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내몸이 내년 안건을 보류했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괜히 내년 이야기를 꺼내려다
몸이 먼저 손을 들었다.
“형님,
그 안건은
다음에 다루시죠.”
나는 잠시 멈췄다.
내년 계획,
내년 목표,
내년엔 꼭 해보고 싶은 것들.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몸이 회의를 중단시켰다.
“아직
올해의 피로가
완전히 회수되지 않았습니다.”
아, 그렇다.
몸은
연도를 바꾸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
달력은 하루 만에 넘어가지만
몸은
한 해를
천천히 정리한다.
허리가
의자에 등을 붙이며 말했다.
“급하게 정한 계획은
대개
급하게 버려집니다.”
무릎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에도
비슷한 안건,
보류한 적 있지 않습니까.”
나는 웃음이 났다.
몸은 기억력이 좋다.
특히
내가 쉽게 잊어버린 약속들을
잘 보관하고 있다.
몸은
회의록 하단에
짧게 적었다.
— 내년 계획은 추후 논의
— 오늘은 오늘만 살 것
— 서두른 결심은 보류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형님,
계획이 없다고 해서
방향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뭔가 정하지 않아도
길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뜻 같아서.
나이 든다는 건
미래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미래를
조급해하지 않는 법을
몸이 먼저 알려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
몸이 내년 안건을 보류해 준 덕분에
나는
지금 이 하루에
조금 더 머물 수 있었다.
내년은
내년 몸과
상의해도 늦지 않으니까.
— 탁구시인
첫댓글 에이~~ 형님~!!
이젠 회의 그딴것도 따분하니 잊어 버리시고
몸이 힘들면 쉬고
에너지 소비가 필요하면 움직이고..
계획보다는 하고싶은거 찾아가면서 살아보시죠
저 금년에 아무것도 계획하지도 회의 하지도 않았어도
드럼 시작했고
신나게 신나게 두두리고
우아하게 우아하게 춤추고 으샤 으샤
다이어트 성공해서
뱃살도 쏙 사라지고
체지방도 쭉 빠졌거든요
이젠 회의 끝~~!
모 카님,
이야기 들으니 회의보다 드럼 소리가 더 설득력 있네요. 😄
결국 계획이든 즉흥이든
몸이 웃고 있으면 그게 정답인 것 같습니다.
기운 나는 댓글 고맙게 읽었습니다.
탁구 시인님의 멋있는 글 솜씨, 몸의 부위를 이용하여
삶의 의미를 찾아보는 시간입니다.한 차원 높게 글을 쓰시는
탁구시인님의 글 솜씨에 더 멋있는 글에 , 또 한 해를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만장봉님,
과한 말씀으로 읽히지 않고 따뜻하게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몸 이야기를 빌려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저에게도 한 해를 정리하는 작은 쉼이 되었네요.
남은 연말도 편안히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라는 몸의 말씀입니다.
많은 현명한 분들도 몸과의 대화를 통해
오늘에 살라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비온뒤님,
맞습니다.
몸이 먼저 오늘에 살라고 알려주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고개 끄덕이며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별 희한한 회의가 다 있군요.
시인님의 몸 자체가 회의체!
아주 민주적입니다.
회의 발언들 역시 현학적이고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한편
마치 주주 총회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런데 중요한 멤버가 빠졌습니다.
바로 마음입니다.
마음도 꼭 본 회의에 참석 시키면 좋겠습니다.
마음도 대주주니까요.ㅎㅎㅎ
곡즉전님,
말씀 듣고 보니 정말 주주총회가 맞네요. 😊
몸이 회의를 열었는데
마음이 빠진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아마 마음은
의결권은 있지만
발언은 유보한 상태였나 봅니다.
이럴 때 제일 늦게, 그러나 결정적으로
손을 드는 쪽이니까요.
재치 있는 시선 덕분에
이 글도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몸이 먼저 알려준다는 말에
공감하면서
탁구공과
탁구판 이라고 하나요
수녀님 망토를 연상케 할만큼
너무 깔끔 깨끗
단아하죠
탁구시인님 글 또한
그렇습니다ㆍ
윤슬하여님,
수녀님 망토라는 비유에
제 글도 잠시 말을 멈춘 것 같습니다.
단정하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한 해의 반에 해당하는 결정은 봄에 논의 된다
그리고 그 반은 여름의 끝자락에 결론 되어지고
ㅎㅎ저는 그렇게 되는 거 같습니다
봄에 시작해 놓고 여름내내 이리저리 갈등 속에
시간 끌다가 태양의 열기가 한 풀꺾일 즈음
겨우 마무리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새해에도 아마...
운선님 말씀 들으니
몸의 회의가 계절을 따라 열리는 것 같네요.
서두르지 않아도
결국 제때 결론에 닿는다는 말씀으로 읽혔습니다.
고개 끄덕이며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