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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의 긍지
날아라 마린보이 : 마~린! 소통의 장!/특별한 손님
지난 2010년 11월 북한이 연평도를 기습 포격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야당 반장을 맡고 있던 국회출입 기자였다. 회사로부터 호출이 왔다.
방송출연을 해야 하니 무조건, 빨리 회사로 복귀하라는 것이다.
속보가 계속 올라오다 보니 대충 분장을 마치고 사전 원고도 없이 앵커와 얼굴을 마주 보았다.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국회로 배치받기 전 국방부를 출입하며 그 곳의 지리와 ‘NLL 이야기’를 대충 꿰고 있었다.
거기에 연평도 포격사건이 터지기 전 천안함 폭침사건을 몇 달간 취재하며 남아있던 얄팍한 지식도 함께.
천안함에 이어 연평도 직접 타격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은 휴전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 영토를 포격한 북한의 믿을 수 없는 행동에 치를 떨었다.
나도 눈을 의심했지만 그 것은 눈앞에 펼쳐진 명백한 사실이었다.
3년이 지난 지금 당시 겪었던 이야기 가운데 기억에 남는 하나가 바로 K-9 자주포다.
해병대 출신의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해병대의 과감하고도 냉정한 대응이 아닌 ‘13분 만에 늑장대응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더 부각되고 있었다.
너무 늦었다나 어쨋다나 말이다. 나도 그 논란에 숟가락 하나 얹을까 하다가 그냥 흘려버렸다.
대신 나의 과거를 떠올렸다.
1987년 2월 4일 병 565기로 해병대에 지원 입대했다.
훈련소를 마치고 실무배치를 받은 곳은 김포 2사단 강화 53대대였다.
전방 근무지는 강화 부속섬 교동도. 우리 소대엔 해안포가 하나 있었다.
27개월 소총수로 근무한 하잘 것 없는 군 경험을 갖고 군 정책을 논한다는 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 지 잘 알고 있다.
그 것도 20여년 전의 경험을 갖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을 보면서 그 때의 일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우리 군의 현실이라고 얘기하면 억측일까.
당시 우리 소대는 그 해안포를 매일 ‘닦고 조이고 기름을 치는’ 일을 했다.
그러나 그 곳을 떠나올 때까지 실사격 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선임들도 포가 제대로 나갈 지에 대해서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후 근무지를 옮기고 제대 후 20년 가까이 해병대 해안포는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기자생활을 하며 국방부를 출입할 때 가본 연평도에서 20여년 전에 봤던 그 해안포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얼마후 연평도 포격사건이 터진 것이다
‘13분 늑장대응 논란’은 또 어떤가.
일각의 ‘늑장대응’ 주장은 그야말로 엉덩이로 분석한 사실이 드러났다.
K-9 자주포 특성상 평상시에도 사격지시를 받고 실제사격이 이뤄지기까지 10분이 걸리는데,
기습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13분 만에 적의 진지를 초토화시키고,
공격을 무력화시키며 정확한 대응사격을 했다고 입 아프게 해명해야만 되는 현실은 가혹했지만
결국 해병대의 ‘억울한 누명’도 벗겨졌다.
나는 ‘K-9 자주포의 늑장대응 논란’ 대신 해병대의 열악한 무기체계를 건드렸다.
K-9 자주포가 해병대에 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말이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었을 거라고 말이다.
내가 군 생활을 할 때도 ‘오래된 물건’이었는데
2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론 차라리 북한의 공격 때 ‘K-9자주포’가 없었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랬다면 할 말이 더 많았을 터이니 말이다.
어찌됐든 해병대의 ‘K-9 자주포’ 와 함께 ‘녹슨 해안포’가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결국 시간이 지나 연평도엔 K9이 증강 배치되고
유도 무기라는 이스라엘제 스파이크 미사일 등 최첨단 방어무기들이 속속 들어가기 시작했다.
과거에 비해 괄목할 만한 변화지만
솔직히 나는 지금도 해병대가 싸울 준비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말하기가 좀 두렵다.
이놈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다시 20여년 전 군 생활을 떠올린다. 당시 병사들에 대한 해병대의 보급품은 형편없었다.
철모나 단독군장 등도 6.25때 쓰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습이었다.
타군에선 배낭형 군장에 K-2 소총이 보급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지만
우리는 여전히 판초와 모포로 둘둘 말은 구식 군장을 갖고 있었다.
장비로 보면 그렇게 되뇌이던 국가전략기동부대의 모습은 아니었다.
닷지차로 배달되는 부식도 그저 입에 풀칠할 수준이었다.
곧 보강된다는 말이 많았지만 제대할 때까지 국가전략기동부대로서의 해병대는 한낱 구호에 그쳤다.
내 작은 경험에서 비롯된 병사들에 국한된 내용이긴 하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로부터 20여 년 후 북의 공격이 있고,
후배 해병과 민간인의 희생이 있고난 뒤 장비를 증강하고 업그레이드 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그 트라우마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국가전략기동부대라던, 공지기동 해병대라던,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난 결코 해병대를 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작지만 강한 해병이라는 자부심 넘치는 해병대는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유감스럽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해병대는 고개를 돌려 보면 죄다 눈치를 봐야만 하는 역학관계에 놓여 있다.
조직이 작다 보니 뭐하나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부대가 아니다.
심지어 2년 전 국정감사에서는
해병대 사령관의 장교 인사 범위가 ‘그 것밖에 안되느냐’는 지적도 있었으니 더 이상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래도 살아 춤추는 정신력 하나는 인정한다고 치자.
하지만 언제까지 이를 우려먹을 것인가.
설마 몸으로 때우던 지난 세월을 추억하면서 지금의 해병대를 바라보는 건 아니리라 믿는다.
잘 알다시피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는 지났고, 가난한 집에서 효자나는 시대도 지나고 있다.
연평도 포격 당시 K-9 자주포마저 없었다고 생각해 보라. 정말 아찔했을 그 날이다.
병력을 늘릴 수 없다면 이를 커버할 수 있는 첨단 장비라도 좀 들여놓든가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육군에 서부전선을 모두 넘기고
해병대는 그냥 명실상부한 국가전략기동부대로 돌아갔으면 하는 생각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지난 2011년 봄 ‘작지만 강한 해병’이 아닌
‘그냥 작은 해병’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해군으로부터 인사와 예산의 독립을 추진하던 당시,
국회에서 취재 중이던 나는 의원회관에서 펼쳐지던 군인들의 치열한 로비전(?)을 보면서
내가 20여 년 전에 가졌던 궁금증들이 대부분 해소됐다.
왜, 해병대는 그 때나 지금이나 같은 모습이어야 했는가를 말이다.
왜, 포격 당시 연평도에는 타군과 달리 부대규정에 맞지도 않는 K-9 자주포를 건네받고도
감지덕지 하게 됐는지 말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8조 3천억 원대의 공군의 차세대전투기 사업인, F-X 사업이 연일 화제다.
건조 비용이 1조원 대에 이르는 해군 이지스함의 추가 건조 논의도 여전히 살아 있고,
육군의 한국형 기동헬기 사업을 비롯한 무수한 사업들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런데 가만히 돌이켜 보니 최근 몇 년 간 해병대의 독자사업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없다.
그나마 우여곡절 끝에 추진되고 있는 해병 항공단마저 없었다면
눈여겨볼만한 해병대의 모습은 그냥 가슴팍에 매달려 있는 빨간명찰 하나로 먹고사는 조직일 뿐이었다.
얼마 전 1년간의 미국 연수 기간에 본 것 중에 인상 깊었던 모습이 하나 있었다.
미국 해병들의 ‘설레발’도 우리 못지않다는 것이다.
우리처럼 해병대 앵커를 차량에 부착하고 다니는 건 그나마 귀엽게 봐줄만 했다.
다리 밑 ‘컨테이너 전우회’는 없지만 사방에 ‘해병 딱지’를 붙이고 돌아다니는 차량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고,
여행길에 시골 허름한 호텔 앞에서 만난 어떤 사람은 한국에서 왔냐고 물은 뒤
자신이 미 해병대로 한국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음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모습은
‘나는 자랑스런 해병의 어머니’라는 문구를 과감하게 차량에 부착하고 다니는 부모들이었다.
그 모습에서 진정한 자부심과 애국심이 느껴졌다면 믿겠는가.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나는 우리도 그러한가라는 물음과 함께
‘젠장 미 해병대는 병력이 우리의 몇 배나 되지?’ 하는 옳지 않은 기자정신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지금 해병대 출신 기자로 굴레(?)가 씌여 있긴 하지만
국방부를 출입하기 전까지 나는 제대후 20여년 간 해병대를 잊고 지냈다.
군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지겨웠을 뿐더러 27개월 간 경험했음에도 경직된 조직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리라.
그런데 얼마 전부터 전우회에 가입도 하고 선후임 해병들과 나름 옛 추억을 곱씹으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앞서 개인 경험담을 이야기 했지만 국방부를 출입하며 본 우리 군 조직은 아직 건강하다.
여타 조직과 마찬가지로 군에서의 경쟁도 어쩔 수 없는 모습이라고 본다.
그래야 서로 상승 발전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국방부가 아닌 육방부라는 비판이 있지만 난 우리 군 특성상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한다.
현대전의 특성상 해-공군의 전력강화를 앞세울 수밖에 없음을 잘 안다.
다만, 욕심이 욕심을 낳는 자군 이기주의로 흘러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리고 모든 군의 경계선상에 서있는 기자로서 서로 건강한 모습을 잃지 않도록 쉼없이 지켜보고자 한다.
지금도 많은 젊은이들이 해병대에 노크를 하고 포항 훈련소로 향하고 있다.
이들을 해병대로 이끄는 힘은 어느 순간 전통이 돼버린 ‘해병대 로망’이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우리는 ‘해병대 제대하면 취직도 안된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해병대를 찾아 들어간 기억이 있다.
지금은 이런 모습보다는 오로지 ‘해병대의 로망’만 있는 것 같기도 해서 여간 다행스러운게 아니다.
오히려 이런 부분들이 우리 해병대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들이 해병대의 또 하나의 전통을 세워나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훈련소때부터 제대할때까지 해병들이 수도 없이 반복하는 '해병대 주기도문(?)'이 있다.
바로 '해병의 긍지'가 그 것이다. '나는 국가전략기동부대의 일원으로서 선봉군임을 자랑한다'로 시작해
'나는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다'로 끝을 맺는다.
'로망'을 찾아 해병대를 선택한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들어와 보니 별 것 없네’가 아닌 그들이 꿈꾸며 들어 온 ‘로망’을 북돋아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불타는 연평도에서 해병대와 국가를 지킨 K9 자주포처럼 말이다.
앞으로도 생겨날 해병대 출신의 기자가
20여년 전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넋두리처럼 기사를 쓰는 일이 이제 절대 없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해병대를 찾는 모든 이들이 진정한 '해병의 긍지'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해병대를 온전한 국가전략기동부대로 만드는 일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YTN 정치부 김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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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원한글..이래서 우리는연명 하나 봅니다..병출신들은 장성급인대...장성들 영관급들은 뭣들하시나..!!
후임의 보이지않는노고에 박수를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시원한 목소리 감솨 .~~~~`
현역 때 매일 외치던 해병의 긍지를 오랜만에 다시 읽어 봅니다.
그놈의 천안함은 언제꺼지 울궈먹나 보자..
선배님 필승
오늘은 기쁩니다. 모처름 對사회적, 국민적 홍보자를 만나게되었어니 기쁩니다. 이글을 쓰신 김문경 후배님! 이 사회의 부조리함에 따끔한 "일필휘지"를 날릴수 있으니, 이 조국의 파수꾼인 해병대를 위하여 외롭지만 개혁의 횟불을 계속 펼쳐 주시길 기도합니다. 167기 목사입니다
문경이 한건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