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구세군(救世軍,Salvation Army,1908)
“구세군”(救世軍,Salvation Army)은 1865년, 영국 런던 이스트 엔드의 감리교 목사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와 “캐서린 부스”(Catherine Booth) 부부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산업혁명으로 실업자와 빈민계층이 급증하며 사회문제로 대두 되었을 때 부스는 알콜중독자, 마약중독자, 매춘부 등을 위해 천막을 짓고 종교집회는 물론 야간학교와 주일학교와 저축은행을 운영하여 이들을 구제하였습니다. 전도와 선교를 위한 “기독교선교회”(Christian Mission)로 시작한 부스는 빈곤계층을 위한 식량과 주택공급을 목적으로 선교국을 설립하고 1878년, “하나님의 군대”라는 의미의 구세군으로 조직명을 바꾸었습니다. 1880년, 부스는 아들인 “브람웰 부스”(Bramwell Booth)와 함께 군대와 유사한 조직의 선교단체로 수직화 하고 이것이 영국 전역을 비롯하여 미국과 유럽으로 전파되었습니다. 구세군은 1878년 11개 신앙조항을 기본원칙으로 영혼구원에 성례가 필요하지 않다고 정의하였습니다. 구세군의 예배는 형식이 없습니다. 기쁨의 노래, 악기연주, 박수, 개인간증, 통성기도, 회개를 중심으로 열린 문화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구세군의 상징인 자선냄비는 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재난민들을 위한 성탄절 기금모금 활동으로 구세군 사관 “조셉 맥피”(Joseph McFee)가 착안해 낸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1928년 12월15일, 한국구세군사령관 “박준섭 사관”이 서울 명동에서 최초로 시작하였으며 2013년에는 자선냄비본부가 독립기구로 설립되었습니다.
1908년 10월, 구세군의 창설자 윌리엄 부스는 한국에 “로버트 허가두”(Robert Hoggard)와 “애니 존스”(Anni Johns) 사관 부부를 파송하였습니다. 영혼구원은 물론 민중계몽운동과 사회 구원에 역점을 둔 허가두 부부는 1909년에 “구세신문”(현,구세공보)을 발행하고 선교와 해외정보와 선진농법을 전파하였습니다. 1916년, 허가두 사관은 당시 천대받는 여성들의 인격과 지위 향상을 위해 “여자실업관”을 설립하였습니다. 이러한 사회활동을 기반으로 1916년, 한국 구세군은 78개의 교회와 87명의 사관, 4,800명의 교세로 급성장하였습니다.
1918년, 극빈자를 위한 무료급식소와 장작 배급소를 설치하여 빈민구제사업을 본격화 하였습니다. 1928년 12월, 한국최초의 자선냄비가 서울 명동에 등장하고 구세군의 활동에 많은 국민들이 지지와 성원을 보냈습니다. 1942년, 일제에 의해 모든 종교활동이 금지되었으나 1950년, 한국전쟁때 영미 구세군이 무료급식소를 다시 개설하며 많은 이재민들을 구제하였습니다.
1955년에 과천양로원을 개원하고, 1964년, 서울지역에 탁아소 196개 설립과 함께 1977년, 사회복지법인 구세군복지재단 설립이후 1987년, 구세군장학회와 2002년, 노숙인 응급보호센터를 설립하였습니다. 서울 중구 덕수궁길에 위치한 대한본영을 비롯하여 서울, 남서울, 충청, 서해, 충서, 충북, 경남, 경북, 전라에 지방본영을 설립하였습니다.
첫댓글 구세군의 자선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