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관 시인이 본 53 선지식 20차.6만해 선사의 아들 한보국이의 땅
만해 선사의 아들 한보국이의 땅
만해는 출가하기 전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 이름을 한보국이라고 하였다
보국이가 태어나던 날에 만해는
출가를 결심했다고 하는데
만해는 불가에 인연이 있었나
당시에 조선은 일본 불교를 수용하여
일본불교가 조선을 개화하고 있었다
만해가 한보국이 태의 나던 날
조선을 개화하려는 일본은 조선에 대하여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양 선전을 했을 때
만해는 한양을 향해 홍주 집을 나서다가
발걸음을 속리산에 있는 법주사로 갔는데
법주사는 홍주에서 가까운 이웃이라
발길을 돌려 설악산으로 갔다
설악산 백담사는 개화기 시기에
무불 스님이 수행하던 백담사였다
만해가 백담사에서 수행하려던 날
만해는 김옥균의 개화를 신봉했다
김옥균의 정신을 바르게 실천하고 했다
조선은 개화되어야 한다
조선이 개화되지 않는다면
조선의 발전은 없다.
만해의 본래 집은 홍주 성 앞
홍주성 동쪽 성벽 오관리 212번지
만해 아들 한보국이는1904년에 출생했으니
만해의 출가를 결행했던 날도1904년이다.
만해는 조선의 개화를 위하여 출가를 결심
백담사에서 수행하다가 시배리아를 향해
백담사에 거주하던 인사들과 길을 떠났다
그러다가 시베리아에서 조선 독립군들에게
목에 총알을 맞고 구사일생 살아났나
그날에 그 상처는 평생동안 안고 살아
목을 흔드는 몸이 되었다고 전해졌다
만해가 불가에서 수행하고 있던 날에
한보국이는 홍주 성 앞에 있는 집에서
한보국이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홍주성 주변에 있는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보국이는 아버지 이름을
목놓아 불렀을 것인데
아버지는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한보국이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날에는
어머니는 보국이를 얼싸안고 울기도 했을 법하다
한보국이가 태어나던 본래의 집은 홍주성 앞
홍주성 앞이 한보국의 집터라고 말한다
한보국이가 어린 시절에 놀던 마을은
홍주성 앞에 있는 집인데 흔적도 없고
홍주 중 고등 학교 뒤 터에
만해의 가족 묘가 현존한다.
만해 가족 무덤이 있는 홍주 중고등학교에는
어떻게 해서 만해 가족 무덤이 있는지
그 무덤에 대하여 고찰해야 한다.
만해가 출가하여 가족을 부양할 수 없어도
한보국이는 성장하면서 홍주에서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 만해가 참여한 신간회였다
한보국이도 신간회 간부 소임을 하였으니
만해의 정신을 전승하려고 했다고 보아야 한다
신간회 간부에 참여한 한보국이는 아버지 만해를
원망하면서도 존경했을 것으로 보기는 어럽다
하지만 만해의 할동을 보면서 존경했을 수 있지만
한보국은 아버지 만해 선사를 원망했던 일도
참고 견디는 인욕이 있지만 민족운동에 참여
조선의 개화를 염원했던 이들과 뜻을 같이했다
만해의 정신을 가슴 깊이에 색이고 있었을 것인데
한보국이는 홍성 오관리 철물점 동아일보 지국을
홍주지역에서 운영하고 조선 해방이 되자
홍성군 자취위원회 건국준비의 부위원장
인민 위원회위원장 직책이었다.
당시 인민위원회가 해체된 이후에 한보국이는
1948년 남한만의 단독 선거에 반대하고
홍주 경찰서를 습격을 결행한 이후 서울로 피신하였으나
서울에서 체포되어 서대문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전쟁으로 인하여 석방되었다
서대문 교도소는 만해도 수감인데
한보국 아들도 수감했다니
이것은 바로 민족의 불행이다
한보국이는 민족 불행의 역사를 생각하며
홍주 지역에 거주하지 못하고 이주했던 시기
한보국이는 분단의 선 38선을 택했지만
한보국이는 가족을 홍주성으로 귀향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보국이의 큰 어버지가 머문 홍주
한보국이 어머니도 홍주 지역에 거주했다
만해의 아버지 어머니 만해의 형
한보국이가 살던 집터마저 모두
부동산 특별법조치를 적용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하련다.
시인의 이름으로 말한다,
만해 후학인 시인 진관의 이름으로
만해 아들 한보국의 땅을 찾아야 한다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음을 알게나
나는 분명히 말 하거니와 한보국이의 땅
만해의 땅을 찾아내는 일이다
한보국의 땅을 찾아야 한다.
홍주 중 고등학교 뒷 터를
한보국의 이름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인간이라고 말한다면 인간 존중의 시대
그러한 시대의 역사를 논증해야 한다
민족 분단의 병
역사의 몸을 치유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 존엄의 국토를 장엄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인간이란 삶에 존재를 비르게 기록하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나를 발견하는 자아의 몸이다
홍주성 앞 오관리 474번지 175평
한 보국이가 집터는 1964년 7월 6일
박홍양 전 홍성군수 소유가 되었다니
한보국의 토지에 대하여 분명히 밝히고
한보국이 머물던 집터를 보존하여
만해의 정신을 전승하는 홍주가 되어야 한다.
만해의 정신은 바로 민족이고 한보국의 정신은
분단의 장벽을 허무는 교훈이다
우리는 하나다 분단의 병을 치유하는
그날을 기약하는 것은 바로 역사다,
자신의 존재를 망각하지 멀고 현존하는 몸으로
악행의 몸에서 선행의 몸으로 태어나기를
2023년 3월 1일
출처: 불교평화연대 원문보기 글쓴이: 진관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