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뮤즈의 음악이 울려 퍼진다
깜짝 놀라 마음을 진정하고 조심스레 전화를 받아 든다.
지역번호 051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뭐야
-그냥.
싱거운 새끼.
항상 이런 식이다. 그냥 이라고 해놓고는 주절주절 혼자서 잘 떠든다. 난 간간이 응응 그래 라며 맞장구를 쳐주지만 정신은 다른곳에 가 있다.
-일은 안하고 전화나 하고 앉아있냐.
-남이사.
-하려고 했던건 어떻게 됐어?
-몰라. 잘 안돼. 니가 좀 도와줘.
결국은 이거였다. 전화를 할때면 언제나 도움을 요청한다. 반대로 도움이 필요하지 않으면 전화는 절대 오지 않는다.
그래도 이녀석 친구라는 것이기에 할수 있는 데까지는 조언을 해 준다.
이녀석 귀엽다.
-너 귀여워.
-지랄한다. 빨리 다음 얘기나 해봐.
은근히 섞인 사투리 억양이 어울리지 않는것 같아 우습다.
-낄낄낄
-쳐 웃기만 하지 말고 미친놈아. 더 해줄얘기 없으면 끊는다.
뚝.
언제나 이런식이다. 얼굴도 모르고 어디 사는지도 정확히 알수 없다. 남잔지 여잔지도 모르고 게다가 이름도 모른다.
그게 뭐 어때서? 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역시 뭔가 부족하다.
지역번호 051이면 어디더라? 지금까지 찾아보지 않았던 이유는 없다. 그냥- 귀찮았기 때문일까. 051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로 전화온적이 한번도 없었을 뿐더러 그다지 알고싶지도 않았었다.
-아. 여기. 부산.
저 멀리멀리 부산. KTX타고 가면 얼마나 걸리려나. 시차는 얼마나 날까? 엉뚱한 생각을 한다.
찾아가면 화내려나. 아니 찾아가도 연락이 닿을수 있을까? 그녀석이 거는 전화번호는 매번 바뀐다. 하지만 지역번호 051만큼은 바뀌지 않고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부산 안에서 뻔질나게 돌아다니는 놈인가보다.
마침, 내일 시간도 비고 하니 내려가 봐야겠다.
그놈을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 한번도 가본적 없는 부산이란곳이 흥미있을 뿐 꼭 그녀석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2
아침 댓바람부터 분주하게 준비했다. 이래뵈도 여자니까 나는. 군것질거리를 싸가고 약간의 돈과 휴대폰. 그리고 노트북.
3
부산은 바다내음이 난다. 생선 비린내같기도 하지만 상쾌하다. 바다랑 가까운 도시가 이래서 좋은걸까 하고 생각한다. 내가사는 김포는 한강이 보일뿐 바다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바다로 내려가 모래밭에 앉았다. 발 끝을 적시는 바닷물은 푸르다. 푸르다 못해 시릴만큼.
내 얼굴을 부비적 거렸다. 내 볼은 꽤 부드러워서 만지면 기분이 좋다. 요샌 이마에 여드름도 사라지고 있어서, 더할나위 없이 상태 좋은 얼굴이다.
게다가 하얗기까지.
-아. 추워.
아직은 좀 싸늘하다. 바닷바람 떄문일까. 생각하지 못하고 옷을 얇게 입고 와버렸다. 뭐 어때 조금있으면 가버릴 텐데.
바다는 항상 움직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쉴새없이 파도를 만들고 파도에 휩쓸린다. 힘들지 않을까? 허무맹랑한 생각이다. 만약 바다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썩은내가 진동하겠지. 아니 이미 썩은내는 진동하고 있어. 다만 느끼지 못할 뿐이다.
휴대폰 벨소리가 울린다. 이번에도 그녀석인가?
-여보세요
-…바다냐?
-응
그는 아무말이 없다. 부산이라고 얘기해 버릴까.
-왜. 뭐 또 도와줄거 있어?
침묵. 끊긴건가? 하고 액정을 들여다 보지만 여전히 시간은 흐른다. 이녀석 이상하게 말이 없다.
이러지 않았었는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말들을 이어놓던 녀석이었다. 끝은 결국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지만.
-왜그래
-부산이냐?
휴대폰에서도 들린 소리는 등 뒤에서도 들렸다. 뭐야 하고 뒤로 돌았다. 남자네. 키는 나보다 크고. 덩치 크구나. 깍두기같다. 쓰잘데기 없는 생각들이 스친다.
-왜?
휴대폰을 닫고 나는 말했다. 그의 손에는 투박한 무선 전화기가 쥐어져 있었다. 혹시 항상 여기 나와서 전화를 한걸까 하고 생각한다.
-왜왔냐.
-남이사.
-여자였구나.
-남자였구나.
싱긋 웃었다. 녀석도 싱긋 웃었다. 유쾌하게 그를 껴안았다. 등을 두어 번 툭툭 치고 반갑네 하고 말했다.
4
"다 쓴거냐."
"남았어 조금. 기다려. 성급한 새끼."
"배고프단 말야."
찬밥에 미트볼을 데워서 비벼먹었다. 케찹에 비벼먹는 밥 만큼 그럭저럭 맛있다.
"오늘 어디 나가?"
"응. 학원 선생님 만나러."
"귀찮게."
"귀찮긴.
그나저나 넌 언제 갈거냐."
내 눈을 보고 씨익 웃는다. 뭐하자는거야. 여자혼자 사는집에 뛰어들어와 놓고는 뻔뻔스럽게 식량이나 축내는 밥벌레 주제에.
"밥벌레자식. 빨리 꺼져버려."
그래도. 누군가 함께 있는 집 안은 따스하다.
첫댓글 지역번호051. 부산. 어린시절 희미한 추억이(부부싸움하시면.. 내손을꼬옥잡고부산행기차에올라탔던엄마)... 우리 엄마의 학창시절 그리고 로맨스... 아~~ 지명만으로도.. 설레어라~~ ^^;;
음... 커서는.. 아주 한 때.. 부산분들하고 무~척 마니 싸웠는데.. 부탁하고, 거절당하고, 쪼르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