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 멀러 테제'의 훌륭함과 아쉬움
멀러의 칼빈과 후기칼빈주의자들의 연속성과 비연속성 분석에 대한 논평
[최근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비판하는 개혁주의자들의 현상과 관련해서]
로이드 존스 후임으로 온 R. T. 켄달 목사가 낙스, 베자, 튜레틴, 카이퍼, 핫지 등 후기 칼빈주의자들이 칼빈의 온건한 신앙을 벗어나서 스콜라적이고 딱딱한 형태로 개혁주의, 청교도를 망가뜨렸다고 비판합니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신조에 대해서도 스콜라적이라고 비판합니다. 이런 후기칼빈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K. 바르트에게서도 강하게 드러납니다.
최근에 웨스트민스터의 '율법관'과 '그리스도의 순종론'이 스콜라적이라고 비판하는 인터넷 상의 신학자들과 목사들도 비슷한 비판을 합니다.
후기 칼빈주의자들이 정말 칼빈의 신앙을 변질시킨 것인가?
칼빈은 온건하고 따뜻한 개혁주의 신학을 제시했고 후기 칼빈주의자들은 딱딱하고 차가운 스콜라적 개혁신학을 제시했는가?
칼빈과 후기 칼빈주의의 비연속성 주장을 예리하게 비판하면서 연속성을 주장한 분이 R. 멀러입니다. 이 분의 주장을 '멀러 테제(주장, 주제)'라고 합니다.
멀러는 비연속성을 주장하는 켄달 신학의 문제점을 정확히 비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멀러의 논문을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멀러의 연속성 주장에는 주의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멀러의 주장 중 약점을 잘 분석해야 합니다. 멀러는 중세시대와 종교개혁시대의 지나친 연속성을 강조하기도 하며, 후기칼빈주의를 너무 넓게 정의합니다. 즉 알미니안주의나 아미랄디즘(개혁주의+알미니안주의), 코케이우스주의까지 모두 포함해서 다룹니다. 물론 알미니아주의는 비판하기도 하지만 비판논의에 명확성이 약합니다.
개혁주의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 다양성을 상당히 넓게 잡으려고 합니다. 개혁주의를 칼빈의 위치가 너무 부각되는 듯한 ‘칼빈주의’로 부르는 것에도 매우 비판적 입장을 보입니다. 그 결과 멀러의 신학적 정의에서는 개혁주의에서 칼빈의 중요성과 위치가 약해집니다.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논쟁에서 우리는 어거스틴주의와 펠라기우스주의, 반펠라기우스주의라고 신학적으로 얼마든지 부릅니다. 마찬가지로 종교개혁에서 루터와 칼빈의 차이를 언급하기 위해서 ‘칼빈주의’라는 표현을 충분히 부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멀러는 특정한 개인이나 어느 하나의 신조에 집중되는 개혁주의 형태에 대해서 비판적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멀러는 칼빈과 16세기 여러 개혁주의자들을 포함해서 개혁주의를 정의하려고 합니다. 물론 16세기의 많은 개혁주의자들을 우리는 존중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16세기에서 칼빈의 위치는 여러 신학자 중 한 사람 정도로 취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마치 종교개혁의 시작에는 여러 요소들이 있지만 루터를 빼놓고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칼빈의 신학과 성경해석을 가볍게 취급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멀러의 신조관에는 여러 신조의 다양성을 말하지만 표준문서 개념이 약합니다. 멀러의 신조관에는 신조가 가지는 공적인 객관성과 규범성의 강조가 약합니다. 다양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유럽개혁교회가 3폼(하이델, 벨직, 도르트 신조), 영미개혁교회가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표준문서로 고백하는 표준적 의미를 약화시킵니다. 이런 다양성의 세계관 때문에 도르트 신조에서 제한속죄에 대한 비판적 논조도 강합니다. 물론 제한속죄를 인정하시지만 아미랄디즘(제한속죄에서 알미니안 쪽 성격이 강함, 가정적 보편주의)의 느슨한 제한속죄까지 포함시키려고 합니다.
멀러의 연속성, 다양성 주장은 중요한 면도 있지만 정통 개혁주의 입장에서 보면 개혁파 신학의 노선을 너무 넓게 잡으려는 형태를 보입니다. 그래서 멀러 테제는 상당히 주의해서 읽어봐야 합니다. 그러나 멀러 테제는 개혁주의 신학의 특징을 공부하면서 한 번쯤 읽어봐야 합니다.
개혁파 신학은 노선, 즉 신학적 계보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이 계보와 노선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여러 형태의 개혁주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너무 좁게 잡으면 독선과 고립에 빠지고, 너무 넓게 잡으면 혼합에 빠질 염려가 있습니다. 내 신학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독선도 문제지만 신비주의적 칼빈주의, 세대주의적 칼빈주의, 자유주의적 칼빈주의, 근본주의적 칼빈주의, 알미니안적 칼빈주의 등등 다양한 혼합적 칼빈주의를 무분별하게 개혁주의 정통 노선으로 잡는 것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과연 어떻게 개혁주의를 해야 바르게 하는 것인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이런 혼동을 바로 잡기 위해서 우리 선조들은 개혁파 신학의 정의와 노선을 구별해 준 것입니다. 대신교단 선언문과 박형룡 박사는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우리의 신학은 개인신앙의 주관적 학적 표명(表明)이 아니라 역사적 기독교회의 교회성을 본질로 하는 교회신조(敎會信條)에 의한 객관적 학적 석명(釋明)이다. 이 같은의미에서 우리는 칼빈주의를 표방(標榜) 한다. 이는 우리의 신학이 칼빈 한 사람의 개인의 신학을 의미하는 것이아니라 칼빈의 신학적 입장이 성경의 계시진리를 역사적기독교회가 신조 또는 교회의 신학자들의 저술형태로 고백해 온 체계적 진리를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학은 역사적 기독교회의 공동신조(共同信條)를 비롯하여 어거스틴, 루터, 칼빈, 베자, 16․17세기 개혁파 신학자들, 16․17세기 개혁파교회의 신조들, 19세기와 20세기의 개혁파 교회 신학자들에 의해 변증, 변호, 보존되어 온 역사적 기독교회의 정통적 입장이다.”
"장로교회의 신학이란 구주대륙의 칼빈 개혁주의에 영미의 청교도 사상을 가미하여 웨스트민스터 표준에 구현된 신학이며,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이란 이 웨스트민스터 표준에 구현된 영미장로교회의 청교도 개혁주의 신학이 한국에 전래되고 성장한 과정이다."(박형룡 박사,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 전집14권, 신학논문, p. 389)
멀러의 너무 넓은 개혁주의 정의도 문제지만 R. T. 켄달 목사의 후기 칼빈주의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대한 비판은 상당히 주의해야 합니다. 최근 이런 입장에서 비슷하게 비판하는 개혁주의 목사님들이 계시기 때문에 더욱 주의를 필요로 합니다. 개혁주의, 칼빈주의를 추구하시는 목사님들이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비판적으로 보시면 상당히 주의해야 합니다. 개혁주의, 칼빈주의적 장로교 목사란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목회서약으로 선서하고 목사 임직을 받은 후 이 신조를 토대로 성경해석하고 교회정치와 목회를 추구하는 목사를 말합니다.
"저는 기독교인이며, 개혁주의자며,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추구하는 목사입니다!"
신원균 교수(분당한마음개혁교회, 웨스트민스터 신학회 회장,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