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은 성령의 사역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본문은 두 가지로 접근할 것인데 ‘성령의 능력을 멸시하지 말라’는 것과 ‘능력이 없이는 사역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능력을 멸시하지 말라는 것. 사람들은 힘을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조금만 남들보다 외모가 뛰어나면 외모 자랑, 돈 자랑, 자식 자랑, 집안 자랑, 좋은 물건이 있으면 좋은 것을 자랑하길 좋아합니다.
동시에 우리 마음 가운데는 자랑하는 것을 싫어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남이 자랑하는 꼴을 못 보니 싫어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제일 싫어하는 유형이 돈이나 권세 등 세속적인 힘을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너무 좋아하면서 너무 싫어합니다. 그러다 보니 성령에 대한 접근도 편향적으로 합니다.
성령이 임재하시면 열매가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라는 것은 성령께서 임하셔서 우리의 인격과 태도를 변화시켜 가시는 것입니다(갈5:22~23). 그런데 열매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성령의 능력을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현재 한국교회의 흐름이 성령의 능력을 멸시하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강조하면 은사주의자라고 공격을 합니다. 능력을 나쁘게 보는 전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난하지 않는 선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은사주의가 위험하다’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우리는 마귀에게 속아 양극단으로 가려고 합니다. 교회가 살만 쪄가고 내용이 없을 때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비만입니다. 그래서 비만은 건강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비만이 옳은 것이 아니라면 건강을 추구해야 하는데 지금은 거식증이 되어 버립니다. 성령의 능력을 다 무시하고 윤리와 도덕만 주장합니다.
많은 축복을 받았는데 일하지 않아서 비만해진 모습과 철저하게 도덕이나 공로를 들고나오는 것이 현 교회들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항상 말씀과 성령을 조화롭게 얘기합니다. 빛이라 하면 밝음도 있지만, 뜨거운 열도 있어야 합니다(라오디게아 교회). 말씀이 빛을 비추는 진리라면 성령은 뜨거움이 담긴 힘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한 가지를 포기하면 극단으로 가게 됩니다. 말씀을 통해 성장해야 하고 성령의 공급하심을 통해 능력 있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배와 선교가 있어야 합니다. 그럼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열정적인 사역을 통해서 영혼들이 살아나는 선순환이 예수님이 디자인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능력의 사역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 말씀이 8절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된다’ 증인이 되려면 능력을 받아야 하고 능력을 받으려면 성령이 임하셔야 합니다. 능력(두나미스) 있는 성도는 다이너마이트 같은 파괴력이 있습니다. 이 추운 겨울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전이 일어나면 모든 것이 all stop 됩니다.
신앙생활에서의 정전은 성령의 권능이 사라진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하다가 능력을 부인 하고 열매로만 가다 보니 선교가 사라지고 예배가 힘을 잃어버려 기도도 식기도 중심으로 5분을 못 하는 무기력에 빠진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가 출발이 되어야 합니다. 에너지부터 공급이 되어야 합니다. 더러운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파워가 들어오면 청소기를 돌리면 됩니다. 모든 삶의 뿌리가 파워에 있듯이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영적인 삶이 윤택해집니다.
마귀가 우리를 속여 성령의 힘을 멸시하게 만듭니다. 인격이 좋다고 밥이 되거나 에어컨이 작동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역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파워입니다. 선교를 가는 것은 힘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힘이 없으면 사역을 할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부터 할 일은 성령의 파워를 더 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일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일이나 가정의 일까지, 우리의 모든 사역을 넉넉하게 이루게 됩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회당에 들어가서 처음 전하신 말씀이 메시아의 예언이었습니다(눅4:18-19,사61:1).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성령의 능력을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똑같은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제자들의 공생애입니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우리에게도 임하여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반드시 증인이 됩니다. 증인(μαρτυς)에서 순교자(martyr)가 나왔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증인이 되다 보면 순교할 때까지 가는 것입니다.
요즘은 전도가 어려운 시대라고 말합니다. 뒤집어 보면 전도가 쉬웠던 때는 한 번도 없다. 전도는 원래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입니다. 복음은 원래 우리의 이성과는 맞지 않습니다. 우리 본성은 내가 열심히 노력하거나 천 번 절하거나 기왓장 100만 원짜리 10개 사면 구원받는다는 말이 본성에 맞습니다.
우리는 불가능한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믿고 증거하고 있는 데 이것은 성령의 능력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적으로 볼 때 적합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기도하시고 제자들을 뽑으셨습니다. 성령의 능력 외에는 학문도, 신학적 지식도, 인맥도, 물질도,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강한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만 의지하니 거기서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주님만 의지하는 것이 가장 큰 힘입니다.
바울은 많이 배운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4-5) 학식이 있고 웅변의 능력이 있기에 어떻게 하는지 알지만 그게 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고 사람의 지혜로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령의 권능을 받아 선교지로 갈 수 있도록 기름 부어 달라고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