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6일 “오늘의 말씀 묵상 편지”
‘순금으로 거룩한 관의 패를 만들고’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하나님의 말씀은 출 39 : 30 – 31입니다.
“그들이 순금으로 거룩한 관의 패를 만들고 도장을 새김같이 그 위에 [주께 거룩 함] 이라는 글을 쓰고31그 패를 청색 끈으로 묶어 관 위에 높이 달았으니 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
(Then they made the plate of the holy crown of pure gold, and wrote on it an inscription like the engraving of a signet: HOLINESS TO THE LORD. And they tied to it a blue cord, to fasten it above on the turban, as the LORD had commanded Moses.)”
임마누엘!!
본문의 ‘그들이’라고 함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로 이해하여도 좋고, 좁은 의미에서는 모세와 아론 그리고 성막 건축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모든 자들, 곧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포함한 모든 자들로 이해하여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이들이 순금(純金)으로 ‘거룩한’ 패를 만든 것은 매우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 ‘거룩한’은 히브리어 'qodesh(코데쉬)'. ‘구별(apartness)’, ‘거룩함’, ‘신성함(holiness, sacredness)’를 의미합니다.
코데쉬(qodesh)는 “거룩함(holiness)"의 의미개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즉 이것은 거룩한 영역에 속하는 사물, 따라서 범속한 것과는 구별되는 사물의 본질적 특성입니다. 이러한 구분이 레 10:10과 겔 22:26에서 명백히 드러납니다. 여기에서 코데쉬(qodesh)가 홀(chol: 불경스러운, 세속적인, “범속한(profane, common)”의 반대말입니다.
“거룩한(holy)”이라는 단어가 '두려운 신비'(mysterium tremendum)를 시사한다는 오토(R. Otto, 참고문헌을 보라)의 견해는 일리가 있습니다. 즉 그것은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단어는 신격과 거의 같은 동의어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의 거룩한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내실을 ‘거룩한 곳들 중의 거룩한 곳(the Holy of Holies)‘
이라 부릅니다. 곧 ’지성소‘라는 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그러나 성격적 관점은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그의 능력의 신비성과 관련시킬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선하고 전혀 악이 없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객체들은 제외적 불결성이 전혀 없는 객체들이며, 이러한 제의적 불결성은 도덕적 불결성을 의미합니다. 이 거룩한 객체들은 단순히 바쳐졌을 뿐만 아니라 선한 것에로 바쳐졌으며 악한 것과 분리되었다는 뜻입니다. 제사 의식으로 더럽히는 것으로부터 인간을 분리시킨다는 것은 진정 영적 도덕적 성결을 의미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는 말씀이 구약성경으로부터 신약에 인용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벧전 1:16; 레 19:1; 레 20:7 등등). 그리고 소위 성결법전이라는 것은 윤리적 색체가 강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며 하나님의 모습을 반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을 윤리적으로 거룩한 분으로 계시하면서, 하나님 자신을 닮은 거룩한 속성에로 인간을 부르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종교의 기본요소 중 하나는 신성의 영역과 범속의 영역간의 상호불가침적 구별을 유지시키는 것이었습니다(민 18:32). 고유적으로 거룩한 것, 또한 하나님의 법률이나 종교 의식에 의해 거룩하다고 명명된 대상은 범속한 것으로 취급하면 안되었습니다. 안식일은 거룩한 날입니다. 그리고 그 날과 관련된 금지사항들은, 그날의 독특한 성격을 유지시켜 주고 그 날이 범속한 날로 취급되지 못하도록 지켜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출 16:23-26; 사 58:13-14). 제사장들에게는 그 거룩한 신분을 더럽히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특별제한이 가해졌습니다(레 21:6 이하). 성교 그 자체는 구약성경에서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교는 레위기 율법상의 불결상태를 초래하는 한 요소였으며(레 15:18) 이로써 거룩한 것과의 접촉이 금지되었습니다(삼상 21:4). 이와 동일한 원리가 화목제물(레 19:5-8), 거룩한 기름(출 20:32-33), 그리고 거룩한 향(출 30:37)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것은 “거룩한” 영역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레 5:15-16에서 “성물”이라 불리는 레위기적 예배의 여러 요소들 즉 그 땅의 소산물(레 19:24), 사유재산(레 27:28), 군사행동으로써 획득한 전리품(수 6:19) 등이 이에 포함되었습니다. 오직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는 희생제물은 “거룩하다”고 명명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제사장직에 의해 묘사된 바로서 거룩한 영역에 절대적으로 바쳐진 것이기 때문입니다(레 19:18).
제사 의식 역시 거기에 참여한 자들에게 거룩함을 부여했습니다. 이 점은 구속의 개념에 있어서 본질적 요소였습니다. 왜냐하면 정의를 내리건대 거룩함이란 죄악적이고 속된 모든 것으로부터의 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이 거룩하기(qadosh) 때문에 인간을 거룩함에로 부르십니다(레 19:2; 참조: 벧전 1:15)‘.
그의 거룩한 속성 때문에 하나님은 필멸적 인생들의 연약하고 불완전한 요소들을 초월해 계시며 따라서 자기 백성의 구원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출 15:11-12). 거룩한 자들만이 하나님의 성산에 거할 수 있습니다(시 15:1 이하). 하나님은 본래 거룩하시며 도덕적 불완전으로부터 떠나 계시기 때문에 그의 약속에 그가 신실하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시 33:21). 자기 백성을 영화롭게 함으로써, 그리고 에덴의 저주에 비롯된 불완전성으로부터 피조물을 구속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함을 궁극적으로 나타내겠다는 약속이,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습니다(롬 8:18-23).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속한 것들은 다 ’거룩함‘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성도‘ 곧 거룩한 무리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핏값을 지불한 사실을 믿는 무리들을 ’성도(聖徒)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닮아가는 무리들을 두고 부르는 호칭입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이 우복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