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3.30 16:55 | 수정 : 2014.03.31 08:37
서울지검 강력부장 시절 마약사범 수사와 함께 조직폭력배 소탕에도 애로를 겪었다. 그들로부터 신체적인 보복까지 감수해야 하는 처절한 싸움이었다. 이미 폭력 조직들이 오락실이나 유흥업소에 빌붙어 세력과 이권을 키워나가는 형태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기업형 조직으로 변신하던 무렵이었다.
그렇게 활개를 치는 폭력조직이 전국적으로 480여개, 조직원들은 1만1000여 명으로 파악되고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 당시이던 1990년 민생치안 확립 차원에서 선포된 ‘범죄와의 전쟁’으로 구속됐던 7000여명의 폭력배 가운데 그동안 이미 5000여명이 출소해 있던 상황이다. 이들이 하나둘 풀려나오면서 다시 조직을 규합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다시 수갑을 채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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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1월 부산교도소에서 출소한 김태촌이 지인들이 준비해온 두부를 먹고 있다.
범서방파 두목이던 김태촌씨(작년 1월 사망)는 수감 중에 조직 재건을 기도하고 조직원을 구의원에 출마하도록 해 폭력조직을 정계에 진출시키려는 큰 꿈을 꾸고 있었다. 일본 야쿠자와 미국 마피아가 정·재계와 연결돼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 폭력 조직도 그런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건 충격적이었다. 강력부의 베테랑인 박충근 검사가 그 실체를 밝혀냈다.
청송감호소에서 조직 재건 시도했던 김태촌미국 마피아 흉내내 폭력두목 정계에 진출시키기도그 당시 청송감호소에 수감 중이던 김태촌이 대리인을 내세워 폭력조직을 관리하면서 출소한 후 조직을 재건하려 했던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김씨를 대신해 범서방파 조직원을 관리한 혐의로 이모씨를 구속기소했다. 또 김태촌은 폭력두목에게 구의원에 출마하도록 권유, 정계에 진출시킨 사실도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그 당시 서울 용산구 의회 이모 의원이 유흥업소를 운영하면서 폭력조직원들에게 자금을 빌려주거나 일자리를 주고, 또 자신은 의원 신분으로 필로폰을 복용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다.
이씨는 8년간 필로폰 2.4g을 복용한 전과가 있는 상태에서 이를 숨기고 구의원에 입후보, 당선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는 부인과 부하 명의로 R나이트클럽을 경영하면서 1980년대부터 서방파 두목 김태촌과 알고 지냈다. 그러던 중 6·27지방선거 직전 청송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김씨로부터 서신을 통해 기초의원 출마 권유를 받고 출마해 구의원에 당선됐던 것이다. 김씨는 편지로 이씨에게 “기초의원선거에 출마해도 충분히 당선될 수 있으니 출마를 검토해보라”고 권유하고, 이씨가 당선되자 “정당에 가입해 광역의원 출마에도 대비하라”고 권유했다. 국내 폭력조직이 자금과 조직을 이용해 지방정계에 진출하는 미국 마피아 흉내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폭력조직의 정치세력화라는 측면에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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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8월 사기 및 폭력 혐의로 구속되는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의 출소…그를 다시 구속한 남기춘 검사그 무렵 서방파와 함께 국내 3대 폭력조직의 하나이던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씨도 형기를 채우고 출소해 다시 조직 재건을 노리고 있었다. 15년 형기가 만료됨에 따라 1995년 3월에 출소한 그는 오히려 사회적인 관심 속에 영웅 대접을 받고 있었다. 출소한 지 석 달 만에 화려한 결혼식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는가 하면 자서전을 펴내고 심지어 방송 오락 프로그램에까지 등장했다. 조폭 두목이 전쟁터에서 승리를 거둔 지휘관이나 된 것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린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었더니 “조양은 아저씨처럼 될래요”라고 답했다는 얘기까지 들려왔을 정도다.
분별 잃은 언론의 우상화 경쟁도 잘못이었다. 검찰로서는 건달이 영웅으로 대접받는 현상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가 다시 꼬리를 밟히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외제 승용차(BMW)를 타고 다니며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한 것이 실책이었다. ‘보스’라는 제목으로 자전적인 영화를 제작하는 데에만 무려 27억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검찰로서는 영화 제작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 출처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여러 방면으로 그에 대한 수사 단서를 찾고 있던 중 우연히 정보를 얻게 됐다. 그 당시 남기춘 검사(전 서울서부지검장)와 점심식사를 한 후 검찰청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오는데 어느 여자가 나에게 다가와 하소연을 했다. 자기 딸이 조양은에게 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수사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남 검사에게 즉시 이를 수사하도록 했다. 이것이 단초가 되어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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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은을 다시 구속한 남기춘 검사. 서울서부지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났다.
남 검사의 끈질긴 내사 끝에 조양은은 1996년 8월 다시 구속됐다. 사기와 폭력 등 6가지 죄목이 그에게 씌워졌다. 15년 만기를 꽉 채우고 1995년 3월 출소한 지 열다섯 달이 지났을 때였다. 어느 일간지는 그의 ‘제2 보스’ 시대가 마감됐다고 보도했다. 그는 1995년 9월 “스키 좀 타고 싶은데 회원권을 만들어 달라”며 효산 그룹 회장 윤모씨를 협박해 서울리조트 회원권 8장을 빼앗은 혐의, 자신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보스를 제작하면서 제작 스탭 이모씨를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며 폭행한 혐의 등을 받고 있었다.
그는 검·경의 눈길을 의식한 듯, 출소 후 기회 있을 때마다 “새 길을 걷겠다”며 갱생을 다짐했다. 1995년 6월에는 동시통역사 출신의 재원 김모씨와 결혼했고, 전공을 살려 보디가드 회사를 차리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세경진흥영화사를 차린 뒤 자신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보스’를 직접 제작하고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조양은 집 압수수색했더니 정치인 등 유명인사들의 격려편지와 위로엽서 수두룩1960년대 전남 광주지역에서 활동했던 그는 70년대 초 상경, 범호남파에서 활약하다 75년 당시 신상사파를 회칼로 무자비하게 공격(속칭 명동 사보이호텔 사건)해 일약 거물 조직폭력배로 부상했다. 그는 서방파 김태촌의 행적을 그대로 밟았다. 그 당시 수감생활 중 폐암선고를 받고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던 김씨도 조직재건을 기도하며 각종 이권에 개입한 혐의로 1990년 재수감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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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은이 출소 후 주연을 맡았던 영화 '보스'의 한 장면.
조양은을 검거했을 때 나를 깜짝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현직 검사와 판사가 나에게 전화를 해서 “조씨는 이미 조폭에서 손을 떼고 평범하게 살고 있는데 과거에 조폭이라는 이유로 범죄를 뒤집어씌우느냐"고 항의한 것이다. 그리고 남기춘 검사가 조씨 집을 압수수색한 결과, 조씨가 교도소에 수감돼 있을 때 수많은 정치인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로부터 격려 편지와 위로엽서를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는데, 참 기막힌 일이었다.
<계속>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