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안현수가 빅토르 안이 되기까지 무슨 일이…]
한체대派의 황태자로 - 빙상연맹 실력자 총애받아 무명의 高1이 태극마크 달아
非한체대派 불만 폭발 - "안현수 독주에 들러리 전락" 감정싸움에 폭행 사태까지
러시아行 택한 황제 - 무릎 부상 이어 대표팀 탈락… 소속팀 돌연 해체 갈 곳 잃어
휘둘리는 빙상연맹 - 파벌 다툼은 다소 약해졌지만 특정인이 모든 행정 좌지우지
빅토르 안(29·한국명 안현수)이 15일 열린 소치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000m에서 러시아에 사상 첫 쇼트트랙 금메달을 안겼다. 빅토르 안이 러시아 국기를 흔들며 기쁨을 만끽하자 국내 팬들은 축하를 보내는 한편 부활한 '쇼트트랙 황제'가 러시아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있다는 사실에 허탈감을 느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3일 "안현수가 우리나라에서 꿈을 펼치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서 선수 활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인 안현수'가 '빅토르 안'이 되기까지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체대파'의 에이스 안현수
안현수가 국내 팬들에게 처음 널리 이름을 알린 대회는 2002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이다. 당시 그는 일종의 '특혜'를 받아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1988년부터 2002년까지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감독을 맡았던 빙상연맹 C 부회장은 올림픽을 앞두고 신목고 1학년인 안현수를 대표로 전격 발탁했다. 당시 월드컵 1000m 랭킹 2·3위였던 민룡과 이승재를 제쳐 놓고 '랭킹도 없는 선수'를 올림픽에 내보낸 것이다.
C 부회장은 2002년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나 한체대(한국체육대학교) 교수로 부임했다. 1990년대 그가 이끌었던 한국 쇼트트랙은 세 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9개를 일궈냈다. 비결은 '에이스 밀어주기'였다. 팀의 에이스가 우승할 수 있도록 레이스에 함께 나선 대표팀 동료가 상대 진로를 막는 등 견제 역할을 충실히 하는 전략이다.
◇'한체대파'의 에이스 안현수
안현수가 국내 팬들에게 처음 널리 이름을 알린 대회는 2002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이다. 당시 그는 일종의 '특혜'를 받아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1988년부터 2002년까지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감독을 맡았던 빙상연맹 C 부회장은 올림픽을 앞두고 신목고 1학년인 안현수를 대표로 전격 발탁했다. 당시 월드컵 1000m 랭킹 2·3위였던 민룡과 이승재를 제쳐 놓고 '랭킹도 없는 선수'를 올림픽에 내보낸 것이다.
C 부회장은 2002년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나 한체대(한국체육대학교) 교수로 부임했다. 1990년대 그가 이끌었던 한국 쇼트트랙은 세 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9개를 일궈냈다. 비결은 '에이스 밀어주기'였다. 팀의 에이스가 우승할 수 있도록 레이스에 함께 나선 대표팀 동료가 상대 진로를 막는 등 견제 역할을 충실히 하는 전략이다.
-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이 15일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소치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0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빙판에 키스를 하고 있다. 2006 토리노올림픽 3관왕인 그는 러시아로 국적을 바꿔 8년 만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주완중 기자
'비한체대파' 선수들은 한체대 출신의 에이스 안현수를 위해 희생하는 레이스를 펼쳐야 하는 상황에 불만을 품었다. 2005년 1월 유니버시아드에선 안현수가 비한체대 출신의 한 선수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그해 4월엔 안현수를 제외한 남자 대표 선수 7명이 '한체대파'로 통하는 김기훈 코치의 선임 반대를 주장하며 태릉선수촌 입촌을 거부했다. 3개월 뒤엔 안현수 등이 "과거 선수 폭행을 방조했다"며 '비한체대파' 윤재명 코치의 선임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결국 빙상연맹은 선수들이 각자 선호하는 코치에게 훈련을 받게 했다. 안현수는 한체대 출신인 박세우 코치 아래서 여자 선수들과 훈련했고, 진선유와 변천사는 단국대 출신의 송재근 코치가 맡은 남자팀에서 지도를 받았다. 이들의 파벌싸움과 관련해 "2005년 월드컵에서 특정 코치가 '다른 나라에 메달을 줘도 좋으니 국내 다른 선수를 막으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한 선수의 인터뷰가 공개되기도 했다.
◇결국 곪아 터진 파벌싸움
2006 토리노올림픽에서 양 파벌의 간판선수였던 안현수와 진선유가 각각 남녀 3관왕에 오르며 한국 쇼트트랙의 파벌 문제는 아름답게 포장되는 듯했다. 하지만 두 달 뒤 미국 세계선수권 귀국길에 그동안의 갈등이 폭발했다.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57)씨는 인천공항에서 "남자팀 선수들과 코치들이 짜고 (안)현수를 방해했다"며 빙상연맹 관계자와 몸싸움을 벌였다.
2007년 12월 안현수는 3년간 5억원의 특급 대우를 받고 성남시청에 입단했다. 아버지 안기원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C 교수가 현수의 한체대 대학원 진학을 원했지만 현수가 성남시청 입단을 위해 이를 거절했고, 이후 계속해서 불이익을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2010년 선발전(1~3차전)은 4월이 아닌 9~10월에 열렸다. 빙상연맹이 짬짜미 파문을 수습한다는 이유로 선발전 일정을 연기했다. 당시 5월에 기초군사훈련을 받을 예정이었던 안현수는 "1년 동안 4월 대표 선발전을 바라보고 몸을 만들어왔는데 황당하다"며 일정 연기를 철회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한 사람이 빙상연맹을 좌지우지"
2010년 12월엔 이재명 성남 시장이 갑작스러운 스포츠팀 구조조정에 들어가며 빙상팀이 해체됐다. 졸지에 소속팀을 잃은 안현수를 받아주는 국내팀은 거의 없었다. 안현수는 무소속으로 출전한 2011년 대표 선발전에서 5위에 그쳐 탈락했다. 마침 소치올림픽을 준비하며 각 종목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러시아빙상연맹이 귀화를 제의했다.
러시아연맹은 안현수에게 1억여원 연봉과 향후 코치직 보장 등의 조건을 내세웠다. 안현수는 2011년 8월 국제대회 입상으로 매달 받던 연금을 일시불(4800만원)로 받는 등 귀화 절차를 마무리하고 12월 러시아 여권을 받아들었다. 새 이름 '빅토르 안'은 러시아 록음악의 전설로 통하는 고려인 3세 빅토르 최(1962~1990)처럼 러시아에서 '한국'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담긴 이름이었다.
안현수가 떠난 한국 쇼트트랙엔 여전히 파벌 싸움이 심각할까. 최근 인터뷰에서 "이제 파벌은 조금 사라진 상태"라고 밝힌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씨는 "문제는 코치 선임과 대표 선발 방식 등 연맹의 모든 행정을 한 사람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장명희(82) 아시아빙상연맹 회장 등 원로들은 "연맹 집행부에서 C 부회장이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