지만, 가장 아름다운 성전은 그 안에 참된 신심이 살아 있는 성전일 것입니다. 화려하기만 한 미술관 같은 성당, 새로운 이벤트나 개인의 특별한 카리스마로 알려지는 성당은 참된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의 본당, 그리고 우리 주변의 성당과 성지들이 아름답고 건강한 신심에 찬 이들의 감사와 찬미와 청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참된 아름다움의 성전이 될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기도하는 교회] 성당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성당 이름을 ‘명의’(名義; titulus)라고 하는데, 『성당과 제대 봉헌 예식』에 실려 있는 「성당 봉헌 예식」 4항에 따르면 성당 이름에는 다음과 같은 원칙이 있습니다.
1. 봉헌되는 모든 성당은 교구 내에서 고유한 명의를 가져야 한다.
2. 성당 명의는,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이미 전례에서 사용하고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 생애의 신비나 호칭’, ‘성령’, ‘이미 전례에서 받아들인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호칭’, ‘거룩한 천사들’, ‘『로마 순교록』이나 그 부록에 실린 공인된 성인의 이름’이어야 한다.
3. 복자 이름을 쓰려면 사도좌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봉헌된 성당은 교구 내에서 고유한 명의를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부득이 다른 성당과 명의가 겹친다면 지역명을 붙여 구별합니다.
예를 들어, 괴정성당의 명의는 전례서에 나오는 공식 명칭에 따라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이지만, 개금성당도 같은 명의를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 구별하기 위한 공식명칭은 “괴정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당이 됩니다. 다만, 이 이름이 다소 길기 때문에 일상적으로는 편의상 지역명만 사용하여 “괴정 성당”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한편, 우리말 전례서에는 성당의 명의를 ‘주보명’(主保名)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이 때문에 이것을 ‘주보성인’(主保聖人; patronus)과 혼동하기 쉽습니다. 본당 등 지역 공동체의 주보성인과 성당 명의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 원고에서 다루겠습니다.
[기도하는 교회] ‘축복’과 ‘축성’은 어떻게 다른가요?
‘축복’(祝福; benedictio)의 용도가 공적인 하느님 경배 곧 전례에 해당할 때는 특별히 ‘축성’(祝聖; consecratio)이라고 합니다. 개인기도나 사람의 편의를 위해 사용할 용도가 아니라 공적인 하느님 경배를 위한 용도로 따로 거룩하게 구별하여 바쳤다고 해서 축성을 ‘성별’(聖別)이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봉헌’(奉獻; dedicatio)이라는 유의어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축성은 그 효과가 지속되기 때문에 한 차례만 이루어지며 반복되지 않습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672항) 축성의 대상은 해당 전례서에 각각 지정되어 있습니다.
성당의 경우, 성당의 머리인 제대를 고정하여 오직 전례를 위한 공간으로 봉헌할 때 이 봉헌은 축성에 해당합니다. 필요에 따라 제대를 이동하여 다른 용도로도 사용할 공간이라면 ‘축성/봉헌’하지 않고 단순히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행사를 위해 축성/봉헌한 성당의 제대를 가리거나 이동해서는 안됩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98항)
반면에, 묵주 등 개인기도와 신심을 위한 성물은 축복의 대상입니다. 집이나 자동차 등은 사람의 편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므로 축복의 대상입니다. 묵주나 성화상을 성직자에게 가져와서 ‘축성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축복해 주세요.’라고 해야 올바릅니다. ‘집 축성’, ‘차 축성’도 ‘집 축복’, ‘차 축복’이라고 하는 것이 옳습니다.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8) 성모 승천 대축일에 대해서
① 성모 승천 대축일의 의미
우리나라에서 8월 15일은 “광복”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가톨릭 신자들인 우리들에게는 동시에 또 하나의 축제를 기념하고 있으니, 바로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한국교회에서는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745조에 따라 이날은 의무 축일이라고 전합니다.
“한국 교회의 의무 축일은 모든 주일과 주님 성탄 대축일과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과 성모 승천 대축일이다.”
성모 승천에 대한 교리 내용은 무엇일까요?
사실 성모 마리아의 육신과 영혼의 승천에 대한 기록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또한 성모님의 무덤의 소재나 유해에 대한 기록도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교회 역사 안에서 성모 승천에 관한 논쟁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성모 승천에 대한 언급은 4-5세기경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처음으로 성모 승천에 대해 밝힌 인물은 살라미스의 주교 에피파니오(315-403)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성모 승천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하느님 흠숭과 성모 공경을 구별하면서 지나친 성모 신심을 경고했다고 전합니다. 이외 4-5세기경 쓰여진 예루살렘의 디모테오 설교 사본에서도 성모 마리아가 육신과 영혼이 승천했다는 신앙 고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 역사 안에서 성모 승천을 증언하는 구절들과 고백들, 그리고 신학적인 근거와 신심에 의한 고백들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교황 비오 12세는 1950년 11월 1일 회칙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을 통해 성모 승천 교의를 반포합니다. 이러한 정신을 이어받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성모 승천과 관련하여 교회 헌장 59항에서 다음과 같이 천명합니다.
“원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시어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는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치시고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으로 올림을 받으시고, 주님께 천지의 모후로 들어 높여지시어, 주님들의 주님이시며(묵시 19,16 참조)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이신 당신 아드님과 더욱 완전히 동화되셨다.”
그렇다면, 왜 8월 15일일까요?
8월 15일의 정확한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안티오키아를 중심으로 동방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5세기 초 예루살렘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조베날레 주교(422~458) 시대에 예루살렘 근처 카티스마에 세운 마리아 성지의 봉헌 기념일 “하느님의 어머니” 축일이 8월 15일이었던 것에서부터 유래됐다는 점이 가장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날은 후에 성모 무덤 성당에서 기념되다가 6세기경 명칭이 “성모 안식 축일”로 바뀌었고, 황제 마우리치우스(582~602)는 제국 전체가 이 축일을 지내도록 선포하기로 했습니다. 교회 역사 안에서 이러한 모습이 지금까지 이어져 와서 8월 15일은 “성모 승천 대축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2024년 8월 4일(나해) 연중 제18주일 대전주보 4면, 윤진우 세례자요한 신부(사목국 부국장)]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9) 성모 승천 대축일에 대해서
② 성모 승천 대축일의 전례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났네(묵시 12,1; 성모 승천 대축일 입당송).”
많은 신학자들은 성모 마리아의 승천을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미래를 보여준 것”으로 표현합니다. 교회의 모상인 성모님께서 하늘에 올림 받음으로써 “마리아 안에서 완성될 구원의 업적을 보고 우리 역시 희망을 갖는다(교회헌장, 68항).”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승천하신 이 대축일에 교회는 성모님 안에서 우리들에게 펼쳐질 영광에 대해서 묵상하자고 초대합니다(마리아 공경, 6항). 이 초대는 성모 승천 대축일 본기도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이시며 성자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하늘로 부르시어 그 육신과 영혼이 천상 영광을 누리게 하셨으니 저희도 언제나 하느님을 그리워하며 그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하소서.”교회는 이날을 대축일로 경축하며 다음의 성경 구절을 묵상하도록 초대합니다. 성모님에게서 그리스도의 정배(시편 45[44]편, 대축일 화답송)인, 교회의 모습을 발견하게 합니다(묵시 11,19; 12,1-6.10, 대축일 1독서).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는 또한 죽음에 대한 마리아의 승리입니다(1코린 15,20-26, 대축일 2독서). 그것은 주님께서 성모님께 놀라운 일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39-56, 대축일 복음). 이러한 흐름은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의 기도문과 감사송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대축일 감사송의 기도에서 정확하게 요약되고 있습니다.
“오늘 하늘에 오르신 분, 하느님을 낳으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완성될 주님 교회의 시작이며 모상으로서 이 세상 나그넷길에 있는 주님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안을 보증해 주셨나이다(‘복되신 동정 마리아 감사송 4 : 영광스러운 마리아의 승천’ 기도문 중에서).”
교회가 성모 승천 대축일 전례를 통해 초대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주님께 온전히 순명하신 성모님께서는 교회의 참 모델로서 지금을 살아가는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확고한 희망과 위로, 용기를 보장해 주셨다는 점을 기억하도록 합니다. 하늘로 오르신 성모님께서 보여 주신 모습은 성모님에게만 허락될 은총이 아닌 우리 역시 주님을 따라 걸어갈 때 비로소 완전한 희망에로 초대받을 수 있습니다. 가톨릭대사전에서는 “원죄 없는 잉태가 구원의 첫 열매인 성모 마리아 신비의 출발점이라면 하늘에 올림을 받은 ‘승천’은 성모 마리아 신비의 종착점”이라고도 설명합니다.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은 신의 위치에 머물러 계시는 분이 아닌,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그 길을 열어 주시고 동행하시는 분으로 이해한다면, 성모님의 영광은 지금 나에게도 펼쳐질 주님의 또 다른 은총임을 믿고 고백할 필요가 있습니다. 의무 대축일이라 마지못해 봉헌하는 미사가 아닌, 대축일 안에서 우리에게 펼쳐질 은총에 끊임없이 희망하며, 믿음으로 대축일을 봉헌했으면 합니다.
[교회 상식 팩트 체크] (30) 수도복을 입지 않는 수도자도 있다?
옷 자체보다 축성 표지 · 청빈의 증거가 중요
수녀님, 수사님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수도복을 입고 있는 수도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갈색, 회색, 흰색, 남색 등 수수한 색상에 상하의가 나뉘지 않고 발목까지 길게 늘어진 모습입니다. 수녀님들의 경우 머리 수건을 착용합니다. 이런 수도복은 보는 이들까지도 경건한 마음이 들게 해줍니다.
수도자들이 이렇게 수도복을 입는 것은 수도복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청빈을 실천하고,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축성생활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드러내는 표지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수도복은 봉헌의 표지로서 단순하고 단정하며 검소하고 품위가 있어야 한다”(제2차 바티칸공의회 「수도 생활 교령」 17항)고 말하고, 교회법을 통해 “수도자들은 자기의 축성의 표지와 청빈의 증거로서 고유법의 규범에 따라 정해진 수도복을 입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제669조 1항)
수도복은 본래 수도회가 세워지던 당시 일반인들,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입던 평상복이었습니다. 3~4세기경 수도회들이 설립되기 시작하면서 수도원 안에서 복장을 통일해 나갔는데요. 수도회들은 당시의 농부나 서민들이 입던 옷을 수도복으로 삼았습니다. 청빈의 삶을 서원한 수도자들이기에 가장 최소한의 옷을 입고자 했던 것이죠. 시대가 흐르면서 일반인들의 복장은 변했지만, 수도자들은 당시의 복장을 그대로 이어오다 보니 오늘날에 와서는 수도자들의 복장이 독특한 복장으로 여겨지게 됐습니다.
하지만 수도복을 입지 않는 수도회들도 있습니다. 특히 예수회나 살레시오회 등 남자 수도회 중에는 별도의 수도복이 없는 수도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수사님 중에 사제품을 받은 신부님들도 많이 계시기 때문에 수단이나 클러지 셔츠를 입고 계신 수사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교회법은 “고유한 복장이 없는 회의 성직자 수도자들은 제284조 규범에 따른 성직자 복장을 입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제669조 2항)
예수회 한국관구 부관구장 이창현(비오) 신부님은 “사람들 안으로 세상 안으로 들어가서 사도직을 수행하기 때문에 예수회 설립 당시부터 수도복을 따로 입기보다 사제들의 복장인 수단을 그대로 입게 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녀님들 중에도 수도복을 입지 않는 분들이 계십니다. 성심 수녀회는 흰 블라우스에 감색 치마를 정복으로 하되, 사도직 현장에 따라 그에 맞춰 평상복을 입고 있습니다. 다만 어떤 복장이든 십자가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또 예수 수도회의 경우 정해진 수도복이 있지만, 가난한 이들과 같은 신분으로 함께 일하고 생활하는 공동체에서는 수녀님들이 사복을 입고 있습니다.
성심 수녀회 한화관구장 최혜영(엘리사벳) 수녀님은 “성심 수녀회는 설립 당시 과부들의 복장을 수도복으로 입어왔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창설자의 취지를 생각하면서 소박하고 검소한 옷으로 입자고 결의했다”면서 “사복을 입고 있지만 십자가 목걸이로 축성의 표지와 청빈의 증거를 나타내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법] 전례 안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내는 초
실내 또는 캠핑장에서 우리는 손쉽게 LED등을 사용하여 빛을 밝힐 수 있고, 그로 인해 어둠 속에서도 생활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심지에 불을 붙이는 초를 사용할 일이 별로 없고, 일상에서가 아닌 특별한 날 분위기를 내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니 촛불이 주는 의미를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생일 잔치도 아니고, 훤하게 LED등을 사용하면서도 매번 초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2개, 어떤 때는 4개 그 이상도 사용하는데, 바로 ‘미사’를 봉헌할 때입니다. 성전에서 미사를 거행할 때마다 매번 초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처음에는 특별한 목적보다는 실질적인 이유로 미사 때 초나 등불을 사용하였습니다. 저녁기도를 바칠 때, 빵 나눔 예식을 거행할 때 등, 어둠을 밝히기 위한 현실적인 용도였습니다. 그 후 4세기 경부터 초는 ‘세상의 빛’(요한 8,12)이라고 말씀하신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특히 교부들은 벌(蜂)을 동정 마리아로 생각하였고, 벌에서 나온 밀랍으로 만든 초를 예수 그리스도로 이해하였습니다.
또한 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의미합니다.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이 온 세상을 비추듯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어둠 속에서 헤매는 사람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어 주시므로, 초는 주님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한편, 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의미합니다. 초는 자신을 녹이면서 빛을 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당신의 생명을 희생하면서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므로 초는 주님의 십자가 희생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이처럼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 초를 미사 안에서 사용함으로써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냅니다. 전례 등급에 따라 다양한 수의 초를 사용하여 성찬례의 기쁨과 전례의 중요성도 드러내고 있습니다. 3등급인 연중 시기의 평일과 기념일에는 2개, 2등급인 연중 시기의 주일과 의무 축일에는 4개, 1등급인 대축일과 성주간에는 6개의 초를 겁니다.
그 외에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세례 때 받은 ‘그리스도의 빛’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을 때, 부활초에서 붙인 불을 세례 초에 건너 받았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빛을 건네받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되었습니다. 초를 통해 그리스도의 현존을 깨달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빛의 자녀로서 살아야 하는 우리의 사명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