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떤 사물의 무언가를 보거나 들을 때, 심혈을 쏟지 않더라도
자신이 가진 지성과 가치관을 자연스레 동원하게 된다. 더하여 귀까지 기울인다면 사소한 낱말의
한 음운에 묻은 얼룩을 눈치 채고 암시의 질감과 상징의 양감을 파악하게도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나서주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꽁지를 감추는 비겁한 사람도 있기도 한다.
사람들한테 정작 필요한 것은 글을 배우기에 앞서 말하기가 우선일지도 모른다. 말하기에 필요한 것은
일차로 듣는 자의 존재가 있어야 하고, 말하기와 듣기, 쓰기와 읽기란 비록 그것으로 인해 변화는 실체가
없음은 물론 그것이 거쳐 가는 길이 모순의 흙과 불화의 초목으로 닦이고 마침내 도달하는 자리에
결핍과 공허만 남아 영원한 교착상태를 이룬다한들,
그 행위가 한때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누군가의 영혼이 완전히 부서져버리지 않도록 거드는 방법을
참작하게도 되고, 언어의 본질과 역할을 두고 명멸하는 무수한 스펙트럼 가운데 그것만큼 괜찮은 구실이
있는지도 살펴봐야 하는 것도 모나지 않는 사회구성원이 되고자 함이 아닌가.
나쁜 일에 대한 목격의 직감에서는 명사, 동사, 형용사 따위의 말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당장은 알고 싶지 않을 수도, 알고 싶더라도 캐내려 들어선 안 되는 영역이라는 본능이
어둠 속에서 천적을 앞둔 곤충의 더듬이처럼 작동할 때도 있어야 하는 것은 인간은 일상의 더없는
안전을 추구하면서도 충동 앞에서는 무장해제 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안도감과는 확연히 거리감이 있는 곳이라도 그러나 자기에게 예정된 자리를 찾아가는 길이라는 것쯤은
스스로 판단이 서게 되는 것이다. 오만가지 일을 겪는 사람들 인생이지만 자기에게 무탈하기만을 바라는
마음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다 똑같은 마음이니까.
첫댓글 글이든 말이든
결국 각자 자기 경험과 이해의 범위 안에서 받아들이게 되지요.
표현 또한 그 범위를 크게 벗어나기 어렵고요.
그래서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말이든 글이든 교류한다면,
불필요한 마찰도 어느 정도는 피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확한 답변 표현이십니다.
독해력이 뛰어나다는 느낌을 늘 받습니다.
도사님은 혼자 페달밟기해서 고관절통증 치유하시고
대단하네요~자유방을
사랑하셔서 그간 틍증참고
글을 올려주심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즐거운 한주되세요~^^
댓글을 척 달아주신 도빈님, 이정민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되시고 힘찬 한 주 보내세요.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교류하면
컨플릭트가 덜 생기리라 봅니다.
글 잘 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