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01, 2001
지난 30일, 서태지가 서울지방법원에 자신의 95년 작 'Comeback Home'과 그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한 '음치 가수' 이재수의 데뷔 음반 「耳亂(이란)」에 대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한편, 서울지방검찰청에 이재수를 비롯한 관계자들을 고발한 사실이 알려져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서태지의 법률 대리인인 강성 변호사(INS법률특허사무실)는 이재수 음반이 발매 초기에 저작권 승인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원곡을 지나치게 희화화하고 원음에 벗어나는 등 저작권법의 '동일성 유지권'에 위배되며, 뮤직비디오의 경우 명예 훼손상의 인격권 침해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 이 같은 법적 대응이 이루어진 것으로 밝혔다. 95년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였던 양현석 역시 서태지와 같은 내용으로 이재수 측을 고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Comeback Home'의 패러디 뮤직비디오 중 인격권 침해로 지적된 부분을 살펴보면, 서태지 분장을 한 이재수가 휴지를 들고 변기에 앉아 있는 장면, 반창고를 입에 붙이고 우물우물하는 장면, 그리고 양현석 분장을 한 다른 멤버가 혀에 빨래집게를 꼽은 채 노래하는 장면 등이라고.
이에 대해 이재수의 소속사인 우퍼엔터테인먼트는 일단 저작권 문제는 이 달 중순 음반 발매 이후 한국저작권협회(이하 저작권협)의 승인을 받았으며, 이재수가 재녹음을 하면서 약간 분위기가 달라졌을 뿐 원곡 자체를 희화화할 생각은 없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수 측은 오히려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은 과민반응이라는 평을 내리고, 더 나아가 서태지 측의 태도에 항변하는 기자회견을 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자 회견의 장소 선정 역시 패러디 정신(?)에 입각하여, 지난 96년 1월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발표했던 성균관대 유림회관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 오고 있다.
한편, 이번 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일개' 패러디 가수의 지나친 희화화로 인한 이미지 추락에 발끈하는 '슈퍼스타'에 대한 흥미로 점철되고 있으나, 그보다는 '창작자의 권리'를 되찾는다는 맥락에서 사건의 핵심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창작자로부터 승인 받지 않은 채 무단 제작·배포했다는 점을 문제 삼는 한편으로 명예 훼손을 거론하고 있는 서태지 측이 과연 어느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대중들에게 편협한 인상을 주는, 일종의 '이미지 실추'를 감수하게 된 전후사정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우선, 현재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마련된 저작권협이 이재수 측의 저작권 침해부분에 대한 징수와 사후 승인으로 '서태지의 지적 재산권이 온전히 보호되고 있다'는 입장이므로, 서태지 측으로서는 '인격권'을 운운하지 않는 이상, 본인의 창작물이 원치 않은 방식으로 변형, 왜곡되는 상황을 개선하기 힘든 '현실'을 고려했으리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게다가 "이재수의 이번 앨범에는 다른 가수들의 리메이크 곡이 많이 수록돼 있다. 서태지의 경우처럼 원곡자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 그대로 부른 곡들도 다수 있지만 이런 경우(판매금지 가처분 신청, 검찰 고발)는 처음이다"라는 이재수 측 관계자의 말은 저작권 제반 문제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지난해부터 가요계 최고의 수익성을 자랑하고 있는 리메이크 앨범과 컴필레이션 앨범의 제작과정을 돌이켜보건대, 이러한 인식이 현재 가요계 주류의 그것과 맥을 같이함은 물론이다.
여하튼, 이번 사건이 어떤 결론을 얻고 향후 가요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윤곽이 드러나려면 아직 많은 날들이 남아 있다. 오는 8월 10일 서울지방법원은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첫 심문을 가질 예정이라고.
p.s. 별 것 아닌 '장난'에 서투르고 지나치게 반응하는 서태지와 그의 팬들이라고 생각한다 해도, 평생 음악으로 먹고 살 일은 없을 거라 해도, 한번쯤은 생각해 볼 문제를 담은 사건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