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묵의 「콜링」 감상 / 송재학
콜링
임원묵
우리가 새와 고양이의 목소리를 그저 울음이라 여기듯 실은 우리가 발음하는 모든 소리도 이 밤을 건너려는 울음일지 모르지 누군가 부르는 소리, 좋아한다는 말 함께 웃는 소리, 새벽 버스 정류장의 고요까지 그저 오늘 태어난 나이의 울음이 한순간 변주된 것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 슬프지 않다고 울지 않는 건 아니니까 우리가 우주로 보낸 전파 신호는 어느 행성의 백과사전에 그저 머나먼 푸른 점의 울음이라 적혀 있을지 모르겠고 그 행성의 아기는 그렇지 전파를 내뿜으며 울지도 모르지 인간은 우주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식*이고 울음은 우주가 당신을 이해하는 방식이니까 가로등 아래에서 당신과 내가 입을 맞추던 순간에 사랑한다는 발음은 뭉개지고 끝내 모르는 말로 남게 되면서 서로의 울음을 들었던 거지 끝을 향해 몸을 내미는 세계를 살아가면서 처음 태어난 날을 이해하려 했기에 모르는 거지, 우리들은 이름을 부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돌아보는 법을 울지 않는 서로의 얼굴을
* 칼 세이건. ―시집 『개와 늑대와 도플갱어의 숲』 2024.10 ................................................................................................................................
서로 마주 보면서 응시하는 삶의 형식이 여기 있다. 호명과 울음을 동시에 부르는 얼굴이다. 시인은 세계를 대칭으로 이해한다. 이것은 사물의 짝짓기 또는 사유의 짝짓기이면서, 문장으로는 마주 보는 대구(對句)의 형식이다. 이 형식은 서로를 품으면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방법에서 비롯되었을 듯하다. 새와 고양이의 목소리만 울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소리도 울음의 범주라는 생각. 인간의 생각마저 울음이라는 사유가 있다. 울음은 내가 우주를 이해하는 방식이면서 우주가 당신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키스의 순간마저 울음이 되려면, 생이 끝을 향해 가는 몸이라는 도저한 세계 인식이 있어야 한다. 즉 죽음은 몸이 처음 태어난 날을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생각. 우리들은 누군가 이름을 부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돌아보면서 울음을 감추는 대신 얼굴을 내민다는 생각. 송재학 (시인) |
첫댓글 서로 마주 보면서 응시하는 삶의 형식이 여기 있다. 호명과 울음을 동시에 부르는 얼굴이다. 시인은 세계를 대칭으로 이해한다. 이것은 사물의 짝짓기 또는 사유의 짝짓기이면서, 문장으로는 마주 보는 대구(對句)의 형식이다. 이 형식은 서로를 품으면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방법에서 비롯되었을 듯하다. 새와 고양이의 목소리만 울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소리도 울음의 범주라는 생각. 인간의 생각마저 울음이라는 사유가 있다. 울음은 내가 우주를 이해하는 방식이면서 우주가 당신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키스의 순간마저 울음이 되려면, 생이 끝을 향해 가는 몸이라는 도저한 세계 인식이 있어야 한다. 즉 죽음은 몸이 처음 태어난 날을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생각. 우리들은 누군가 이름을 부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돌아보면서 울음을 감추는 대신 얼굴을 내민다는 생각.
송재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