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180/200530]친구들 덕에 내가 산다
어제 하루의 얘기다. 완주 비봉에서 95세 노모를 모시고 사는 친구가, 굳이 임실 치즈테마파크에서 운봉친구와 함께 점심을 사겠단다. 무슨 비즈니스미팅이 있는 것같은데, 오는 김에 얼굴이나 보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과학기술부에서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후, 이층 목조집을 멋들어지게 짓고 노모를 봉양하는 멋드러진 친구다. 운봉친구는 야산을 개간했는데, 윤달인지라 마사토를 찾는 사람이 줄을 서 오지 못했다. 평일인지라 사람이 뜸해 한갓져 처음 와본 테마파크 산책도 좋았고, ‘화덕쿡’이라는 식당에서 먹은 화덕피자와 연어회초밥도 좋았다. 모처럼 거한 점심을 했다.
1시쯤 집에 돌아오니, 뒷동네 자치동갑 친구가 부산에서 방금 택배가 왔다며 ‘부산오뎅’과 머위대국을 몽땅 가져왔다. 아버지와 같이 산다고 시시때때로 반찬을 챙겨주는 친구와 아주머니의 오지랖이 고맙다. 대체 이 ‘웬수’를 어떻게 갚아야할까. 면구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시는 아버지께 “내가 알아서 할테니 걱정말라”는 흰소리를 한 지 벌써 몇 번째이다. 어제 새벽에는 그 친구의 호號를 ‘덕재悳齋’라고 지어줬다. 흔쾌히 받아들여 고마웠다. 농사일이든 세상 사는 처세處世든, 모든 것이 어설프기만 나에게 ‘팁선생’은 금쪽같은 조언을 날마다, 그것도 몇 차례 주고 있다.
인근 저수지 옆에 양어장을 만들어놓고, 전주에서 날마다 출퇴근하는 깨복쟁이 친구가 있다. 그제 우리집에서 점심을 같이 했는데, 이 말 들은 아내가 아버지 갖다 드리라며 요구르트 한 박스와 샌드과자 두 박스를 가져왔다. 저녁에 막역한 친구가 온다기에 고사리와 취나물을 꺾으러 산에 갔는데, 이 친구 몫까지 바쁘게 꺾어 신문지로 두 뭉치를 싸놓았다. 고사리조기찜과 취나물 무침을 한번쯤 해드실 수 있으리라.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고작 그뿐이다. 마침, 남원세무서(임실 순창 남원 통합)에 볼 일이 있다기에 나도 최근 아버지가 마지막 논을 팔았는데, 양도소득세 신고를 이달말까지 해야 할 판이어서 따라나섰다. 혼자 가기가 거시기했는데 잘 됐다. 양도소득세 신고도 개인이 할 수 없게 복잡하다. 세무사를 통해야 한다는데, 서울의 친구가 생각나 전화했다. 걱정말라며 매매계약서, 대장 등만 보내주면 자신이 다 알아서 해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남원병원장 친구가 스트레스 해소에 특효약이 있다며 처방전을 해놓았으니 받아가라는 전화다. ‘일타삼피’인 셈이다.
저물녘 집에 돌아오니, 이웃마을 ‘자연인친구’가 툇마루에서 기다리고 있다. ‘설비’ 전공이었던 이 친구는 최근 전주집을 혼자 리모델링하느라 바쁘다. 나는 근 1년 동안 이 친구에게서 ‘자연自然과 농사일’에 대해 하나에서 열까지 배웠고, 지금도 배우고 있다. 내 일을 자기일처럼 헌신적으로 한 후, 요구하는 것은 항상 “소주 있는가? 소주 한잔 주소”가 전부다. 안주도 별로 없이 한두 병 먹고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는, 신기한 친구다. 어제도 오자마자 꽃밭을 만들려고 자연석을 가져다놓았는데, 이리저리 훈수를 하고, 테두리석 쌓는데 시범을 보이며 ‘잔소리’를 해댔다.
저녁을 먹고 8시 뉴스를 보고 있는데, 전주에서 내려온 친구가 문을 똑똑 두드린다. 막걸리 4병과 스낵면 3봉지를 사갖고 와, 아버지까지 기어이 오시라해 막걸리를 한두 잔 마셨다. 지난해 8월 위암 수술 후 처음 마셔보는 막걸리하며 기분이 좋아라한다. 이렇게 마시는 것이 무슨 독毒이 되랴 싶다가도 은근히 걱정이 된다. 잘 버티고 살아나야 할 터인데.
운봉친구의 전화다. 내일(그러니까 오늘) 미니양배추를 심느라 마사토를 갖고 오기가 어렵다고 한다. 집안 꽃밭에 흙을 물이 잘 빠지게 마사토와 황토를 섞어 깔 생각이다. 마침 야산 개간 마사토가 있어 1톤을 부탁했었다. 경찰공무원 출신인데도 어찌 그리 ‘일머리’가 좋은지, 못하는 일이 없다. 꽃밭 테두리석도 그 친구에게 부탁할 생각이다. 여기에서 40km나 떨어졌는데도, 작년 집수리때 보름도 넘게 출퇴근하며 담장을 쌓고 부엌 타일을 깔고, 토방에 현무암 옷을 입히는 등 지대한 공을 쌓은 일등공신이다. 참 ‘대다난’ 친구이다. 하여, 급할 것은 없으니, 당신이 한가할 때, 내주 수요일쯤 하루 날 잡아 나와 같이 하자고 했다.
10시쯤 자리에 누워 하루를 생각하니, 내가 사는 것이 모두 친구들의 덕택인 것같았다. 나는 해준 것이 하나도 없는데, 왜 이렇게 내 주변에는 고마운 친구들이 덩케덩케 모여들어, 도움을 못줘서 안달을 하는가? 눈물나게 고마운 일이다. 거의 매일, 하루가 친구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지다 못해 점철돼 있는 일상이다. 말하자면 외로울 새가 없다. 아내에게 일일 결산보고도 못했다. 하여간 ‘친구복’은 허벌나게 많다. 서울생활에서도 그랬다.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까’. 모르겠다. 결론은 나도 그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는 친구가 되어야겠다. 하다못해 나의 취미인 ‘글 보시布施’라도 부지런히 해야겠다고 새삼스레 다짐해본 하루의 일기.
첫댓글 알록달록 친구는 친구없이는 못살겄다.
나이들면 가까이에서 얼굴한번 더 보는 친구가 형제보다 가깝다고ㆍㆍ
우리 엄마 살아계시면 100살 나랑 닭띠 띠동갑일세
우리엄마 돌아가시기전
나 죽으먼 우리 막둥이 어쩔꺼나.
내나이 58세에 엄마가 돌아가셨으니 그 즈음 이야기
넌 이제 젖 떨어진 강아지여
인자 너 혼자 느 식구들이랑
잘 살아야혀.
부모 다 돌아가시면 형제도 필요없다ㆍ ㅉ
이런말씀 하셨는데 점차 시간이 흐르니 나도 친구들이 더 좋다ㆍ
사람사는곳에 사람이 북적대야헌다고ㆍ
누에 똥구멍친구 세상 잘살고있네 친구들이 줄줄이 찾아드니ㆍ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