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를 옹호, 미화하는 김동호, 이찬수, 이재철 목사
김동호 목사의 페이스북에서
김동호 목사(높은뜻연합교회 대표)가 한국교회 최대이슈가 되고 있는 동성애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2015년 7월 3일 김 목사는 개인 페이스북(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dongho222?fref=ts)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거룩을 요구하신다고 전제했다. 그리고 그 거룩 중에 성적 순결에 대해 엄하게 명령하고 계시다고 설명했다. 성적순결은 이성애와 동성애를 포괄하는 좀더 근본적 개념이라며 김 목사는 “동성애 축제를 보면 소수 성애자들의 인권문제보다 더 부각되어 보이는 것이 성적문란함이다”며 “소수 성애자들의 인권과 합법을 주장하다가 동성애자들의 성적문란까지 인권과 합법으로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목사는 “동성애자들 중에는 퀴어 축제에서 눈에 띄는 그런 난잡한 성애자들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적인 관점에서 동성애를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허락하신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성생활’이라고 인정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한국교회의 동성애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 김 목사는 “지금 우리 기독교가 동성애자들에 대하여 함부로 돌을 던질 처지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소위 성직자라고 하는 목회자가 자신의 권위를 이용하여 함부로 여자 청년과 교인들을 성적으로 유린하고도 떳떳하게 목회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한 노회와 교단에서는 그것을 수수방관하고 있는 형편에 말이다”라며 교회 내부의 죄악상에 대해 더 치열할 것을 주문했다.
처음, 동성애 자체와 한국교회의 동성애 대처에 머물렀던 김 목사의 시각은 페이스북 글 마지막에 이르러서 급격하게 자신의 교회, 심지어 가정으로 옮겨진다.
“만일 동성애자가 내가 목회하는 교회에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만에 하나 내 아들이 동성애자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물은 김 목사는 “동성애를 해도 내 아들이고, 동성애를 해도 내 교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를 하나님의 창조질서로 인정할 수는 없다”고 자문자답하며 페이스북 글을 마무리했다.
이찬수목사
"동성애는 쉽게 정죄할 문제 아니다" 교회 홈페이지에 견해 밝혀…
http://cafe.daum.net/goodnewstoyou/RzkI/6
한국기독교연구소 김준우 소장은 동성애 반대하는 근본주의 비판 한국교회 내에 동성애를 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대부분의 목회자나 교인들은 "성경은 동성애를 죄라고 한다"는 잣대로 동성애자를 배척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일부 교회와 교계 단체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반대 운동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학생인권조례에 나오는 '성소수자, 임신·출산자 차별 금지' 조항을 들어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면 동성애가 확산될 것이라는 논리를 펼친다.
1월 16일 강원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 입법 예고를 하자, 교육청 홈페이지에 '동성애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항의 댓글이 쇄도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했을 때와 비슷한 모양새다. 이러한 가운데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와 한국기독교연구소 김준우 소장이 동성애에 대한 견해를 밝혀 이목을 끈다.
김준우 교수도 1월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라틴어 판본에는 구원받지 못할 자들의 목록에 동성애자가 없었다"며, 동성애를 반대하는 근본주의 기독교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이찬수 목사가 댓글을 달았던 분당우리교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글의 내용은 이렇다. 글쓴이는 부산대 길 모 교수로부터 동성애를 인정하는 강원도교육청의 학교인권조례안을 반대하는 서명에 동참해 달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며 이찬수 목사에게 "이 글을 보신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알려 주셨으면 좋겠다"고 썼다.
그러나 성적으로 문란해진 결과로 나타난 동성애 문제에는 선을 그었다. 이 목사는 "성경에서 타락한 시대에 나타나는 성적 타락과 동성애 경향이 (지금 시대에) 나타나는 것에 우려한다"고 했다. 이찬수 목사가 동성애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입장을 제시했다면, 김준우 소장(한국기독교연구소)은 한국교회에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보게 된 원인을 지적했다. 김 소장은 1월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근본주의적 기독교가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보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개혁주의 신앙고백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라틴어 판본에는 동성애자를 언급하는 글이 없었는데, 1962년 개정된 <요리문답>부터 구원받지 못할 자들의 목록에 동성애자들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우리나라의 성경이 동성애자들을 '남색'하는 자라고 번역했다며 왜곡된 성경 번역을 비판했다. -최유진 기자, 뉴스앤조이 2013년 2월 1일자 기사 뉴스앤조이 기사 댓글 동성애 자체가 구원받지 못할 자의 목록에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지는 모르겠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그 문제에 대해서 정확한 답을 주는지 그렇지 못한지도 모르겠다.
하이델 베르크 요리 문답에 의해 어떤 것이 구원받지 못할 죄인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동성애가 죄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동성애를 인정하는 쪽의 시각은 동성애가 단지 성적 취향에 관한 문제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와 같은 성적 기호의 문제라는 주장이다.
타락의 결과로 인간은 모두 연약함을 지니고 태어난다. 목사들 중에도 돈에는 별 관심이 없어도 명예에 목숨 거는 사람들이 있다. 돈과 명예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이성의 유혹에 결정적으로 취약한 사람도 있다. 태어날 때부터 도벽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있다.
이것이 성화이다. 그리고 성화란 기독교인의 모든 것이다. 크리스찬이 무엇을 하려는가?
섬김, 봉사, 예배, 기도? 다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거룩에의 추구가 전제되지 않는 그런 종교적 활동은 예수님이 지옥의 자식이라고 욕을 하신 바리새인들에게서도 나타난다. 거룩이란 일차적으로 죄에서의 분리이고 2차적으로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다. 동성애를 죄로 인정하지 않고 다만 타고난 기질 내지는 성향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성경의 시각에 반하는 것이다.
왜 근본주의를 나쁜 쪽에서만 바라보는가? 소위 "몽키 트라이얼" 같은 얼빠진 시각을 근본주의로 보는 것이라면 그런 근본주의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성경의 무오류성과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는 것을 근본주의라고 한다면 근본주의는 마땅히 오늘날, 21세기의 현대에도 인정되어야 한다.
이재철 목사
"말씀 입맛대로 해석하면 집 무너져"
100주년기념교회 10주년기념주일 설교서 '퀴어신학' 문제 지적
▲ 이재철 목사(100주년기념교회 홈페이지 캡처) © 뉴스파워 범영수
이재철 목사(100주년기념교회)는 12일, 100주년기념교회에서 열린 창립10주년 기념주일에서 동성애를 옹호하는 사회 분위기를 따르는 것이 아닌 오직 성경말씀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이 목사는 사도행전 19장 23절부터 32절 말씀을 가지고 ‘태반이나 알지 못하더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한국 교회에 온갖 프로그램과 구호가 넘치지만, 정작 본문 속 에베소 미련한 군중처럼 한국 교회가 어디로 가는지 또 가야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풍족한 생활과 부와 번영을 위한 수단으로 삼느라 말씀이 실종됐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 스스로 말씀을 허물어뜨리는 것은 자신과 교회의 미래를 동시에 허물어뜨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말씀에 기인하는 삶이요 교회는 곧 말씀의 집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6일 미연방대법원이 5대 4의 판결로 미국 전역의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5명의 대법관이 2억 5천만의 미국 국민들 가운데 동성결혼에 동의하지 않는 의견들을 모두 제압해버린 셈이다. 엿새 전 우리나라에서도 동성부부의 법적 권리를 인정해달라는 첫 번째 심리가 서울 서부 지법에서 시작됐다. 그에 따라 머지않아 우리나라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서도 동성결혼 합법화 여부를 다루게 될 것이고, 그 판결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영화나 드라마 언론이 동성애를 자연스럽게 다뤄왔고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당당히 밝힌 저명인사들도 많았다. 따라서 이번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은 동성애에 대해 우호적인 미국의 여론을 대법원이 수용했다고 하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만약 20~30년 전이었다면 동성결혼에 대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다르게 나왔을 것이다. 어느 나라보다 여론에 민감한 미국에서 여론에 따라 세속법정 대법관 5명이 동성결혼을 합법화 한 것은 이성적으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교회가 그 판결과 여론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절대화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1993년에 입적하신 성철스님은 여전히 현대불교의 가장 위대한 선사로 추앙받고 있다. 성철스님께서 생전에 조계종에 계실 때 일이다. 불교는 살생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 공식적으로 육식을 금하고 있다. 그런데 당시 조계종 스님들이 불교신자 대부분이 현실적으로 육식을 하고 있음으로 차라리 육식을 공식적으로 허용하자고 성철스님께 제안했다. 그 스님들은 불교신자들이 얼마든지 육식을 할 수 있게끔 살생하지 말라는 부처님 말씀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할 학문적 방안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성철스님께서는 단 한마디로 그들의 제안을 일축했다. 고기를 먹으면 집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성철스님께서 말씀하신 집은 불교신자들의 삶과 불교 자체를 의미했다. 살생하지 말라는 부처님 말씀을 새롭게 해석해서 육식을 허용하면 그 한 계명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교신자가 한 계명이라도 임의로 무너뜨리면 자기 편의에 따라 나머지 계명도 차례대로 무너뜨려 불교신자로서 바른 삶이 무너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불교는 불필요해진다는 것이다. 성철스님께서 고기를 먹으면 집이 무너진다며 육식을 허용하시지 않았던 것은 불교라고 하는 거대한 종교적 시스템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부처님의 계명을 따라 살아야할 불교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먼저 지켜주기 위함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각종 추문으로 신뢰도가 땅바닥까지 추락했던 한국 불교는 살생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지 말라는 그 성철스님에 의해서 신뢰가 회복되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 몸으로 실천했던 가장 ‘중’다웠다. 성철스님에 의해 불교의 집이 지켜진 것이다
1989년 덴마크를 필두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고 그 판결을 교회가 수용한 16개국의 공통점은 그 나라의 신학교와 교회들이 이미 무너져 형태만 남았거나 지금 무너져 내리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한 말씀이라도 인간의 입맛대로 요리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집이 교회라는 집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야 할 이웃 속에는 우리와 종교 이념 문화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이는 동성애자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다.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불교신자거나 불신자인 이웃을 사랑해지 못해선 안 되듯 우리는 사회 변화 속에서 동성커플들과도 차별 없이 더불어 살아야한다. 말씀의 증인이었던 바울 역시 오늘의 본문 속에서 황제의 신전을 책임지는 제관과도 친구사이로 지내지 않았느냐
또 우리는 동성 커플들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열여섯 나라의 대법관들 그리고 동성애에 우호적인 분들의 이성과 지성도 존중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이성과 지성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 성경말씀을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의 이성과 지성 속에 새겨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더 존중하는 그리스도인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당신의 형상을 따라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결혼에 대한 첫 번째 명령은 창세기 2장 24절에 명시돼 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결혼에 관한 한 하나님의 이 첫 번째 명령에서 남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이쉬’ 그리고 아내로 번역된 ‘이쉬아’는 각각 남자와 여자를 뜻할 뿐 어떤 경우에도 ‘남자와 남자’ 혹은 ‘여자와 여자’로 해석될 수 없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이 첫 번째 명령을 인용하여 결혼을 남자와 여자의 결합으로 정의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면서도 사회변화에 휩쓸림 없이 결혼은 남자와 여자 이성간의 결혼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결혼의 원칙을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을 굳게 지켜 나갈 것이다. 우리 입맛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요리하면 집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시내 광야에서 여론에 몰린 아론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금송아지가 여호와 하나님이라 해석했다. 그리고 아론을 포함하여 출애굽 1세대는 모두 광야에서 인생의 집이 함께 무너지고 말았다. 그들에게는 미래가 없었다. 그러나 온갖 비난과 모함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따랐던 모세에 의해 길 없는 광야에서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모세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 개개인의 삶이라는 집이 지켜졌음은 물론이요 이스라엘 민족에게 새로운 미래라는 집이 주어진 것이었다.
범영수 ⓒ 뉴스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