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무겁게 내려앉았던 하늘이 맑게 갰다. 햇살이 베란다에 가득하다. 꽃봉오리로 맺혀 있던 황금 부추꽃이 꽃잎을 활짝 펼치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여섯 장 꽃잎이 속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윤기가 흐르는 노란 꽃잎이 귀족적이다. 향기도 은은하고 청순함을 머금고 있는 소녀 같다. 한참을 들여다보면서 올해도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무거운 롱 패딩을 벗고 가벼운 겨자 색 점퍼에 하얀색 코르덴바지와 빨강 스웨터를 입었다. 햇살도 따사롭고 바람도 없다. 마음이 벌써 싱숭생숭하다. 내일모레가 설날인데 벌써 내 가슴이 이리 설레면 어쩌란 말인가. 모르겠다. 콧노래를 부르며 농로를 따라 걸었다. 아니, 나만 철없이 이러는 게 아니다. 봄까치꽃이 논둑을 보랏빛으로 덮었다. 엊그제 이곳을 지나갈 때 보지 못한 꽃이다. 앙증맞은 봄까치꽃이 방실방실 웃으며 인사를 먼저 청한다.
밖으로 나와 걸으니 이렇게 좋다. 어디서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면 뭐가 저리 좋아서 나비처럼 팔랑팔랑 걸어갈까? 하면서 덩달아 미소를 짓겠지. 좋은 기운은 전염이 될 테니까. 보고 싶은 사람에게 전화했다. 언제나 반갑게 받아주는 사람이다. 목소리에서 전해오는 반가움과 따스함이 오늘 날씨처럼 포근하다. 오랜만에 전화했다. 그간의 일을 미주알고주알 전한다. 내가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마주할 수 있는 사람 중의 하나다. ‘나 봄바람 난 처녀 같아, 벌써 이러면 어쩌지. 꽃 피는 봄날를어찌 견뎌내라고 말이야!’ ‘오늘 만나면 좋겠다.’라고 속내도 전한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 보고 싶었다. 추억이 많아서 언제나 대화가 풍성하고 행복해지는 사람이다. 그가 참 좋다.
한 시간 넘게 전화로 만나고 있었다. 마치 마주 보고 앉아 커피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함께 손을 잡고 산책하는 기분도 들고 벚꽃 날리는 섬진강을 드라이브했던 그날 같기도 했다. 내가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니 정말 운이 좋은 여자다. - 2024년2월7일 -
첫댓글 菁香(부추꽃 청, 향기 향) 정말로 그윽하고 달콤한 청향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