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의 제목은 "영원 전부터 약속한 영생"입니다. 옆에 앉은 분에게 야곱이 형님을 만났을 때처럼 인사하겠습니다. “성도님을 보니 하나님을 보는 듯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생 주시길 원하시고 실제로 영생을 주시는 분입니다. 요6:40에 보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이것이니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병 고치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기적만 보여주기 위함도 아닙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니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또 다르게 내가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거두기 위해 왔다고 했습니다. 요4:36입니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 중에 가장 큰 일이 무엇입니까? 천지창조입니까? 노아 홍수 심판입니까? 홍해를 가르신 출애굽 사건입니까? 하나님이 행하신 가장 큰 일은 우리 위해 아들을 내어주신, 십자가에 죽음 당하게 하신 일입니다. 아들의 죽음을 다른 어떤 일과 비교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왜 주셨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우리가 죄로 인해 멸망 받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려고 독생자를 내어주셨습니다. 독생자를 내어주심은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입니다. 희생입니다. 진정한 헌신입니다. 우리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듯 하나님이 우리 위해 희생, 헌신하신 것입니다.
광산에서 붕괴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아들이 안에 갇혔습니다. 사람들은 너무 위험해서 들어가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들어가면 당신도 죽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내 아들이 저 안에 있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결국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들어갔습니다.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내가 이것 해주면 너는 뭐해 줄 건데?’ 사랑은 이런 거래가 아닙니다. 아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물에 뛰어드는 사람은 수영 잘 하는 선수가 아니라 수영도 못하는 엄마가 뛰어 들어갑니다.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살리시려고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내어주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실제로 나타난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먼저 우리 죄를 사하신 것입니다. 단지 죄 사함, 용서만이 목적이 아니라 영생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릇을 깨끗이 씻어놓기만 하지 않고 더 좋은 것을 담아 두듯이.
우리를 사랑하시니까 우리가 죄로 인해 멸망하지 않도록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영생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요17:2에서도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려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요10:28에서는 예수님이 직접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뺏을 자가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이것이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의 공약입니다. 누가 이런 약속을 하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기에, 생명의 주인이시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생명의 근원이나 시작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입니다. 생명의 본질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그 생명은 영원합니다. 영원한 생명 곧 영생입니다. 그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에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케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요10:10).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다고 했습니다. 요일 5:12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성경은 이 사실을 계속 말합니다. 롬6:22에서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라고 하십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하나님의 은사, 즉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안에 있는 영생입니다. 그 마지막은 영생입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이 구원을 받음입니다(벧전1:9). 곧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은 예수님 외에 없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놀라운 사실은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시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려는 것을 영원 전부터 계획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려는 것이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세우신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실 때, 아니 이전부터 우리에게 영생을 주실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창조의 목적까지도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려는 원대한 계획 속에 하신 일입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즉흥적인 일이 아닙니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 세우신 계획입니다.
집을 지을 때 먼저 무엇을 합니까? 벽돌부터 쌓지 않습니다. 먼저 설계도를 그립니다. 방은 어디에 둘지, 창문은 어디에 낼지 미리 계획합니다. 오늘 우리가 오후에 가는 장미축제도 저절로 씨가 나서 그렇게 자란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먼저 설계하고 그에 따라 종류별로 장미를 심어 가꾼 것입니다.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계획대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들기 전부터 이미 우리에게 영생 주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우리가 얻는 영생도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으면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세운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설계대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아들을 보내시고 죽음 당하게 하신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영원 전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생 얻는 것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영생 얻는 이것이 별 것 아닌데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계획하셨겠습니까? 우리가 영생 얻으면 좋고 얻지 못해도 그만이라면 하나님이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까지 결단하셨겠습니까? 영생은 우리가 반드시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명예나, 재물이나, 권세 때문에 영생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생이 그것보다 더 소중하니, 더 가치 있으니까요. ‘무엇이 더 중헌디!’
예수님은 영생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이렇게까지 말씀했습니다. ‘네가 두 손을 가지고 지옥 불에 들어가느니 차라리 한 손을 잃고서도 영생에 이르는 것이 낫다, 네가 두 눈으로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한 눈을 빼고서라도 영생에 이르는 것이 낫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우리가 손에 쥔 것 때문에,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의 영광 때문에 유혹되어 영생을 놓칠까를 염려하신 것입니다.
밀림에서 원숭이를 잡을 때 바나나를 넣은 병을 던져둔다고 합니다. 원숭이가 손을 넣어 바나나를 움켜쥐면 손이 빠지지 않습니다. 손만 펴면 살 수 있는데 끝까지 놓지 못하다가 결국 잡히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세상의 명예나 영광이나 부귀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세상 것을 놓고 영생을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잠시 있다가 썩을 양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원히 썩지 않을 양식을 위해 일하시길 축복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우리에게 영생 주실 것을 계획하시고 그 계획대로 아들을 보내시어 이루시는데, 그러면 그 영생이 우리에게 어떻게 들어오는 것입니까? 즉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을 어떻게 받습니까?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얻습니다. 요17:3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믿고 영접하는 경험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의사가 있어도 처방해주는 약을 먹지 않으면 병은 낫지 않습니다. “좋은 약인 줄 압니다.” “효과가 있는 줄 압니다.” 이렇게 아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먹어야 효력이 나타나고 먹어야 삽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그 믿음을 통해, 믿을 때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요5:24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할렐루야.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내 죄를 사하기 위해 돌아가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도구요, 방법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님을 구주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시면 ‘아멘’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아멘.
사도바울은 본문에서 자기가 왜 사도가 되었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사도 된 것도 다름 아닌 이 영생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사도요한도 요일5:13에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도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요20:31). 영생 얻는 비밀을 기록하려고 내가 이것을 썼다.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고 성경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은 자로서 또 다른 사람에게 영생을 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내 안에 생명이 있으면, 기쁨이 있으면 그것을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도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다고 하십니다. 바울은 자기를 사도로 부르신 이유가 바로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영생을 얻게 하고 이 영생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영생 주시려고 부르셨고 이 영생을 또한 전하기 위해 보내시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 사명을 우리도 감당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