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새봄을 맞기 위한 새 문명의 씨앗
(1) 한대문명권이 휩쓸고 간 후 남아질 수 있는 것
고대 문명권은 봄절기에 시작됐으나 인간들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동했습니다. 그다음에 자리잡은 곳이 열대 문명권이었습니다. 이들이 농경시대를 맞이하면서 애급 문명권을 이루었습니다. 유프라테스강 연변에서 고대 문명은 발원했습니다.
그러한 열대 문명권이 망하면서 온대 문명권으로 다시금 이동되었습니다. 오늘날 영국이나 독일, 미국은 이 온대 문명권에 해당됩니다. 모두 적도를 중심 삼고 23도권 밖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가을절기 문명권으로 접어든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때 모든 것을 결실해야 됩니다. 예술, 문화, 문학 등 모든 면이 결실을 보아야 합니다. 철학도 결실을 해야 하는 때입니다. 민주 세계는 물론 모든 것이 종말을 맞게 됐습니다.
이제 온대 문명권 시대가 지나고 한대 문명권이 세계를 움직이는 한때가 올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소련을 중심 삼은 세계 공산주의가 민주 세계를 위협하는 시대가 되면서 모든 것들이 떨어져 버리게 될 것입니다. 또, 생명력을 잃어버린 마른 나무는 다 부러지고 살아 있는 나무만이 자기를 지탱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타락한 인류 세계에 있어서 한대 문명권이 휩쓸고 간 후 두 가지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 하나는 생명을 지니고 있는 물건이 남아질 것이고, 또 하나는 생명의 씨를 가진 것만이 남아질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생명력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의 뿌리는 하나님입니다. 그다음에 줄기를 이루고 가지를 이룹니다. 이렇게 뿌리를 가진 나무와 같이 하나님에게 속한 생명을 지닌 사람만이 남아질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아무리 바람이 불더라도 넘어지지 않고 결국은 겨울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겨울을 이길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닌 물건만이 남아진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땅에 떨어진 씨가 단단한 것이라면 오히려 겨울이 되면 얼어서 터지게 되고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봄에 새싹이 그 틈사이로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생명력을 지닌 씨는 다시 봄을 맞이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결국 살아 있는 나무의 가지가 되든가 살아 있는 나무에서 떨어진 살아 있는 씨가 되면 새로운 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씨는 뿌리를 갖고 있고 줄기와 가지와 잎도 갖고 있습니다. 씨는 전체를 축소시키고 전체의 생명을 집약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 문명의 역사를 보게 될 때 틀림없이 한대권 문명이 온대권을 휩쓸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구라파는 물론 아프리카에까지 공산권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미국도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이대로 전부가 위협을 받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면 큰일이지만 그러나 반드시 새로운 봄은 찾아올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것을 알기 때문에 새로운 봄맞이를 위해 주님을 보낼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상적 시대가 올 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 시대를 맞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는 중심 존재를 보낼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86-318)
(2) 기독교가 새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여러분이 살아 있는 나무의 가지가 되든가 씨가 되든가 하는 것은 현실적인 당면 문제입니다. 그러한 사명을 유대교가 감당해 나왔지마는 2천년 전에 예수를 십자가에 달게 함으로써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고, 다시금 기독교를 통해서 이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했지만 오늘 기독교가 어떠한 입장에 서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앙상한 가지가 있다면 그 가지가 살아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다 죽어 있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기독교가 살아 있다고 생각합니까? 수많은 종교들이 살아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무는 그 둥치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뿌리가 죽어 있으면 그 나무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한 나무에 둥치는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진짜로 살아 있는 둥치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겨울의 위협이 온다 할지라도 그것을 다 물리치고 당당히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기독교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둥치가 죽어 있을 때 그 나무는 베어 버리듯이, 기독교가 사명을 다하지 못할 때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민주 세계의 정신적인 뿌리였습니다. 소련은 희랍 종교권 내에 있습니다. 가톨릭을 중심 삼은 구라파가 지금 상록수같이 되어 있습니까? 미국이 오늘날 상록수같이 되어 있습니까? 바람을 맞아서 가지가 부러질 뿐만아니라 나무 전체가 죽어 넘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뿌리에 영양소를 넣어 가지고 뿌리가 죽지 않고 반드시 싹이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공산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뿌리와 연결된 새로운 싹 하나가 나오지 않고서는 희망이 없습니다. 절망이라는 것입니다. 그 싹이 제대로 성장하지 않는다면 뿌리까지 죽어 버립니다.
그러면 이 한대 문명권이 휩쓰는 절망의 시기에 새로운 봄을 맞을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이겠습니까? 새로운 싹이 돋아날 수 있어야 합니다. 겨울에도 자라나서 새 봄을 맞을 수 있어야 합니다. 상록수가 되어야 합니다. 공산주의의 위협에도 이겨낼 수 있는 그 무엇이 필요합니다. (86-320)
(3) 인류문명의 순환과 새로운 문명의 씨앗
인류의 문화는 회전하고 있습니다. 고대 문화는 열대 문화입니다. 인도 문명도 애급 문명도 그리스 문명도 다 열대거나 아열대 지역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현대 문명은 온대 문명권에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 서독, 일본, 영국 등의 나라는 모두 온대 지역 속에 있어서 세계적인 큰 세력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필연적으로 한대 지역으로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산주의의 소련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한대 문명은 전세계에 휘몰아쳐서 폭풍설을 초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에 나타난 역사를 보면 원래 인류 문명은 봄 절기와 같은 에덴의 온대 문명으로 시작되어 여름 절기 같은 열대 문명으로 이어졌습니다. 근원 에덴동산은 열대지역에 있었습니다.
이것이 가을 절기에 해당하는 양대 문명으로 이행되고, 나아가 현존 공산 제국이 존재하는 겨울 절기의 문명인 한대 문명으로 옮아간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곳은 서늘한 가을의 계절입니다. 공산주의가 이 가을의 문명권으로 불어 닥치어, 겨울이 이르렀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모든 잎이 물들어 떨어져 갑니다. 그와 동시에 가을은 수확의 계절입니다. 수확이란 새로운 세대를 약속하는 씨앗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잎이 떨어지고 열매가 떨어져서 나무는 앙상하게 되지만, 그 열매 속에 씨앗이 생명을 가지고 존재합니다. 겨울이 지나면 이윽고 봄에 해당하는 새로운 문명이 이 씨앗으로 뿌려져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 새로운 인류의 씨앗이 되는 것일까요?
나는 여러분에게 인류 문명의 흐름이 정확하게 복귀의 노정에 꼭 들어 맞는다는 것을 알려 드리려고 생각합니다. 복귀에는 어떤 기본적인 골격, 조리가 있는 것입니다. 중심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씨앗인 것입니다.
씨앗은 외피(外皮) 속에 숨겨진 요소인데, 어떠한 기후에도 썩지 않는, 어떠한 것보다도 더 굳은 것입니다. 새로운 날이 오기까지 잠자코 견디어 자기를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씨앗은 어떤 의미에서 작고 보잘것 없는 존재이지만, 내부에는 강력한 생명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 엄습하여 오더라도 씨앗만이 봄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심한 겨울이 씨앗을 단련시키는 유일한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원칙이지, 내가 지어낸 특별한 이론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이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이 새로운 생명의 길, 신앙의 길은 공산주의에 의해서 침범될 만한 약한 것은 아닙니다.
공산주의도 서양문화도 그 밖의 어떠한 사상, 종교 이데올로기도 이 삶의 방법에 대하여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씨앗은 사계절의 어떠한 온도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지 않고 몇십 년 몇백 년이고 생명을 계속하여 보존하는 것입니다. 그 씨앗이 바로 통일교회입니다.
여러분은 자신들이 어떠한 혹한 속에서도 살아 남고, 봄을 맞이할 수 있는 씨앗이 되어 있다고 실감하고 계십니까? 이와 같은 개념을 이제 비로소 알아내어 의식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가운데 지혜있는 사람이라면 생명의 위대함과 섭리를 깨달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으리라 믿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틀림없이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절대적 확신을 가졌다고 하면, 이것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좋은 의미에서 중대한 문제이며, 여러분에게는 거대한 힘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95-33)
(4) 겨울 절기를 누가 녹일 것인가
하나님이 봄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봄을 맞아 가지고 사랑을 해보셨느냐고 물어 볼 때 하나님은 그것은 나는 모르겠다고 하실 것입니다. 봄을 만드셨지만 사랑을 중심한 봄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은 불행하신 분입니다. 그것을 실현하는 길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일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에게 '함께 봄놀이 갑시다'고 할 때 하나님은 못 간다고 하실 것입니다. 가실 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가실 수 없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내용을 해결짓기까지는 가실 수 없으십니다.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봄날을 맞이하셨을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겨울날을 맞이하셨습니다. 얼어버린 하나님의 마음을 무엇으로 녹여 드릴 것이냐, 또 그 겨울을 무엇으로 녹일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언 것을 녹이기 위해서는 뜨거운 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얼어붙기 전보다 더 뜨거운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속에 얼어붙어 있는 그 겨울을 누가 녹여 드리겠습니까?
인류는 물론 하나님으로부터 인연지어져서 생겨난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겨울 절기가 끝나고 하나님의 봄 절기가 시작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겨울 절기를 누가 녹일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도 원하고 인류도 그것을 원하는데, 무엇을 가지고 그 겨울 절기를 녹일 것이냐는 것입니다. 과학과 지혜, 그리고 지식, 힘, 능력, 권력을 가지고 녹일 수 있습니까? 무엇을 가지고 녹이겠습니까? 절대적 사랑, 변하지 않는 사랑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유일한 사랑이어야 가능합니다.
그다음에는 누가 녹여 드릴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녹일 수 있습니까? 자동적으로 하나님이 그렇게 되신 것이 아닙니다. 인류가 타락했기 때문에 피동적으로 그렇게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류 가운데서 그러한 하나님을 움직이고 하나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운동을 일으키는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운동을 제시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직행적인 사랑의 도리를 찾아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종교가 그런 분야의 일단을 책임져 나오고 있습니다. 사랑을 중심 삼고는 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종교간에 교파간에 싸움을 하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서는 하나님속에 얼어붙은 그 겨울 절기의 마음을 풀어 드릴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가슴 속에 얼어붙은 그 모든 얼음덩이를 녹이려면 어떻게 하여야 되겠습니까? 동서남북만이 아니라 360도 전체에서 입체적으로 녹이려고 해야 합니다.
미국 사람들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해도 녹일 수 없습니다. 오색인종이 다 와야 합니다. 과거, 현재를 초월하여 영계에 간 사람까지 하나님의 심정을 노래해야 되고, 앞으로 올 사람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해서 모든 초점이 하나님의 가슴속에 맺혀져야 합니다.
그러한 운동을 할 수 있는 종교가 아니면 하나님이 그 얼어붙은 가슴을 녹이는 것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모든 종교단체가 하나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얼었던 하나님의 가슴이 녹을 것입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말만 들어도 밥을 먹지 않아도 좋다는 것입니다. 욕을 먹어도 좋고 고생을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끼리 죽자 살자 하던 처지였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가라 할 때는 모든 것을 그만두고 하나님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세상적인 사랑의 관계를 모두 청산하고 여러분은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1978.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