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두고 나서
나이 80 된 우리 친구들이 카톡에 올리는 글은 대개 3가지다. 첫째는 건강 장수 이야기. 둘째는 지갑 풀고 살자는 이야기. 셋째는 좌파 우파 이야기다. 어제 바둑 두고 나서 한 잔 하다가 친구들에게 '당신은 몇 살까지 살고 싶냐'라고 한번 물어보았다. 보디를 80년간 썼으니 중고차 치고도 희귀한 중고차가 우리다.
이인기는 건강에 자신 있는 것 같다. '여기 옆에 있는 친구 다 가는 것 보고 나서 갈 것 같다'는 대답이다. 그는 '아직은 몇 시간이고 운전해도 피곤한 줄 모른다'라고 대답했다. 그래 '자네 때는 다 그렇다. 내 나이 되어봐라. 그러면 안다' 농담으로 응수했다. 권재상은 '90까지 한 10년 더 살고 싶다'라고 했다. '이유는?' 하고 물어보자, '자길 닮은 대학생 손녀 잘 되는 걸 보고 나서 가고 싶다'는 대답이다. 생의 목표가 분명해서 좋다. 재상이는 한동네 살아서 거사가 그의 장점을 안다. 텃밭농사 열심히 하고, 전철서 내리면 항상 걸어 다닌다. 바둑판이나 9.33 모임을 위해 열심히 친구 모임 알리려고 노력한다. 그걸 봉사라고 한다. 모임에는 피동적으로 참석만 하는 사람도 있지만, 능동적으로 모임 주선하는 사람도 있다. 우섭이도 서현 동네 바둑판 모임에 친구 모우며 봉사한다. 홍형유는 젊은 시절 한 잔 들어가면 목소리가 커지던 사람이다. 그걸 약점으로도 볼 수도 있지만, 순수하다. 목소리 큰 유형에는 정학영 유영준이도 있지만, 내가 보기엔 세 사람 다 순수하다. 학영이는 애국심이 깊고, 영준이는 지갑을 자주 연다. 영준이는 말은 하지 않으면서 있다는 티만 내는 친구 보다 마음 어질다. 형유의 장점은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듣는 오픈 마인드에 있다. 머리에 뭐가 든 척, 겉으로 얌전한 척 좋은 거 다 하는 건 좋지만, 속으론 마음 인색하고 도량 좁은 인간은 딱 질색이다. 그 인간들하고 비교할 수 없는 품격이다.
고등학생 시절 3 총사였던 철수는 졸업 그 해 자살했고, 경택이는 은퇴 후 타계했다. 철학을 배워 그런지, 마음 허해 그런지, 거사는 바둑판 끝나 몇 사람과 모주 한 잔 하면서 인생을 논하곤 한다. 살만치 살았다. 생에 대한 애착은 버려야 한다. 낙엽처럼 떠나야 한다. 극작가 버나드 쇼는 자기 묘비명에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썼다. 나는 뭐라고 써야 하나? '그놈이 그놈이다. 그러나 9.33 친구들아 고마웠다'라고 쓸까?
첫댓글 거사의 생활에 찬성을 보냅니다.그저 그렇게 살다가 가는 것이 우리들 인생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