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만물은 제각기 다 이름을 가졌다.
이름은 존재자체이며,
그 사물이나 물건의 특성을 알려준다.
사물에 이름이 없다면 그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수식어들이 필요할까?
이름 한 마디속에 그 모든 것을 닮고 있는 것이다.
링컨은 “나이 40이 되면 그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라고 말을 했다.
그 말을 바꾸어 이렇게 표현해 보고 싶다.
“나이 40이 되면 그 이름에 책임을 져야한다.”
알렉산더 대제 휘하에 알렉산더라는 병사가 있었다.
그 병사는 게으르고 형편없는 생활을 하면서 알렉산더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고 다녔다.
어느 날 알렉산더 대제는 알렉산더 병사가 있는 막사로 찾아가 다음과 같이 명령을 내렸다.
"자네 이름이 알렉산더라지? 그렇다면 자네가 그 이름을 가지려면,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든지,
그렇지 못하겠거든 그 이름을 바꾸게나, 자네의 게으르고 나태한 삶을 통해 그 이름을 욕을 돌리지 말게나!”
아름다운 이름, 여호와의 이름을 생각해 보았다.
그 속에는 3가지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1. 스스로 계시는 그분의 존재양식을 말하는 이름이다.
2. 창조주, 제1원인, 통치자, 주관자, 유지자라는 것을 선포하는 이름이다. 그분만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기에, 모든 만물을 창조하며, 유지하신다는 것을 기념하는 이름이다.
3. 심판주로서의 이름이다. 그분을 경외하지 않는 이들이게, 너희도 “여호와”임을 나타내보라. 너희도 스스로 존재함을 나타내보라고 하시면서 주셨던 것들을 거두어가는 것이 심판이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시 104:29)
오늘은 그 이름의 네 번째 의미, 생명과 구원의 주로서의 이름을 생각해보자.
여호와라는 이름은 모든 존재와 생명의 원천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칭호이다. 왜냐하면, 이 이름을 취하실 수 있는 분은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이 생명의 원천이라고 분명히 계시한다.
[시 36:9]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어떤 생명도 있을 수 없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존재 자체이며 생명 자체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천사가 이 사실을 진정으로 시인하면 여호와의 이름은 존재와 생명의 보증이 된다.
심판이 여호와를 인정하지 않는 피조물의 존재와 생명을 반납하게 하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여호와 하나님만이 생명과 존재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것을 시인하면 그 이름은 생명의 보증이 된다. 한때 그것을 깨닫지 못하여 믿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것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여호와께 돌아와서 여호와 아니면 자기는 존재할 수 없고 생명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할 때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사망의 죄에서 구원하시고 생명과 존재를 허락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회개이다. 곧 자신이 아담 안에서 죽었기 때문에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는 생명을 잃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성경은 이것을 죽은 행실을 회개함이라고 계시하였다(히 6:1).
이렇게 회개하고 창조주 여호와 앞에 고백하고 이런 뜻을 깨닫고 그분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받게 되는 사실을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라고 선포한 것이다.
[욜 2: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시 9: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잠 18: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시 124:8]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12]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이 되셔서 자기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넘치는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13]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라는 성경 말씀도 있습니다.”(롬 10:12-13, 현대인)
신앙은 주님을 부르는 것이다.
주님을 요청하는 것이다.
주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도와주실 주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선한 성품, 그분의 더 큰 지혜를 의지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근심 염려를 그분께 맡기며
하늘의 쉼과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시 34:17)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시 59:16)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시 86:7)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시 107:13)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을 가졌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계 14:1)
이름은 존재이며,
이름은 성품이며,
이름은 특성이다.
“그대가 하는 모든 일에 ‘이것이 주의 길인가? 이것이 내 구주를 기쁘시게 할 것인가? 그가 내게 생명을 주셨는데 나는 무엇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까? 나는 다만 오 주여 나는 당신 자신의 것을 당신께 즐거이 드리나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라고 그대 마음속으로 생각하라.” (청지기에게 보내는 권면, 46)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아니 본질적으로 그리스도가 그들의 안에 주인되어 사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의 주시는 힘으로 그 능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26)
아침마다 거울을 보고 그대 자신의 이름을 불러보라.
아침마다 “그리스도인 000,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라.”
아침마다 “하나님의 사람 000, 그 이름에 합당한 향기를 내어라.”
그 소중한 이름을 불러보자.
김춘수의 꽃 중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하지 않던가. 다른 사람의 꽃이 되기 전에 내가 나를 먼저 꽃으로 만들어 주는 일, 바로 내 이름을 다소곳이 불러주는 일이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길 기다리지 말고, 내가 나의 이름을 부르는 것. 그것이 나를 세상에 참모습으로 설 수 있게 하는 시작이며, 스스로 ‘꽃’이 되는 일이 아닐까?
우리 주님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피어나는 향기로운 주의 꽃이 되자.
소중한 이름이 되자.
https://youtu.be/Z6SQv_wtnds
https://youtu.be/IbRbwngvqVw?list=PLgr45nUrou_ur12haPy2tZlLtsLPnrrGg
https://youtu.be/-otJtliwtaQ
https://youtu.be/2vkZneU9bac?list=PLx0S-BH6AEXhMO60wCNa4zr02ugcLUX0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