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슈비엥침의 진실(2편)
강제수용소에는 1942년 까지만 해도 주축이 되어 왔던 것은 폴란드 자체 정치 사상범, 일반죄수였다.
그 뒤 소련군 포로, 반사회적 행동 때문에 끌려온 집시 ,동성애자, 노동기피자이고 일부 첵코 우크라이나
등의 출신들이었다, 대전 중에는 악화되는 식사와 비좁아진 공간 불량한 위생 상태로 장티푸스 이질
등의 병으로 많이 희생되었는데 심지어 하도 배가 고파 동료를 죽여 인육을 먹는 일 까지 있었다고 하니
배고픔이야 말로 참을 수 없고, 정녕 피할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니 이를 어찌 하리요!
사진에 보이는 각각의 벽돌집 동동마다 관리가 용이하게 같은 국적의 억류자를 가두어두었는데 언제나
독일어 통역 자가 있었고, 그 또한 언젠가는 총살 형 내지, 가스실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고, 바닥은
세멘트, 돌바닥인데 이곳에서 많은 인원이 잠을 잤고 어린이, 노동이 어려운 허약자 노인 등은 일찌감치
처형이 되거나 가스실로 보내졌다고 한다 (어린이는 엄마와 함께 가스실로 가는 예도 있었는데--후편에)
건장한 남녀는 낮에 수용소 밖 군수용 무기, 생필 공장에 나가 고된 일을 담당했고 농업 혹은 독일군
장교들 가정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농업 종사자들은 탈출에 성공한 사례가 있었다. 그것은
방대한 땅에 경계 병력 부족으로 감시가 어려웠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강제 수용소 내에서 탈출하기에는
고압으로 이루어진 철조망에 닿기만 해도 질식하기에 불가능했고, 어떤 억류자는 하도 견디기 어려워
스스로 고압 철조망에 뛰어 들기도 하였고 스스로 미치는 사례가 있었다하니-----------------------
전쟁에는 많은 병력이 요구되어 이곳에는 쌍둥이들에 대한 생체실험을 포함한 각종 끔찍한 행위들
때문에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조셉 맹겔레(1911.3.16-1979. 2.7)라는 의사가 있었는데
그의 의료팀은 가스실로 보내지는 사람들 중 무려 40만 명을 선발, 자신의 생체 실험에 동원했다고
한다. 내가 사진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는 그의 얼굴은 배우 빰 치는 미남임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또 악명 높은 간수였고, 간호보조사 이르마 그레제(1923. 10.7-1945. 12.13)라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는데(당시 22-23세정도) 가장 어리면서 유대인들에게 채찍질 발길질을 해대었고 남성 억류자들에게는
성적 학대도 일삼으며 자신의 성욕을 채우기도 하였는데 위의 <조셉 맹겔레> 의사와 이곳 사진의 제2
수용소 소장 <조셉 크레머>도 그의 밤의 애인이었다 하니 여자! 여자! 아! 무서워하고 비명이 나온다.
그러나 사진 상 그녀는 육체파로 어쩐지 탐이 나는 늘씬한 미인이었다.
<이르마>는 1945년 2차 대전 종전과 함께 영국으로 압송 사형이 집행되는 순간 “빨리 끝내줘요”라고
말했으니 길게! 길게! 길게도 즐긴 환락의 밤이 고통의 일순간이 된 걸 보며 가슴을 쓰려 내려야만 했다.
(3편으로 계속)
1.오슈비엥침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건물 배치도 28동이고, 보이는 중앙 1 번동은 취사장
2. 취사장을 가깝게 잡아 보았는데, 당시 취사반 조장도 결국엔 무서운 죽임을 당했으니!
3.고압이 흐르는 강제수용소 철조망을 크게 잡아보았다. 낡고 하얀 애자가 세월을 말해주고
4. 수용되어진 억류자들의 신상명세서, 전쟁 말 점령해 들어온 소련군에 의해 발견됨
5. 오슈비엥침이 유럽의 중심부에 있는 걸 알리는 도표인데 비엔나 부다페스트도 보인다.
6. 14동인데 각동은 관리가 용이하게 국적별로 수용했고 독일어 통역 자가 있었다.
7. 등과 동표시가 세월을 어렵게 버텨온 모양인지 어쩐지 지쳐 보였다.
8.1940-1945년 이곳에서 죽은 천삼백만인데 유대인 천백만, 폴란드 십사만명 등?
9. 바닥은 이러했는데 추위에 어떻게 견뎠는지, 더구나 죄수복은 홉 겹인데요!
10. 3편을 위한 예고편으로 당시 불구자들의 의족 의수를 이 몸이 몰래 생생하게 찍어!
첫댓글 <부베의 연인>. 참 오랫만에 듣는군요. 애잔한 멜로디. 참 좋으네요.
시대정신과 작가정신의 결여입니다. 후리지아님 같은 중량감 있는 작가는 정곡을 찌르는 코멘트가 이 대목에서 절실해 보입니다. 성원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성의가 없었죠? 작품을 미처 다 읽지못했습니다. 열과 성을 다하여 올려주신 자료와 온 몸으로 쓰신 글들. 숙연합니다. 숙제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어떻게 견디어 낼을까..싸늘함에 한기가 느껴집니다..
관계서적을 매일 3시까지 읽고 정리하며 또 가이드에게 들은 걸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게 정리했습니다. 그곳은 독일인들에게는 그냥 관광지이지만(?) 이스라엘 학생들에게는 무조건 견학해야하는 필수 코스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해자인 독일인이 유대인 학생들과 일반 관광객 대하듯 하는걸 보기도 하고 유대인 가이드는 늘 조상이 박해 당한 걸 상기시키며 애국심과 선민사상을 불어 넣으며 자기 스스로 의무감 같은 걸 갖고 있었습니다. 지금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살상은 이유야 있지만 자행되고 있는데요,
그리고 가스실은 한꺼번에 2천명을 홀딱 벗겨 문으로 밀어 넣었다는데 관계 서적에 의하면 2-1 분이면 끝나는데 약조차 모자라 30분에 질식하기도하고 시체를 꺼낼 때는 언제나 제일 아래 어린이 여자 그 위에 건장한 남자였답니다. 그것은 공기와 접촉하면 금방 청산가리로 되는 가스 특성상 아래로 독하기 때문이랍니다. 언젠가 제가 미국 케나다 간 엠버서드 다리 아래 윈저 ---디트로이트 간 해저터널을 어느 싸이트에 올려놓았지만 그게 국경 수비대에 발견되었다면 구속되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지요, 여기엔 가스실 내부도 올렸지요, 약 가로세로 40-50 미터 공간
전혀 눈치 못 채게 샤워 실이라 각국어로 밖에 명기해 놓고 마지막 사람이 들어가면 빗장을 지르고 실시! 그동안 독일 장교들은 왈쯔나 탱고 들으며 킥킥거렸답니다. 그곳 관람 중엔 조용하고 웃음이 없었는데 자본주의 성격 체제로 달리고 있는 폴란드 오슈비엥침 수용소는 박물관 성격으로 변하고 있고 생체실험의 결과로 의학이 발달한 독일 그리고 무기 성능을 높이기 위해 우리 민족에게 마루타 테스트를 한 일본 그들이 지금 세계사의 선두에서 가끔 세계 평화 질서 등을 말하는 걸 보며 역사의 아이러니를 실감합니다. 마지막 편 까지 읽고 여행가면 많은 걸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성원 있으면 그전 케나다 미국 여행도 올려 볼 작정인데 여행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분명 큰 도움이되고 새로운 정보를 얻을수 있는 기회 되리라 확신합니다.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주 유익할 것 같습니다.
조근조근 잘 읽었습니다. 생체실험 의사로 악명 높은 조셉 맹겔레와 나치의 여인. 젊은 미모의 여간수 이르마 그레제는 연인관계로 알고 있습니다. 총알을 절약하기 위해 독가스실을 만들어 수 많은 유태인을 대량 살육 했지요. 파블로의 조건 반사 실험처럼 개처럼 끌려가 살육되고 생체실험에 동원된 유태인들만도 40만 명이라고 하니 ...거대한 셰계의 역사를 오류의 한 페이지로 점을 찍은 히틀러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범죄자입니다. 더구나 유태인 학살에 중추적 역활을 했던 아이히만 같은 사람은 2차 세계대전 후 연합군 세력을 탈출 후 이스라엘 정보국을 피해 여생을 편히 지내다가 1977년 사망했다고 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부유한 유태인 가정을 많이 보았는데요, 토론토 벵쿠버 에드먼튼 윈저 헤밀턴 등 어느 곳이나 있지만, 위니펙 같은 경우 턱시도라는 유대인 동네가 있는데 내부가 정말 그림 같았지요, 그들과 거래할 때 계약서 더욱 꼼꼼히 해야 한다는 것 유대인에게서 배웠고요, 일의 종결이 지워지지 않으면 돈을 치루지 않는 게 몸에 배여 있었고요, 후리지아님 코멘트 고맙습니다.
하인리히 히틀러의 충직한 개였던 하인리히 히믈러의 사진 속 얼굴은 또 얼마나 선량해 보이는지...인간이 행한 가장 끔찍한 범죄. 반인류애적인 행동은 결코 잊지말아야 합니다. 독일 민족에 대한 가당찮은 지독한 민족주의자인 오류에 빠졌던 하인리히 히틀러를 다시 한 번 조명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님의 금강산 이야기 처음에 동서독 이야기 나오는데 베를린 장벽 사진 올립니다. 참고하시길 빕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금강산 관광은 수년 전에 쓴 거 랍니다.
이건 2009년 오월 하순에서 6월 5일 차 여행에서요,
아. 예 . 최근이군요. 저도 한 번 가보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