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랐다. 가을 추수가 끝나가는 무렵에 들판에 나가 벼 이삭을 주으러 다녔다. 어머니는 샘에서 갓 시집온 며느리처럼 매일 조심스럽게 쌀을 씻으셨다. 쌀이 귀하고 쌀 한 톨이라도 아끼려는 모습이 선하다.
나는 결혼 후 분가하였지만 쌀을 부모님한테 받아 오고 있다. 쌀을 받아오는 날은 거머리가 다리에 붙여서 내 피를 빨아먹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개운치가 않다.
“우리가 죽기 전에는 쌀은 무상으로 당연히 주는 것이니 돈을 줄 생각은 하지 말라!”
라고 아버지는 나에게 여러 번 말했다.
농협마트나 쌀을 사보지 않아 20kg 쌀 가격이 얼마 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지난 1.29일 MBC라디오 방송국 강석, 김혜영 진행하는 ‘싱글벙글 쇼’에 ‘이제는 말할까 보다’코너에 수필 1편을 보내 채택되어 방송된 적이 있다.
라디오 방송 후 서울 사는 고등학교 친구, 예산군청 계장, 친척들이 방송을 들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기분이 좋았다.
경품도 옥 매트와 쌀 한가마니 선물 받는 행운을 누렸다. 비싼 옥 매트는 방송이 된지 5일 만에 집으로 배달되어 부모님에게 갔다 드렸지만, 극구 사양하여 안방에 놓고 사용한다. 한 번도 옥 매트 전기코드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옥 매트에 누워있으면 등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쌀80kg(20kg 4포대)은 방송 후 두 달이 다되어 막내가 군에 입영하기 전날 집으로 배달되었다. 아들 녀석 군대 보내기 전에 뜻있는 일을 하고자 삽교읍사무소에 쌀을 모두 기증했다. 내가 보내준 쌀을 어려운 사람이 먹는다고 생각하니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3. 31일 군에 입대한 아들 녀석이 입고 있었던 운동화와 옷이 집으로 배달되어 왔다.
“운동하는 것을 저는 좋아하니 걱정 하지 마세요. 아빠! 사랑합니다.”라는 짧은 편지를 보내왔다.
갑자기 아들 편지를 받고는 내가 군대 생활 중 아버지가 보내온 ‘군사우편’이 생각나 편지를 꺼내보았다.
작은아들 창배에게
… … ‘군사우편’이란 편지를 접하고는 반가워 모처럼 이렇게 펜을 들었단다.
네가 보내준 편지를 읽고 나서 아버지로서 너의 솔직한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되어 기분이 매우 좋았단다.
매일 하는 잔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외출도 줄여라! 술도 많이 먹지 마라! 비누와 치약도 아껴 써라! 전화도 용건만 사용하고 짧게 써라! 등 무수한 잔소리를 너희들에게 하게 된단다.
… … 우리 식구가 매월 10만원씩 절약하면 8식구이니까 80만원이 모여져 1명의 대학교 등록금을 낼 수 있는 큰 금액이 생기게 된단다.
이런 일들이 쉽게 생각하고 실천하면 쉬운 일이고, 실천을 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겠지.
식구들에게 듣기도 싫고 짜증스러운 말을 수없이 한단다. 모두 너희들을 위해서 하는 말이란다.
… … 우리가족 8명이 3년을 고생하며 정부양곡을 먹고 너를 가르쳤는데 설마 1년을 못 버티겠느냐! 아버지는 다 계획이 서 있으니 네가 군대를 제대(除隊)하여도 4학년 복학은 가능 하단다. 그렇다고 저축(貯蓄)이나 숨겨둔 돈은 전혀 없다. 나는 금융기관이나 동내에서 아직 신용은 있단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너희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나의 기준으로 생활했으면 한다.
… … 가식적이며 형식적인 걱정이 아니라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져라 걱정하는 자만이 하늘과 땅에서 감동을 준단다. 너의 앞일을 크게 걱정하고 고민을 한다면 네게는 큰 길이 열린 것이다.
현재 너는 군복무 중이고 나라의 몸이니 사고 없이 무사히 남은 기간 동안 병영생활에 충실하기 바라며, 상사에게는 항시 존경심과 부하직원들에게 선을 베풀어라!
… … 한울과 같이 걱정하고 땅과 같이 너희들을 위해서 합기덕(合其德)하고자 한다.
이만 줄인다.
1984. 3.
아빠가
첫댓글 사랑하는 아빠,,, 역시 부럽습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무지개>시가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