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론
마경덕
묵은 신발을 한 보따리 내다 버렸다
일기를 쓰다 문득 내가 신발을 버린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와 병원으로 은행과 시장으로
화장실로, 신발은 맘먹은 대로 나를
끌고 다녔다
어디 한번이라도 막막한 세상을 맨발로 건넌 적이 있는가
어쩌면 나를 싣고 파도를 넘어 온
한 척의 배, 과적으로 선체가
기울어 버린, 선주인 나
나는 짐이었으로 일기장에 다시 쓴다
짐을 부려놓고 먼 바다로 배들이
떠나갔다
객짓밥
하나님은
저 소금쟁이 한 마리를 물 위에 띄우려고
다리에 촘촘히 털을 붙이고 기름칠을 하고
수면에 표면장력을 만들고
소금쟁이를 먹이려고
죽은 곤충을 연못에 던져주고
물 위에서 넘어지지 말라고 쩍 벌어진 다리를
네 개나 달아주셨다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
연못이 마르면
다른 데 가서 살라고 날개까지 주셨다
우리 엄마도
서울 가서 밥 굶지 말고, 힘들면 편지하라고
취직이 안 되면
남의 집에서 눈칫밥 먹지 말고
그냥 집으로 내려오라고
기차표 한 장 살 돈을 내 손에 꼭 쥐여 주었다
그 한마디에
객짓밥에 넘어져도 나는 벌떡 일어섰다
방음벽
돌진하는 새들
어디로 가는 중이었을까
봄부터 이어진 박새 참새 곤줄박이의 투신이 지역신문
헤드라인이 되려면 더 많은 새들이 죽기를 기다려야 한다
새들만이 아니었다
사차선 차도에서 튕겨 나와 벽과 충돌한 굉음은 파편
이 되어 흩어졌다
신기루와 비행이 만나는 지점,
이곳은 묘지였다
질주하던 속도와 정면충돌한 사건이 중앙선을 넘고 벽
을 뛰어넘었다
무단 침입한 잡음은 아파트보다 높이 자랐다
최대한 키를 높여 달려드는 소리를 죽이겠다고
잠을 설친 의견들이 둘러앉았다
방음벽은 마지막 배수진
주민들은 새들 따위는 금방 잊었다
새의 죽음을 이야기한 시인이 있었지만 날아오는 화살
에 곧 입을 다물었다
담쟁이를 심자던 숲해설가도 일조권에 밀리고 말았다
누군가는 새들의 죽음은 자살이라고 했지만 새들은 스
스로 머리를 박거나 날개를 꺾지 않는다
하늘을 달리는 날개들은 머리를 들이박고 뼈가 부러진
소리들은 투명 방음벽 아래 수북이 쌓여간다
공중에도 로드킬이 있다
깁스 신발
골목 담벼락 밑
누가 벗어버린 오른발일까
신발 한 짝을 적시는 봄비의 목소리가 처량하다
모처럼 몰려온 봄비에
목발 집어 던지는 소리, 나긋나긋 깁스 풀리는 소리
봄비를 수혈한 나뭇가지들
비 그치면
겨울의 붕대를 풀고 마음껏 저 공중으로 걸어갈 수 있
겠다
이 소란한 봄날
담 밑에 주저앉은 신발은 어느 캄캄한 골목을 헤매는
것일까
아픈 발을 감싸며 한 발 한 발 걸음을 고르고
골목을 오갔을 한 몸의 시간
중심을 잡던 그 힘을 제 것으로 믿었을 것인데,
비명을 지르던 뼈에 물이 오르고
발등이 빠져나간 자리 휑하다
한 발짝도 걷지 못하는 저 깁스 신발
팽개치고 싶은 무거운 몸을 싣고 절뚝거릴 때
그는 살아있었다
근육들
근육을 소비하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소낙비, 근육이 빠진
어느 정치인의 공약처럼 바닥에 뒹군다
몸집을 키운 사내들이 괴물처럼 변해버린 육체를 전시 중
이다 전봇대를 붙잡고 버티는 헬스클럽 광고지, 비에 젖은
종이의 근육도 만만치 않다
선거 벽보를 장식하던 노인의 이름에도 근육이 있었다 소
나기처럼 찾아온 권력은 자주 뉴스에도 등장했다 쉽게 무너
지지 않는 하늘이 있었다
화폐의 근육으로 터질 것 같은 금고들, 인맥이 촘촘한 저
노인도 화폐 속에 숨은 질긴 실처럼 자신의 전부를 은폐했다
바다의 근육으로 쫄깃한 모둠회가 나오기 전 쓰끼다시로
등장한 흐물흐물한 연두부, 이 빠진 노인 같다 입속에 살던
서슬 푸른 호령은 퇴화하고 혀의 걸음도 어눌한
기억은 누수되고 한도 초과인 노인의 카드에는 근육이 없다
“가만히 있어도 해마다 근육은 감소됩니다” 의사는 그것
도 병이라고 했다
하루 치 근육을 다 써버린 태양이 서쪽 능선으로 내려앉
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