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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샘'으로 불리는 샘 앨러다이스 뉴캐슬 감독이 결국 '배드 보이' 조이 바튼(25)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맥피스(뉴캐슬의 애칭) 유니폼을 입은 그는 5년간 주급 7만 파운드(약1억2600만원)를 받고 잉글랜드 북부의 명문의 위용을 되찾기 위해 나설 것이다.
맨체스터 시티에서 뛰었던 바튼은 스포츠면 뿐 아니라 사회면에도 자주 등장하는 골치덩어리다. 자신에게 야유하는 상대 서포터 앞에서 바지를 내리는가 하면 지난해 크리스마스 파티 때 팀동료 제이미 탠디의 눈을 시가로 지지는 엽기적인 사고를 저지르며 경찰에 구속됐다.
지난해 여름 태국에서 치른 프리시즌 당시에는 현지의 에버턴 팬들과 싸우고 이를 저지하는 팀동료 리차드 던과 말다툼을 벌였다.
지난 3월에는 리버풀에서 택시운전수에게 폭행을 가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고 5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전을 앞두고는 팀훈련 도중 팀동료인 오스만 다보를 주먹으로 가격해 또다시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의 폭행은 출전정지나 주급 삭감 등의 조치로는 막을 수 없는 것이며 특별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더이상 성장할 수 없는 한계이기도 하다.
지난해 여름 스티브 맥클라렌 감독이 잉글랜드대표팀 지휘봉을 잡자마자 발탁한 이는 바튼이었다. 맥클라렌 감독은 미들즈브러를 맡을 당시부터 바튼의 기량을 높이 평가해왔었다.
하지만 잉글랜드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바튼은 프랭크 램퍼드(첼시)와 스티븐 제라드(리버풀)에게 "이들에게는 경기 도중 공을 따로 하나씩 줘야한다"면서 자극했고 독일월드컵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서전을 내놓은 선수들을 비웃었다.
숱한 사건 사고 속에서도 그는 지난 시즌 38경기에 나서 7골을 뽑아냈다. 팬들도 끊임없이 이적을 요구하며 그를 버렸지만 '빅샘'은 적극적인 구애작전 끝에 거둬 들였다.
축구 감독들에게는 바튼같은 악동들에게 묘한 심리를 느낀다고 한다. 다른 감독들이 휘어잡지 못했던 선수를 자신만큼은 충분히 훌륭한 선수로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하는 심리 현상이다.
이른바 '조지 베스트 증후군(George Best Syndrome)'이다. 이같은 집착은 때로는 허영심어린 실패작로 평가받기도 한다. 악동 한 명 때문에 팀을 망칠 수도 있는 성공률 10%도 채 되지 않는 도박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성공한다면 무서운 상승효과를 일으키는 대박상품이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던 알렉스 퍼거슨-에릭 칸토나의 예처럼 말이다.
▲조지 베스트 증후군
맨유의 7번 전설의 시초인 故 조지 베스트를 두고 한 북아일랜드팬은 "펠레 마라도나 키건 크루이프 바지오. 이들이 개별적으로 지닌 모든 것을 조합한 이가 베스트다"고 주장한다.
비록 조금은 과장됐다고 해도 필자 역시 이 말을 부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베스트는 최고였다(Best is Best).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난 그의 재능을 찾아낸 맨유의 스카우터 봅 비숍은 매튜 버즈비 감독에게 흥분된 목소리로 "보스! 우리가 천재를 찾아낸 것 같습니다"라고 보고했다고 한다.
15살이던 1961년 맨체스터로 향한 그는 재능은 탁월했지만 향수병에 시달리다 곧 고향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버즈비 감독은 그를 간신히 달래 맨체스터로 데려와 17세 때 프로무대에 데뷔시켰다.
하지만 그의 향수병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버즈비 감독이 내놓은 치유책은 경기를 마친 후 곧바로 벨파스트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어주는 것이었다.
그는 천재였지만 고독하고 여린 영혼이었다. 성인이 됐을 때 그는 여자와 술을 찾기 시작했다. 최고의 활약을 펼쳐 보였음에도 그가 술에 취해 경찰차로 호송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버즈비 감독은 그를 닦달하지 않았고 기다려줬다. 한번은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버즈비 감독이 "전반 20분동안 탐색전을 펼쳐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베스트는 감독의 지시를 어기고 전반 12분까지 2골을 뽑아냈다. 경기를 마친 후 버즈비 감독은 "베스트는 틀림없이 귀마개를 하고 있었을거야"라는 농담으로 이 상황을 넘겼다. 귀를 덮는 베스트의 헤어스타일을 빗댄 최고의 유머였다.
베스트는 항상 "팀전술은 나를 괴롭히는 것"이라고 말할 만큼 자유로운 플레이를 즐겼다. 스피드와 밸런스, 시야, 볼컨트롤, 기회를 만들어내며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골을 뽑아내는 창의성.
베스트는 보비 찰튼, 데니스 로 등과 함께 '버즈비의 아이들'로 불리며 1960년대 전성기를 누렸고, 1968년 레알 마드리드와 에우제비오의 벤피카를 깨고 첫 유럽챔피언에 등극시켰다.
1974년까지 맨유서 뛰는 동안 470경기서 179골을 뽑아낸 그는 여전히 맨유 최고의 선수로 꼽힌다. 맨체스터에 가서 '맨유의 최고의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을 해보라.
웨인 루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이름은 들을 수 없을 것이다. 맨유 팬들의 절반은 조지 베스트를 꼽을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에릭 칸토나를 회고할 것이다.
5번째 비틀즈 멤버로 불릴만큼 대중적인 스타이기도 했던 그는 버즈비 감독이 1971년 팀을 떠난 후 더욱 방탕한 생활에 빠져들었다.
훈련에 불참하기 일쑤였던 데다 알코올 중독에다 여성 편력에 빠지며 "베스트는 하루 중 두 시간만 축구선수일 뿐, 나머지 스물 두 시간은 플레이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1974년 맨유를 떠난 베스트는 수많은 팀을 돌아다녔다. 스톡포트 카운티, 코르크 셀틱, 풀럼, 포트 라우더데일 스트라이커스, 토버모어 유나이티드 등에다 미국의 LA 아즈텍스와 새너제이 얼스퀘이크스 등 미국팀까지 전전했다.
그를 데려가는 모든 감독들은 베스트의 남은 재능을 되살릴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베스트의 천재성은 더이상 어느 곳에서도 재현되지 않았다. 그의 천재성은 버즈비 감독의 품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조지 베스트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탄생하게 됐다. 그는 2005년 11월 25일 끝내 지병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악동이었으며 트러블 메이커였지만 그의 축구재능만큼은 영국을 넘어 전 세계 축구팬들의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의 고향 벨파스트의 공항은 '조지 베스트 공항'으로 명명됐으며 북아일랜드 5파운드 지폐에는 그의 얼굴과 플레이장면이 새겨 있다.
▲악동들, 꼭 쥐면 죽어버리고, 풀어주면 날아가 버리는
미국 프로야구 LA 다저스의 명장 토미 라소다 감독은 "감독이란 손에 비둘기를 쥐고 있는 사람과 같다. 너무 강하게 잡으면 죽어버리고, 가볍게 잡으면 날아가 버린다"고 설명했다.
1986년 미국에서 발간된 '야구의 불문율'에는 "감독이 승부에 지나치게 간섭하면 패착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쓰여있다. 말은 쉽지만 이를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특히 '걸어다니는 폭탄'인 악동들을 다룬다는 것은 더더욱이 그렇다. 그동안의 악동들을 다룬 지도자들을 살펴보면 성공보다는 실패 사례가 더욱 많다.
독일 축구에서 더이상 배출할 수 없다고 말할 만큼 창조적이었던 슈테판 에펜베르크(39)의 별명은 '미친 호랑이'일만큼 독특한 악동이었다. 만일 그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다리가 부러질 각오를 해야 한다.
1994년 6월 17일 댈러스 코튼보울 스타디움서 벌어진 한국과의 조별예선 3차전. 독일은 전반 3골을 앞서 나갔지만 후반들어 한국의 무서운 기세에 고전했다.
천하의 독일은 전원 수비라는 극약처방을 내리며 소극적으로 경기를 해야했다. 미국 관중들은 한국을 응원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독일 팬들은 자국 선수들에게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에펜베르크는 자국 팬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들었다.
독일의 베르티 포그츠 감독은 그를 교체아웃시켰고, 귀국조치시켰다. 독일에서 가장 창조적인 미드필더로 꼽히던 그는 이후 독일대표팀 소집에 불응했다.
그를 다스릴 수 있었던 감독은 바이에른 뮌헨의 오트마 히츠펠트 감독 뿐이었다. 에펜베르크는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만약 내게 권한이 있다면 클린스만을 즉시 경질하고 히츠펠트 감독을 선임할 것이다"고 밝힌 바 있다.
'가자(Gazza)' 폴 개스코인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지난해 독일월드컵 스위스전서 패한 후 뜨거운 눈물을 필드에 쏟아낸 이천수의 모습을 보며 몇몇 축구팬들은 90이탈리월드컵 당시 개스코인의 눈물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탈리아월드컵서 보비 롭슨경에 의해 발탁됐지만 서독과의 준결승전서 승부차기 끝에 패한 후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그 역시 술문제와 이혼 등 복잡한 사생활에다 과격한 플레이를 일삼으며 팬들의 원성을 샀다.
특히 찬사와 오명을 함께 겪는 것으로 유명했는 데 웸블리 사상 최고의 프리킥을 터트렸다는 찬사를 받은 며칠 후 상대 선수의 생명을 위협하는 최악의 파울을 저질렀다.
그리고 유로 96 최고의 골로 꼽히는 스코틀랜드전 골을 뽑아냈지만 부인을 구타했다는 것이 공개 되며 지탄을 받았다.
테리 베너블스 감독이 지휘하던 1980년대 말 토트넘에서 개리 리네케와 함께 성공가도를 달렸고 23살의 나이에 보비 롭슨경의 부름을 받아 이탈리아 월드컵을 뛰었던 그였지만 1991년 FA컵 결승전 부상 이후 이탈리아 라치오에서 망신을 당하고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레인저스로 복귀했다.
당시 감독이었던 월터 스미스에 의해 그는 다시 부활기미를 보였고 유로 96에서 테리 베너블스 감독의 부름을 받고 출전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98프랑스월드컵을 앞두고 토트넘 시절 팀동료이기도 했던 글렌 호들 잉글랜드 감독은 끝내 그를 최종엔트리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1990년대 잉글랜드 선수 중 유일하게 2∼3명의 선수를 돌파할 수 있던 개스코인. 피구와 지단, 히바우두와는 다른 그만의 개인기는 더이상 볼 수 없었다.
▲빅샘과 바튼, 성공을 기대하며
이런 면에서 알렉스 퍼거슨 경은 대단한 인물이다. 악동들은 그의 품에서 항상 성공의 길을 걸었다. 때로는 말썽이 벌어진다고 해도 축구 선수로서의 명성만큼은 이어갈 수 있었다.
칸토나와 로이 킨이 그러했고 현재는 웨인 루니라는 악동이 퍼거슨의 품에 안겨있다. 개스코인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와자(Wazza)'로 불리는 루니 역시 사고뭉치다.
자신에게 조언하는 대표팀 주장 데이비드 베컴에게 "꺼져(F**k Off)”라고 외치는 것은 물론이고, 술과 여자로 인한 사고가 끊임없다. 그럼에도 그는 맨유에서 펄펄 날고 있다.
한국의 '앙팡테리블' 고종수는 17세 이하 대표팀 시절부터 감독들로부터 '건방지다'는 평가를 받으며 쫓겨 나기 일쑤였지만 유일하게 수원 삼성 시절 김호라는 명장을 만나 꽃을 피웠다. 백의종군한 그는 대전 유니폼을 입고 복귀를 준비하고 있지만 고질적인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다시 '빅샘'과 바튼 얘기로 돌아와보자. 빅샘은 바튼의 성질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볼턴 원터러스 감독 시절이었던 지난해 8월 그는 프랑스 출신의 '문제아'로 아스널 리버풀 맨체스터시티를 떠돌던 니콜라스 아넬카를 터키 페네르바체에서 영입했었다. 당시 그가 밝힌 아넬카의 영입 소감을 듣는다면 왜 바튼을 영입했는 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넬카의 성격 때문에 때로 문제가 발생하고는 하지만 그런 면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다. 선수의 좋은 점을 이끌어내야 한다. 아넬카가 왜 기이한 행동을 하는 지를 이해해야 한다. 좋은 감독이라면 선수의 행동이 문제가 되기 전에 그 선수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상을 예방하듯 아넬카의 기행을 예방하고 싶다. 그런 일이 발생하기를 원치는 않지만 아넬카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한 번쯤은 볼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로이 킨 은퇴 이후 중원에게 거친 전투를 즐기는 중앙 미드필더들이 그립다. 바튼이라면 충분이 킨의 자질을 이어받을만하다.
빅샘은 바튼의 성질을 죽이고 최고의 기량을 뽑아낼 수 있을까? 바튼이 절정으로 올라온다면 뉴캐슬은 옛 명성을 되찾고 빅4의 새로운 구도를 짜낼 수 있을 지 빅샘에게 건투를 빈다.
해외정보방이나 토크방에 올릴까 하다가.....김호감독과 고종수 이야기를 하고 싶기에 K리그 정보방에 올립니다.
첫댓글 좋은글이네요~^^
오 최원창 기자에게 이런필력이....
글 잘썼내요...
조지베스트증후군과 비교하면서 설명하다니 글 잘 쓰시는데요 ㅎㅎ
오 글좋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이 욱욱욱
좋은글이긴한데 중복같네요 ^^;; 뭐 한참지났으니 상관은 없겠지만
좋은 글입니다. 추천~!
글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