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3장]
1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7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설교]
디모데전서는 목회서신입니다. 때문에 이제 바울은 디모데가 목회를 하는데 있어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주제인 ‘직분’에 관하여 말씀하기 시작합니다.
디모데전서 3장은 순서대로 감독의 직분과 집사의 직분, 두 직분에 관하여 말씀합니다. 여기서 오늘 우리가 살펴볼 감독의 직분은 헬라어로 ‘에피스코포스’라고 해서 오늘날로 치면 목사와 장로, 두 가지 직분을 모두 겸하는 직분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말씀을 볼 때, 우리 교회 가운데 특별히 ‘목사’로서, ‘장로’로서 부름 받게 될 사람들이 각각 어떠한 자격을 갖춰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 상고해볼 수 있습니다.
우선 본문 1절을 보면 바울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여기서 바울은 첫째로,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는 것은 곧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때 ‘선하다’는 말은 디모데전서에서 특히 강조되는 말입니다. 주로 선한 양심(딤전 1:5), 선한 싸움(딤전 1:18), 선한 증거(딤전 3:7), 선한 행실(딤전 5:10), 선한 증언(딤전 6:12,13) 등으로 많이 나타나는데요. 디모데전서에서 특히 ‘선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 혹은 ‘하나님의 의도에 합당하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예를 들어 감독이라는 직분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에피스코포스’라고 불리는 직분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말로 직역하면 정확히 ‘두루 방문하는 자’, ‘두루 찾아오는 자’, ‘두루 심방하는 자’라는 뜻을 갖습니다. 방문하다, 찾아오다, 심방하다?! 언뜻 보기엔 목회자의 심방이 떠오르는 말인데요. 사실 이 말은 목회자의 심방에 앞서, 본래는 ‘하나님의 심방’을 뜻할 때 주로 쓰이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속량하기 위하여, 그 백성을 심방하시는 분으로 묘사하는데, 이때 심방하는 하나님을 일컬어 성경은 ‘에피스코포스’라고 부릅니다(눅 1:67~69 “돌보사”가 바로 이 말).
그래서 사람이 감독이 되어 선한 일을 한다는 것은 달리 말해 무슨 의미입니까? 옛적부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기 위하여 친히 그 백성을 심방하신 것처럼, 이제 신약시대의 감독도 역시 바로 이러한 일을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일에 있어서 혹여나 마음에 거리낌이 있거나 혹은 이러한 일이 도무지 마음속에 사모함이 되지 않는다면, 사실상 그 사람은 감독으로서의 직분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목사나 장로는 무슨 일이 있든지 이러한 선한 일을 사모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목사나 장로라는 자리에 연연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고 심방하신 것처럼, 목사와 장로도 역시 바로 이러한 선한 일을 사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본문을 보면 조금 더 상세히 감독의 자격에 관하여 말씀합니다. 본문 2절을 보면, 감독은 제일 먼저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때 ‘책망할 것이 없다’는 것은 말 그대로 무죄하다?! 무흠하다?! 죄에 대하여 단 한 치도 흠이 없다?! 이런 뜻으로 사용된 게 아닙니다. 아무리 신실한 사람이라도 죄에 대해서만큼은 어느 누구도 완전무결할 순 없습니다. 우리 중 죄 없는 사람은 손 들어봐라?! 이렇게 한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선 100% 의롭다, 깨끗하다, 죄 없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성경에서 가르치는 집사와 장로』라는 책에서 김헌수 목사는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책망할 것이 없다는 것은 말하자면 이 사람이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로 깨닫고, 또한 그 복음 안에서 자신의 죄가 진실로 온전히 가리어졌음을 굳게 신뢰한다는 뜻이다.” 무슨 말입니까? 감독이 책망할 것이 없다는 것은 달리 말해 그가 얼마만큼 복음의 진리,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죄 사함의 은혜’를 진실로 경험했는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감독은 우리 주께서 흘리신 보혈의 능력을 진실로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자신을 돌아볼 때,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오직 그 은혜에 따라서 진실로 교회를 섬기며 성도들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감독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상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서, 순전히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겸손히 선한 일을 사모합니다. 그 사람이 잘나서가 아니라 오로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러니 감독은 반드시 이러한 복음의 능력과 구원의 은혜를 아는 사람으로서, 회중 가운데서 세워져야 합니다. 간혹 목사나 장로하면 교인으로서의 연차, 신앙의 햇수, 교회에 대한 헌신도를 보고서 세워지는 경우가 많은데요.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느냐? 감독은 다른 무엇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깊이 알고 믿고 체험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외에도 본문 2절로부터 7절까지 바울은 교회 안의 감독으로서 세워질 자들에 관하여 여러 가지 자격들을 말씀합니다. 2~3절은 주로 그 사람의 성품, 자질, 평소의 생활 습관에 관하여 말씀한다면, 4~5절은 그 사람의 가정에서의 모습을 말씀합니다. 6~7절은 감독에게 있어서 어쩌면 가장 주요한 요건 중 하나인 겸손에 관하여 말씀하며, 또한 그 사람은 반드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평소 교회 안에서뿐 아니라 세상 가운데서도 이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 그 선한 증거가 분명히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한번 교회 안의 목사나 장로의 직분이 과연 어떠한 바탕 위에 세워지는 직분인지를 잘 정리하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오늘 아침에는 다른 무엇보다 주어진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 교회의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교회 목사님들, 장로님들은 이러한 자신의 부족을 알고서 겸손히 말씀의 원리를 따라 ‘복음의 감화함’을 얻는 복된 직분자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이를 위하여 이 아침에 우리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또한 우리 교회 온 성도들이 이러한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을 더욱더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위하여 기도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