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 것 같은 날 저녁 9시쯤 전화가 왔다.
여성의 목소리다.
택배라며 집에 계시는가 물었다.
고향에서 쌀을 보낸 것이다.
나도 모르게 "이렇게 더운데 그 무거운 것을 14층까지 어떻게 배달하려고 하느냐"는 말이 나왔다.
걱정 말란다.
한참 후 쌀을 날라다 준 사람은 나이가 좀 든 남자였다.
부부지간인가 보다 낮에는 너무 더워서 배달을 못 하고 해가 진 후에 일을 하는 모양이다.
저녁이 돼도 기온은 30℃를 웃돌고 낮에 달궈진 아스팔트와 건물에서 뜨거운 바람이 불기 때문에 물건을 들고 가로 뛰고 새로 뛰듯 하는 택배일이 쉬울 리 없다.
밤에는 햇빛이라도 없으니 좀 나을 것이지만 부인까지 발 벗고 나설 만큼 고생스러운 일이다.
38℃ 넘나드는 무더운 날, 작열하는 태양 아래 물품이 가득 실린 손수레를 밀고 가는 한 택배기사의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택배차의 아파트 진입을 막아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경기도 남양주 다산신도시의 그 아파트단지다.
사진은 순간 열을 치솟게 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해당 택배기사는 큰 불만 없이 감내하는 것으로 보도됐다.
고생 하는 만큼 반대급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아파트 최고의 품격과 가치를 위해 지상에 (택배) 차량 통제를 시행하고' 있는 아파트 주민들이 택배기사들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있을 까를 생각하면, 뜨거운 태양 아래 수레를 미는 모습에서 받은 느낌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더위 아래 이처럼 열 받는 뉴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24일 부산의 한 영구임대 아파트 단지 경비원들은 자발적으로 에어컨 설치를 사양했다.
이곳에 근무하는 8명의 경비원은 LH의 지원으로 경비초소 4곳에 설치하기로 한 에어컨으 거부했다.
저소득층인 입주민 태반이 에어컨이 없는 데다 경비실에 설치될 에어컨 전기 사용료를 그 가난한 입주민들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없는 자의 설움은 없는 자만이 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옥탑방 생활에 대한 반응이 크게 엇갈린다.
그냥 단순한 부자의 서민 체험이라면 모를까, 1천만 시민의 생활을 책임지는 사람의 옥탑방 생활은 난센스다.
전복죽을 배달하는 데서 보듯 시 행정은 비호율적이고 심부름하는 공무원들만 힘들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장이 없는 자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파악하려는 뜻만은 가상하지 않은가?
영남일보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