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그 사이트에 가입해서보니 당선글이 잘 안 뜨더군요
그래서 제가 백일장 당선작이 아닌 청소년 문학상(산문부문)의
당선작 한 편을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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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부문 당선작
당산나무 가는 날
김상규(제주 사대부속고등학교 3학년)
“할머니, 오늘 무슨 일 있어?”
“아이구, 말 마라. 밀양할망이 죽었덴 고람시네(말하는구나). 이제 모실 가젠 하믄(갈려고 하면) 어찌 할꼬.”
가뜩이나 주름진 얼굴에 또 하나의 주름이 더 잡혔다.
○○○모실 가는 날, 그날은 누구 할 것 없이 동새벽에 일어나야 했다. 제주 특유의 풍습 모실. 이미 도시에선 사라진 지 오래지만 중산간 마을에서는 길일을 잡아 당산나무에 가 모든 흉 될 것은 없어지고 길한 것만 오라고 하는 모실이 그나마 마을 할머니에 의해서 전해지고 있다.
“할머니, 뭐 챙겨 갈꺼?”
“챙길 게 뭐 있어. 그자(그냥) 콩나물 호금(조금)하고, 보리떡 호금하고 빙떡허고, 사과허고. 그리 해도 당산 할아밧님은 흉잡지 아니하메.”
사실 할머니는 그리 많이 장만하지 않은 것이라 말했지만 자식 생일상 차리는 것보다 더 정성이 갔다. 며칠 전부터 시장에서 사온 옥돔 말리고, 또 향대, 촛대 빛나게 닦고, 뒤 텃밭에 있는 무 다듬어 빙떡 만들고, 아마 당산 할아버지에게 이때까지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게 미안하다는 할머니의 맘이 너무 커서 그런 것이 아닐까.
“야, 상규야. 나 밀양할망 데령(데리고) 올 테니까 미릇(미리) 당산나무에 강(가서) 있으라.”
밀양할망.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점을 보는 할머니. 요즘 몸이 성하지 못해 할머니가 부축해야만 당산나무에 올 정도였다. 예전엔 날아가는 새도 피했다는 욕쟁이 할머니였지만 요즘은 통 보이지 않았다.
필요한 것이 다 들어간 제주도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인 구덕을 어깨에 지고 당산나무로 갔다. 새벽이라 추운 몸을 감쌌다. 놋수저의 ‘까닥까닥’거리는 소리가 성가시긴 했지만 차 소리도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아 오히려 그 소리는 나와 동행이었다.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는 당산나무가 가까워졌다는 걸 말해준다.
저기 누구의 귤밭 한 구석에 큰 팽나무 하나가 서 있었다.
졸리는 눈꺼풀이 징 소리에 깼다. 할머니와 밀양할망이 챙겨온 음식을 풀고 징소리를 울렸다.
“아이구, 잘 봐줍서, 당산 할아밧님. 우리 손주도 잘 되게 해주고 양, 우리 자식들도 몬딱(모두) 잘 되게 해줍서. 밀감 값도 올려주고, 우리동네 사람들 몬딱 부자 되게 해줍서. 당산 할아밧님 부탁이우다.”
나도 할머니처럼 손을 비비며 아무 말 없이 당산 할아버지에게 빌었다.
“당산 할아버지. 할머니하고 밀양할망 건강하게 해주세요.”
계속 징 소리는 울렸다. 챙겨온 음식을 고수레하자 잔뜩 구름 낀 하늘이 서서히 밝아왔다.
어느새 밀양할망의 장이 끝났다. 매일 대가없이 일품을 팔았던 할머니라 서운함이 더한 것 같았다.
“할머니, 앞으로 모실 어떻게 할꺼?”
“뭐, 할 수 없지. 우리끼리라도 강(가서) 절이라도 행 와사주. 경(그렇지) 아니허냐? 당산 할아밧님은 다 우리 맘을 안다.”
점점 사라지는 농촌 사람들만큼이나 그들이 지켜왔던 소중한 풍습들이 없어졌다. 제사 때 부엌 신께 올리는 고팡상 역시 어느 샌가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며칠 전 밀양할망 없이 모실을 갔다 왔다. 여전히 정성스럽게 차린 음식은 전과 바뀐 것이 없었다.
당산나무로 걸어가며 할머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상규야, 이때까지 우리 집이 큰일 없이 올해가 잘 지나간 건 다 당산 할아밧님 때문인디. 나 죽어불면(버리면) 누가 당산 낭(나무)을 본 건디사.”
어떤 의무감 때문일까, 나는 할머니의 말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나라도 모실 갈까?”
“경(그렇게) 해질커냐?(할 수 있냐?)”
“응, 나라도 오지 뭐. 할머니는 걱정 말고 오래만 살아.”
당산나무에 온 할머니는 먼저 인사를 하며 밀양할망이 죽은 것을 알렸다. 챙겨온 음식을 차리고 크게 절을 한 할머니는,
“자, 이제부터는 우리 손자가 영(이렇게) 할 거우다. 우리 손자 잘도 착하난 당산 할아밧님 걱정 말고. 몬딱(모두) 잘되게만 해줍서. 나도 늙어노난(놓으니) 이젠 힘이 어수다(없습니다).”
당산할아버지에게 고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할머니는 이젠 모든 것을 풀었다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