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이 바뀌었다. 몸으로 느껴진다. 무슨 대단한 전문가로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두가 그렇게 말한다. 쿡방은 갔다고. 다음은 집방이라고. 채널마다 인테리어에 관한 프로그램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서점에 가면 전셋집 꾸미는 방법부터 스스로 인테리어를 하는 방법까지 각종 책이 난립한다. 검색창에 인테리어를 쳐보라.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정보의 바다가 있다면 바로 그곳이다.
이제 막 시작된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은 당연히 가구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된다. 가구에도 유행이 생기고, 그 유행에 따라 소비의 흐름도 끝없이 바뀐다. '패스트 패션(fast fashion)'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야흐로 가구도 이젠 '패스트 퍼니처(fast furniture)'다. 쉽게 사서, 쉽게 질리고, 쉽게 버리는 패스트 퍼니처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당연히 가구회사들은 기민하게 몸을 움직인다. 싼 재료로 싸게 만들어서 사람들을 유혹한다. 이 시장에서 좋은 재료를 고집하는 것은 성가시다. 직접 가구를 만들겠다는 욕심은 과하다. 친환경은 귀찮은 구호에 불과하다. 보기 좋은 가구와 소품을 재빠르게 사와서 자신들의 라벨을 붙이는 편이 더 효율적이다. 더 다양한 것을 더 빠르게, 더 싸게, 더 대량으로. 그게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구 시장에서도 흐름은 이미 그렇게 바뀌었다는 말이다. 그 흐름을 따르면 모두 성공할 수 있는 걸까. 그 흐름을 거스르면 도태돼 버리는 걸까.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 도도한 흐름에 반기를 들고 나온 회사가 있다. 그 거대한 흐름을 따르지 않겠다는 가구회사, '일룸'이다. "나중에 좋은 거 사" "이사하면 망가져" "가구도 금방 질려" 등 어디선가 들어봤고, 누구에겐가 말해봤던 말들로 광고는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서 말한다. "요즘 가구들의 말입니다. 그 모든 말의 반대편에 일룸이 있습니다"라고.
거부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패스트 퍼니처의 거대한 흐름을 '요즘 가구'라 말하고 자신들은 그 반대편에 있겠다고 선언해버린 것이다. 나중에 좋은 것을 살 필요 없도록 지금 충분히 좋은 가구를 만들겠다고. 쉽게 질려버리는 가구 대신 오래오래 곁에 둘 수 있는 가구를 만들겠다고. 이사를 몇 번이나 해도 망가지지 않는 가족 같은 가구를 만들겠다고. 남들은 다 신경 쓰지 않아도 일룸만은 친환경 가구를 만들겠다고. 흐름이 아무리 바뀌어도 자신들은 자신들의 고집을, 신념을, 욕심을 지키겠다고 일룸이 말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자리를 한마디로 정리한다. '가구를 만듭니다. 일룸'이라고.
남들이 가구회사라기보다 유통회사로 전향할지라도, 남들이 가구를 만드는 것보다 가구를 파는 것에 더 관심을 쏟더라도, 일룸만은 가구회사로서의 기본을 지켜나가겠다는 의지가 그 슬로건 안에 다 들어가 있는 것만 같다.
어떤 시대든, 어떤 사회든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자리를 지키려는 브랜드는 있었다. 자동차 시장에서 모두가 속도·마력 경쟁을 할 때 '가장 안전한 자동차'라는 가치를 수십 년 동안 지켜온 볼보(Volvo)를 빼놓을 수 없다. 슬로건도 '볼보, 인생을 위하여(Volvo, for life)'다. 인생을 지켜주는 안전한 자동차라는 의미와 동시에 너무 튼튼하고 안전해 평생을(for life) 타도 끄떡없다는 의미를 동시에 전달한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는 또 어떤가. 남들이 아웃도어 장비의 성능과 아웃도어 의류의 디자인과 기능을 말할 때 파타고니아는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아웃도어 브랜드로서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철학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슬로건도 '지구 없이는 우리의 비즈니스도 없다(there is no business except the earth)'로 명확하다. 그 슬로건 아래 그들은 판매에 열을 올리기보다 하나를 만들어도 친환경적인 상품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그들의 철학에 동조하고, 그들의 상품에 열광하는 팬이 유달리 많은 것은 당연한 결과다.
굳이 해외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이런 사례는 많다. '바른 먹거리'라는 기업 슬로건 아래 모든 사업을 진행하는 풀무원은 어떤가. 그들은 소비자 머릿속에 '바른 먹거리'라는 니즈가 없을 때부터 그 슬로건 아래 국산 재료, GMO가 아닌 원료, 유기농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제 그들의 슬로건이 먹거리 시장의 거대한 흐름이 되었음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흐름은 언제나 거스를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따르지 않았다가는 기업 자체가 도태될 것 같은 위기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흐름은 언제나 바뀌기 마련이다. 어제의 대세가 오늘의 구닥다리가 되어버리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답은 명확해 보인다. 자신들만의 철학을 고집하고,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자리에 굳건히 서 있는 것. 그 자리를 지켜가는 것.
자연스럽게 한 브랜드의 카피를 격언으로 새기고 싶어진다. '모든 것은 변한다. 동시에 본질적인 것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Everything changes. Nothing chan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