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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살 딸은 삐뚤삐뚤 글씨를 썼다. 현순씨는 그 글을 읽을 수 없다. 앞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 |
ⓒ 민석기 |
현순씨는 지난해 1월 삼성 스마트폰 부품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쓰러졌다. 특별한 사고가 일어난 게 아니다. 공장에서는 금속 부품의 원활한 가공을 위해 값싼 메틸알코올(메탄올)을 사용했다. 독성물질인 고농도의 메탄올은 비정규직 파견노동자였던 현순씨의 뇌와 눈을 망가뜨렸다.
왼쪽 눈으로는 사물을 볼 수 없다. 오른쪽 눈으로만 희미하게 사물을 볼 수 있다. 선명한 원색이 아니면, 색을 구분할 수 없다. 이마저도 컨디션이 좋을 때다. 하루에 한 번 이상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럴 때면 사물을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나빠진다.
왼쪽 팔다리는 제대로 쓸 수 없고, 다리를 전다. 의지와는 달리, 말을 떠듬떠듬한다. 1년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학병원에서 안과·신경과·정신과·비뇨기과 치료를 받고 있다.
현순씨는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딸을 생각하며 정신이 흐려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딸이 현순씨에게 "엄마, 아야해?"라고 물을 때마다 마음이 무너진다.
"딸한테 앞이 안 보이는 건 얘길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알고 있어요. 아이한테 멍이 들었거나 두드러기가 나도, 제가 알 수 없잖아요. 그럴 때 가슴이 아파요. 딸이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갈 텐데, 엄마가 장애인이라서 놀림 받지 않을까 걱정도 돼요."
▲ 메탄올 중독 실명 피해자 이현순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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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왜 수면제를 삼켰을까
현순씨를 처음 만난 건 지난달 4일이다. 당초 오전에 만나기로 했지만, 당일 그녀는 약속을 오후로 미뤘다. 그날 그녀는 겸연쩍은 얼굴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잠이 안 와요. 그럴 땐 수면제를 먹고 자요. 새벽 4시까지 잠이 오지 않아서 수면제를 먹었어요. 도저히 오전에 잠을 깰 수 없었어요. 그래도 그 와중에 기자님한테 전화할 생각을 했네요. 하하."
기자도 웃으며 말을 받았다. 하지만 며칠 뒤, 메탄올로 시력을 잃은 파견노동자 청년들을 돕고 있는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노무사)가 그녀에게 수면제가 어떤 의미인지 귀띔했다.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녀는 지난해 일주일치 수면제를 한 번에 삼켰다. 다행히 이틀 뒤 깨어났다. 눈을 떠보니 병원의 격리병동이었다. 가족들은 "다시는 그러지 말라"면서 눈물을 쏟았다. 현순씨는 담담하게 그때의 심정을 풀어놓았다.
"작년까지는 현실을 못 받아들였어요. '나보다 1년 먼저 이 공장을 다닌 사람도 있는데, 왜 하필 나일까', '내가 이렇게 살아서 뭘 하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깨어났을 때 울고 있는 가족에게 참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어요."
2주 동안 격리병동에 있으면서 딱 한 번 딸의 얼굴을 봤다. 원래 어린이에게는 면회가 허용되지 않지만, 병원은 30분의 면회를 허용했다. 딸이 물었다.
"엄마, 괜찮아?"
"응, 엄마는 괜찮아."
그날 현순씨는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그로부터 얼마 뒤, 현순씨는 또 다시 다량의 수면제를 삼켰다. 현순씨는 기자에게 말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사회안전망 바깥으로 내몰렸다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났을까. 아무리 돌이켜봐도 그녀의 삶에 잘못은 없다.
현순씨는 2007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해 공장에 취업했다. 구직사이트에 올라온 구인광고를 보고 일자리를 얻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을 구하는 또래의 많은 청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들 파견업체 소속으로 일했다.
현순씨는 몇 개월 뒤, 큰 규모의 반도체 공장으로 직장을 옮겼다. 7년을 일했다. 정직원이 됐고, 남편을 만났고, 아이를 낳았다. 직원을 무시하는 분위기 탓에 2015년 7월 누리잡이라는 파견업체를 통해, 삼성전자의 하청업체인 YN테크로 옮겼다.
야간 근무를 해야 했다. 현순씨는 누리잡 윤아무개 이사에게 주간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윤 이사는 돈 얘기를 꺼내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이가 있으니, 야간 일을 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죠." 주말 없이 주야 맞교대 12시간 근무를 해도, 손에 쥐는 돈은 200만 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누리잡은 또한 돈을 이유로 현순씨를 사회안전망 바깥으로 내몰았다. 현순씨의 4대 보험 가입을 막은 것이다. 윤 이사의 말은 이렇다.
"4대 보험 가입하면, 현순씨 월급이 깎이잖아요. 가입하지 않는 게 좋아요."
현순씨는 불량품이 나오지 않도록 공장 내 30여 대의 공작기계를 점검하는 일을 주로 했다. 몸을 메탄올이 그득한 공작기계 속으로 밀어 넣는 일이다.
▲ 메탄올 중독 실명 피해자 이현순씨의 안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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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5일 오후 7시, 현순씨는 속이 울렁거려 토를 했다. 머리도 아팠다. 출근을 2시간 앞둔 때였다. 출근 도장을 찍은 후 병원에 갔다. 피검사를 했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의사는 현순씨의 몸에 링거를 꽂았다. 그녀는 2시간가량 수액을 맞고 다시 공장으로 돌아와 일했다.
시간이 갈수록 정신이 흐려지고 얼떨떨했다. 눈도 잘 보이지 않았다. 밤샘 근무를 마친 후 집으로 향했다. 바로 잠들었다. 오후 2시께 일어났다. 사물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 화장실에도 못 갔다. 현순씨는 곧바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스스로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받는 동안, 현순씨는 소리를 지르다 의식을 잃었다.
"나 안 보인다고!"
회사의 궤변 "술 때문에 그렇게 된 거예요"
엑스레이, MRI, CT. 현순씨가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사투를 벌이던 10시간 동안 각종 검사가 이어졌다. 저산소증과 뇌손상이 확인됐다. 현순씨는 이튿날 새벽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날이 밝자, 현순씨는 곧 의식을 회복했다. 눈을 뜨니 암흑이었다.
처음에는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현순씨 가족은 그녀가 쓰러지기 전, 공장에 알코올 냄새가 심하게 난다고 했던 말을 기억해냈다. 확인 결과 YN테크에서는 메탄올을 사용하고 있었다. 의사는 현순씨의 증세가 메탄올 급성 중독 탓임을 확인했고, 이를 고용노동부에 알렸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우리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근로복지공단은 이례적으로 시력을 잃은 현순씨의 산업재해(산재) 신청을 곧바로 받아들였다. 여론이 잦아들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현순씨는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다. 정신과 산재 신청을 했다. 현순씨와 남편은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들어갔다. 이들은 첫 질문을 잊지 못한다.
"'왜 왔어요?',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이런 식의 질문이었어요. 서류를 다 앞에 두고 있으면서. 안 아프고 멀쩡한 사람인데 산재승인을 받으러 온 사람 취급을 하더라고요. 죄인 취급이죠. 가뜩이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은 아내는 한 마디도 못했어요. 제가 다 답변 했어요."
현순씨와 남편은 가해자들에게도 큰 상처를 받았다. 현순씨가 중환자실에 누워있을 때, 누리잡 윤 이사는 현순씨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술 때문에 그렇게 된 거예요."
남편은 기가 막혔다. 시간이 지난 후, 현순씨는 남편으로부터 이 말을 들었다.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좋았어요. 일 끝나고 함께 하는 술자리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제가 쓰러진 게 회사의 잘못이잖아요. 어떻게 제가 술자리를 좋아한다는 것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정말 나쁜 사람들이에요."
누리잡 대표 이아무개씨는 현순씨와 또 다른 피해자 방동근씨를 YN테크에 불법으로 파견한 죗값을 받았다.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 YN테크 경영주 석아무개씨도 안전시설 등을 마련하지 않아 현순씨와 동근씨의 시력을 앗아간 죗값을 치렀다. 징역 1년, 집행유혜 2년.
가해자들은 1심 판결을 받아들였다. 누구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그 이후 이들은 연락을 끊었다. 현순씨는 분을 삭였다.
"대한민국은 사람이 죽어가도 눈 깜빡 안하는 나라잖아요. 죄를 지어도, 정의의 편이 아니잖아요."
▲ 뇌의 운동신경 영역을 크게 다친 현순씨가 걷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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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걷는 건 기적
현순씨를 처음 만난 날, 그녀는 혼자 대학병원에 간다고 했다. 기자가 동행했다. 그녀는 한쪽 발을 끌면서 천천히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병원은 북적거렸지만, 현순씨는 길을 잃지 않았다. 길을 아예 외운 탓이다.
마트는 가는 길도, 재활 치료를 위해 근로자건강센터에 가는 길도 혼자 걷는다. 처음엔 남편과 함께 했지만, 홀로서기를 위해 길을 외웠다.
뇌의 운동신경 영역을 크게 다친 현순씨가 걷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주치의는 현순씨가 앞으로 걷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당하게 진료실에 걸어 들어갔다.
"쓰러지고 10일 만에 병원에서 퇴원했을 때, 친정에 한 달가량 있었어요. 그때 엄마가 외출하면 무조건 따라 나갔어요. 왼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꼭 걷고 싶었어요."
이날 현순씨는 웃으면서 자신이 겪은 일들을 늘어놓았다.
"시력이 회복되지 못했을 때는 냉장고를 열어 냄새를 맡아 반찬을 확인했어요. 젓가락질을 할 수 없어 손으로 먹은 적도 있어요. 아이, 부끄러워라. 하하."
- 제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것 같은데요?
"조금, 하하하. 짜증을 내서 뭘 하겠어요. 이미 이렇게 된 거. 작년에는 그렇지 못했지만, 지금은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메탄올 중독 실명 피해자 이현순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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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순씨를 만나고 한 달이 지났을 때, 그녀의 소식이 들렸다. 웃으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온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힘들어한다고 했다. 다른 피해자와 달리, 신속한 치료를 받아 시력이 다소 회복됐다는 사실이 현순씨를 움츠러들게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17일 현순씨의 손을 꼭 잡고 온 박혜영 노무사가 말했다.
"현순씨에게 말했어요, 힘든 얘기를 해줘서 고맙다고. 6명 피해자가 증상이 조금씩 다르고 누구는 덜 아프고 누구는 더 아픈 게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다 피해자인 거라고. 앞으로 더 잘 살아낼 힘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그렇게 햇살이 좋은 길가에 둘이 앉아 한참을 얘기했네요."
기자도 그 전날 오랜만에 현순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는 스토리펀딩과 <오마이뉴스>에서 많은 분들이 피해자들을 향해 많은 응원과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그대여 울지 말아요. 그리고 함께 헤쳐 나가요! 힘이 될게요!'
'힘내세요. 당신 삶이 아름답길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의 어둠을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현순씨는 쑥스러운 듯 짧게 답했다. "참 감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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