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小白山) 비로봉, 풍문으로 들었소.
(충북 단양군 가곡면과 경북 영주시 순흥면 사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월에 / 모든 꽃봉오리 벌어질 때
나의 마음속에서도 / 사랑의 꽃이 피었어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월에 / 모든 새들 노래할 때
나의 불타는 마음을 /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했어라
(하인리히 하이네의 詩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월에”전문)

소만(小滿)이 지나면서 날씨는 초여름으로 접어들었다.
한낮의 더위가 무더울 정도로 햇살은 따갑고 땀이 흐르면서 한 여름을
실감케 하는 날도 있었다.
지금은 농사철이지만 계속되는 가뭄으로 농민들의 마음을 애타게도 한다.
비가 내려야 할 텐데, 비 소식은 없다.
아파트단지 하얀 울타리에는 넝쿨장미가 빨갛게 피어서
산책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오래 동안 멈추게도 한다.
5월도 한주일이 채 남지 않았으니 6월이 벌써 기다리고 있겠구나.

금광산악회서는 오늘 충북 단양에 있는 소백산을 산행하기로 했다.
소백산(小白山)은
충북 단양군 가곡면과 경북 영주시 순흥면 사이에 있는 높이 1,439m의 산으로
최고봉은 비로봉(1,439m)이다.
태백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소백산맥 중의 산으로는 비로봉(1,439m),
국망봉(1,421m), 제2연화峰(1,357m), 도솔봉(1,314m), 신선봉(1,389m),
형제봉(1,177m), 묘적峰(1,148m) 등 많은 봉우리들이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북서쪽은 경사가 완만하며 국망川이 흐르고,
동남쪽은 경사가 심하고 낙동강 상류로 들어가는 죽계川이 시작되는 곳이다.

소백산을 산행한다는 것은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지금까지 남부지방 山만 산행하다가 모처럼만에 위도를 높여 충북 단양까지
북상을 한 것이다.
단양은 산행地 거리가 멀어서 산행버스 시간을 한 시간 앞당겨
광주역광장에서 07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버스를 두 번 갈아 타야하는 하는 나는,
당연히 산행버스 출발시간에 맞추기 위해 택시를 타고 갔는데 택시요금이
8천원이 나왔다.

소백산은,
삼국시대에는 신라, 백제, 고구려 3국의 경계에 있어서 문화유적이 많다.
죽계川 쪽으로는 석륜鑛山(石崙)과 고찰 초암寺가 있고,
이곳의 북동쪽으로는 석천폭포와 성혈寺가 있다.
남서쪽으로는 국망峰에 이어 제2연화峰이 있는데,
이 봉우리 동남쪽 기슭에는 643년(선덕여왕: 12년)에 창건한 희방사(喜方寺)와
내륙지방에서 가장 큰 폭포인 희방폭포(높이: 28m)가 있다고 한다.

식물은 한반도 온대중부의 대표적인 식생(植生)을 갖는 지역으로서
낙엽활엽수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철쭉 등 관다발식물 등 1,000여종,
동물은 멧돼지 등 1,700여 종이 분포하여 있다고 하며.
주봉인 비로봉은 수많은 야생화와 함께 희귀식물인 에델바이스(외솜다리)가
자생하고 이곳에서부터 국망峰일대에는,
천연기념물(제244호)인 주목(朱木)의 최대 군락지가 펼쳐져 있다고 한다.

작은 씨 하나 / 나는 뿌렸죠.
흙을 조금 / 씨가 자라게
조그만 구멍 / 토닥토닥
잘 자라라고 기도하면 / 그만이에요
햇빛을 조금 / 소나기 조금
세월이 조금 / 그러고 나면 꽃이 피지요
(M. 와츠의 詩 “오월의 마술” 전문)

새벽 05시에 일어났다,
이것저것 필요한 등산용품을 챙겨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는데 새벽하늘은
한낮처럼 밝고 훤했다.
나무들은 침묵으로 짧은 지난밤들의 이야기를 숨기려하는데,
철없는 새들이 이곳저곳으로 날아다니며 고요한 아침을 깨우고 있다.
상가는 문을 잠근 채 깊은 잠에 빠져있는데 부지런한 떡집만 떡을 만들고 있다
상쾌한 아침이었다.
산행버스는 아직 오지 않았는데 역 광장에서 점잖은 “희수”회원을 만났다.

새벽에 숲에서 꺽은 제비꽃 / 이른 아침 그대에게 보내 드리리
황혼 무렵 꺽은 장미꽃도 / 저녁에 그대에게 갖다드리리
그대는 아는가. / 낮에는 진실하고
밤에는 사랑해 달라는 / 그 예쁜 꽃들이 하고픈 말을
(하인리히 하이네의 詩 “꽃이 하고픈 말”전문)

산행버스는 지리산휴게소와 안동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단양 톨게이트를
빠져나갔다.
산행 출발기점인 다리안관광지에 도착하고 보니 오전 11시 30분이었다.
4시간 30분을 달려온 것이다.
오늘은 산행1 ,2팀이 함께 출발하기로 했다.
산행1팀은,
천동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 -천동쉼터 -비로峰삼거리 -비로봉 -제1 연화峰
-연화峰 -희방寺 -희방 폭포 -소백산국립공원사무소 -희방 주차장으로
하산하는데 하산시간을 오후 5시 30분으로 정했다.
산행2팀은,
자기능력에 맞게 자유산행 형식을 취하는데 정상인 비로봉에서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는 코스로 하산시간을 오후 4시 30분으로 정했다.

소백산은,
아름다운 골짜기와 완만한 산등성이, 울창한 숲 등이 뛰어난 경치를 이루어
등산객들이 많았는데,
주요 등산路로는 희방사역에서부터 희방폭포와 제2연화峰을 거쳐 오르는 길과
북쪽의 국망川, 남쪽의 죽계川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
죽령과 제2연화峰 산기슭에는
국내 최대의 우주관측소인 국립천문대(國立天文臺)가 자리 잡고 있다.
산 일대에는 수려하고 웅장한 산과 주변의 명승지가 많아 경북 영주시, 봉화군,
충북 단양군에 걸쳐 있는 산을 1987년 12월 소백산국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

체력이 약한 나는 산행2팀에 참여했다,
“송 국장”이 산행2팀 대장을 하고 남녀 9명의 회원들이 한 조가 되었다.
이정표 상에는 비로봉까지는 3시간 50분이 소요되는 거리였다.(하산시간 제외)
산은 시작부터 지겨우리만치 계속 오르막길이었다.
보속(步速)이 느린 나는 맨 마지막으로 처질 수밖에 없었다.
팔순의 “노형”회원이 얼마를 올라가다가 되돌아 내려가 버린다.
나는 혼자가 되어 열심히 앞서가는 회원들을 따라 갔다.
작년 이맘 때 한 대장절단 수술 후 체력회복이 더디게 되는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지났으니 조금만 가면 만나겠다는 생각으로 숨을 헐떡이며 갔다.
아닐까 넓은 바위 위에서 산행2팀 회원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도 합석하여 점심을 먹었다.

힘이 들게 천동쉼터까지 올라갔다.
여기서부터 비로봉 삼거리까지는 정리가 되지 않은 돌 자갈길이었다.
비로봉을 다녀 내려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능선삼거리까지는 길이 험하고
비로봉 정상은 춥고 매서운 바람 때문에 몸을 지탱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두창문”회원이 카페에 올려 논 비로봉 날씨 예보였다.
“기온은 영상 5도, 강한 바람이 불어 추우니 보온에 신경 쓸 것.”이라는
배려 깊은 문자였다.

내려 갈 시간을 계산해보니 더 이상 올라갈 수가 없었다.
한 여성회원이 내려오면서 자기는 다리에 쥐가 나서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회복해 비로봉을 포기하고 내려온다고 했다.
산행1팀인 “카라”회원도 다리에 쥐가 나서 산행2팀 코스로 하산한다고 했다.
발목부상으로 산행2팀으로 다니던 “로즈”회원은 산행1팀 코스로 하산했다고
한다.
오늘은 산행1, 2팀이 모두 하산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늦어졌다.
늦은 총무에게 전화를 해보니 절 입구에서 주차장까지 내려가는 유료택시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산을 오르며
(팡팡: 자작詩)
산이 높다하여 지레 겁먹지 말고 / 산이 낮다고 가볍게 보지마라
산은 / 찾아오는 사람의 눈높이만큼 만
자기 속내를 / 들어 내 보인다더라.
산의 높고 낮음도 / 모두
제 마음 먹기에 달린 것이니
우리가 오르는 것은 / 산이 아니라
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라
정상을 오르지 못했다고 / 산에 가지 않은 것은 아니니
오늘 오르지 못한 곳은 / 내일 다시 오르면 되는 것
높은 산을 올려다보고 / 먼 길로 걸어가라
산 들머리에 / 우리가 서 있는 것만 해도
그 산은 / 이미 오른 것이나 매 한가지 이어라

희방사(喜方寺)는,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수철里에 있는 신라시대 두운조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소백산 희방사 계곡에 있는 이 사찰은 643년(신라: 선덕여왕, 12년) 두운조사가
소백산 남쪽기슭 해발고도 850m에 창건한 사찰이다.
1568년(선조, 1년)에 새긴 “월인석보” 1, 2권의 판목을 보존하고 있었는데,
6·25전쟁으로 법당과 훈민정음 원판, 월인석보 판목 등이 소실되었다.
1953년에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경내에 희방사 동종(경북유형문화재; 제226호)과 월인석보 책판을 보존하고 있다.

월인석보는 수양대군이 세종의 명으로 석가세존의 일대기를 국문으로 엮은
“석보상절”과 세종이 석보상절을 보고 석가세존의 공덕을 찬송하여 노래로 지은
“월인천강지곡”을 합친 책이다.
불경(佛經)언해서로서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글자와 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1권 머리에 훈민정음 판 15장, 30면이 얹혀 있어서 국어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이용된다.
절 입구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연림이 우거져 있으며,
사찰 아래쪽 계곡에는 내륙지방 최대 폭포인 높이 28m의 희방폭포가 있다.
폭포가 떨어지는 계곡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고 숲이 우거져 있다.

유석寺(留石)는,
경북 영주시 풍기읍 창락里 소백산(小白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다.
694년(신라, 효소왕: 3년) 해동진언종(海東眞言宗)을 일으킨 혜통(惠通)이
창건하였다.
1368년(고려, 공민왕: 17년) 혜근(惠勤)이 중창하고,
1387년(우왕, 13년)에는 구곡(龜谷)이 중수하였다.
이후 조선후기까지의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1876년(조선, 고종: 13년) 불에 탄 것을 낙암(樂庵)과 계홍(戒洪)이 중건하였다.
1928년 주지 제봉(霽峰)이 중건하였고,
1976년부터 주지 임 철수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총무가 비로봉과 철쭉군락지, 고사목, 주목군락지를 설명해주면서 약을 올린다.
능선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아름다웠다 한다.
하산酒를 희방사주차장에서 먹었다.
찰밥에 돼지머리 고기였다.
산행으로 피곤한 회원들은 소주와 막걸리로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광주에 도착하니 밤 10시 30분이었다.
택시를 타고 가려는데 고맙게도 “정 사장”이 자기 승용차로 집에까지 태워다
주었다.

(2017년 5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