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의 저자인 마태는 의도적으로 예수님과 사도 요한의 사역 관련성을 강조합니다. 2절을 보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가까이 왔다”라는 말은 헬라어 “엔기조”로서 완료형입니다. 직역하면 “이미 와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4:17절을 보면 예수님 역시 세례 요한처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선포합니다.
7절을 보면 세례 요한은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를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12:34절을 보면 예수님 역시 바리새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물로 세례 주는 자로, 예수님은 물로 세례받고, 성령과 불로 세례 베푸는 자로, 즉, “세례”라는 주제로 두 분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세례”는 “회개”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회개”는 “정화한다”, “깨끗게 한다”의 의미로서 “심판”의 주제와 연결되는데, 세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8절을 보면 요한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길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10절을 보면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라고 말씀합니다. “불에 던져진다”라는 말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회개”라는 주제가 “심판”과 연결됩니다.
12절을 보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리라”라고 말씀합니다. 농부는 타작마당에서 알곡을 곳간에 모으려고 키질해서 쭉정이를 따로 모아 불에 태웁니다. 나무를 태울 불은 종말의 심판을 뜻하는 그림입니다(마태복음 13:30, 40~42, 50, 25:41). 최후 심판은 깨끗게 하는 것입니다. “깨끗하게”라는 말은 “완전히 깨끗하다”, “정화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깨끗하게 하는 일은 악인을 의인에게서 분리해 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심판”입니다.
심판이 쭉정이의 입장에서는 분류됨으로 꺼지지 않는 불(게헨나)에 가는 것이지만, 알곡의 입장에서는 분류됨으로 “남은 자”가 됩니다. 즉 궁극적인 “씨”,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알곡 입장에서는 심판이 와야 합니다. 알곡 입장에서는 심판이 와야 옳다는 것을 인정받습니다.
요단강에 모인 사람은 심판받으러 온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두 번 강을 건넜습니다. 먼저 홍해를 건넙니다. 그들은 홍해를 건널 때에 심판받아서 과거의 수치, 죄를 다 씻습니다. 두 번째는 요단강을 건넙니다. 새 시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심판을 통한 해방과 회복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요단강에 들어가야 합니다.
11절을 보면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은 새 시대의 도래, 시작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3:13~17절을 보면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립니다. 16절을 보면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둘기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단지 평화일까요? 창세기 노아의 홍수 사건을 보면 노아가 홍수 이후에 뭍이 드러남을 확인하기 위해서 비둘기를 방주 밖으로 내보냅니다. 첫 번째 비둘기를 내보냈을 때는 그냥 돌아옵니다. 두 번째 비둘기를 내보냈을 때는 올리브 잎을 물고 옵니다. 세 번째 내 보냈을 때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때 서야 홍수로 인한 물이 빠지었음을 확인하고 노아와 그의 일행이 방주 밖으로 나왔습니다.
노아 홍수 사건에서 비둘기는 옛 세상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됨을 알립니다. 새로운 세상이 시작됨을 알리는 증표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받을 때 그에게 성령이 비둘기와 같이 임하였다는 것은, 예수님과 더불어 옛 세계는 끝나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성령의 이미지가 불입니다. 불 역시 새 시대의 도래, 새 시대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불같이 임함을 통하여 본격적으로 교회가 시작하는, 복음이 사도행전 1:8절의 말씀처럼 확장이 일어나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또한 “불”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불”은 심판과 자주 연결됩니다(이사야 31:9, 에스겔 22:18~22, 스가랴 13:9, 아모스 7:4, 말라기 3:2). 마태복음에서 성령과 함께 나오는 불은 태워버리는 심판을 뜻합니다(마태복음 7:19, 13:40, 42, 50, 18:9).
“성령”이 새 시대의 도래, 새 시대의 시작인데, 이것이 “불”, 즉 “심판”으로 엽니다. 노아의 방주 사건을 보면 “물”이라는 심판으로 새로운 시작을 엽니다.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 열 재앙(심판)을 하심으로 출애굽이라는 새 시작을 엽니다. 제2의 출애굽인 바벨론의 포로 귀환 역시, 그들의 죄에 대한 심판으로부터 새 시작을 엽니다. 구원이 심판을 통해서, 심판을 뚫고 나옵니다. 즉, “심판에서 구원으로”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심판자로 오셨습니다. 하지만 심판자가 사람에게 심판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해 심판받으셨습니다. 심판자로 오신 그분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철저하게 심판받으심으로 새로운 시작, 새 시대를 도래하게 하였습니다.
세례의 다른 의미가 심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첫 번째로 홍해를 건넜듯이 과거의 수치, 죄 다 씻어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두 번째로 요단강을 건넜듯이 이제는 심판을 통하여 새 시대 새로운 백성을 이루어야 합니다. 세례가 과거의 죄를 심판하고 새로운 생애를 살게 하는 상징이라면, 오늘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으로 온전히 살아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삶을 통하여 다른 사람을 주께 인도하는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