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밖으로 나온 소구는 자신의 손에 들린 두 개의 흉악한 물건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소구는 손에 들린 것을 버릴 아주 좋은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힘없는 걸음걸이로 이십여장을 걸어 바닥이 보이지 않는 빙하의 계곡 앞에 서게 된 소구였다.
"여기라면 괜찮겠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구의 손에 들린 두 개의 화탄은 계곡 아래로 떨어지고 소구는 바로 뒤돌아 서서 다시 동굴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꽈 아 앙!"
커다란 폭음소리와 함께 뒤에서 밀려오는 바람에 앞으로 엎어져 버린 소구는 질린 얼굴로 뒤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화탄을 던진 계곡 위로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뭐? 뭐야?"
화탄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도 못하고 있던 소구는 자신이 버린 화탄이 아주 엄청난 위력을 가진 것이라는 것을 그 광경을 보면서 깨닫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조금 전 동굴에서 저 화탄을 받아내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 지를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종류인지---, 위력만은 엄청나구나."
고개를 설레설레 내 저으며 일어선 소구는 다시 일어서서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얼어 있는 정각 사부와 양평 사형을 녹일 차례였다. 그전에 일단 소모된 내공을 보충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동굴 안으로 들어가 바닥난 내공을 보충하기 위해 가부좌를 틀고 앉은 소구는 흐뭇한 얼굴로 밖을 바라보았다. 누군지 몰라도 절벽 아래 숨어 있던 자는 그 폭발 속에서 절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내공이 바닥나기는 했지만 빙궁이라 불리는 장소를 중심으로 사방 백장이내에 소구의 감각이 뻗쳐 있었고, 이제 이곳에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은 소구 혼자뿐이었다. 안심하고 내공을 다시 살리는 작업에 매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소구는 편안한 미소를 흘리며 눈을 닫았다.
그렇게 소구가 깊은 삼매경으로 빠져 들어가 자신을 잊고 무아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을 때, 폭발이 있던 빙하의 계곡에 온몸이 숯검뎅이가 된 한 노인이 씩씩거리며 솟구쳐 올라왔다.
"언놈이 이곳에 화탄을 떨어뜨린 거지? 하마터면 죽을 뻔했잖아!"
이빨을 뿌드득 갈며 중얼거리던 노인의 시선은 빙하신전으로 통하는 문이 있는 얼음 동굴로 시선을 던졌다. 그 안에서 가는 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허공에 떠서 그곳을 노려보던 노인은 주먹을 불끈 쥐고 다음 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운공 중인 소구를 발견한 노인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하면서 못마땅한 얼굴로 소구를 바라보았다.
"이놈이 언제 이곳에 온 거지? 정구가 혼자 이곳을 찾아오기는 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이놈이 잘못된 운명을 바로 잡을 능력이 생길 때까지는 아직은 아니야."
연신 못마땅한 얼굴로 소구를 바라보던 노인의 모습은 다음 순간 그 자리에서 꺼지듯이 사라지고, 아는지 모르는지 소구는 여전히 꼼짝 안하고 삼매경에 빠져서 운공을 계속했다.
"소구 이 녀석 왜 이리 늦어?!"
백초당 후원의 정자에 앉아 금을 타던 방수련의 입에서 갑자기 신경질적인 고함이 터져 나오고, 그녀의 시중을 들기 위해 옆에 대기하고 있던 하녀는 잔뜩 겁에 질린 채 오들오들 떨었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소리를 낼 수 있는 여자의 시중을 들어주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녀는 재빨리 늘 가지고 다니던 귀마개로 귀를 꽁꽁 틀어막았다. 주인 마님이 저렇게 신경질을 부리고 난 후에 일으키는 소리는 도저히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여름에 떠난 소구가 가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늦어도 너무 늦는 소구였다. 취하와 취앵의 경공으로도 열흘이면 갈 수 있는 빙궁이었고, 소구의 경공이라면 오일이면 도착할 수 있는 빙궁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떠난 지 벌써 두달이었다. 돌아오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동취야, 가서 취앵이하고 취앵이 불러와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녀는 자신의 뒤에 서 있는 하녀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쳤다. 그러나 이미 양쪽 귀를 꼭꼭 틀어막은 동취는 주인마님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방수련은 대답 없는 하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양 귀를 막고 있는 귀마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눈을 꼭 감고 서 있는 하녀를 바라보면서 방수련의 얼굴 위로 황당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하녀의 곁으로 다가가 귀마개를 뽑아버리고 소리쳤다.
"이게 뭐냐?!"
"으악! 마님!"
"이게 뭐냐고 물었다?!"
방수련은 자신의 손에 들린 물건을 흔들면서 소리쳤다.
"귀--귀마개요!"
"왜 이런 것을 끼고 있는 것이냐?"
"이건 개봉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하나씩 가지고 있는 필수품이라구요. 그리고 백초당에 기거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애용하는 물건인데요."
"왜? 귀마개를 하는 것이 유행이냐?"
"저--저기---."
동취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그 하녀는 이마 위로 땀만 흘려내면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이걸 왜 차고 있는지 어서 말해봐."
하녀는 대답을 못하고 이마 위로 땀만 흘러내리고 화가 난 얼굴로 하녀를 쏘아보던 방수련은 짜증이 가득 배인 음성으로 말했다.
"됐다, 가서 취하와 취앵이나 불러오너라."
"예, 마님."
동취라는 하녀는 살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재빨리 후원을 벗어나, 소구의 아내가 된 세 여자가 늘 마작을 하며 놀고 있는 방으로 뛰어갔다.
하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의자로 돌아가 앉은 방수련은 자신의 마금이라 불리는 적색의 금(琴)을 만지면서 짜증을 달랬다. 백초당의 경비 업무를 총괄하고 있던 천궁 옥형진이 언니를 따라 소림사로 가면서 그녀는 백초당을 절대로 벗어날 수 없었다. 호시탐탐 백초당을 쳐들어오려는 무리가 있는 상황에서 현재 백초당에서 가장 큰 전력인 그녀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른 자들은 모르겠지만 칠호라는 자를 상대할만한 고수는 그녀뿐이기에 그녀는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도 둘러앉아 마작을 하고 있던 세 여자는 뛰어오는 발자국 소리에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슨 일이지?"
"쟤는 수련 아가씨의 시중을 들고 있는 동취야."
라리슈카와 취앵이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꼴찌가 될 위기에 몰려 있던 취하가 재빨리 패를 마구 뒤섞어 놓고 일어서면서 말했다.
"수련 아가씨가 우리를 부르는 모양이다. 어서 나가자."
다음 순간 라리슈카와 취앵이는 다시 탁자로 시선을 돌렸다가 찢어지는 비명을 터트렸다.
"취하 너?!"
"언니!"
취하는 재빨리 문 밖으로 달려나가면서 소리쳤다.
"먼저 간다!"
"거기 서!"
"언니들 나도 가는 거야?!"
취하의 뒤를 따라 라리슈카와 취앵이도 의자에서 일어나 문 밖으로 달려나가면서 소리쳤다.
달려가던 동취라는 이름의 열다섯살 쯤 되어 보이는 하녀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가 들어가려던 건물 안에서 만나야 할 사람들이 뛰어나와 자신에게 오고 있었으니 그녀가 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디냐?"
밑도 끝도 없이 취하가 불쑥 말을 던지고 동취는 대답했다.
"후원입니다. 취하마님과 취앵 마님을 수련 마님이 불렀습니다."
이름 뒤에 마님이란 단어가 붙어서 듣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옆으로 달려온 취앵과 라리슈카를 돌아보며 취하가 말했다.
"들었지? 라리슈카는 방으로 돌아가 있어라."
후원에서 취하와 취앵을 기다리며 잔잔한 선율을 만들어내고 있던 방수련은 연주를 멈추고 정자로 들어오고 있는 취하와 취앵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도 마작 놀이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던데? 라리슈카에게 무공을 가르치긴 가르치고 있는 거냐?"
둘의 모습을 보자마자 시비조로 따지듯 묻는 방수련의 질문에 취하와 취앵은 찔끔한 얼굴로 변했다. 라리슈카와 함께 셋이 어울렸다하면 마작으로 날 새는 줄 모르던 취하와 취앵이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자신들을 불러낼 리 없는 일이니 무슨 일로 부른 것인지 물어보기는 해야했다.
"무슨 일로 저희를 불렀어요?"
취앵이가 물었다.
"너희 둘 중에 한 명이 아무래도 북해에 좀 다녀와야겠다."
"네?"
"거긴 왜요?"
"너희들의 남편 말이다. 소구 이놈이 또 게으름을 피우느라 늦장을 부리고 있는 모양이니--, 너희 둘 중에 하나가 가서 데리고 오너라."
방수련의 말을 듣고 취하와 취앵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둘 다 가기 싫다는 생각이 얼굴 위로 드러나 있었다.
취하는 자고 있는 소구를 북해에서 집까지 내내 업고 오는 상상을 떠올렸고, 취앵 역시 비슷한 상상을 할 수 있었다. 동시에 고개를 흔들면서 머리에 떠오른 끔찍한 생각을 털어내고 두 여자의 입에서는 동시에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네가 가."
"네가 가."
그런 둘을 바라보면서 방수련은 취하와 취앵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동생의 게으름은 지나친 감이 있었다.
한마디의 같은 말을 꺼내놓고 취하와 취앵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대로 있다간 둘의 사이에 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였고, 방수련은 재빨리 그녀들을 말려야 했다. 둘의 몸에서 차가운 한기가 점점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아직 겨울이 되려면 두달 정도의 시간이 있었지만 백초당의 후원에 있는 정자에는 어느새 고드름까지 매달린 상태였다.
"둘 다 그만해라!"
서로를 노려보고 있던 취앵과 취하는 방수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둘이 같이 갔다 와라. 소구 녀석을 데리고 오려면 혼자서는 힘들 것 같구나."
"그럼 백초당은---?"
"괜찮아. 백초당의 사방을 오대세가의 인물들이 지키고 있고, 설사 칠호라는 자가 올지라도 나를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 너희들은 어서 소구를 데리러 북해로 가라."
두 여자는 불안한 얼굴로 방수련을 바라보았다. 칠호라는 자의 무공에 대한 이야기를 종합하면 방수련 혼자 상대하기엔 벅찬 존재였다. 그래서 방수련과 취하와 취앵이 항상 백초당안에 함께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다.
백초당 안에 만들어진 지하의 동면실은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잠들어 있는 방종구를 지키려면 어떤 적이 와도 피하지 않고 지킬 수 있는 전력이 필요했다.
"수련 아가씨, 정말 괜찮겠어요?"
취앵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아. 너희들의 경공이면 한달 이내에 북해에서 소구를 데리고 올 테니---. 한 달만 이곳에서 버티면 되지 않겠니?"
취하와 취앵은 불안한 얼굴로 방수련을 바라보았다.
안심하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방수련을 바라보면서 취하와 취앵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녀들 역시 표현은 안 했지만 불안해하고 있었다. 북해로 홀로 떠난 그녀들의 남편 방소구가 아무리 강하다해도 혼자였고, 북해에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취하/취앵~이름도 예브네요
즐감
즐~~~~감!
감사 합니다
즐독 입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합니다
즐독 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감사 합니다
즐감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