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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염 상 섭
1
피로연이 칠팔 분이나 어우러져 들어가서 둘째번으로 일본 사람 편의 축사가 끝이 나려 할 제, 누구인지 프록코트짜리가 바깥에서 들어오더니 신랑의 귀에다 입을 대고 소곤소곤하는 사람이 있었다. 신랑은 채 다 듣지도 않고 귀를 떼며 매우 난처하다는 듯이 잠깐 멀거니 앉았다가 고개를 숙이며 신부의 옆구리를 꾹 찌르고 몇 마디 중얼중얼하니까, 신부도 역시 눈살을 잠깐 찌푸리는 듯하더니,
“아무려나……” 라고 겨우 들리게 대답을 하였다.
신랑은 인제야 확신이 있는 낯빛으로 대답을 기다리고 옆에 섰던 프록코트짜리를 쳐다보며,
“그럼 얼른 분별을 시키렴.”
하며 주의를 시켜 내보냈다.
이것을 눈치챈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궁금증이 나서 연해 신랑신부 편만 바라보는 사람도 있으나 실상은 그리 궁금해할 만한 일도 아니었다. 다만 피로연이 파한 뒤에 시아버지에게 폐백을 드리자는 의논이었다.
원래 신랑 아버지는 이번 혼인에 대하여 절대로 간섭을 안 했다.
“내야 아니, 너 알아 하렴. 이 집안에 주장할 사람이 너밖에 누가 또 있단 말이냐.”
하며 못마땅해서 비웃는 수작인지, 상당히 행세도 하는 장성한 자식일 뿐 아니라, 재취 장가를 가는 노신랑이니까 모든 것을 믿고 그리하는 수작인지, 어쨌든 끝끝내 “내야 아니, 내야 아니.” 하고 머리를 설레설레 내두르며, 시골 구석에 가만히 앉았었다. 실상 말하면 덮어놓고 간섭을 하려고 덤비는 것보다는 다행한 일이지만, 누가 자기를 나대지나 않는가 하는 꼬부장한 생각으로 너무도 야릇하게 구는 데에는 도리어 성이 가셨다. 모든 준비가 다 되어서 내일 예식을 거행할 터이니 올라가자고 할 때에도,
“내야 올라가 무얼 하니? 애비를 애비로 알거든 어느 때든지 생각날 제, 너희들이 찾아와보면 고만 아니냐.”
하며 애꿎은 둘째며느리까지도 올라올 수가 없게 고집을 세웠다.
그러나 밤사이에 무슨 꿈을 꾸고 어떻게 마음을 돌렸는지 별안간 오늘 아침에 아이들까지 데리고 뛰어 올라온 것은 의외였을 뿐 아니라 집안 식구들도 인제는 마음을 놓게 되었다.
그러나 인사들이 끝난 뒤에 ,
“그래두 궁금하던가 보구려, 어떻든 잘되었소.”
하며 마누라가 이렇게 한마디 하니까, 여전히 벌레 먹은 배춧잎 같은 상을 응등그리고,
“젊은것들이 올라오지를 못해서 날 쳐 죽일 듯이 여간 지랄들을 해야지. 내야 보든 말든 상관있소마는…….”
하며 입을 실룩거리는 것을 보면 아직도 비위가 가라앉지 않은 모양. 대체 이 ‘내야’ 라는 소리는 손주새끼까지나 보아야 고만둘는지, 혼인 문제가 일어난 뒤로는 ‘내야’가 유난히 늘었다.
그는 그렇다 하더라도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다든지 또는 어떻게 잘못되리라는지 말도 시원히 하지 않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혼자 눈살만 잔뜩 찌푸리고 있는 것이 송구스러워서 못살 일이다.
그래서 자기는 마치 아들의 집이나 지켜주러 왔다는 듯이 쓸쓸한 집 속에 혼자 채를 잡고 앉아서 예식에도 얼씬을 안 하고 피로연에도 기어코 얼굴을 보이지 않고 말았다.
처음 예정으로는 부친이 종내 올라오지 않으면 예식은 예식대로 하고 다시 날을 찹아서 시골로 내려가 폐백을 드리든지 잔치를 하든지 하는 수밖에 없고, 다행히 올라오면 아주 식장에서나 피로연회에서나 절이나 한번 하여 떼어버리려고 하던 차에 마침 올라와주기 때문에 한시름 잊었고, 그중에도 이 말을 들은 신부는 머릿살 아픈 폐백이니 무엇이니 하는 것을 안 하게 되어서 천만의외에 다행으로 알았던 것이라서: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신부부터 실쭉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안에서들은 조비비듯 성화가 나서, 먹을 것도 마음을 놓고 찾아 먹지들을 못하고 분주히 돌아다니며 뭇사람을 붙들고,
“이왕 언제든지 하고야 말 것이니, 오늘 아주 폐백을 드려버리면 소원도 풀어드리고 군일도 덜리지 않겠느냐.”고 충동여서 신랑신부의 승낙까지 받게 된 것이다.
이처럼 불시에 꾸미는 일이라, 피로연회는 신랑신부에게만 맡겨두고 뒷구멍으로는 사람을 산지사방으로 늘어놓아서, 시부모가 입을 사모관대며, 큰머리와 나삼을 세물전에서 빌려 들인다, 수모를 부르러 간다, 안에서들은 자동차를 몰아서 집으로 선통을 하러 간다 하며, 수군수군 갈팡질팡하는 일편에 요릿집 숙설간에서는 대추를 꿰는 빛에 편포를 괴는 빛에, 신부를 주려는 것인지 시아버지를 공궤하라는 것인지 큰상을 차려가는 빛에 한참 어수선한 동안에, 안손님들은 어디서 얻어들었는지 신랑 집으로 구경 가자는 소리가, 군호같이 이 입 저 입에서 발론이 되어 연회가 파하기도 전에 우우들 일어나서 머리악을 쓰고 제각기 앞장들을 섰다.
그리하자 연회도 그럭저럭 하고, 손님들이 하나 둘씩 헤어져 가는 틈을 타서, 신랑신부를 외딴 방으로 데려 들여다가 예식에 썼던 면사포를 다시 씌우고 치장을 차리면서, 신랑 집에서 통기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동생과 친구들이 옹위를 하고 치장을 차려주는 대로 가만히 체경만 들여다보고 섰던 신부는, 뒤에서 자기 오라버니를 따라 들어오는 신랑이, 커다란 입을 벌리고 벙글벙글하는 얼굴이 체경 속에 비치는 것을 보고 그대로 선 채,
“아 어떻게 된 셈예요?”
하며 마치 체경 속에 있는 사람에게나 수작을 건네듯이 물었다.
“어떻게 되긴 무에 어떻게 돼. 호텔루 가는 길에 시아버치께 뵙고 가란 말이지…… 그러나 그렇게 꾸미고 보니까 정말 이쁘구나! 허허허.”
오라비는 거울 속에 비친 누이동생의 불그레하게 상기가 된 얼굴을 바라보며 유쾌한 듯이 웃었다.
생전 분이라곤 발라본 일이 없는 계집애를 엷게 단장을 시켜서 아래위를 하얀 비단으로 휘감고, 하드르를한 면사포를 뒤로 넘겨 꾸며놓고 보니까, 한층 더 어울려 보였다. 얼굴 전체로 보면 그리 남에 없이 이쁘달 것도 없고, 똑바로 뜬 눈 오똑 선 코 꼭 다문 입 야무지게 모인 살갗…… 어디로 보든지 좋지 못하게 말하면 결기가 있는 기승스러운 얼굴이라 하겠지만, 조금 큰 듯한 입아귀를 삐뚜름하게 꼭 다문 위에 조그만 코가 종용히 휩싸고 앉았는 것이, 어디라고 꼭 집어낼 수는 없어도 침착하고 냉정한 이지(理智)와 굳은 심지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좁은 듯한 이마 아래에 박힌 큼직한 눈은, 시원하고도 단정해 보였다. 그중에도―얼른 보아서는 모르지만―약간 길까 말까 한 속눈썹이 더욱 조화가 되어 보였다. 만일 이 여자에게 이 눈이 없었더라면 그 얼굴에서는 다만 쌀쌀한 바람이 돌 뿐이요, 자칫하면 기승스러운 억지가 비집어 나올 뿐이다.
말하자면 코와 입에서 억눌린 열정도, 이 눈에서 쏟아져나오고. 이지와 의지만 대그럭거리는 가슴속의 빈구석을 채울 만한 그 무엇도 이 눈으로 빨아들이려는 것 같았다.
“……아 폐백을 드린다면서요?”
누이도 생긋 웃으며 이마에 맨 면사포의 끈 아래로 늘어진 머리카락을 자기 손으로 다듬어 올렸다.
“글쎄요, 그예 안 오시고 마셨으니까, 가서 뵈옵는 길에 폐백두 아주 드려야 하지 않아요.”
이번에는 신부 뒤에 서서 여전히 웃는 낯으로 거울 속에 있는 신부의 눈을 쏘듯이 들여다보고 섰던 신랑이 대답을 하였다.
“그러고서 오다가다 별안간에 폐백은 무슨 폐백이어요, 당초에 왜 이리 모셔오지를 못했더람.”
신부가 마음에 싸지 않은 듯이 이렇게 혼잣말처럼 한마디 하니까, 곁에 섰던 어머니가 쫓아들어온 손님들과 재껄재껄하던 말을 뚝 끊고 이리로 고개를 돌리면서,
“별소리를 다 듣겠구먼, 시집가는 년이 시부모에게 폐백 드리기를 다 싫다는 년이 어디 있단 말이냐. 눈을 감기구 큰절이나 시켰더라면 큰일날 뻔했군.”
하며 조금 꾸짖는 듯이 말을 막고 나서 계집애들을 돌아다보며,
“인제 그만해두구 거기 좀 앉히려무나. 잠깐 섰기루 우리들 시집갈 때 모양으로 가래톳이야 서랴마는…… 자, 자네두 저기 좀 앉구려.”
하며 사위를 쳐다보고 웃었다. 말이 새사위지 보기는 이태나 두고 보았지만, 어쩐지 ‘하게’가 대따라지게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아 참 우리들 시집갈 때야 어디가 꿈쩍이나 해보았나? 혼인날이 닥쳐올수록 입맛을 잃구, 가슴만 두근거리구, 집안 식구 앞에선들 얼굴이나 변변히 들어보았나요?…… 그걸 생각하면 요새 애들은, 너무 팔자들이 죽아서 지랄 발광들이에요. 아마 우리가 못해본 대신에 기를 써보려는지…….”
어머니는 누구인지를 붙들고 이런 이야기를 하고 섰다.
“그야 말씀하실 게 무에 있습니까. 세상이 바뀌었는데……”
하며, 며느리가 가로채며 호젓한 듯이 웃었다. ‘나도 학교에나 다녔다면…….’ 하는 생각이 없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에요. 너무 좋아서 보채보는 수작이랍니다. 사람이란 너무 좋으면 복받쳐나오는 웃음을 감추려고 짜증을 내어보고 싶은 법입니다.”
이번에는 오라비가 진정으로 귀엽다는 듯이 화기 만면하여 거울 속에 비친 새 부부를 나란히 들여다보면서 입을 벌렸다.
“듣기 싫어요. 인제 오빠의 그 ‘사람이란’ 하고 끌어내시는 잔소리를 안 듣게 되어서 정 말 시원해…… 하하하.”
“기껏 시집을 보내놓으니까 그따위 소리나 하구…… 그래두 내 ‘사람이란’ 소리를 좀더 듣고 시집을 갔더라면 좋았을결, 허허.”
하며 웃으면서도 어쩐지 형용할 수 없는 섭섭하고 언짢은 생각이 오라비의 마음속에 반짝 머리를 들어서 말끝이 풀리고 웃는 얼굴이 이상하게 뒤틀렸다. 이러한 감정은 신랑만을 빼놓고 그 방에 있는 사람에게 일시에 모두 옮았다. 여러 사람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는 돌아간 남편을 생각하였던지 눈물까지 핑 도는 모양이었으나, 그것을 감추느라고 애를 써서, 웃는 낯으로
“그만 앉히라니까? 좀 쉬어야지…… 우리두 좀 앉읍시다.”
하며 자기부터 앉았다.
신랑신부도 앉았다. 이때까지 신랑은, 거울을 사이에 두고 거울 밖에 섰는 자기는 거울 속에 있는 신부를 바라보고, 거울 속에 있는 자기는 거울 밖에 있는 신부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인제야 체경을 등을 지고 기역 자로 앉은 신부의 얼굴을 거울의 힘을 빌리지 않고 마주 보게 되었다. 그러나 광선의 작용으로 그러한지 신랑의 눈에는 거울 속에서 보던 얼굴이 더 화려한 것 같았다. 그래도 여러 사람의 눈을 끌면서 애를 써가며, 흘낏 마주치는 그 눈만은―마음의 빈 곳을 채우려고 무엇인지 호소하며 찾는 듯한 그 눈만은, 여전한 것을 깨달았다. 여러 사람들은 잠깐 동안 물끄럼말끄럼 바라보며 입을 닫치고 앉았다. 신부의 오라비도 어느 틈에 나가버 렸다.
신부는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고개를 숙이고 앉았다가 별안간 얼굴을 쳐들며,
“그러나저러나 폐백은 어떻게 드리는 거람?”
신부는 참 정말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수모를 불렀으니까 시키는 대로만 하려무나.”
어머니는 달래듯이 말대답을 하고 나서, 큰절이란 아주 퍼더버리고 앉는 것이니까, 두 발을 모으고 서는 것이 편하다느니, 수모에게 너무 매달리지를 말라느니 하며 절하는 법을 가르쳤다.
“이 옷을 입고 큰절이 다 무어예요. 아무렇게나 우물쭈물 해버리지…… 도무지 예식이니 무어니 하는 구살머리쩍은 그까짓 장난 없이는 못 사나!”
신부는 혼잣말처럼 또 한 번 짜증을 내어보았다.
폐백이라는 것이 그다지 어려워서 그리하는 것도 아니요, 가서 절 한 번만 하고 대추 한 줌만 받아가지고 왔으면 그만인 줄도 자기 역시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영희는 그것이 어쩐지 자기의 마음을 속이는 것 같아서 속으로는 혼자 부끄러웠다.
소위 결혼식이라는 것을 당초부터 무시하던 영희로서는, 사회와 싸우면서라도 구습과 제도에 반항하여 어디까지 자기의 주장을 세울 만한 용기가 없어서 그리하였든지, 여러 사람의 눈에 띄는 번화한 예식을 거행하여보려는 일종의 허영심을 이기지 못하여 그리하였든지, 어떻든 신식으로 예식은 하였다 하더라도, 또 다시 구식으로 폐백을 드리느니 다례를 지내느니 하는 것은, 의식을 허례라고 배척하여오니만치, 자기의 생각과 행동을 스스로 살피고 비평하는 눈이 밝고 날카로울수록 영희에게 고통이 안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영희의 생각은 이 방에 앉았는 아무도 알아줄 사람이 없었다.
“그럼 예식은 왜 했누? 신식이나 구식이나 예식은 매한가지지.”
어머니는 이렇게 핀잔을 주듯이 한마디 하였다.
“……”
어머니의 말이 딸의 생각을 잘 알고서 한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경위 있는 말이기 때문에 딸의 귀에는 찌르듯이 들렸다.
“어떻든 예식이란 그리 중대하게 볼 것은 아니지만, 필요하기야 필요한 것 이지요.”
신랑은 체경 앞에 앉은 신부를 잠깐 쳐다본 후에 눈을 장모에게로 옮기며 다시 말을 이어서,
“……하지만 다만 문제는 그러면 구식은 아주 타파하겠느냐 조금쯤만 참작을 하겠느냐는 것이지만, 제 생각 같아서는 암만해두 구식은 무의미한 일이겠어요.”
하며 동의를 구하듯이 다시 신부를 바라보았다. 신부는 잠자코 신랑을 마주 보며 방긋 웃는 듯하였으나 그것은 분명히 코웃음이었다.
신부신랑이 단둘이만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더라면 일대 논쟁이 일어났을 것이었다. 결혼식 문제가 일어났을 때에도 둘이 한참 싸운 것이지만, 지금 영희의 어머니가 한 말과 같이 ‘대체 무슨 까닭으로 신식은 의미가 있고 구식은 쓸데가 없다고 하는가. 의미가 없기로 말하면 신구식이 매한가지 아니냐.’는 것이 영희의 주장이다. 지금도 뱃속에서는 불끈하였으나 코웃음만 치고 잠자코 앉았는 것이다.
이때에 마침 나갔던 오라비가 목사와 자기 친구인 교회 사람 두 서넛을 데리고 들어왔다.
“아 여기 계신걸! 참 감사합니다.”
목사는 이때껏 찾아다녔다는 듯이 이렇게 한마디 하고 우득우득 일어서는 사람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고 신랑과는 악수를 하였다.
“선생님 저리 좀 앉으시지요. 너무 애를 쓰셔서 참 미안합니다.”
신부의 어머니는 집 안 삭구 중에 제일 독실한 신자이니만치 목사라면 선교사만은 못하더라도 어떻든 천당 가는 인도자쯤으로는 짐작하는 모양이다.
“아, 관계치 않습니다. 가는 길에 좀 찾아뵈옵고 가려고…….”
목사는 곧 갈듯이 뒤에 섰는 일행을 돌아다보더니 다시 신부에게로 향하며,
“영희씨 참 놀랐습니다. 참 웅변이시더구먼요. ……하지만 영희 씨의 의견에는 찬성 할 수 없던 데요.”
하며 목사는 지나는 말처럼 껄껄 웃었다.
“어째서요?”
“……모든 의식이 종교적 배경을 가진 습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시는 것은 그럴듯하지만 그렇다고 영희씨 말씀처럼 ‘자각 있는 사람은 모든 의식이나 관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셔서야 되겠습니까…… 더구나 예수교식까지를…….”
이것은 아까 연회석상에서 신랑이 답사를 한 뒤를 따라서, 신부도 한마디 한 것을 목사는 그때부터 입을 삐죽하고 앉았더니, 그예 여기까지 쫓아와서 짓궂이 끄집어낸 것이다.
그야 영희로 말하면 시집가는 처녀로 스물네다싯 살이나 되었으니, 나이도 찰 만치 찼다 하겠고 또 실연이라는 인생의 면하지 못할 첫째 관문을 지났으니까, 보통 여자보다는 일되었다고도 하겠지만, 책상물림의 젊은 남녀가 가질 듯한 허영심도 있을 것이요, 아직 졸업은 못하였을망정 동경여자대학 문과에까지 올라간 영희에게는 남만 한 이상도 가졌다.
그러나 영희가 피로연에서 답사 비슷한 연설을 도도히 하였다는 것은 다만 남에 없는 중뿔난 짓을 하여보리라는 단순한 허영심으로만 그리한 것이라고는 못할 까닭이 있다.
이지적 자기 비판력과 명민한 자기 반성력을 가진 영희에게 대하여 사상과 실행 사이에 틈이 번다는 것, 다시 말하면 자기가 믿는 바의 사상대로 실행하지 못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양심에 부끄러운 일이요 일종의 고통이었다. 그러면 어느 때든지 자기의 사상대로 용감하게 실행하느냐 하면, 그렇지는 못하였다. 이것이 이 여자에게 대하여는 무엇보다도 괴로운 일이지만,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하는 수 없이 다른 이치를 끌어대어서 변명이라도 하는 수밖에 없다. 자기를 변명하는 그것도 역시 그리 마음에 편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안 하면 안심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 이 여자의 병이다. 이러한 것은 피가 괄하고 성벽이 많으며 자신이 많으면서도 비상히 신경질로 생긴 사람에게 보통 있는 일이지만, 영희도 말하자면 그런 종류의 여자이다.
영희가 이번 자기 결혼에 대하여 제일 큰 걱정거리는 예식 문제였다. 이때까지의 주장대로 하면 물론 예식을 안 하는 게 옳겠지만, 그리하려면 남의 첩쟁이란 말을 달게 들을 결심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죽어도 못 될 일이었다. 그것도 첫사랑에 얼이 빠져서 미쳐 돌아다니던 3년 전만 같으면 그만한 용기는 없지 않았겠지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결혼이란 무엇인지 쓴맛 단맛 다 알고, 인제는 사랑이니 깨몽둥이니 하며 꿈속 같은 생각만 할 때가 아니라 일평생 몸을 의탁할 곳을 찾으려는, 말하자면 주판질도 다 해보고 앞뒤 경우도 다 살펴본 뒤에 하는 일이라, 그런 객기를 부리기에는 한풀이 죽었을 뿐더러, 지금 이 사나이에게 그만한 희생까지라도 돌아보지 않고 머리를 싸매고 덤비기에는 자기가 너무 아까웠다.
그러므로 신랑 편의 주장대로 마지못해 끌려가는 것처럼 내버려두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이때꼇 예식이란 쓸데없다구 입찬소리를 하고 돌아다니던 사람이, 별안간 예배당에서 목사의 딸인지 하느님의 딸인지 되어서 ‘아멘’을 불러가며 신통한 꼴을 보이는 것은, 자기가 생각을 하여보아도 얼굴이 간지러운 일이었다.
사상 문제로 사귄 S나 P나 A는, 말은 안 할망정 ‘너도 하는 수 없나 보구나? 여자란 건 허영심에는 이길 장사 없지.’ 하며 속으로 웃으려니 하는 생각을 하면 금시로 어깨가 움츠러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때껏 내가 주장하여온 것은 진리가 아닌 것은 아니다. 다만 세상과 싸워나갈 용기가 없어서 실행할 수가 없을 뿐이다. 더구나 순택군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은 순택군을 사랑하기 때문이니까, 이 경우에 자기의 주장을 희생하고 저편의 소원대로 신식 예식을 하였을 뿐이다. 이것까지를 허영심이 시키는 일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 심한 말이다……
영희는 속으로 이러한 변명을 자기에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군색한 변명을 친구들에게 묻기도 전에 제풀에 발명하기는 열없었다. 그러므로 이것저것을 생각하면 피로연회에서 아주 자기의 사상까지를 껴서 피로를 하고, 그 길에 한마디 울려두는 것이 천연할 것 같았다. 그리하여 피로연회에서 도도한 연설을 하게 된 것이었다. 참 정말 군색한 변명이었다.
그러나 지금 목사의 수작이, 조롱하는 것 같기도 하고 꾸짖는 것 같기도 한 데에는, 심사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의 변명이 군색하니만치 더욱 화가 났다.
영희는 아까 예배당에서 목사 앞에 섰던 것처럼, 면사포를 늘이고 고개를 수굿하고 선 채 얼굴이 발개지며
“글쎄요, 말이 잘못되었더라도 너무 노하시진 마십쇼.”
하고 그리 말대꾸를 하기 싫다는 듯이 입을 닫쳐버렸다.
“천만에, 노하긴 누가 노한단 말씀예요. 다만 그런 말씀을 하시면 공연히 세상에 오해만 받기 쉽단 말씀이지요.”
목사는 타이르듯이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선생님 말씀이 옳으시지요.”
신랑은 이렇게 찬성은 하면서도 영희가 어떻게 생각할까 하여 눈치를 보며 힘없이 말끝을 흐려버렸다.
2
신랑신부의 자동차가 신랑의 집에 도착하였을 때는 길어갈 대로 길어진 늦은 봄 해도 벌써 넘어가고 전등불이 막 들어왔다.
신부가 들어온다는 바람에, 집 안이 급작스레 떠들썩하여지고, 아까 피로연회에 왔던 사람 안 왔던 사람 할 것 없이 뒤범벅이 되어서, 대문간에서부터 발을 들여놓을 틈도 없이 빽빽이 늘어섰다.
신랑싣부는 예식장과 달라서 팔을 맞곁고 나란히 걸어 들어올 수도 없던지, 신랑부터 앞장을 서서 길을 헤치며 들어가는 뒤를 따라 신부의 일행도 마루 앞까지 왔다. 마루 끝에 섰던 신랑의 어머니가,
“넌 사랑으로 나가서 아버님부터 먼저 뵈고 들어오렴.”
하며 주의를 시키는 대로 신랑은 사랑으로 나가고, 신부의 일행은 건넌방으로 들여다가 앉혔다.
그러나 웬 셈인지 구데데구데데한 여편네들이 방 안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겨끔내기로 이 문 저 문에서 통을 메고 기웃거릴 뿐이요, 그 말썽 많은 폐백이라는 것은 언제나 드릴 작정인지 안팎이 다 감감하다.
되지도 못한 외주물것1 같은 것들이 들여다보며,
“이쁜걸! 게다가 학문이 많대!”
“응, 아까두, 뭐? 피로연인가 무언가 할 때에 연설을 다 했대!”
“정말? 에구머니! 하지만 그리 이쁠 건 없군! 저 계집앤 누군구?”
“신부 동생이래!”
“뭐? 에구 망측해라, 말만 한 처녀가 후배를 서 왔어?”
영희의 귀에는 아무 종작도 없이 들리는 이러한 이야기를 저희끼리 수군거리는 것이 귀에 거슬릴 때마다 영희는 괘씸도 하고 갑갑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 된 까닭인지 그럭저럭 1시간이나 된 모양인데 좀처럼 폐백 드릴 준비를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애가 말라서 들락날락하는 수모도 쫑쫑댈 뿐이요,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소식밖에는 들을 수가 없었다.
“아마 폐백을 아니 받으신다는 게로군. 그러기루서니 무슨 이야기가 저렇게도 긴구?”
이것은 수모가 속살거리는 소리다. 영희도 벌써부터 그만한 짐작은 하고 앉았다. 그러나 필경 그렇게 된다 하면 무슨 꼬락서니가 될꾸? 하는 생각을 하여보고 영희는 벌써부터 얼굴이 벌겋게 상기가 되었다. 여기로 올 때까지는 예식을 전폐하라고 주장하던 죄로 구식까지 톡톡히 다 해보는구나 하고 불쾌히 생각하였지만,
지금은 또 폐백을 못 드리게 될까 보아서 걱정이다.
“며느리를 보아오지 않고, 난봉자식이 기생첩이나 떼어 들였더란 말인가……”
영희는 이런 생각을 속으로 하고 혼자 얼굴이 푸르락붉으락하였다.
건넌방에서 등으로 벽 한 겹만 격한 사랑에서는, 중얼중얼하는 소리가 어느 때까지 끊이지를 않더니 나중에는 꽥꽥 소리지르는 것이 신부가 앉았는 건넌방에까지 커다랗게 들린다. 수모는 참다못하여 ,
“어디 내가 좀 나가봐야!”
하며 발딱 일어나서 출랑거리며 또 나갔다. 사랑 편은 다시 잠잠하고 안에서들만 여전히 법석이다. 부엌에서는 무엇을 차리는지 한참 부산한 모양.
……조금 있더니 누구인지 사랑에서 황황히 들어와서 수군수군하는 기척이 난다. 주인마님이 뒤따라나갔다. 아마 영감님을 달래려는 모양이다. 무어라 하는 소리인지 주인마님의 소곤소곤 하는 소리만 나는 것 같다.
신부는 별로 낭패 될 것은 없으나, 아무개 집 새아씨가 폐백을 안 드렸다는 것과 달라서 못 드렸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실없이 심사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별안간 우당퉁탕하는 미닫이 여는 소리가 사랑에서 난다. 안손님은 이때껏 재껄대던 소리를 뚝 그치고 사랑 쪽으로 귀를 기울이며 물끄럼말끄럼들 서로 쳐다보았다. 영희도 숨을 죽이고 동정만 살폈다.
“쾅!”
하는 마루를 디디는 소리가 조용한 밤을 깨뜨렸다.
“……옛, 망한 놈들, 조상두 애비두 모르고, 제 집구석을 내버리고, 호, 호텔이 다 무어야! 옛, 그리구 집안이, 아, 아니 망해!”
막걸리 동이나 없앤 거센 목소리다. 아마 이것이 시아버지의 목소린가 보다. 손님들은 무슨 구경이나 난 듯이 우우 뜰로 내려가 사랑문 밑에서 기웃거린다. 또 한참 잠잠하고 사랑 뜰에서 무어라고 수군수군하는 소리가 나더니, 인력거를 불러오라는 앳된 소리와 ‘고만두어 ! 고만두어 !’ 하는 거센 소리가 엇먹어 났다.
……잠깐 잠잠해졌다. 그예 영감은 가고 만 모양이다. 구경을 나갔던 사람들은 웬 셈인지 영문도 몰라서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여러 손님들에게 옹위가 되어 들어온 시어머니는 아랫입술을 악물고 마루 끝에 걸어앉는다.
“……그것두 무슨 산소 탓이지 그저 트집만 잡으려구 판을 차리는 성미가 무슨 부어 터져 죽을 성미야…… 신식으로 하였든, 호텔에 가서 자든, 젊은것들의 일생의 행락이니, 저희끼리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으면 고만이지…… 한 살 두 살 먹은 어린애람…… 어떻든 자기 할 도리만 차려서 이리이리 하라고만 하였으면 채례²를 지내든 폐백을 드리든 할 것을 이게 무슨 꼬락서니람.”
영감을 붙들려다 못하고 지쳐서 가는 대로 내버려두었으나, 난가가 된 이 모양을 어떻게 조처해야 좋을지 민망하기도 하고, 또 무어라고 손님들에게 변명을 하여야 좋을지 몰라서 두서를 차리지 못하면서도 치받쳐 올라오는 분을 참지 못하여 한바탕 푸념을 시작한다.
“그렇구말구요.”
“그야 구식 양반은 모두 다 못마땅해하시는 것도 괴이치 않지만 너무 심하세요.”
누구들인지 이렇게 위로를 하며 연해 ‘그렇구말구요.’ ‘그렇다 뿐예요.’ 하는 소리가 젊은 여자의 입에서 장단을 맞추어서 나온다. 신부도 ‘그렇구말구요.’ 소리가 목줄띠까지 나오다 말았다.
시어머니 될 사람을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지만, 영희는 벌써 선악을 알아차렸다. 지금 하는 말을 들으면 얼굴이나 목소리로 짐작한 자기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유쾌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막연하게 안심이 되는 것 같아서 분한 생각도 풀리는 것 같았다.
신랑 형제는 대문 밖까지 아버지를 전송하고 들어와서 뜰 한구석에서 또 한참 수군거리더니: 아우만 전송을 가는지 모자를 쓰고 나가버렸다.
어쩐지 집안이 수성수성하여 손님까지 어색한 듯이 별로 입을 벌리려는 사람도 없이 얼빠진 것같이 멀거니들 앉았다.
축대 위에 우두커니 섰던 신랑은 어머니 앞으로 오더니,
“어서 올라오시지요…… 되어가는 대로 하는 수밖에…… 하여간 너무 늦기 전에 우리는 가야 할 텐데……”
하며 자기부터 마루 위로 올라와서 열어젖뜨렸던 건넌방 문을 연해 기웃거리며 서성서성하였다. 신랑은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하여야 좋을지도 모르거니와, 이러한 광경이 그리 불쾌할 것도 없고 걱정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다만 신부에게 무어라고 변명을 해야 좋을지 그것이 무엇보다도 난처하고 열없는 일 같았다.
수모는 신부 앞에 앉아서 하는 거동만 보다가, 발딱 일어나서 마루로 나오더니 마님의 귀에다 입을 대고
“어떻게 할까요. 신부는 어디로 가시나요?”
“응, 무어든지 먹어야 가지…… 어서 신부상부터 차리렴.”
시어머니는 부산히들 상을 차리는 것을 건너다보며 한마디 하고 올라와서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신랑도 인제야 어머니를 따라 들어갔다.
“어서 앉아라, 앉아. 좀 늦었지만 시장할 테니 무어라도 마시고 가거라. 너의 시아버진지 하시는 이는 공연히 객기가 나셔서 가셨지만, 네게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다. 어떻게 알지 말고 안심하고 앉았거라.”
시어머니는 진정으로 가엾은 듯이 이렇게 신부를 위로하고 나서 사돈아씨를 건너다보며 ,
“댁에 가건 어머니께, 불안하지만 얼마나 섭섭하시냐고 하시구 시아버지 되시는 이가 급한 볼일이 계셔서 급작스레 시골로 다시 떠나시느라고 폐백을 물려받게 되었다고 말씀해주슈.”
하며 모두들 서 있는 게 미안하다는 듯이 “고만 앉아라.” 하고 나가버렸다. 이 시어머니란 이는 서울서 자라난 이인 만치 앞뒤가 휘동그랗다.
시어머니가 나간 뒤에 신부 일행이며 수모까지 앉았으나, 신랑은 무슨 말을 할 듯 할 듯하며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찌르고 윗목에서 여전히 빙빙 돌아다니다가,
“퍽들 곤하실걸요.”
하며 윗목 서서 아랫목을 내려다보았다. 미안하다는 자기의 심중을 무어라고 발표를 하여야 좋을지 몰라서 애들 ‘쓰다가, 겨우 말끝을 붙들었으나, 그다음을 잇댈 말을 얻지 못하여 또다시 어색한 듯이 벙벙히 섰다.
“아 참 오늘은 의외에 장하였어…… 회사의 K전무도 오고 총독부에서는 H과장두 왔더군…….”
별안간 무슨 생각이 났던지 신랑이 불쑥 이런 소리를 하였다.
이 사람은 올 봄에 일본에서 공과대학을 졸업한 뒤에 나오는 길로, 어떤 일본 사람이 경영하는 만선건물주식회사(滿鮮建物株式會社)의 전속한 기사(技師)가 되는 동시에, 총독부 토목과(土木科)의 촉탁을 얻어 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전무 취체역이니 과장이니 하는 것은 자기가 근무하는 데의 상전네들이 왔더란 말이다.
영희는 역시 잠자코 앉았으나 회사의 전무 취체역이나 토목과 장이 왔다는 것이 그리 재미없고 구석 없는 말처럼 들려서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P후작은 오늘 마침 ○○회에 충회가 있어서 못 온다고, 비서를 대행을 시켜 보냈더군요.¨
하며 또 한 번 신부의 눈치를 살피려는 듯이 영희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P후작이란 말에 수모는 귀가 반짝 띄었던지, 프록코트를 입고 비스듬히 선 신랑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신부의 동생은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앉았다가 옆에 앉았는 동무를 꾹 찌르며,
“얘, P후작이 누구냐?”
“왜 그 만물상점이니 회깟³이니 하구 놀리는 유명한 P후작이 없니? 회장을 한 다스인가 두 다스인가 가졌다는…….”
“무어? 만물상점? 해해해.”
두 계집애가 소곤거리며 입을 막고 깔깔대는 바람에 신부도 생긋하였다.
“왜 만물상점은요. 그래도 조선서는 현대에 일류 명사랍니다.”
하며 신랑도 허허허 웃다가 아주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하여두리라는 듯이,
“……참 전보가 한 백여 장 왔더군요.” 하며 입을 닫쳤다.
이때의 영희 앞에 선 신랑의 태도는, 마치 전무 취체역이나 지배인 앞에서 보고를 하는 비서역 같았다. 좀더 속된 비유를 허락한다면, 여왕 앞에 국궁하고 섰는 궁내 대신이라는 것이 그 두 편의 복색으로 보아서 가장 적절할 것 같았다.
영희는 전보가 많이 왔다는 말을 듣고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앉았다가, 무슨 생각이 났던지,
“그 전보를 지금 여기 가져 왔어요?”
“가져왔겠지요. 좀 보시려우?”
하며 신랑은 하인을 불러서 사랑에. 나가서 전보를 들여오라고 분부를 하였다.
신랑은 비단 남보자에 꼭꼭 싼 조그만 보퉁이를 받아서 자기 손으로 풀며 앉더니 전보 한 뭉치를 내서 영희 앞에 놓았다. 계집애들은 머리를 맞대고, 신부의 동생의 손으로 한 장씩 넘기는 것을 일일이 이름을 불러가며 들여다보았다. 알 사람 모를 사람 아닌게 아니라 꽤 많았다. 영희는 눈을 깜작거리며 골똘히 내려다보고 앉았다가 한 중턱쯤 내려가서 홍수철이라는 이름을 듣더니, 별안간 “응?” 하고 그 전보를 자기 손으로 누르고 성명이며 본문을 다시 한 번 보고 고개를 들었다.
이것을 옆에서 보고 앉았던 신랑은,
“아, 참, 홍군도 전보를 하였더군.”
하며 신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홍수철이라는 사람은 영희의 일생에 잊히지 못할 사람의 동생이었다.
3
홍수철의 축하 전보가 그다지 반가워서 영희가 그렇게 유심히 찾아내어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다.
청첩을 때일 때에 수철이에게도 보낸 것을 생각하고 혹시 인사치레로라도 전보를 하였나 하는 호기심으로 찾아보았을 따름이요, 또 전보를 한 사람도 보통 하는 사교상 의미로 한 것일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나 영희는 그 전보를 보고 가슴이 선뜻하면서 무슨 납덩어리 같은 것이 뱃속에 가라앉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축 가례’라고 보통 쓰는 대로 하였고, 혹은 ‘기쁜 이날을 비음’이라고 한 것도 있건마는 수철의 전보는 별다르게,
‘행복의 첫걸음을 튼튼히 디디시옵’이라고 일본말로 기다랗게 쓴 것이 무슨 뜻이 있는 것 같았다. 진실한 교인인 수철이가 실없는 수작으로나 혹은 비웃는 뜻으로 그런 것이 아닐 것은 영희도 짐작은 하지만 어쩐지 보고 볼수록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오금을 박는 것 같기도 하였다.
이태 전에 언젠지 수철이더러,
“나의 예술적 생명을 도와주겠다는 열심을 가지고, 모든 것을 희생하고라도 쫓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혹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결혼 생활이란 단념하였습니다. 물론 그런 남자도 없을 것이요…….”
라고 이야기할 제,
‘자기를 믿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겠지요.’ 하며 똑바로 쏘듯이 쳐다보던 그 눈을 지금 영희는 다시 머릿속에 그려보지 않을 수 없다.
‘자기를 믿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고 한 수철이의 예언이 들어 맞은 오늘날에,
‘행복의 첫걸음을 튼튼히 디디시옵’이라는 축사를 보낸 것은 자기 딴은 아무 의미 없이 한 말인지 모르지만 영희에게는 또 다른 어떠한 예상을 가지고 한 말같이 생각되었다.
‘더구나 행복의 첫걸음이라 하였다. 그러나 나는 행복을 위하여 결혼한 것은 아니다. 나의 행복은 5년 전에 벌써 나를 걷어차고 달아났다. 물론 순전히 이기적 동기로 결혼을 하기는 하였지만 결단코 행복이 있으리라고 한 것은 아니다. 사랑의 날개가 돋칠 때에 나의 행복에는 벌써 좀이 먹었다. 그러나 좀먹은 행복이 다른 사랑으로 회복될 수는 없다. 다만 예술의 힘에 매달릴 지경이면 어떠한 정도까지는 회복되겠지만 그러나 예술이 밥은 먹여주지 않는다. 하니까 지금이라도 부모나 형제가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 하루 세 끼씩 먹여준다 하면 결혼할 필요는 없어지겠지. 저편의 사랑을 받아주는 것은 행복은 아니라도 유쾌한 일이요, 또한 신성한 의무이다. 그러나 사랑을 받아주는 보수로 밥을 먹여 달라는 것은 이편의 권리다. 조금도 구구한 일도 아니려니와 불유쾌할 것도 없다. 물질의 보수가 있는 사랑을 받고서 정신적 보수가 있는 예술을 이편에서 사랑하는 것은 그다지 행복이라고는 못할지 모르지만 아무 모순도 없거니와 불유쾌한 일도 아니다. 이것이 아마 제일 현명한 인생의 길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행복의 첫걸음을 튼튼히 디디라는 등 결혼생활이 행복스러우라는 둥 하는 수작은 주제넘은 소리 같기도 하였다.
‘그러나 예술까지가 자기를 걷어차고 돌보아주지 않는다면 그때에는 두 가지 길밖에 없을 것이다. 자살이나 그렇지 않으면 사랑의 대상을 사람에게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 잠이 들어 있는 피가 깨어난 때의 말이다. 예술일지라도 피가 잠이 들어서야 예술다운 예술을 낳을 수는 없겠지만 예술에도 온전한 생명을 바칠 수가 없고, 사랑할 사람을 구하려는 기력조차 없다 하면 죽는 수밖에는 다시 길이 없을 것은 삔한 수작이 아닌가.’
영희는 이런 생각을 머릿속으로 이어나가다가 깜짝 놀라며 신랑을 쳐다보았다.
신랑은 마주 쳐다보며 빙긋 웃었다. 신부도 의미 없이 따라 웃었다. 그러나 신랑의 눈에는 무슨 불안을 가지고 신부의 눈치를 살펴보려는 기색이 역력히 보였다.
그 순간에 영희의 머리에는 먼 날의 기억에 남아 있는 수철의 형의 방그레하는 상과 머리가 기다랗게 자라고 눈이 옴폭 파인 해쓱한 상이 겨끔내기로 불똥같이 떠올랐다 꺼졌다 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영희가 순택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요, 또 자기의 남편으로 섬기는 것을 조금치라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때는 도리어 감사한 생각이 불같이 일어날 때도 있다. 그러나 감사하다는 생각이 일어날 때에는 반드시 순텍이가 불쌍하다 가엾다는 생각이 뒤를 대어서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므로 그 사랑은, 감사하다 가엾다 불쌍하다는 감정에서 나오는 사랑이요, 가슴에서 솟아나는 뼈에서 우러나오는 피의 방울방울이끓어오르는 사랑은 아니었다. 영희의 영혼은 순택이의 영혼 속에서 살 수가 있어도, 영희의 영혼 속에 순택이의 영혼이 싸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대신에 순택이의 세계에는 영희가 들어갈 수 있지만 영희의 세계에는 순택이가 한 발자국도 들여놓을 수가 없다. 영희에게는 자기밖에는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자기만 혼자 낙을 누릴 세계가 있다. 그것은 곧 예술의 세계이다. 하기 때문에 영희는 결혼 생활로서 채울 수 없는 불만족을 자기의 세계 ―예술의 세계 ―에서 채울 수가 있지만, 순택 이는 그러할 수는 없다. 순택이에게 대한 영희는 자기의 전체이다. 영희가 없고는 자기도 없고 영희가 없는 데에는 다른 세계를 또다시 생각할 수도 없다. 여기에서 영희는 순택이를 가엾다고 동정하고 고맙게 생각하며 또한 이것이 순택이에게 끌리는 첫째 이유이다. 만일 순택이가 영희의 모든 시험에 순종하고 거의 모욕에 가까운 짓궂은 농락을 잠자코 참을 뿐 아니라, 그러하면 그럴수록 열렬한 애정을 보이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만일에 순택이의 가정이 넉넉지 못하다거나 순택이의 사회적 지체가 보잘것 없거나 하였더라면, 영희는 어떠한 젊은 문학자나 화가나 그렇지 않으면 음악가 같은 종류의 청년을 골랐을 것이다. 그러나 순택이의 열심은 영희를 마침내 정복하고야 말았다. 그야 영희의 생각대로 말하면 자기가 순택이에게 정복된 것이 아니라 순택이가 자기에게 정복되어서, 영희는 순택에게 대하여는 절대의 패권을 가진 왕자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행복이라는 것이 감격에 넘치는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 할 지경이면 누가 승리를 하고 누가 정복이 되었든지 간에 영희는 결혼 생활에서 행복의 앞잡이인 감격을 느낄 수 없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순택이와 결혼을 하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설사 예술의 친구를 택하였다 하더라도 취미는 맞을지 모르나 감격에 채운 생활은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순택이의 탓도 아니요 자기의 죄도 아닌 것은 영희도 안다. 만일 탓을 한다면 실연이라는 모진 서리뿐이다.
그러나 영희 자신은 자기의 청춘이 영원히 시들어버리고 말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입으로는 ‘연애란 일생에 한 번뿐이지 두번씩은 없는 것이다’라 하기도 하고,
“누가 행복을 얻으려고 결혼을 했나!”
하며 변명을 하면서도 순택 이와의 결혼에서 무엇이든지 얻으려는 희망이나 예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때는 예술을 위하여 결혼을 희생하리라는 생각이 없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예술 이외에는 모든 것이 심상하고 시들하였다. 그러나 자기 역시 이렇다고 꼭 집어낼 수 없는, 말하자면 소증⁴ 난 사람처럼 무엇을 먹고 싶다는 분명한 식욕이 동하는 게 아니건만 공연히 허전허전하여 못 견디겠다는 것 같은 욕망이며, 남에게 분명히 호소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시원스럽게 눈물이라도 쏟아볼 수 없는 적막하고 애달픈 마음을 예술의 힘으로만은 위로할 수 없고 채울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시집가려는 사춘기의 처녀에게 보통 볼 수 있는 감정과는 다른 것이다. 그야 영희에게 생리적 관계로 이러한 구슬픈 생각이나 지향할 수 없는 감정이 없지도 않지만 다만 성욕의 충동이라는 단순한 이유가 시급히 결혼 생활을 하도록 영희를 괴롭게 한 것은 아니었다.
영희에게는 예술에서도 얻을 수 없고 진리에서도 얻을 수 없으며 신앙에서도 얻을 수 없고 그렇다고 단순한 성욕의 만족으로만으로도 얻을 수 없는 그 무엇에 주렸거나, 혹은 그 무엇이 있다가 없어진 마음속의 빈 곳을 채우려거나, 또는 있다가 없어지기 때문에 생긴 쓰린 상처를 고칠 만한 무엇인지를 얻으려는 고통이 있었다.
이것은 자기를 사랑하여주던 운명 이 인생에게 늘 높은 절정까지 치받쳐주었다가, 아무 기별도 없이 별안간에 땅 위로 뚝 떨어뜨려놓은 것을 원망하면서도 또다시 한 번 치받쳐주기를 기다리며 에원하는 고통이다. 그러나 영희는 자기의 예술이 그렇게 하여주리라고 믿고 바라면서도, 그 믿으며 바라는 바가 헛되지나 않을까 하는 근심과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여, 다시 운명과 인간에 대하여 한 번 더 인생의 상상봉까지 치받쳐달라고 애원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 영희의 한층 더한 새로운 고통이 있는 것이다.
혹시는 정신을 가다듬어 밤 가는 줄도 모르고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리거나, 네모진 구멍 에다가 봇대를 놀리고 앉았다가도,
“……당신은 참 정말 조선의 신흥 예술을 위하여 일생을 바치시오. 조선이 가진 단 하나의 보배는 아마 당신이겠지요. ‘이겠지요’가 아니라, 확실히 그러하리라고 나는 단언합니다. 그것은 당신이 장래에 남의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되리라는 예언만큼은 확실한 일이겠지요.” 라고 격려를 하여주기도 하고.
“……당신의 예술이 아침 햇발처럼 솟아오를 때, 세계는 얼마나 놀랄까요…… 아, 나는 그날을 기다립니다. 그날의 행복을 믿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그 행복을 나눌 권리가 있을까요.” 라고 어린아이 수작 같은 소리를 열심히 한 발 두 발씩 적어 보내며 칭찬을 하여주던 5년 전의 그―수철이의 형인 홍수삼―의 말이 문득 생각날 때는,
‘내가 이건 해서 무엇 하누? 누구더러 보아달라려구 지금 이걸 끄적거리누? 예슬이란 무어냐? 인생이란 무어냐? 무슨 까닭에 이 신산한 세상을 아직도 몇십 년을 질질 끌려가며 살려는구?’ 하는 생각이 걷잡을 새도 없이 복받쳐 올라와서 무심중간에 붓대를 들었던 손가락을 꽉 깨물어볼 때도 있었다.
그러면 영희는 예술도 세상도 사람도 다 던져버리고 자기 자신까지 그림자를 감추겠느냐 하면 그러기에는 너무도 용기가 부족하였다. 귀찮다 살 수 없다 하면서도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귀찮다 싫다 하는 것은 역시 살뜰히 구하고 원하기 때문이다. 자살이란 것은 그 사람의 요구와 희망과 장기가 편벽된 사람만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 편벽된다는 말은 많지 못하다는 뜻이니 한길만을 파다가 그 길이 막히면 목숨을 끊는 수밖에 없을 것이 아닌가. 재화만을 바라던 사람이 그것을 얻지 못하면 멱이라도 딸 수밖에 없고 사랑만을 구하다가 그것을 달하지 못하면 쥐 잡는 약이라도 먹을 것이요, 예술만을 자기의 생명으로 알던 사람이 이에서 실패하면 한강 철교로라도 나가지 않으면 안심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영희는 하나로만 만족할 여자는 아니다. 사랑을 원하여안 되면 예술의 길을 찾을 수 있고, 예술이 만족할 수 없다면 다시 사랑의 품을 찾으려 하며, 이것저것 다 안 되면 금전에라도 매달릴 것이다. 만일 모든 길에서 모조리 실패를 하였다 하면 혹은 영희 자신의 말마따나 자살하는 수밖에 없었겠지만, 아직 첫째 시험에 실패하였기로서니 그렇게 쉽사리 막다른 골목에 다닥뜨릴 리는 없었다.
다만 지난 일을 다시금 생각하여볼 때 그때의 행복과 기쁨이 그립고 그때의 행복을 잃은 것을 슬퍼할 따름이다. 그러나 이 슬픔은 받던 사랑이 스러진 뒤의 슬픔인 동시에 남을 사랑하여보지 못한 데에서 일어나는 애원이었다. 실연한 뒤에 예술에만 만족할 수 없고 이성을 그립게 생각하며 결혼을 꿈꾸게 된 때의 영희의 나이는 사랑을 받는 기쁨보다는 자기가 남을 사랑하는 기쁨이 한충 더 행복스러운 줄을 깨달을 만한 때였다.
그리하여 6년 전에 영희를 땅에 내던진 운명은 이번에는 순택이를 영희에 게 뽑아주었다.
그러나 지금 영희는 순택이와 만난 지 이태 만에 결혼식을 거행한 이 자리에서 또다시 예술을 찾고 앉았다.
‘행복을 구하여서 결혼을 한 것은 아니다. 나의 행복은 예술에 있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랑을 받아주는 유쾌한 의무를 다한 보수로 밥을 먹여달라’
고 하며 앉았다. 그러나 이것이 영희로서는 정직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실상 말하면 영희가 순택이하고 만난 뒤로 이날 이때까지 순택이를 시험하면서도 그의 비위를 거슬러본 적은 없었다. 그의 요구대로 어떠한 정도까지는 만족을 주었다. 키스도 하여주었다. 포응도 하여주었다. 밤이 이슥토록 이야기도 하였다. 여행도 같이 하였다. 서로 떨어져 있으면 만단정화를 그린 편지도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천만 번의 키스로 남자의 몸을 뻘겋게 달여놓았더라도 그것은 역시 의식적(意識的)으로 한 것이었다. 아무리 애정에 타고 가슴이 두근거릴 때에라도 일흔두 번이나 일흔세 번에서 얼마 지나지 않는 맥박이 뛸 뿐이었다.
그러나 순택이와 점점 가까워갈수록 순택이를 비평하여보게 되는 것이 영희에게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3년 전의 그 사람하고 비교하여보고서 하는 비평이요, 또 지금까지 영희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그 사람의 모든 점을 아름답고 옳은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순택이를 그 사람에게다가 비교하려는 생각도 나는 것이요, 유심히 순택이의 결점이 눈에 뜨이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때든지 그러한 것은 아니다. 피차의 열정이 높지 않거나 그렇지 않으면 한참 긴장하였던 사랑에 피로를 느낀 뒤에 일어나는 것이었다.
애정을 느껴서 사랑의 표시를 주고받고 하다가도 지나치는 말 한마디에 불쑥 홍수삼의 그림자가 머리에 떠올라와서, 눈이 부시게 머릿속을 쨍쨍히 비치는 것 같을 때에는 수삼이에게 대한 의리가 안되었다는 생각까지는 일어나지 않아도, 말할 수 없는 가엾은 생각이 나서 맥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랑의 피로를 느껴서 아무 흥미를 느끼지 않게 될 때에는 반동적으로 수삼이에게 대한 애욕이 불같이 한층 더 일어났다. 이러한 때는 순택이의 대수롭지 않은 말땀이나 결음걸이 하나를 보고도,
“요새 매우 말솜씨가 느셨구려!”
하며 짓궂이 웃었다.
“참 걸음걸이도 맵시 있는걸요!”
하며 농담처럼 천연덕스럽게 놀리면서 자기만은 수삼이의 재치있는 말솜씨나 연연하고 날씬한 체격을 머리로 그리며 혼자 즐겨하였다. 그러나,
‘왜 내가 이렇게도 순결한 마음이 없어졌누?’ 하는 생각을 할 때에는 무슨 죄나 지은 것 같아서 순택이에게 대하여 미안하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 가엾어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떻든지 오늘 결혼식을 거행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장래의 행복을 기다리는 것이 사실이니만치 행복하리라고 결혼한 것이 아니라 하여 예술로 그 부족한 점을 채우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다. 또 그리고 연애는 일생에 한 번밖에는 없다 하면서도 연애의 힘과 행복을 꿈꾸는 것도 사실이다. 그중에 어떠한 것이 영희의 길이 되고 안 될까는 영희의 피가 얼마나 깨겠느냐는 문제로 결정될 것이다.
4
어젯밤에 그럭저럭 하여 10시가 넘은 뒤에 호텔로 와서도 2시를 치는 것을 듣고 겨우 잠이 들기 때문에 오늘 식전에는 사지가 느른하고 곤하지 않은 게 아니지만 영희는 해가 돋을까 말까 할 때에 벌써 일어나서 부스럭 거리며 치장을 차리기 시작하였다.
순택이도 얼마 안 되어서 부스스 일어나 앉더니,
“지금 몇 시길래 왜 이렇게 부지런해?”
하며 경대 앞에 앉았는 영희를 건너다보았다. 잠이 깊이 못 들었던지 연해 선하품만 하고 앉았다.
“그럼 어떡해요. 아침 차로 떠나려면 일찍이 서둘러도 될까 말까 한데 이 집 저 집 다녀가진 않나요!”
영희는 머리를 만적거리던 손을 잠깐 멈추고 엷게 화장한 좀 보삭보삭한 얼굴을 이리로 돌리며 웃어 보였다.
“글쎄 오늘 떠나는 건 좋겠지만, 대관절 어디로 간담? 몇 시 차로?”
“그건 내게 맡기시지 않았어요?”
“허허허, 아무리 맡겼기루 갈 데를 정하는 것만 맡겼지 누가 새끼에 맨 돌멩 이처럼 끌고 다니라구 내 몸뚱어리까지 맡겼나 봬!”
“하하하…… 글쎄 온 밤새도록 조르시구 그래도 부족해서 첫새벽부터 이러슈. 세 시간만 참으면 금세루 아실 걸 가지구, 내 참 참을성 두 없으슈.”
영희는 어리광 비슷하게 이렇게 달래듯이 말막음을 하고 일어나서 남편의 양복을 주섬주섬 집어다가 이불 위에 차곡차곡 놓았다.
순택이는 영희의 하는 거동을 손 하나 놀리는 조그만 곡선까지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눈으로 쫓으며 앉았다가,
‘이 계집애가 인제는 내 계집으로 아무 꺼릴 것 없이 잗다란 시중까지 들어주는구나.’
하는 생각을 할 제 새삼스럽게 반갑고 기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거기에는 바라고 바라던 소원이 불시에 성취가 되어서 마음에 든든하기도 하며 그 성공이 너무도 분명 한 일이기 때문에 도리어 신기하고 의심스러운 것 같은 심정도 섞였었다.
“어서 그만 일어나세요. 벌써 6시가 넘었는데.”
영희가 머리치장을 마치고 재촉을 하면서 남편의 곁으로 와 섰으니까 순택 이는 이때까지 느껴보지 못한 은근한 애정이 일어나서 영희의 손을 끌어 앉히고 이마로 떨어진 머리카락을 살금살금 쓰다듬어 올려주면서 ,
“웬 고집을 그리 부려요, 둘이 가면서 서로 의논을 해서 가는 게 좋지 않아? 어디루 갈꾸? 동래온천으로 갈까? 일본까지 갈까? 그렇지 않으면 평양으로 안동현으로 봉천까지 휘돌아 올까?”
생글생글 웃고 앉았는 영휘의 얼굴을 귀여워 못 견디겠다는 듯이 코가 맞닿도록 들여다보며 주워섬기고 앉았다.
“아무려나 하시구려.”
하며 영희는 웃었다.
“아 그럼 좋은 데 있군. 저 석왕사루 가지, 삼방에 들러서…… 금강산은 아직 이르기두 하구 틈두 없지만.”
“글쎄, 이번 신혼여행엔 내게 절대로 복종하시겠다면서 공연히 왜 이렇게 성화세요. 정거장에만 나가시면 금세로 아실 것을! 잠사코 나 하는 것만 보시구 계세요. 더 재미있을 테니…….”
“그럼 몇 시에 떠날 테야?”
“그것두 모르지!”
“모르구 어떻게 간담. 그럼 그런 명령엔 나는 아니 복종할 테야, 허허허…….”
“쓸데없는 잔소리 그만하고 어서 입으세요. 이것두 명령이에요. 일어 ―낫.”
영희는 장교가 호령을 부르듯이 일본말로 ‘일어나!’를 우습게 장단을 붙여서 부르고 깔깔 웃으며 옆방으로 들어갔다.
순택이는 담배를 피워 물고 여전히 그대로 앉아서 어디로 갔으면 좋을까 하며 이리저리 생각을 하다가 시계를 다시 한 번 집어보고 벌떡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을 입고 세숫간으로 갔다.
영희는 벌써 옷을 다 갈아입고 나오며,
“인제야? 암만해두 오늘 못 떠나나 보군…… 정하면 나 혼자 가지, 하하하…….”
“무슨 덜미를 잡는 일이 있나?”
“무엇이든지 하구 싶은 때에 해야지, 난 생각만 나면 발밑에서 새가 날아가듯이 후닥뚝닥 해버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어느 때까지 마음에 꺼림해서 말라죽어요.”
“신혼여행쯤 아무 때면 못하나.”
하며 순택이는 수건질을 하면서 초인종을 눌렀다.
영희가 지금 시급하게 생각난 대로 하고 싶다는 것은 신혼여행이 그다지 중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한번 꼭 가보리라고 벼르던 데를 시급히 가고 싶다는 말이다. 그러나 순택이는 단순히 신혼여행 이 시급히 하고 싶다는 뜻으로만 들었다.
순택이는 들어오는 보이더러 부산 급행이 몇 시에 있느냐고 물어보고 차(茶)를 가져오라고 명하였다. 저편 침대 위에다가 가방을 올려놓고 짐을 꾸려넣으며 섰던 영희는 부산 차 시간을 묻는데에 눈이 휘둥그레서 휙 돌아다보며 무어라고 입을 벌리려다가 다시 돌려 생각을 하고,
“그럴 게 아니라 저 『여헹 안내』를 좀 가져오구려.”
하며 보이를 쳐다보았다. 보이는,
“시간표일 지경이면 여기두 있습니다.” 하며 호주머니에서 하얀 종잇조각을 꺼내서 영희에게 주고 나갔다.
“그거 무얼 그렇게 뒤적거려? 부산 차 시간만 알았으면 고만이지. 이건 혼인한 첫날부터 이래서야, 암만해두 고사를 지내든지 해야 하겠군! 허…….”
“누가 부산 간다구요!”
영희는 보던 종이를 놓으며 무슨 생각을 하듯이 한눈을 판다.
“그럼 어딜?”
순택이는 또 물었다.
영희는 여기에는 대답하지 않고 잠깐 앉았다가,
“두 집이나 다녀가면 늦겠군. 어서 자동차를 준비하라구 하세요.”
하며 자기 손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보이가 가져온 차를 마주 앉아서 마시면서도 두 사람은 제각각 다른 생각을 하고 앉았다. 영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머리를 수굿하고 앉아서 눈만 깜작깜작하고 있다. 순택이는
'이 계집애가 무슨 음모를 꾸미누?’
하며 영희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앉았다가,
“그럴 게 아니라 우선 동래 온천으로 가지?”
“실없는 말이 아니에요. 정말 나 하는 대로 계셔요.”
영희는 핀잔을 주듯이 이렇게 한마디 하고 또다시 무슨 생각을 하다가,
“좀 오래 될지도 모르니까 옷은 많이 가지고 가는 게 좋겠지! 댁에 가선 무어 무얼 가지구 갈지 아주 생각을 해두세요.”
“이건 참 도깨비한테 홀린 수작 같구먼, 허허허. 그러나 그렇게 오래는 안 될걸, 회사두 있구 하니까…….”
“2주일쯤은 상관없겠지?”
“2주일 템이?”
“그럼 한 열흘…….”
“글쎄 되어가는 대루 하지.”
영희는 이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서 우산을 들고 나섰다. 순택이도 따라 일어섰다. 그예 순택이가 항복하고 말았다.
호텔에서 떠날 때는 이래저래 7시 반이나 되었다. 여간 들몰아다니지 않으면 차 시간을 댈지 몰라 영희는 조바심이 나서 자동차 속에서도 연해 연방 팔뚝에 감은 시계만 들여다본다.
“아직 아무 데도 아침밥이 안 되었을 테니 여간하건 차 속에서 무어든지 먹지요, 네?”
“몇 시에 떠나겠길래?”
“……”
그동안에 벌써 자동차는 순택의 집에 들어가는 동구에 와서 섰다. 또 어린아이들이 우우 모여든다.
정말 조선식으로 삼일을 치른다 하면 이맘때쯤은 신랑신부의 집에 문안 하인이 오락가락할 때밖에 안 되었다.
불쑥 달려드는 신랑신부를 맞은 집안에서는 어둔데 홍두깨 내밀기다. 사랑에서는 아직도 오밤중이요, 안에서들도 아직 방두 치우지 않고 끼리끼리 모여 앉아서 어제 이야기 오늘 할 이야기 신부 이야기 신랑 이야기로 유산태평이다. 젊은이들은 부산히 무 엇을 차리는 모양이나 시어머니는 아직 세수도 안 했다.
“이게 웬일이냐. 그러지 않아도 둘째애더러 어서 좀 가보라구 하려구 몇 번을 깨워야 일어나야지.”
방에서 나와 맞는 시어머니는 이렇게 한마디 하고 나서 절을 받았다.
"아침에 어딜 갈 데가 있어서 이렇게 좀 일찍 이동하였지요.”
순택이는 영희가 절을 하는 옆에 서서 한마디 하였다.
“어데를 간단 말이냐…… 아버지께 가려구?”
"아―니오…….”
"그럼 서울 안에서?”
“……”
“어떻든 가만있거라.”
하며 어머니는 영희를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누님 절 받으슈.”
하며 절을 시켰다. 영희는 오십쯤 된 시커멓게 건장스러운 부인 앞에 앉았다 일어섰다.
"또, 이 마님 뵈어라.”
영희는 한 번 더 앉았다 일어섰다.
“또, 저 마님께…….”
영희는 네번째 같은 동작을 하였다.
“그다음엔 저기 저 마님 !”
이번이 다섯번째다. 영희는 일어서서 눈을 내리깔고, ‘또 인젠 없나?’ 하고 방 안을 살짝 돌려다보았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깜짝 놀란 듯이,
“아 참, 자네두 절 받게.”
‘또?’
하며 영희도 속으로 깜짝 놀랐다. 이렇게 하면 시어머니한테한 것까지 도합이 여섯 번이다. 그러나 두세 번까지는 잠자코 받아주기 때문에 그래도 손쉬웠지만 차차 갈수록 힘은 이편이 들건만,
“내야 무슨 절은 다―”
하며 장황히 늘어놓으며 승강을 한다. 그러면 아주 받지를 않고 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마지못해서 절하는 사람의 생색이나 내어주겠다는 듯이 절하는 사람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앉았거나 서 있다.
절이란 원래 하기 좋은 것은 아니다. 더구나 스라소니같이 두 손을 뻗치고 앉았다 일어섰다 하는 것은 영희와 같이 선머슴처럼 자라난 사람에게는 일 년에 한 번이나 두 번은 마지못해 할지언정 하루에 대여섯 번씩은 좀 호된 노릇이다. 그뿐 아니라 지금 신혼 여행으로 떠날 기차 시간이 절박하여 일 초 일 분이 새로운 영희를 데리고 노랫가락으로 어슬렁어슬렁 절을 시키는 것은 남의 사정을 몰라도 분수가 너무 없다. 영희는 천연덕스럽게 시키는 대로 앉았다 섰다 하지만 뱃속에서는 오만상이 나 찌푸리고 있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눈이 아무리 밝기로 새며느리의 뱃속까지는 아직 못 들여다볼 것, 더구나 새며느리를 보고 절 시키기란 시어머니 될 자격이 있고 없는 것을 시험하는 저울대다. 까딱하면 시빗거리다.
‘아무개네는 공부한 며느리를 얻었다구 절두 아니 시키더군!’
하는 뒷공론이 한 입에서만 나와도 신부에게는 아무 걱정 없지만 시어머니에게는 겨드랑이가 간지러울 일이라, 며느리의 사정은 어쩌든지,
“인제 상우례를 시켜야지?”
하며 영희를 마루로 끌고 나와서 이 사람 저 사람 닥치는 대로 불러세워놓고 어느 때까지 앉았다 일어섰다 하게 한다.
‘이러다간 절만 하다가 한나절 다 보내겠군?’
하는 생각을 할 제 영희는 기가 막혔다. ……스무 번을 하였는지 서른 번을 하였는지 나중에는 번수도 따질 수 없었지만, 차차 번수가 잦아갈수록 학교에서 체조나 하듯이 앉았다 일어섰다 하며 되는대로 날렸다.
영희가 마루에서 신이 오른 무당처럼 연해 앉았다 섰다 하는 동안에 순택이는 방 안에 앉아서 부산히 짐을 꾸려놓고 나서 영희의 절이 끝난 것을 보고 마루로 나오더니, 우두커니 섰는 영희에게 다가서면서,
“그럼 늦기 전에 어서 가지?”
하며 동의를 구하였다.
영희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래 어디를 간단 말야?”
시어머니는 조금 꾸짖는 듯이 아들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시어머니뿐만 아니라 집안 식구가 상하를 물론하고 무슨 변괴나 난 듯이 일시에 모다 순택의 내외에게로 시선이 몰렸다. 뜰에서 국수를 씻고 섰던 계집 하인까지 손을 멈추고 대청을 올려다 보았다. 순택의 입에서 무슨 말이 떨어지나 분명히 듣겠다는 가장 긴장한 침묵이 거의 일 분간을 지났다. 그러나 순택이는 무어라고 대답을 하여야 좋을지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자기 내외가 오늘―결혼한 이튿날 아침에 이 집에서 잠깐 나갔다가 들어온다는 것이 조금도 변 될 일도 아닐 것이요, 어디 갔다가 오겠다고 분명히 대답을 한들 흠 될 일도 아니건만 망단하여서 입이 딱 붙어버렸다.
자기의 부부가 이날―잔치를 물려 하겠다는 이날에 나간다는 일이 이 집안의 화락과 단란을 깨뜨리는 큰 원인이 된다는 것은 순택이에게 참을 수 없는 책임이요 무정한 일 같았다. 여러 사람이 섭섭해하며 입에 내어 말은 못해도 붙들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할 제 순택이는,
“그럼 내일이구 모레구 가지요.” 하고 주저앉고 싶지 않은 게 아니지만 영희의 생각이 어떠 할지 이 자리에서 바로 대고 물어본다 할 수도 없고 틈바구니에 끼어서 오도가도 못할 지경이다.
“글쎄요, 연일 돌아다니느라구 몸도 몹시 고단하고 게다가 마침 회사 일로 부산까지 출장 나갈 일이 있기에 아침 차로 떠날까 하는데요…… 고만둘까 하였지만 저쪽에는 벌써 전보까지 쳐놓았으니까…… 제 처는 본가에 가서 쉬라거나 데리구 가거나 되는대로 하겠지요만…….”
순택의 대답은 이보다 더 교묘할 수는 없다. 영희도 자기 남편을 다시 한 번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밤차로 떠나렴.”
“몸은 곤한데 밤 찻길이란…….”
순택이는 눈살을 잠깐 찌푸려 보였다.
“그래 아버지는 언제 가서 뵌단 말이냐?”
“곧 다녀올 테니까 오는 길에 내려서 들어가두 좋고 그때까지 어머님께서 여기 계시면 올라왔다가 다시 날을 잡아가지구 가두 좋겠지요.”
“에구 모르겠다…… 정 그렇다면 허는 수 있니!”
이때껏 남의 말을 억제하여본 일이 없는 어머니는 이에서 더 붙잡을 수도 없고 더구나 몸이 괴로워서 쉬러 간다는 데에야 무어라고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어젯밤에 영감이 그 모양으로 떠나버리고 또 오늘 꼭두식전부터 아들이 밥 한술도 뜨지 않고 달아나는 것을 보니 섭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섭섭한 생각은 다만 잔치의 주인을 놓치기 때문에 일어난 것만은 아니다. 자식을 장성하게 길러서 장가를 들였다고 이때껏 한집에 모아놓고 재미도 못 보고 또다시 며느리를 보았다 하여야 저희는 저희대로 딴 세상에서 떠도는 것 같은 것이 말할 수 없이 호젓하고 섭섭하다는 늙은 부모의 바다같이 넓은 사랑에서 나오는 깊은 설움이다.
가방을 들고 우중우중 나서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옴폭 파인 눈이 글썽 글썽 하여지며 ,
“그럼 며칠이나 있다 올 테냐? 아모쪼록 몸들이나 성히……”
“늦어도 사흘만 하면 오지요.”
순택이의 목소리도 좀 떨리는 것 같았다. 영희도 시어머니의 언짢아하는 양을 보고 어깨가 오그라드는 것 같기도 하고 마음에 거리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대문 밖으로 나와서 자동차에 올라앉은 영희는 우릿간에서 벗어나온 것 같기도 하고 무슨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같이 시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희는 후 하며 한숨을 쉬고 시계을 보더니,
“난 절 한 번만 하면 곧 빠져나올 줄 알았지! 그동안 한 시간이나 넘었네! 바루 가도 좋지만 집에 잠깐 들러서 가지구 갈 게 있으니까…….”
“무얼?”
얼빠진 사람처럼 멀거니 앉았던 순택이는 입을 벌렸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며 영희는 얼른 말을 막고 나서,
“옷을 몇 벌 가지고 가려구요.”
하며 변명을 한 뒤에 남편이 좀 서운한 듯이 풀이 죽어서 잠자코 앉았는 것을 눈치채고,
“누구보다도 어머니가 가엾으셔! 퍽 섭섭해하시는걸·…… 하지만 참 말씀두 영절스럽게 잘하시던걸. 난 얼굴이 쳐다뵈입디다. 참 정말 용하셔, 하하하……”
하며 위로 삼아 칭찬을하였다.
“허허허 .”
영희의 집은 그리 떠들썩하지는 않았다. 일가 식구도 눈에 띄고 아침밥을 차리느라고 분주한 모양이나 시집보다는 조용하였다. 그러나 신랑까지 같이 온 데에는 반가우면서도 놀란 모양이다.
“아 자네까지 왔나! 어서 올라오게, 그래 편히 쉬었나.”
사위의 절을 받으면서 장모는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어머니 절 좀 많이 시키십쇼, 하하하. 난 지금 절을 스무 번을 하구 왔는지 서른 번을 하구 왔는지 다리에 알이 다 배었올걸! 하하하.”
영희는 제 세상이나 만난 듯이 깔깔대며 신랑을 놀리고 자기 방으로 쓰던 아랫방으로 내려가다가 돌쳐서며,
“어머니, 오빠는 어디 갔어요?”
“왜 못 만났니? 벌써 호텔루 갔는데.”
영희는 못 만난 것이 잘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아랫방으로 들어간 영희는 10분 동안이나 문을 닫고 부스럭거리다가 옷을 한 봇짐이나 가지고 마루로 올라와서 자기 가방에다가 차국차국 넣고 앉았다. 옷보퉁이 속에는 무엇인지 조그만 나무 상자 한 개가 있었다. 영희는 그것을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얼른 가방 속에 넣고 쇠를 채워버렸다.
“그건 퓔 하구 앉았니? 어딜 가니?”
어머니는 사위를 건넌방으로 들여다 앉히고 나오다가 보고 물었다.
“지금 곧 떠나요. 잠깐 몸을 쉬러 간다고 하니까 나두 쫓아가려구…….”
“어디루?”
“부산을 간다니까 아마 온천이겠지요.”
“그래 지금 곧 간단 말이냐? 무어나 먹어야 하지 않니?”
“떠날 시간이 60분 밖에 안 남았는데요, 배고프면 차 속에서 먹지……”
어머니는 사위를 무엇이든지 먹여 보내려고 애를 쓰나 하는 수 없었다.
부산히 분별을 하며 차리는 것을 보고 영희 내외는 뜰로 내려섰다.
어머니도 픽 섭섭해하는 모양이나 영희는 거기에는 본체만체하고 장모와 기다랗게 인사를 하고 섰는 순택이를 재촉하여 앞장을 세우고 나가서 자동차로 뛰어들어갔다.
5
경성역에 도착하여보니까 승객들은 거의 다 들어가고 남은 시간이라고는 겨우 칠팔 분 밖에 없다.
“어디까지 살까?”
순택이는 자동차에서 내려서며 창황히 물었다.
“글쎄·……돈을 이리 주슈. 내가 살게.”
순택이가 자동찻삯을 주려고 지갑을 꺼내는 것을 보고 영희는 손을 내밀었다.
“어디까지 살 텐데? 부산까지?”
순택이는 아직도 미심한 듯이 또 물었으나 머뭇거릴 시간도 없어서 달라는 대로 돈을 꺼내주었다.
영희는 아직도 총총걸음으로 표 파는 데로 들어가서 푸른 표 두 장을 급행권과 껴서 사가지고 개찰구로 앞장을 섰다. 아카보⁵에게 짐을 들려가지고 들어온 순택이도 쫓아섰다.
두 사람은 허둥지둥 차에 올랐다. 차 속은 여간 붐비는 게 아니나 겨우 자리를 잡고 나니까 차는 벌써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아, 마침 잘되었다! 조금만 머뭇거리다가는 도루 들어간달 수도 없구……하하하.”
“도루 들어가기루 상관 있나, 하지만 표는 어디까지 샀어? 어디 좀 봐.”
영희는 달라는 대로, 오페라 박스⁶에서 표를 꺼내서 순택이에게 웃으며 주었다. 순택이도 웃으며 받아가지고 무슨 제비나 뽑아가지고 펴보는 것처럼 큰 호기심과 기대를 가지고 넉 장 중에서 푸른 표 한 장을 선뜻 뽑아 들고 들여다보더니 실망하였다는 듯이 헛웃음을 웃었다.
“아, 이게 무어야. 그래 기꼇 여기까지야? 허허허. 대관절 어디를 가겠기에……”
영희는 여전히 방글방글 웃고 앉았다가,
“글쎄 가만히만 계셔요. 내가 매니저 노릇을 하는 다음에야 그저 쫓아만 오시구려, 하하하.”
“글세…… 암만해두 알 수 없는데.”
순택이는 연해 고개를 기웃거리면서 생각을 해내려고 하였으나 이 여자가 신혼여행의 목적지를 대전으로 택한 의취를 터득하여 낼 수가 없었다.
“대전엘 간대야 무어 볼 것 있나…… 호남선으로 들어간대도 역시 그렇지…….”
“왜 이리 애가 말라하세요. 조금만 있으면 아실 테니 나만 탁 믿고 계시구려.”
“못 믿는다는 게 아니라 갈 데가 없단 말이지. 이왕이면 대구까지나 갔으면 경주 구경이라두 가는걸…….”
“하하하, 갈 데가 생길지 어떻게 아세요, 어떻든 아침이나 먹으러 가십시다. 아 시장하다.”
영희는 이러한 딴전을 붙이고 선하품을 한 번 하고 일어섰다. 순택이도 일어나서 두 사람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요리도 아직 준비가 못 되었다고 한 시간 후에 들어오라는 것을 그래도 시급히 만들라고 강청을 하여 분부를 하여놓고 두 사람은 마주 자리를 잡고 앉아서 우선 마실 것을 가져오게 하였다.
순택이는 사이다를 한 컵쯤 먹더니,
“맥주를 좀 먹어볼까.”
하고 주문을 하였다.
“이거 웬일이세요. 술을 다 잡수시구?”
“왜, 나두 기분이 좋을 때에는 맥주 한 병은 먹는데…….”
‘기분이 좋다’는 말을 듣고 어쩐지 영희는 가슴이 선뜩하였다. 확실히 지금 순택이는 유쾌할 뿐 아니라 행복이 대끝까지 올라간 듯이 거의 어린애처럼 기뻐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순택이가 이 재미있으리라는 여행으로 갖은 행락을 갖추 맛보려고 달고 아름다운 공상을 그리는 것을 볼 때에 영희는 지금 자기의 심중에 싸고 싸서 넣어둔 계획이 너무도 참혹한 것 같고 남을 함정으로 쓸어넣으려는 무서운 음모같이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순결한 어린아이처럼 거의 취하다시피 된 사람에게 무어라고 그 소리를 끄집어내누?……설마 못하겠다구는 안 하겠지. 물론 싫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러나 모처럼 하는 이 여행을 안 하였더니만 같지 못하였다고 실망을 하게 하는 것은 참 정말 악독한 일이다.’
영희는 이렇게 생각할 제 가슴이 아팠다. 무엇보다도 이처럼 모든 것을 탁 믿고 자기에게 맡겨놓고서 흡족하도록 즐겁게 지내보자는 이 사람을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구중중하고 컴컴한 길로 끌고 들어가려는 이 계획, 더구나 짓궂이 신혼여행으로 나선 이 기회를 타서 하려는 이 계획을 알게 될 제 얼마나 깜짝 놀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자기의 하는 짓이 너무도 얌체 빠진 것 같아서,
‘나도 참 악독한 짓도 하는군!’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것도 한 가지 시험조도 된다. 이 사람은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나를 자기의 목숨같이 사랑하고 또 장래에도 그리 하겠닥고 하였다. 그러나 무엇을 희생하였나? 그 열렬하다는 사랑의 표적이 이때껏 하나나 있었나? 나 때문에 사회에서 욕은 고사하고 피침한 소리 한마디라도 들어본 일은 없었다. 그뿐 아니라 나를 끌려고 연애의 대적하고 한 번이라도 애를 써서 싸워본 일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무얼 가지구 희생이니 사랑이니 한단 말이람…… 만일 인제는 내가 자기의 손아귀에 들어왔다고 해서, 이 마지막 청을 들어주지 않는다 하면 그것은 천하고 더러운 수작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이만한 일은 꺼릴 것도 없고 가엾을 것도 없다고 생각하였다.
영희가 사이다를 마셔가며 이런 생각을 하고 얼빠진 사람처럼 멀거니 앉았는 것을 순택이는 한참 바라보다가 홍을 돋우려는지,
“왜 그렇게 기운이 없어 보여? 포도주나 한 잔 가져오랄까.” 하며 나이프 자루를 세워가지고 식탁 위를 똑똑 쳤다.
“아뇨, 아무렇지두 않은데요. 너무 시장해 그런 게지.”
영희는 이렇게 변명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머릿속으로는 또다시 생각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어디 가서 그 말을 끌어낼까? 무슨 핑계를 해서든지 목포까지는 끌고 가겠지만 H군까지는 좀처럼 아니 가려 들걸. 아무리 절대루 내 말만 듣고 쫓아온다구 했기로서니. 그럼 아주 대전서 이야기를 해버려? 그러다가 회사에 너무 결근을 할 수 없다고 핑계하고 안 들으면 어쩌누? 이왕이면 얼근한 이 바람에 아주 차 속에서 토설을 하는 게 어떨구?’
하며 영희는 벌써 주기가 돌아서 씨근씨근하고 앉았는 자기 남편을 쳐다보았다. 다행히 담배를 피우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기 때문에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영희는 한숨을 휘 쉬었다.
‘……아니다. 그건 너무 참혹한 일이다. 될 것두 안 될지 모를 뿐 아니라 적 어도 목포까지는 유쾌한 마음으로 가게 해야지……’
영희는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아직 결심을 못하고 남편의 얼굴을 또 한 번 쳐다보았다. 순택이는 입에 대었던 컵을 떼며, 영희를 마주 보고 빙긋 웃었다. 영희도 생긋하였으나 얼굴이 잠깐 붉어졌다.
“무얼 그리 생각을 해? 아까 호텔에서부터 무슨 걱정이 있는 사람처럼 가다가다 왜 그리 얼이 빠져 앉았어?”
“내가? 왜 어때서?”
영희는 상 위에 놓였던 오페라 박스에서 거울을 꺼내어 들여다보다가 웃으면서,
“내가 그렇게 뵐까 정말 그래요?”
하며 입으로는 변명을 하여도 얼굴은 더 발개졌다.
“글쎄 내가 잘못 보았나? 허허허, 그까짓 소리는 그만두고 어서 저거 다 마셔요.”
하며 옆에 따라놓은 포도주 잔을 턱으로 가리켰다.
꼬챙이 같은 굽이 높다란 큰 유리컵에 철철 넘치는 빨간 포도주를 영희는 날씬한 하얀 손가락으로 모시듯이 살그머니 들어다가 볼그레한 입술에 대고 호르륵 마시고 나서 남편을 쳐다보고 생긋 웃는다.
금시루 집어삼킬 듯이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며 앉았던 순택이는 영희가 들고 있는 컵 속에 담긴 물빛같이 된 얼굴에 금방 터질 듯한 웃음을 띠고,
“어디 또 한 번 마셔보아!”
영희는 하라는 대로 또 한 번 마시고 컵을 상 위에 놓았다.
“고만 먹지! 둘이 다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간 장관일걸…… 청도파의 여자들이 오색주를 먹고 욕더미가 되듯이 조선에 청도파가 생겼다구 소문나게! 하하하……”
“뭐? 청도파?”
“아, 일본에 청도파라구 있었는데ㅡ 신여자끼리 모인 회가요. 그런데 오색주를 먹었더랍니다.”
영희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하여도 그런 방면에 어두운 순택이에게는 별로 홍미가 없을 줄 알고 말을 끊었다.
“응, 나두 들은 법한데, 그래 어쨌더람?”
이런 일이야 혹시 알지 모르겠지만 어떻든지 자기가 전문하는 방면 이외의 것도 결코 모른다고 하는 법이 없는 것이 이 사람의 특징이다. 더욱이 영희와 이야기할 제 그런 모양이나 그렇게 넓은 상식을 가진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마 영희가 더 자세히 알 것이다.
“남자들하고 요릿집으로 떼를 지어 다니며 페퍼민트(서양 술 이름)를 먹느니 오색주를 먹느니 하기 때문에 한참 일본 사상계에서 들썩 했더랍니다.”
“미친년들이로군, 대개 어떤 것들이 모였길래?”
“왜 미치긴요…… 선생보담 정신이 똑똑한 사람들이라우. 술을 먹은 것은 한때 장난이니까 잘했든 못했든 말할 것 없지만 일본 여자로는 자유사상계의 선구자들이랍니다.” :
“술 먹구 남자들하구 요릿집 다니는 게 선구란 말이지? 허허허……”
“왜 그렇게 말씀을 하슈.”
하며 영희는 이맛살을 잠깐 찌푸렸다.
두 사람은 또다시 말이 끊겼다. 영희는 일어나서 이 상 저 상에 놓인 서양 꽃을 돌아다니며 골똘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맡아보기도 하며 섰다가 요리가 나오니까 다시 자기 자리로 가서 앉았다.
영희는 배가 고프다면서도 수프는 한 술 두 술 떠먹고 나서 바꾸어 들여온 음식 접시를 잠깐 들여다보더니 고명으로 놓은 파란 풀잎을 집어서 조그만 줄기를 뜯어 질겅질겅 씹으면서,
“난 이 파슬리라는 게 언제든지 좋더라!”
하며 또 한 줄기를 뜯어 씹는다.
“어디 뭐길래?”
하며 순택이도 집어서 두세 입 씹어보더니,
“원 별소리두 다 하는군. 그게 무에 좋담! 비릿하구 쌉쌀한 듯두 하구……이상한 향기는 있지만…….”
“그렇길래 좋단 말이지요.”
영희는 방긋 웃으며 고기를 끼운 삼치창(포크)을 입에 넣었다.
“자동차의 가솔린 냄새가 구수하단 사람두 있더군마는…….”
“구수하진 않지만 그건 나두 싫진 않은데요.”
“허허허, 여기 X군의 친구 하나가 또 생겼군…….”
순택이는 영희와 이태 동안이나 사귀어오던 동안에 발견하지 못한 일면을 인제야 발견한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째서 그런 괴벽한 것을 좋다 하누? 하는 의심을 가치고 영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참 시장하였던지 잠자코 한참 때그럭거리며 먹고 앉았다.
영희는 한 접시를 다 먹고 입을 씻으며,
“난 청요리는 암만 먹으려도 한두 점만 먹으면 실쭉해두, 양요리는 뭐든지 먹겠더구만…… 조선서 학교에 있을 때에 요리 제법을 좀 배우긴 하였지만 지금은 다 잊어버려서……”
“사실 괜찮은 게지. 잘만 하면 차차 집에서 좀 만들어 먹어볼까? 책 같은 걸 참고하면 잊어버렸던 것이라두 되겠지.”
순택이는 인제는 ‘가정’을 가졌다는 안심과 기쁨을 깊게 느끼고 한 말이다.
“하지만 제 손으로 만들어 먹는 건 아무리 잘되었어두 맛이 없어.”
“그럴 리야 있나. 잘못되면야 말할 것 없지만 웬만큼 되기만 하면 그것처럼 재미있는 것은 없을걸.”
“그야 내가 만들어 당신이 잡수면 좋을지 모르지만, 내가 만든 것을 내가 먹어두요? 밥 같은 건, 딴 문제지만…….”
영희는 남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맛이 있다는 듯이 또 새로 가져온 접시를 벌써 비게 만들어놓고 한마디 대거리를 하였다.
“말이 되는 말인가. 그래 화초 하나라두 자기가 만든 게 공력이 드니만치 고와 보일 것이요, 그림 한 장을 그려두 그럴 터요, 당신같이 소설 한 편을 써두 자기가 쓴 것이 마음에 맞을 게 아니란 말요?”
순택이는 이야깃거리가 없어서 심심파적으로 웃어가며 연해 대꾸를 하여준다.
“그두 그럴지 모르지! 혹 고와두 보이구 마음에 들기두 하겠지요. 하지만 고와 보인다구 임에 맞는 것도 아니요 고와 보이거나 입에 맞는다구 마음에 드는 것두 아니지요. 더구나 자기의 창작일수록 써서 놓은 그 당장엔 고와두 보이고 맘에 드는 것 같다가두 조금만 지나면 금세로 찢어버리거나 살라버리구 싶은 때가 많은데요? 제 뱃속으로 나온 자식두 귀여우면서두 마음엔 안 드는 수도 있고, 귀엽고 마음에 들면서두 남의 자식을 보면 그만 못하게 생각되지 않아요?”
“아주 아이를 낳아본 경험이나 있는 듯이! 허허허…… 하지만 저기 저 애 같으면 이쁘기도 하고 마음에도 들겠지?”
순택이는 빙글빙글 웃으며 듣고 앉았다가 실없는 말로 저편 구석에 젊은 일본 사람 부부가 데리고 들어와 앉았는 아이를 턱으로 가리키며 웃었다.
영희는 가리키는 쪽을 힐끔 돌아보았다.
“참 이쁜걸. 몇 살이나 되었을꾸? 네 살? 다섯 살은 되었겠군!”
“탐나지요. 하나 갖구 싶지 않아요?”
하며 순택이는 눈웃음을 치며 영희를 들여다보았다.
“망측한 소리두……난 남의 아이는 귀여워도 가지구 싶은 생각은 꿈에도 없어. 지금 저런 게 생겼다간 큰일 나게!”
“그거야말로 내 손으로 만든 음식은 맛이 없다는 수작이로군! 그러나 큰일 날 거야 무어 있나! 안 생기는 게 큰일이지, 하하하!”
“그야말로 자식이 안 생겼다가 큰일 날 게 뭐 있누. 절손이 될까 봐서? 엘렌 케이는 ‘모성애’니 ‘모성애의 회복’이니 하지만 예술에 일생을 바치려면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큰 걱정거리지요. 그야 일본의 Y여사 같은 사람은 원래 타고나기를 정력가로 생겼으니까 예외지 만……”
“그러다가 아들이 없어서 내가 첩이나 얻으면 어쩔 덴구? 허……”
순택이는 어디까지 실없는 말로 대꾸를 한다.
영희도 따라 웃으며,
“제발! 작히나 좋을까. 몸이 가뜬하여지구……·응! 그래서 이혼을 하셨군! 어디 나두 ‘칠거지악’의 한 죄를 당해볼까, 하…….”
“실없는 말이지. 설마 아들이 없다구 이혼을 할 시러배 아들놈이야 있을까.”
영희는 몇 접시째인지 또다시 포크와 나이프를 들며,
“그럼 왜 이혼을 했어?”
하고 농담 비슷 책망 비슷하게 물었다.
“싫으니까 하였지!”
“왜 싫어요?”
“어째 싫든지 싫은 거야 어쩌나?”
“그래두 까닭이 있겠지요. 왜 학문이 없어서요? 여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두 한 가지 이유겠지!”
“그럼 또 무슨 이유가 있어요.”
“그까짓 소리는 고만두고 어서 자― 그 포도주나 마저 마셔요.”
순택이는 말을 피하려는 듯이 자기도 잔을 들며 술을 권하였다.
“왜 그까짓 거예요. 적어두 인생 문제의 반분은 성(性)의 문제가 차지를 하였다 해두 좋을 터인데……”
“글쎄 인생 문제의 반이든 원통이든 그건 물어서 무엇 한단 할이야?”
“그래두 좀 알아두어야 나두 어떻게 이혼이나 당하지 않지, 하……”
“허……”
“아 이것 봐요, 그것은 실없는 말이지만 왜 말간 사람을 일생에 병신을 만들었어요? 너무 늙어서? 네?”
순택이는 여전히 웃기만 하고 앉아서,
“몰라!”
“당신 일을 당신이 모르면 누가 안담! 하지만 늙은 게 실컷 밥이나 얻어먹게 가만 내버려두고 기생첩이나 학생첩을 얻었으면 좋지 않아요. 아참 공부가 있어야 한다니까 학생첩이 더 좋겠지! 수두룩한 게 모두 그런 건데.”
“흐흥! 왜 이렇게 조짐을 하우.”
“글쎄 말야, 기생첩 이라두 얻을까 봐서 겁이 나지 않아? 하……”
“그래 얻으면 어쩔 텐구?”
“좋지! 가끔가끔 나두 데리구 놀구, 좋은 로맨스나 가졌으면 이야기나 들어서 소설 하나 쓰구.”
“그래 그뿐이야 샘은 아니 날까?”
“그건 모르지. 첩을 얻게 되면 벌써 피차에 정은 없어진 것이니까 얻기 전에 끝장이 나고 말겠지.”
“그렇지만 내가 이혼을 해주지 않으면 어쩌누?”
“누가 안 해주어요? 안 해줄 사람이 누구예요? 나두 전부인 같은 줄 아시는구려. 가라면 가구 말라면 말구. 흐흥! 저런 큰소리를 하다가 내가 이혼을 하자면 어쩌려구? 하하하.”
“그야 안 되지, 법률이 있는데.”
“네? 뭐예요? 법률이 어때요? 그래 법률이 나하고 결혼을 하라구 명령을 하니까 하셨군요? 하하하, 원 내 참 별소리를 다 듣겠군!”
“그야 말이 안 되지, 그럼 목사가 결혼을 하라구 해서 하였나? 모든 게 이 사회의 조직이요 형식이지.”
순택이는 영희를 이겼다는 듯이 상쾌히 웃으며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시고 나이프와 포크를 다시 들었다.
그러나 영희는 먹을 생각도 안 하고 한층 더 신이 나서 말을 받는다.
“그건 안 될 말이에요. 예수교식으로 결혼식을 한다는 것부터 나는 인정치 않지만 해두 좋고 안 해두 좋은 것을 한때의 편의로 예식을 했다기로서니 조금도 불합리할 거야 무어 있어요. 하지만 법률이란 것은 사람의 신령을 구속하고 절제하는 것이니까 피할 수 있는 대로 피하여야 할 게 아니에요? 법률이 인정해주지 않는다구 있던 정이 없어질 리두 만무할 것이요, 인정해준다구 없던 정이 금세루 생길 수도 없지 않아요? 네? 그렇지 않아요? 인제 지셨지요? 하하하.”
하며 이번에는 영희가 유쾌한 듯이 웃으며 빨간 물이 반쯤이나 남아 있는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빵긋빵긋하는 것을 순택 이가 가로막으며,
“그래 법률의 수속두 없구 남편의 승낙두 없이 ‘난 이혼했소’하면 고만이 야?”
비웃는 듯이 웃어가며 입을 쫑긋거렸다.
“그럼요. 그러게 누가 결혼했다구 민적 이니 무어니 하시라우? 장래의 자식을 위해서 그런게 필요하다면 그 자식이나 남편 되는 사람의 이익으로 한 것이니까 이쪽에서는 그런데 구속을 받을 게 못 되지 않아요? 어떻든지 오늘날 쓰는 법률이라는 건, 여자를 너무 무시한 점으로 보아두 나는 암만해두 찬성할 수 없어요.”
순택이는 삶아놓은 게딱지 같은 얼굴로 비웃는 웃음인지 재롱으로 듣는 셈 치고 귀여워서 웃는 것인지 여전히 빙글빙글하고 앉았다가,
“인제 고만 하지 마님! 매니저! 하지만 대관절 요리나 잘할 줄 알구 이 야단인가? 서양 요리법두 지금 말하는 만큼만 알았으면 그리 흉하게는 아니 되렷다!”
하며 순택이가 껄껄 웃으니까 영희도 따라서 커다랗게 웃으며 찻종을 들었다.
그러나 영희의 머리에는 또 무슨 생각이 반짝하고 떠올라서 금시로 풀이 죽었다.
두 사람은 차를 마시며 삥삥 돌아서 네 활개를 치며 뒤로뒤로 달아나는 창밖을 가만히 내다보며 앉았다가 다른 승객의 한 떼가 몰려들어오는 것을 보고 총총히 일어섰다.
영희의 내외는 객실로 돌아와서 자기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그래 대전까지 가서 어떻게 할 테야. 누구 만나 볼 사람이 있어?”
한참 이를 쑤시고 있던 순택이는 창을 기대앉으며 이 이쁜 지휘관의 예정을 물었다. 그러나 볼그레하게 포도주 기운이 오른 영희는 눈웃음을 치며,
“그건 가봐야 알지.”
아양스럽게 이렇게 한마디 하고 금세로 말소리를 변하여서,
“참, 그런데 아까 이야기하시던 걸 마저 해주세요.”
“무엇 말야?”
순택이는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영희는 조금 다가앉으며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소리를 낮추어서,
“이혼 문제 말예요.”
하며 웃었다. 순택이도 웃으면서,
“그건 왜 새삼스럽게 물어? 왜 몰라?”
“아 글쎄 요새 와서 난 이상스러운 소리를 들었기에 말예요.”
하며 또 웃는다.
“무슨 소리를?”
하며 순택이도 따라 웃다가
“그건 그렇게 알아 뭘 해. 그저 그렇다구 해두지.”
“응응, 그만하면 알았어요. 그런데 이때까지 내겐 숨기시구……”
하며 영희는 책망하듯이 웃으며 눈을 똑바로 떴다.
“그럼 어떡해! 무어 좋은 일이라구 뭇사람을 보구 이야기를 할까.”
“그래 얼굴은 어땠던구?”
“그저 그렇지, 그는 하여간 그걸 보면 내가 이혼한 것이 시속 젊은 아이들처럼 무분별하게 한 것이 아닌 것은 알 수 있지.”
영희도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평상한 목소리로 고쳐서,
“실상 나부터 그래요. 그따위 짓을 하니까 이혼을 하셨겠지만 내가 만일 남자로 태어났다면, 나는 공부한 여자하구 결혼은 안 할 테야. 낫을 보고도 기역 자인 줄 모르구 지게를 보구두 A자인 줄도 모르는 여자라두 나 아니면 사랑할 사람두 없구 내 말이라면 하느님 말처럼 절대로 복종하는 여자를 데려오는 게 결국은 행복이지. 나두 공부랍시구 하였지만 보통학교나 고등보통학교쯤 졸업하였다구 쥐꼬리만 한 지식으로 코가 높아서 서두는 꼴이야 눈허리가 시어서 어떻게 보구 산담…… 그야 일반 사회를 위하여는 공부도 시켜야 하겠지만 그렇다구 여자가 학문이 있다는 것을 남자의 한 취미로 생각하고 덮어놓고 이혼 이혼 하는 것은 꼴사나워 못 볼 일이야!”
영희는 혼잣말처럼 말끝을 흐리고 순택이를 쳐다보며 웃었다.
그러나 순택이는
“옳은 말이야, 옳은 말이야!”
하며 찬성은 하면서도, 속으로는 자기에게 들어보라고 일부러 그런 소리를 하는 것 같아서 괴란쩍었다. 그는 영희의 이야기가 끝이 나니까 슬그머니 드러누우며 눈을 감았다.
남편이 드러누운 앞에 비스듬히 걸어앉아서 영희도 눈을 감고 꾸벅꾸벅하고 있는 모양이나 머릿속에 왕래하는 것은 자기 남편을 어떻게 하면 호남선 위에 올려 앉히겠느냐는 것이었다.
‘도시 말하면 어젯밤에 호텔에서 여행 이야기가 났을 때 아주 말을 해버렸더라면……’
하는 생각이 없지 않지만, 아무러기로서니 혼인한 첫날밤인데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하면 자기의 일이건만 그도 그럴듯하였다.
‘그러나 내려서 어떻게 할까? 아주 목포까지 표를 샀더라면 이러니저러니 말이 없을걸. 역시 맘이 약하기 때문에 공연히 안 할 고생까지 해…… 안 가기야 할까마는 거기까지 속이고 간다는 것이 너무 심한 일이다. 도리어 더 노엽게 생각할지도 모를 것이다.’
이리저리 생각을 하며 앉았으려니까 기차가 어느 정거장에 들어가는지 속도가 금세로 줄었다. 영희는 눈을 뜨고 내다보다가 정거도 안 하고 그대로 신탄진역을 지나치는 것을 보고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그래도 잠이 깊이 들었는지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인제 내릴 차비를 차리슈. 이다음이니까.”
아직도 맥주 한 병이 깨지를 못한 모양이다.
“응, 내려?”
하며 잠꼬대처럼 어름어름하더니 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앉아서, 자지 말라는 대로 응응 알았어 알았어 하는 소리만 뇌고 있다. 그동안에 영희는 행장을 말끔히 수습하고 차가 닿기만 기다리고 남편 앞에 앉았다.
차가 스르르 미끄러져 돌아가며 문득 섰다. 그 바람에 순택이는 눈을 딱 떴다. 씌워주는 모자를 받아서 다시 쓰고 일본 여관으로 남편을 권하여 들어갔다. 순택이는 그래도 잠이 덜 깬 것 같아서, 영희가 하녀하고 이야기하는 동안에 세수를 하고 왔다.
“그래 인제는 어떡하누? 이건 정말 귀찮은걸.”
“목포까지 표를 사오라구 하였습니다. 여러 사람이 들끓는 온천이든지 되지 않은 명소란 데는 싫어요. 호젓하고 조용한 데를 찾아서 가늠 게 좋지 않아요? 배두 타볼 수 있구……”
“글쎄 아무려나 매니저의 명령대로 하치. 딴은 그렇기두 해.”
“그럼 어서 나가시지요.”
사람이란 당하기까지가 어려운 것이지 딱 당하고 보면 어떻게든지 길이 나서는 것이다. 염희가 차 속에서 이럴까 저럴까 하며 몇 시간이나 두고 애를 썼건만 하나도 소용은 없었고, 필경은 이 자리 이 시간에 옳든 그르든 결말이 난 것이다.
순택이로 말하더라도 ‘목포까지 간다’ 는 말에 우선 안심이 되어 마음을 턱 놓고 나설 수가 있다.
영희의 내외는 여관에서 나와서 차에 올라 한구석에 채를 잡고 앉았다. 지방의 지선이 되어 그런지 이등찻간에는 승객이 그리 없었다. 두 사람은 마음놓고 속살거리기도 하고 기롱도 할 수 있었다. 가끔가끔 하하하 하며 야단스럽게 웃는 소리가 왈가닥 뚜르륵 하는 기차 소리에 어느 때까지 높아졌다 꺼졌다 한다.
순택이는 영희보다도 더 피곤한 모양이나 그래도 기운 좋게 껄껄대며 어린 아기같이 좋아한다.
“어떤 여관에 가서 묵을까? 제일 좋은 데로 가지. 하지만 너무 떠들어서는 나두 재미없어.”
순택이는 드러누워서 곁에 앉은 영희를 쳐다보며 의논을 하였다. 그는, 아니 그뿐 아니라 영희도 재미있는 나그네의 첫날밤을 즐겁게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조그만 항구―창망한 바다―바다를 앞에 두고 높직이 선 한적하고 정결한 여관―경치를 맘대로 바라볼 수 있는 조용한 방―젊은 남녀의 굳센 포응―불길 같은 키스―만단정화의 속살거림 ―넓은 바다에 뜬 기선―그 속에 서로 의지하지 않고는 사고에 무친한 외로운 신혼한 부부…… 영희를 마음대로 사랑하고 흡족하도록 행락하겠다는 이 화락한 모든 꿈은 목포로 가기 때문에 순택의 머리에 맺히는 것이 아니라, ‘호젓하고 조용한 데를 찾아가는 게 좋지 않아요?’라고 한 영희의 입에서 주옥같이 굴러나온 그 한마디가 순택이의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6
해가 넘어간 뒤에도 한 시간 이상이나 지난 뒤에 목포에 도착하였다. 아침 10시부터 이때까지 거의 십여 시간을 차 속에서 지냈건만 영희 내외 두 사람에게 대하여는 결코 지리한 여행은 아니었다. 정거장 앞에 내려선 두 내외는 인력거를 타고 영희의 지휘대로 세관 근처에 있는 W여관으로 향하였다. W여관이라는 것은 이 지방에서 제일류라고는 못하겠지만 그리 더럽거나 불편한 데는 아니다. 영희는 6년 전에 우연히 이 여관의 2층에서 ‘사키짱’하고 하룻밤을 새운 것을 생각하면 이 지방에 와서 이 집을 안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문에 들어갈 때에 마침 주인 여편네가 사무실에 앉았는 것을 보고 영희는 속으로 반가웠으나 그 주부는 영희를 말끄름히 내다보면서도 자세 몰라보는 모양이다.
‘사키짱은 그저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며 하녀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서 제일 좋다는 맨 구석 뒷방을 차지하였다.
“이왕이면 더 나은 데로 갈걸!”
순택이는 여러 날 있을 듯이 매우 불평이 있는 모양이다. 영희는 얼빠진 사람처럼 가만히 앉았다가,
“왜 어때요? 정 싫으면 내일이라두 옮기지!”
하며 가방에서 자리옷으로 가져온 일본 옷을 꺼내어 주고 남편이 벗는 양복 저고리를 받아서 걸었다.
“.……목욕은 어떡하실까요. 지금 마침 더워오는데요.”
차를 가져온 하녀가 벗어놓은 속옷을 개며 권하였다. 순택이는 목욕탕으로 내려갔다.
영희도 목욕 갈 채비를 차리느라고 옷을 훌훌 벗고 역시 일복으로 갈아입 었다.
“여기 사키짱이란 하녀가 있었지?”
자기가 벗은 옷을 개키며 하녀를 돌아다보고 물었다.
“사키짱 말씀요? 그 아인 벌써 작년 봄에 고만두었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세요?”
하녀는 이상한 듯이 물었다.
“응? 고만두었어? 그래 지금은 어디 가서 있누?”
영희는 무슨 까닭인지 얼마쯤 실망한 모양이다.
“부산에 나가 있지요. 그런데 언제부터 아세요?”
“한 3년 되지. 여기 와서 저 건넌방에서 같이 자기까지 하였는데…… 그래 지금은 무얼 하누? 시집갔나?”
“그러합니다.”
하며 하녀는 커다랗게 웃었다.
“아 정말이야?”
영희는 따라웃으며 채쳐 물었다.
“아니에요, 좋지 않은 데루 갔답니다.”
하며 하녀는 의미 있는 듯이 웃었다.
“좋지 않다니·……그럼 유곽으로 들어간 게로군.”
영희는 좀 놀란 듯이 물었으나 하녀는 다만 웃을 뿐이었다.
“그래 누가 그런 짓을 했더람?”
“말하자면 이 집 사람들이 고약하다구 하겠지만 당자도 당자지요. 벌써 열다섯 열여섯 적부터 바람이 키었는데요. 계집이 그러구서야 언제든지 그런 데로 가구 말지 않아요?”
하녀는 웬 셈인지 꼬집는 소리를 한다. 그러나 영희는 가엾게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와 만나 본 우연한 연분으로 보든지 자기의 애인을 사랑하던 사람이라는 점으로 보든지 오늘 이 자리에 꼭 있어야 할 사람이건만, 그 사람이 유곽의 갈보로 팔려갔단 말을 듣고서야 섭섭하고 가엾게 생각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자기의 정랑이 살아 있었기로서니 유곽으로 팔려갈 사키짱이 안 가게 되었으리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어떻든지 적지 않은 인연이 있던 사람이 지옥 같은 유곽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죽은 사람을 생각할수록 가엾은 일이다.
‘하나는 시집가구, 하나는 갈보가 되구…….’
이런 생각을 할 제 가엾은 것은 이 세상을 떠난 그 사람뿐이다. 영희의 자존심은 자기와 사키짱을 비교하여 생각하는 것을 불명예한 일로 생각하지만 이 세상을 떠난 그 사람을 생각할 제는 아무렇지도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사키짱이 귀엽고 불쌍하였다.
“그런데 왜 사키짱을 데리구 주무셨어요.”
하녀는 영희가 얼빠진 사람처럼 가만히 앉았는 것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
“옆의 방에 사내가 있기에 무서워서 그랬지. 그때만 해도 퍽 숫기가 없어서.”
“호호호…… 목욕 안 가세요?”
하며 하녀는 일어섰다.
목욕을 하고 올라오자 이쪽 저쪽 창문을 열어젖혀놓고 내외가 밥상을 받을 때의 유쾌한 기분은 언젠지 동래온천에 도착하였던 날 저녁을 생각케 하였다.
순택이는 먹을 줄도 모르는 맥주를 또 가져오라고 하여 영희에게까지 강권을 하고 앉았다.
“여행의 재미는 이런 때에 있는 거야.”
순택이는 천천히 맥주를 마시며 일본말로 이런 소리를 하였다.
영희도 하녀가 따라주는 맥주를 반 잔쯤 받아서 놓으며,
“서툰 지방에 가서 여관에 드는 첫날같이 유쾌한 때는 없을 거야.”
라고 역시 일본말로 남편의 말을 받았다.
“그렇구말구요. 약주 잡숫는 양반은 아주 살이 찌실 것 같다구들 하시는데요.”
이번에는 하녀가 동의를 하였다.
“옳은 말일세. 자네두 살이 좀 쪄보게.”
하며 순택 이는 자기 잔을 하녀에게 주고 병을 들었다.
하녀는 싫다면서도 연해 고개를 꼬박거리며 철철 넘게 받아서 반 잔이나 한숨에 마시고 나서,
“그래 지금 어디로 가시는 길이에요?”
하며 영희를 쳐다보았다.
“그저 여기까지 왔지.”
순택이가 웃으며 대답을 하였다.
“이 근처에 일가댁이 계세요?”
하녀는 여전히 의심쩍은 듯이 영희를 보고 물었다.
“아니!”
이번에는 영희가 대답을 하였다.
“그럼 그때에는 왜 오셨어요?”
“누가?”
순택이는 깜짝 놀라서 하녀와 영희를 반씩 타서 바라본다. 영희는 대답하기가 난처하여 잠자코 빵긋빵긋 웃고만 앉았다.
“아니 이 아씨께서 3년 전에 여기 오셨다가 이 집에 묵으셨더라는 데요. 영감마님께선 모르세요?”
“응? 여기 언제 와 보았소? 흥! 그래 이 집으로 다짜고짜 들어았군! 난 왜 그랬다구…… 하하하.”
순택이는 껄껄 웃고 말았으나 속으로는 의심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여기엔 무엇하러 왔더람?”
순택이는 영희의 눈치를 살피려는 듯이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왜 난 여기 못 올 덴가…… 하하하.”
하며 영희는 밥 보시기를 들었다.
“아 참, 주인마님더러 물어보니까 낯이 매우 익은데 그때는 일복을 입으시고 일본 사람 행세를 하셨던 듯하다구요. 그래서 조선 양반인지 일본 양반인지 기연가미연가하였는데 혹시 그 양반이 아니냐구요. 그때 다녀가신 뒤에 며칠 있다가 또 들러가신 일이 있어요?”
하녀는 웃으면서도 영희가 어떤 종류의 여자인지 그 본색을 캐어보고 싶은 듯이 말똥말똥 쳐다보며 물었다.
영희도 여전히 뱅글뱅글 웃기만 하면서,
“주인이 그래? 그이가 사람은 그리 흉치 않아 보이더군.”
“제가 좀 올라오랄까요?”
하녀는 손님 부부를 이리저리 보며 의향을 물었다.
“그래 좀 불러와.”
영희는 곧 찬성하였다.
하녀는 남았던 술을 한숨에 마시고 잔을 씻어서 순택에게 따라주고 나서,
“주인이 오건 내겐 술 권하시지 마세요.”
이렇게 미리 부탁을 하고 벌떡 일어나서 나갔다. 하녀가 나간 뒤에 순택이는 어리둥절해서
“그게 무슨 소리야? 일복을 하구 일본 사람 행세를 하였다니? 어딜 가기에 그러고 갔어?”
하며 웃으면서도 책망하듯이 물었으나 머릿속에는 어떠한 희미한 추측이 없지 않았다.
“이따가 자세히 이야기해요.”
영희는 속으로 ‘기위 이야기가 났으니 오늘 저녁에 발설을 하는 게 상책이겠지.’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럼 동경에 있을 때 여기에를 왔더란 말이지?”
“그래요. 어떻든 이따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다 할게요:”
순택이는 주인 여편네가 들어오면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리라는 호기심을 가지고 연해 맥주를 훌쩍거려가며 앉았으려니까, 통통거리며 층계로 올라오는 소리가 멀리 들리더니 하녀가 앞장을 서고 뒤미쳐서 뚱뚱한 중늙은이가 들어와서 꿇어앉으며 다다미 위에다가 코를 박고 인사를 하였다.
인사가 끝난 뒤에 이번에는 영희에게로 향하여,
“그때 오셨더라는데 눈이 여려서 실례하였습니다. 그 후에 사키짱이 말씀을 하고 한번 뵈었으면 뵈었으면 하며 편지를 꼭꼭 싸두고 툭하면 말씀을 하였지요.”
영희는 일일이 인사 대답을 한 뒤에,
“그러지 않아도 사키짱을 한번 꼭 만나보려구 벼르고 왔는데, 나두 참 섭섭하우. 그러나 어째서 그렇게 되었단 말이오?”
“말하자면 퍽 장황합니다만 어떻든 불쌍하게 되었지요. 지금이라두 천 원 하나만 있으면 찾아 내오겠지만 그만한 돈도 없구 끌어 나온대야 인젠 몸이 더러워져서 하는 수 없지요.”
“제 마음만 튼튼하면야 더러워지구 안 더러워지구가 문제가 아니지만 그래 그 돈은 누가 썼단 말이오?”
“어서 잡수셔가며 들으시지요. 영감마님! 약주 드시지요.”
주부는 병을 들어 순택이에게 권하면서 안주를 더 만들어 오라고 하녀를 내보낸 뒤에,
“마음씨야 더 말할 것 없지요. 하지만 임자를 못 만나서 그렇지요…… 처음엔 육백 원에 들어간 것이 그동안에 두어 번 앓기 때문에 거의 갑절이 되었지요. 지금이라도 오백 원 하나만 누가 내 놓으면 저희가 어떻게 해서든지 채어서 빼놓겠지만…… 어떻든지 제 어미 아비가 전 망나니들이기 때문에……”
영희는 여기까지 듣고 적지 않게 의심이 들었다. 아까 하녀의 말에는 이 집 사람들이 고약해서 그렇게 되었다는데, 지금 이 사람은 저의 부모가 망나니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구나 하녀를 내보내고 나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 지금 어디 있는지 아슈? 알건 번지를 좀 가르쳐주시구려.”
“알다 뿐예요. 제게는 수양딸이 되는데요.¨
주부는 금세로 양딸이라고 난데없는 수작을 붙이며 부산부 녹정 몇 번지 아무개 집이라 하면 들어간다고 번지를 가르쳐주었다. 영희는 밥을 먹다 말고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서 적어넣었다.
영희가 사키짱이라는가 하는 계집애의 일을 이처럼 열심히 묻는 것이 순택의 눈에 뿐 아니라 하녀가 보기에도 매우 이상하였다. 그러나 이 능구렁이 같은 주인마누라만은 짐작할 수 있고 또 영희 앞에서는 아무쪼록 사키짱을 가엾게 생각하도록 말하는 것이 필경에 이익 될 것은 없다 하더라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순택이는 도무지 어떻게 된 까닭인지를 몰라서 귀만 기울이고 좀 무료한 듯이 앉았다가 주부에게 술을 권하면서,
“그래 그 사키짱이란 애는 어떻게 생긴 애란 말요?”
하고 말참례를 하였다.
주부는 옆에서 하녀가 따르는 술을 받으며,
“아이는 참 얌전하답니다. 이 마님두 아시지만? 얼굴은 더 말할 것두 없구 게다가 가무의 재주도 있기 때문에 막 기생으로 박으려 하던 차에 그 모양이 되어서…… 아 참 마님 오라버니께서두 아시지요?”
“오라버니라니? 아 영환군이 언제 여기 와서 있었던가.”
하며 순택이는 영희를 쳐다보았다.
영희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리는 듯하였으나 어림삥삥한 수작이었다.
“아 왜 이 마님 의(義)오라버님을 모르세요? 참 그예 돌아가셨다지요. 얼마나 섭섭하실라구 우리들이 퍽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키짱까지 그 편지를 보구 울었답니다. 참 미남자로두 생기셨지만 재미있는 양반이었는겉. 오실 적 가실 적마다 꼭 저희에게서 묵어가셨지요. 약주도 잘 잡수셨지만 사키짱하고 노시기두 재미있게 잘 노세요. 조선 양반으로 그렇게 일본말을 잘하시는 이는 처음 보았어요…….”
주기가 오른 주부는 영희의 의오라버니라는 이를 입에 침이 없도록 퍼붓듯이 칭찬을 한다. 그러나 이 말을 듣고 좋아할 사람은 영희밖에 없었다. 순택이는 깜짝 놀랐다.
‘그렇지나 않은가?’
하던 아침 안개 같은 의심이 풀리는 동시에 놀라움과 노염과 분기가 한꺼번에 뒤섞여서 순택이의 가슴속에 용천을 하며 치받쳐 올라오는 모양이나, 영희가 근심스럽게 방그레 웃고 쳐다보는 그 눈을 볼 제 순택이는 모든 것을 용서하여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였 다.
7
아직 동이 트려면 먼 모양이나 부두에서는 선잠을 깬 듯한 중탁한 기적 소리가 가끔가끔 뚜―뚜― 하며 새벽의 밝은 공기를 헤치고 떠올랐다가는 부르르 떨면서 간 곳도 없이 스러진 뒤에는, 쑤아 철렁 철썩 후르륵 쉬― 하는 소리가 귀밑에서 나듯이 들리다가 살금살금 기어 나가듯이 멸어간다. 짐 싣는 인부들은 벌써부터 깨었는지 와글와글 쿵쾅 하는 소리가 앞뜰 한구석에 모여서 앵앵거리는 모깃소리만큼 들리는 듯 마는 듯하다가는 쨍그렁―쨍 하는 강철과 강철이 맞부딪는 바늘 끝 같은 모진 소리에 이것저것이 다 스러져버리고 귀에는 옆에 누운 남편의 숨소리도 안 들린다.
영희는 여전히 드러누워서 끝없는 이 생각 저 생각을 꿈같이 이어나간다…… 하다가 잠이 들어가는지 점점 머릿속이 아리송아리송하여가는 판에 별안간 “여보!” 하며 부르는 소리가 들린 듯 만 듯하다. 영희는 깜짝 놀라 머리를 쳐들었다.
“거기 냉수 있건 좀 주구려.”
순택이는 눈을 비비면서 부스스 일어나는 모양이다.
영희는 아무 말도 않고 일어나서 전등의 고동을 틀고 화로 위에 놓인 주전자의 식은 물을 한잔 따라서 순택이의 머리맡에 갖다놓았다.
“인젠 다 깨었소?”
“응 인제 시원한데. 아무튼지 먹을 줄 모르는 맥주를 두 병 턱이나 먹었으니까.”
순택이는 한숨에 한잔을 키고 나서 이런 대답을 한 뒤에 연거푸 두세 종지를 마시더니 다시 주었다.
잠자코 앉았던 영희는 새벽녘의 기분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서 전등불을 탁 꺼버렸다. 또다시 지암이 되었다. 창살이 아직도 훤해지지를 않는다. 영희는 어둔 데에 눈이 익기를 기다려서 미닫이를 열고 툇마루 끝에 덧문 한 짝을 살그머니 밀어젖히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직 캄캄한 하늘에는 별이 드문드문 반짝거린다. 영희는 찬바람이 활짝 끼치는 바람에 어깨를 움츠러뜨리며 방으로 들어와서 자기 자리 위에 우뚝 앉았다.
쑤아― 출렁 철썩 후르륵 쉬―쿵 쾅 쨍그렁 쨍 삐―뚜…… 여전히 번갈아가며 높았다 낮았다 가까웠다 멀어졌다 하다가 개미 숨소리도 들릴 만치 괴괴하여지며 이번에는 또다시 새판을 차리고 겨끔내기로 되풀이를 한다.
“여보 자우?”
컴컴한 속에서 가라앉은 목소리가 난다.
“네? 아니오.”
앉았는 영희는 곧게 웃으면서
“그래 내가 보이지 않아요?”
“안, 보여. 졸리지 않소?”
“뭘요, 조금만 있으면 곧 밝을걸.”
영희는 좀 다가앉으며
“이만하면 보이겠죠.”
“응. 그런데 어젯밤에 어떻게 된 일이오. 물어본다면서 그대로 자버렸지만 그 사람이 예서 작고(作故)하였소? 어딘지 시골이란 말은 그때 들은 법하건만.”
“네? 그 사람이라니 누구 말씀요?”
영희가 이 기회를 타서 먼저 토설을 하려는 것을 저편에서 제풀에 발론을 하는 것은 좀 의외였다. 그래서 영희는 ‘그 사람’이라는 것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일부러 되짚어 물은 것이다.
“나두 그만하면 대강 짐작은 하였지만 왜 그리 딴전을 붙여! 홍수철군의 형 말이야. 홍수삼군 말이야!”
홍수삼! 영희의 귀에는 이 ‘홍수삼’이라는 석 자의 발음이 얼마나 신기하고 반가웠을까. 3년 전까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불러보고 써보던 이름이요 글자이다. 그것이 지금 이 사람―이태 동안을 두고 사귀어오면서도 피차에 한 번이라도 불러보기를 싫어하던 이 석 자가 기어코 이 사람의 혀끝에서 굴러나왔다. 그 사람이라거나 수철이의 형이라거나 홍수삼이라거나 똑같은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건만, 다른 사람이 홍수삼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으면 거기에는 무슨 향기가 도는 것도 같고 미묘한 음악이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하여 영희는 전신의 피가 별안간 확 펴졌다가 잔잔히 가라앉는 것 같았다.
“……”
순택이는 영희의 대답을 기다리다 못하여 또다시 입을 벌렸다.
“……홍군 집이 원래 여기였던가?…… 그런 데 사키짱인가 하는 계집애하고두 무슨 관계가 있었던 모양인 게지?”
영희는 여전히 입을 닫치고 오른편 무릎을 세운 위로 두 손길을 맞잡고 옹송그린 채 가만히 앉았다. 순택이는 점점 갑갑증이 생겼다.
“그 왜 속시원하게 말을 못해. 무어든지 소원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해주마는 게 떠나기 전부터 약조한 게 아니야…… 여기까지 온 것은 단지 조용한 데를 찾아오려고만 해서 온 것은 아니겠지?”
여기까지 와서 순택이는 일종의 분노를 느낀 듯이 약간 독기를 품은 듯한 목소리를 속으로 긁어 잡아당기며 말끝을 흐려버렸다.
영희는 컴컴한 속에서 뚱그런 두 눈을 깜짝깜짝하며 반듯이 드러누운 순택이의 입술이 희미하게 움직이는 것을 노려보고 앉았다가 순택이의 가슴 위에 탁 실리며,
“왜 노하셨어요?”
하며 기쁜 듯이 소곤거렸다.
“노하긴 누가 노해! 무슨 생각이 있어 왔을 지경이면 얼른얼른 해버리고 가든지 틈이 있으면 어디든지 옮겨보잔 말이지…….”
순택이는 자기 가슴 위에 얹은 영희의 목을 오른팔로 얼싸안고 손바닥으로는 머리를 어루만져주었다.
“……그래 정말 아무 거든지 해주실 테여요?:’
영희는 어리광 비슷 아양 비슷한 소리로 다시 한 번 다져보았다.
“그래 무어든지 원하는 대로 해주지, 해주어!”
이때에 순택의 목소리는 자식 사랑에 눈이 어두운 늙은 부모가 자식의 모든 잘못을 꿀꺽 참고 보채는 대로 무슨 청이라도 들어주마는 듯한 유순하고 온정에 가득한 소리였다. 사실 말이지 지금 영희가 ‘당신의 목숨을 잠깐만 빌려주슈’ 하더라도 순택이는 결코 아깝다고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자기의 목숨이 아까운 줄을 몰라서 그런 것도 아니요 영희의 청구를 거절하기가 어려워서 그런 것도 아니다. 영희의 원을 풀어주는 그 일이 자기가 살아 있는 첫째 조건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보람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이순택이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이순택을 위하여 있는 것도 아니요, 사회를 위하여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하면 영희를 위하여 있는 것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다만 영희의 사랑을 얻기 위하여 있는 것이다. 함으로 영희가 청하는 모든 것을 수응하는 것은 그럼으로 영희가 행복스럽게 되리라고 하여서 극진히 순종하고 수응하는 것이 아니라 ‘영희의 사랑’을 얻기 위하여서만 하는 일이다. 설사 순택이가 영희에게 자기의 목숨을 바친다 하더라도 그럼으로 말미암아 영희의 운명이 손톱만큼이라도 더 좋아질 것도 아니요, 영희의 행복이 털끝만큼이라도 보템이 될 것이 없을 줄은 번연히 알면서도―다시 말하면 피차에 아무 잇속도 없을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목숨이라도 버리기를 아깝지 않다는 마음의 준비가 있는 것은 오직 영희의 사랑을 얻겠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연애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희생하기를 기뻐하며 또 그러므로 만족한다. 그렇지만 그 희생은 그 ‘사람’을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써 갚아지기를 미리 짐작하고 바치는 희생이다. 필경은 어떠한 의미로 자기를 위하는 것이요 자기의 만족을 위하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순택이가 속아서 여기까지 왔기로 그것이 얼마나 분하고 또한 영희의 사랑하던 사람을 위하여 금으로 동상을 만들어 세우기로 그것이 얼마나 아까우랴. 영희에게 바라는 사랑의 앞에는 아무리 분하고 노여운 일이라도 화로에 부은 휘발유같이 불길이 더 세어지면 세어졌지 꺼질 리도 없고 아무리 금 동상이라도 도가니 속의 납덩이처럼 사랑의 힘으로 녹여버리고야 말리라고 이를 악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영희는 여전히 순택이의 가슴에 뺨을 대고 가로 엎드린 채 자기 남편의 반들반들하게 깎은 턱을 쳐다보며,
“정말 내 소원대로 해주실 테에요? 내가 가자는 대로 가구 내가 하자는 대로 하실 테에요?”
“잔소리 퍽두 하네. 가자는 대로 여기까지 온 다음에야 더 말할 게 무어야!”
영희는 두 번이나 다져본 후에 별안간 남편의 팔을 뿌리치고 벌떡 일어나 앉으며 한숨을 휘 쉬었다. 두 사람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 컴컴한 방 속과 같은 침묵이 거의 일 분간이나 지나갔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반드시 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반동적이라는 것보다도 유사점으로 향하여 움직인다는 것이 더 분명할지 모른다. 압박과 구속에는 거역과 미움으로 대하지만 관대와 자유에는 사양과 겸손과 감사로 대한다.
영희는 순택이가 너무도 무조건으로 어떠한 청구든지 들어주마는 바람에 도리어 입을 벌리기 어렵게 되었다. 저편에서 안 된다거나 실현하는 눈치가 보여야 예서도 기를 쓰고 고집을 세워보려는 생각이 나겠지만 달라기도 전부터 내어주는 다음에야 오히려 미안한 생각이 앞을 서고 사양하고 싶은 덕의심이 숨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끝끝내 이기는 사람은 구하는 자가 아니라 주는 자이다. 순택이는 벌써 육분의 승리를 얻었다.
“그럼 나하구 가세요.” '
영희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조용히 입을 벌렸다.
“어디로?”
“H군으로요.”
영희는 이렇게 대답을 하고 나서 ‘홍수삼군은 거기서 죽었답니다.’라는 소리를 입이 메게 한마디 하였다.
순택이는 천장만 쳐다보고 드러누웠다가,
“좋지, 좋아. 특별한 관계가 없었다 하더라도 좋은 일이지. 그래 언제 갈 테야?”
“그건 마음대로 하슈. 오늘 떠나든 내일 떠나든…….”
“오늘은 좀 어려울결. 잠두 잘 못 자구서 곧 배를 타면 몸이 휘져서 견디려구. 내일 가지. 내일이 좋아!”
“아무려나 나는 관계없지만 선생이 바쁘실 테니까.”
영희는 남편더러 선생이라고 부른다. 그 대신에 선생은 영희더러 영군이라고 한다.
“뭘 그렇게 시급한 볼일은 없으니까…….”
“그런데 암만해두 이번 가는 길에 비를 하나 세우고 오려는데…… 친척이라곤 수철군하고 누이 하나만 남았는데 게다가 저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가부는 사람두 없을 것이요, 하여간 내게는 연인이랄 게 아니라 은인이니까 이 생에서 갚는 셈치구 이번에 꼭 세워놓고 올까 하는데 어떨까요?”
영희의 말소리는 보통 때와 같이 힘이 있어오고 어느덧 정답게 의논성스럽 게 되었다.
“그것두 좋지…… 다녀갔다는 표적두 나구!”
순택이는 묘비를 세워준다는 것을 마치 유람객이 석벽이나 방명록에 제명이나 하는 것같이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무슨 비꼬아서 하는 말은 아니다.
“표적이 나거나 말거나 그까짓 것은 우스운 소리지만 대관절 얼마나 들꾸?……여기 한 50원쯤은 가지고 왔지만.”
“그까짓 것 얼마 들라구! 비용이야 염려할 것 없어. 꼭 그 돈으로만 세워야 마음이 편하겠다면 하는 수 없지만 내가 가진 것두 넉넉하니까…… 하지만 날짜가 퍽 걸릴걸.”
“그러기에 이번에 올 적에 사키짱을 믿구 왔는데 이 모양이 되었으니까…….”
영희는 변명 삼아 이렇게 한마디 귀를 울리고 웃었다.
“뭐? 사키짱? 그래 사키짱이 있었다면 어떻게 한단 말이야.”
순택이는 부쩍 호기심이 생겨서 고개를 쳐들며 영희를 바라보다가 아까 열어놓은 덧문 쪽이 훤하게 비치는 것을 보고,
“벌써 밝았군!”
하며 일어나 앉았다.
방 안이 차츰차츰 흰하여갈수록 부두의 와글와글하는 소리는 점점 커지고 뚜ㅡ뚜ㅡ 하는 기적 소리도 작은 것 큰 것 하나 둘씩 늘어간다.
영희는 벌떡 일어나서 덧문 한 짝을 더 열어놓고 멀리 뿌옇게 보이는 바다를 한참 바라보고 섰다가 들어오면서,
“참 좋은데! 우리 산보 갈까?”
하며 순택이를 충동였다.
“아직 일러요. 해나 뜨건 나가지. 왼종일 시간이 있는데 그리구 아주 좀더 자구 일어나야 할걸.”
하며 순택이는 다시 드러누웠다. 영희는 역시 그 옆에 가서 앉았다.
“그러나 아까 이야기하던 걸 끝을 내야지…… 아마 홍군이 사키짱인가하구 관계가 있었나 보지? 어제 노파 말을 들으면 사키짱두 꽤 생각을 하였던 모양이던데.”
순택이는 헤 웃으면서 영희의 얼굴에서 무슨 눈치를 살펴보려는 듯이 곁눈질을 하였다.
그것은 홍수삼과 영희의 관계가 어떠한 정도까치 깊었는가를 사키짱을 팔아서 추측하여보려는 것인 듯하나 말하자면 군짓이다.
“사키짱하구 관계는 없었던 모양이야. 나하구 만나기 전에는 모르지만 어떻든 자기 아버지가 여러 해 동안 H군이며 그 근방에서 군수 노릇을 하였으니까 육장 살기두 하구 들락날락하는 동안에 우연히 만난 모양인데 아마 사키짱이 한때는 무척 반하였던가 보더군.”
영희는 지나간 때에 무엇인지를 머릿속으로 쏟듯이 한눈을 팔며 이야기를 하다가 생긋 웃고 말아버렸다.
“그건 어떻게 알았담?”
순택이는 점점 재미가 있는 듯이 캐어묻는다.
“……당자의 말을 듣고도 눈치를 채었지만 홍군이 죽기 전에 실없는 소리를 하는 것을 들어보아두 한때는 매우 좋았던 모양이야.”
“참 그런데 홍군이 죽은 뒤에 왔었소?”
“아니, 죽기 한 달 전쯤 해서 잠깐 왔었지. 그때 고생하던 생각을 하면 소설을 써도 장편 하나는 넉넉히 될걸.”
“그때 영군은 동경에 있었겠지? 그래 자꾸 오라구 했어?”
“그럼요. 그때 마지막으로 나갈 적에 다시 만날 때까지든지 죽음 때까지든지 매일 피차에 일기를 적어서 바꾸어보기로 약조를 하고 떠나던 날부터 통신이 있었는데 웬일인지 날이 갈수록 차차 써 보내는 분량두 적어가구 이틀 사흘씩 몰려가다두 한꺼번에 오기두 하구 어떤 때는 일기를 쓰지 못한 변명 삼아서 아주 절망적으로 비관을 한 소리두 하고 하더니 나중에는 아주 끊어져버린 뒤에 지금 동경 있는 수철군이 대필을 해서 오라고도 하구 수철군의 누이까지 내게 편지를 하고, 아버지도 남의 자식 하나 살리는 셈치고 잠깐만 다녀가라 하신다고 법석들이기 때문에 덮어놓고 나섰지요. 하지만 오빠가 야단을 치니까…….”
“무어? 오빠가 왜 야단을 쳐? 자기가 처음부터 찬성을 하였다면서 죽게 된 사람을 찾아가본다는데 야단을 해?”
순택이는 이렇게 한마디 새치기를 하였다.
“글쎄 오빠가 알면 야단 안 해요? 학교를 빠지고 험한 길에 혼자 간다는 걸 가만두겠어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몰래 빠져나와서 오빠한테는 나중에 편지로 기별을 하였지만 그때 고생이라니……”
“무슨 고생이람!”
“동경서 여기까지는 아무 탈 없이 왔지만 수철군 편지에 여기까지 와서 하루를 묵게 될 터이니 여관은 W여관으로 정하고 형님 이야기를 하면 친절하게 해주리라고 하였기에 이 집으로 와서 보니까 어쩐지 쓸쓸하구 손님이라곤 바로 내 옆방에 한 사람이 있구 저리 떨어져서 몇 사람이 있을 뿐이요 어쩐지 무서운증이 나기에 ‘니시무라 미네코(四村嶺子)’라 하구 일본 사람 행세를 하지' 않았어요…… 내 참 그때처럼 혼이 난 때는 없었지! 내가 방을 막 잡구 나니까 옆의 방에서 젊은 남자 하나가 톡 튀어나와서 공연히 내 방 앞으로 왔다 갔다 하더니 저녁밥을 먹고 방문 앞에 나섰으려니까 숫기 좋게 말을 붙여가지구 따라 들어와서 판을 차리구 앉겠지효. 제 방이 내 방하구 장지 한 겹만 격하였으니까 아주 방을 통하여놓고 과자를 가져오네 바이올린을 가져오네 하며 지랄을 하다 못해서 내 얼굴빛이 이상스럽다구 청진기까지 가지구 와서 부덕부덕 진찰을 하겠다구 못살게 굴지요.”
“별안간 청진기는 웬 거더람?”
순택이는 눈이 뚱그레서 영희의 낯빛을 그 이야기 속에 있는 의왼보다도 더 ˙빠르게 들여다보며 물었다.
“어디 자혜의원의 의사라던가 하는데 젊은애가 아무튼지 못하는 게 없어요. 말을 납신납신 해가며 나중에는 소설책을 가지고 와서, 로서아 소설은 로스케가 육초를 먹는 형상이니 심리 작용과 똑같다느니 남극 작품은 야회에서 늦게 돌아와서 자고 난 이튿날 아침의 귀부인 같다느니 하며 어디서 얻어들었는지 밤 가는 줄을 모르구 떠들어 대 겠지요.”
“그래 어떡 담?”
순택이는 이 한 고비가 어떻게 넘어가나 하고 가슴을 울렁거리며 귀를 기울이고 있다.
“무얼 어떡해요. 겨울법이 이슥하여지니까 저는 제 방으로 가구 나는 불도 못 끄고 누웠으나 암만해도 마음을 놓고 잘 수가 없기에 아래로 뛰어내려가서 하녀를 하나 빌리려 했더니 사키짱이 자청을 해서 쫓아오기에 데리구 와서 한 이불 속에서 끼구 잤지요…… 그때 벌써 열아홉이라던가 하는데 몸 피게 생긴 것이 이쁜 어린애 같아요! 그래 같이 온 밤새도록 이야기를 하면서도 홍하고 친한 줄은 꿈에도 몰랐었지. 나중에 홍을 만나서 사키짱하고 같이 자고 왔다니까 웃으면서 재미있는 계집애지? 하며 갈때에 들러서 소식을 전해달라 하기에 또 들어서 묵는 동안에 사키짱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지요.”
“그래 그 옆의 방에서 잤다는 의원인가 하는 자는 어떻게 되었더람?”
순택이에게 무엇보다도 흥미 있는 것은 이 문제이다. 영희는 빵긋빵긋 웃으며
“그게 똑 마치 활동사진 격이지요, 사람이 요절을 할…… 하……”
웃기만 하고 말을 시원스럽게 못한다.
“어떻게 되었길래?”
순택이는 웃으면서 더욱더욱 호기심을 가지고 대답을 재촉한다.
“아무튼지 여부없는 활동사진이에요. 그 이튿날 아침에 배에 올라서 이등실에 들어가 앉으려니까 궐자두 무심코 들어오다가 피차에 깜짝 놀라면서 깔깔 웃구 말았구먼……그래서 일주야 반을 단둘이서 한 방에서 지냈지요·…‥”
“단둘이서? 그럼 하룻밤하구 이틀 나절을?”
순택이는 놀란 듯이 이렇게 묻고도 자기의 말이 너무 우스운 것을 자기도 알았던지 혼자 빙그레하고 나서,
‘우리의 신혼여행보담두 재미있었을걸!’
하는 생각을 하여보니까 금시로 영희가 얌체빠진 계집같이 보였다.
“뭘 그렇게 놀라슈? 흐흐흥…… 사람이란 그렇게 딱 마주치니까 도리어 용기가 나고 마음이 퍽 순해지나 봅디다. 그렇게 침을 질질 흘리던 사람이 별안간 매우 정중하여지고 진정으로 친절하게 하여주는 모양인데 그래두 가다가다 기롱처럼 같이 살자는 둥, 애인이 있느냐는 등 하며 사람을 괴롭게 하지 않아요. 그래두 피하구 싶은 생각은 없었어!”
"그러다가 남자가 야심이 있으면 어쩌누?”
"대항하다가 안 되면야 하는 수 있나? 하지만 가만히 볼수록 내눈엔 그렇게 안 보이니까 안심하고 같이 있었지. 마음이 약하게 생긴 남자니까 내가 불결한 생각을 하기 전에야 좀처럼 그런 소리는 입밖에 내지 못할 남자더군.”
"그래 어디까지 같이 갔더람?”
순택이는 여전히 반신반의로 다른 생각을 머리에 그려나가다가 이렇게 물었다.
“글쎄 그게 우습단 말예요. 겨우 상륙을 해서 제다가 대고 전보를 놓을까 하다가 궐자 가면 쫓아나오지 않을까 하는 의심두 들기에 그대로 자동차를 잡아 타구 나섰지요.”
“그래서?”
“애를 써서 피해 가느라구 이틀 동안이나 사람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도 만나지 못하고 혼자 겨우 찾아 들어갔지요.”
“그래, 들어가서 보니까 어때?”
순택이는 여전히 머릿속으로 일종의 불쾌한 생각을 이어나가다 가는 억지로 그런 생각을 잊어버리려고 앓아누운 홍수삼의 얼굴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물었다.
“말 아니에요. 눈이 움푹 패고 먼지가 케케앉은 수염이며 머리가 자랄 대루 자라구…… 참 깜짝 놀랐어. 단 두 달 동안에 이렇게두 변하였나 하구……그런 이야기는 고만두고 글쎄 이거 보세요. 그 이튿날 아침밥을 먹구 나가니까 순회 의사(巡回醫師)가 읍내로 들어와서 군청에 채를 잡고 앉았는데 곧 들어와서 본다지요…… 난 가슴이 털썩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배 속에서 그 남자더러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보니까 여수까지 가서 앞서 간 사람을 만나보아야 알겠다고 하였는데 그 일행이 온 것은 분명한 일이지요.”
“그 일행이기로 가슴이 털썩 내려앉도록 놀랄 거야 무어나?”
순택이는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그래두 눈에 띄면 꼴사납지 않아요? 그래서 나는 부리나케 물을 데워다 놓고 수족이며 얼굴을 말갛게 씻기구 앉았으려니까 영감님이 앞장을 서서 우등우등 들어오지요! 아니나다를까! 중년된 주임의사 같은 사람의 뒤에 하얀 소독옷을 입고 간호부를 데리고 들어오는 사람이 분명히 어제 배 속에서 나란히 앉았던 사람입니다그려. 그 사람은 나보다두 한층 더 깜짝 놀라며 딱 서버립니다그려. 다른 사람들은 눈치를 채었더라도 병인을 보고 그러는 줄 알겠지만 창피하기두 하구 부끄럽기두 하구…….”
“그래 그후엔 어떻게 되었더람?”
순택이는 몸이 달아서 물었다.
“뭘 어떡해요? 고만 안으로 피하여 들어와버렸지요.”
하며 영희는 웃어버렸다.
“그래 그후엔 한 번두 못 만났어?”
“만나긴 어디서 만나요. 그때 나오다가, 이 집에서 사키짱더러 물어보니까 이 집 단골이라구 하더구먼…….”
이야기는 중간에 끊겼다. 영희는 3년 전의 일을 묵은 기억에서 들추어내어서 생각하여보느라고 얼없이 앉았으나 순택이는 순택이대로 3년 전의 영희를 머리에 그려보며 누웠다.
그동안에 아침 해가 훨씬 퍼졌우나 이 방에는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바다 위에 반사광이 앞 창에 비칠 뿐이요 역시 우중충하여 잠자기에 똑 알맞다.
이야기에 피로한 부부는 한참 동안 벙벙히 있다가,
“잠깐 더 자고 일어날까.”
하며 순택이가 이불을 끌어올리며 돌아눕는 바람에 영희도 자기 자리로 가서 누웠다.
바깥은 점점 더 떠들썩하여지고 아래층에서는 떼그럭거리며 그릇 씻는 소리며 창살에 탕탕 부딪는 총채 소리며 비질하는 소리가 어울려서 매우 요란하다.
영희는 금시로 잠이 폭폭 쏟아졌다. 차차 어른어른하여지고 귀가 멀어가려니까 별안간, ‘여보 여보’ 하며 부르는 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영희는 깜짝 놀라 깨었다.
“나 불렀소?”
“응, 벌써 잠이 들었어?”
“왜 그래요? 막 잠이 들까 말까 하는 판인데…….”
“난 깨어 있다구.”
“왜 그러세요?”
“아 글쎄 말야, 아까 사키짱이 있더라면 좋았겠다고 했으니 말야…… 사키짱 없기로 낭패 될 거야 없겠지?”
“낭패는 아니라도 있었더라면 같이 H군까지 가서 만일 날짜가 더디게 되면 선생은 먼저 올라가시구 둘이 떨어져서 아주 비를 세우는 것까지 보고 가려 했단 말예요…… 하지만 쓸데 있나! 선생이 계셔주시면 다행이구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글쎄 나 혼자라두 떨어져 있을까 하지만!”
“거긴 아무도 없지?”
“있긴 누가 있어!”
“그럼 말이 되나…… 어떻든 좋도록 하지!”
말이 그쳤다. 순택이는 역시 복잡한 생각이 뒤를 대어 머리를 어지럽게 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영희는 어느덧 잠이 들어서 안심한 듯이 쌔근쌔근하며 평화로운 숨결이 높았다 낮았다 한다.
8
영희의 부부가 지난날의 정랑이었고 친구이던 홍수삼이 스물일곱이라는 청춘의 몸으로 영원히 평화로운 잠이 들어 고요히 누워있는 H군에 도착한 것은 목포의 여관에서 떠난 그 이튿날 저녁 때였다.
자동차 상회 앞에서 다른 손들은 떨어뜨리고 영희의 내외만 H여관 문앞까지 태워다주게 되었다. 일본 사람의 여관이라고는 이 고을 읍내에 이 집 하나뿐, 여관이란 말뿐이요 조선 집을 뜯어고친 얼치기의 시골 객주집이다. 영희 내외는 우선 방을 잡아놓고 행색을 매만진 후에 여관 하인을 앞장세우고 군청을 찾아 나왔다. 수삼이가 죽은 지 1년이 못 되어서 수삼이의 부친도 돌아가고 그의 친족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오늘날에 수삼이의 묘를 알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군청에 들어가서 조사하여달라면 알기가 쉬우리라 하여 파사하기 전에 시급히 그리로 찾아 들어가는 것이다.
다행히 아직들 파하지 않았다. 군수도 나가지 않고 있다 한다. 순택이는 자기의 명함을 들여보내어 군수에게 면회를 청하였다.
군수는 방문 밑까지 나와서 맞아들였다. 어쩌니어쩌니 하여도 충독부의 토목과 촉탁이라는 순택이의 직품이 매우 유력한 모양. 영희는 관리인 남편을 가진 덕을 우선 여기서 보게 되었다.
머리를 반지르하게 갈라붙이고 까만 수염을 코밑에 답수룩하게 기른 젊은 군수 영감은 서울 사람을 의외로 만난 것을 더욱이 반가워 하는 모양이다.
“네, 홍군수의 자제 말씀이지요. 글쎄 아마 이 부근일 테지요…… 고참 서기에게 물어보면 알겠지요.”
하며 금테 안경 위로 영희를 잠깐 흘겨보며 책상 위에 놓인 초인종을 땅땅 쳤다. 검정 양복을 입은 어린아이가 문 밑까지 들어와서 머리를 숙였다.
“저 민적계에 김서기 좀 들어오라구 해라.”
김서기가 들어와서 영희 내외가 앉은 반대편으로 군수의 책상 가까이 섰다.
“……그 저 홍군수의 자제가 예서 돌아갔다지?”
“네…….”
“그 산소가 어딘지 아나?”
“알죠, 그때 제가 주상을 해서 지냈으니까 알다 뿐이에요.”
영희는 별안간 반색을 하며,
“그래 어디 쯤예요.”
“예서 얼마 안 되지요. 이삼십 분이나 걸릴까요. 가보시려면 이따 파사 후에 안내해드리지요.”
하며 서기는 영희의 내외를 유심히 바라보고 섰다.
“그럼 그렇게 하구려.”
하며 군수는 잘 되었다는듯이 웃으며,
“이 영감은 본부 토목과의 촉탁으로 계신·이순택씨요, 저 내행은 부인이신데 김 군이 아무쪼록 편의를 도와드리도록…….”
이렇게 군수가 소개를 하자 순택이는 말이 맺기 전에 벌떡 일어나며,
“우리 인사나 합시다.”
하고 명함을 바꾸었다. 인사가 끝난 뒤에 순택이는 영희를 가리키며,
“이 사람은 내 내자올시다. 홍군으로 말하면 내 처가의 친척도 되고 생전에 나하고도 매우 친한 터인 고로 이번에 마침 이리 지날 길이 있기에 좀 찾아보고 가려는데……다행히 노형을 만나서……”
“아 그러세요! 저도 홍군과는 매우 절친하게 지냈습니다. 참 아까운 사람을 잃어버렸죠…… 홍군의 매씨가 한분 계셨지요.”
하며 영희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나서
“지금 서울 계신지요? 또 계씨는 그저 일본에 계신지요?”
“네, 그 매씨는 벌서 출가하셨나 보지요. 그 계씨는 동경에 그저 있지요만.”
순택이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을 듣고 서기는 잠깐 고개를 갸웃하는 모양이더니 웃는 듯한 표정으로 영희를 또 한 번 쳐다보았다. 인제야 짐작이 나선다는 모양이다.
“그럼 길이 바쁘실 터인데, 어서 모시고 가서 안내를 해드리지·…‥”
잠자코 두 사람의 수작에 귀를 기울이고 앉았던 군수는 서기를 재촉하였다.
김서기가 사무 보던 것을 치우고 두루마기를 떼어 입고 나오기를 기다려서 영희 부부는 군수와 작별을 하고 군청 문을 나섰다.
인력거를 타려고 하였으나 마침 세 채나 없기도 하고 이삼십 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고 하기 때문에 세 사람은 석양판에 천천히 걷기로 하였다.
“홍군의 춘부영감도 역시 폐병으로 돌아가셨지요. 노인은 그렇게 전염 안 된다는데…… 아마 그 집안에 계통이 있었는지 여기서부터 각혈을 하시어서 서울로 올라가신 뒤에 즉시 돌아가셨다지요. 그것도 자제를 잃은 뒤에 너무 심통을 하여서 그렇게 급히 돌아가신 게지요.”
김서기가 앞을 서서 가며 천천히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글쎄 그러신가 보더군요. 그때 우리는 일본에 있었기 때문에 자세한 건 모르지만.”
순택이는 몽롱한 대답으로 말을 받았다.
“홍군도 역시 마음 편히 조섭만 잘하였다면 그렇게 쉽게는 안 죽었을걸…… 약혼한 처녀가 있었더라는데 일본서 이리 나온 뒤부터 그랬지만 그 옛 처녀가 잠깐 다녀간 뒤로는 아주 더쳐버려서 시시각각으로 달라졌지요…… 아무튼지 그런 병은 심로를 하면 더한 거예요.”
서기는 이런 소리를 하며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걷는 영희의 얼굴을 잠깐 돌려보았다. 영희가 그 여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없지 않지만 기연가미연가하여 일부러 이런 말을 끄집어낸 것이다.
영희는 서기의 말을 듣고 가슴이 뜨끔하였다.
얼마라도 살 수가 있었던 것을 자기 때문에 수가 줄었다는 생각은 벌써부터 영희에게 없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보도 듣도 못하던 이 사람에게 수삼이는 그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그 아버지는 수삼이 때문에 제 수를 다 마치지 못하였다는 소리를 들을 제 그 장본인이 자기인 것을 알고 하는 말인지 모르고 하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어떻든지 가슴의 상처를 겨냥을 하고 콕 찌르는 것 같
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그 여자가 수삼씨가 돌아간 뒤에 여기 왔었어요?”
세 사람은 잠자코 가다가, 영희가 시치미를 떼고 이렇게 물었다.
“몰라요, 아마 안 왔겠지요.”
서기는 이렇게 대답을 하고 나서 영희를 또 한 번 쳐다보며,
“돌아간 이하고 어떻게 되시나요.”
하며 물었다.
“내 사촌처남이에요.”
순택이가 말을 가로막고 얼른 대답을 하였다.
세 사람은 또 잠자코 걸었다. 시가에서 빠져나와 촌가가 드문드문한 논두렁을 빙빙 돌다가 산비탈까지 오더니 서기는 우뚝 서며,
“바로 저 위올시다. 이리 돌아가면 그리 힘들 것도 없지요…….”
이렇게 한마디 하고 또다시 앞장을 서서 꼬불꼬불한 산길을 휘돌아 들어갔다. 영희 부부가 암말 안 하고 따라섰다.
넘어가려는 석양이 저편 산모롱이에 걸려서 엷은 햇발이 꾸부리고 올라가는 세 사략의 뒤를 비추어서 희미한 그림자를 앞으로 기다랗게 던진다.
올몽졸몽한 무덤이 여기저기다 옹기옹기 흐트러져 있는 틈을 휘돌아서 서기는 거의 끝까지 다 올라가서 우뚝 서더니 빙그르르 돌아서며 허덕허덕하고 뒤떨어져 올라오는 영희 내외를 내려다 보고,
“고까짓 걸 걸으시고…… 여기예요, 이것입니다.”
하며 자기 곁에 벌겋게 벗어진 큼직 한 무덤을 가리켰다.
영희는 발이 재게 기어올라와서 한숨을 휘 쉬며 분상 앞에 한참 섰다가 사방을 휘둘러다보았다.
“아무 표두 없구먼요?”
영희는 무심코 이런 소리를 하였다.
“왜 그러세요? 내가 잘못 찾았을까 보아 그러세요? 허…… 거기 찾아보면 조그만 말뚝이 있을걸요.”
하며 서기는 꾸부리고 이리저리 다니며 무엇을 찾더니,
“응! 여기 있군요. 어구 물에 쓸려서 빠져버렸구먼요.”
하고 한편 토성이 문드러져 나온 데서 뿌옇게 썩은 네모진 나무때기를 집어들고 영희 앞으로 왔다. 영희는 주는 대로 잠자코 받아서 들여다보았다.
‘홍수삼지묘’라 한 다섯 자 중에 ‘삼’ 자 하나만 겨우 보이나 위 아래의 두 자씩은 거의 형적을 알 수가 없다.
영희는 한숨을 휘 쉬며 비에 썩은 검은 나무때기를 꽉 쥐며 눈을 감고 섰다.
영희에게는 이 광경이 슬픈지 어쩐지 자기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속에 지금 그 사람이 누워 있다는 것은 암만해도 이상한 일 같았다. 이 얼굴을 쏘듯이 들여다보고 웃던 그 눈, 이 입에 불 같은 키스를 퍼붓던 그 입, 이 가슴이 부서져라고 껴안던 그 팔이 지금 이 속에서 썩는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죽음이란 무엇인지 새삼스럽게 이상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몸도 이 살도 썩을 날이 있으렷다! 하는 생각이 머리에 떠오를 제 금세로 허공을 밟고 낭떠러지로 날아들어가는 같았다.
건넛산며리에서 오늘 하루 동안 만들어놓은 모든 열매, 오늘 하루 동안 내려다보던 대지 위에 붙은 모든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숨어버리는 것이 애처롭고 섭섭하다는 듯이 한참 동안이나 오르락내리락하며 날름거리던 저녁 해는 기어코 쑥 빠져버리고 말았다. 나무라고는 별로 없는 뻘건 산 위에도 벌써 황혼이 솔솔 불어오는 봄바람에 싸여서 한 겹 두 겹씩 내려앉기 시작한다.
순택이는 김이 빠진 맥주를 마신 사람처럼 쓴지 단지 아무 느낌 아무 생각도 없이 멀거니 섰다가,
“그만 가지 !”
하며 옆에 앉았던 영희를 내려다보았다. 영희는 잠자코 일어나서 분상을 다시 한 번 돌아다보고 앞장을 선 서기의 뒤를 따라섰다.
순택이는 영희를 앞세우고 따라가다가 무심히 이 경우에 자기의 처지를 생 각하여보았다.
사랑하는 영희의 원을 풀어준다는 뜻으로 또는 자기에게도 역씨 친구가 되니까 같이 온 것이라고 속으로 변명은 하면서도, 이렇게 쫓아다닌다는 것이 옳은 일이라 할지 혹은 흘게⁷ 빠진 짓이라 할지 자기의 일이건마는 분명히 판단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홍수삼의 묘를 보고 영희가 금세로 풀이 죽어진 것을 보면 벌써부터 짐작은 한 일이지만, 별안간 질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홍수삼이라는 이름이 쓰인 목표를 보고 반기면서 손에 꼭 쥐고 섰던 양을 머리에 그려볼 제 허청대고 공연히 심사가 난다…… 이런 생각을 이어가다가 순택이는 급작스레 머릿 속이 띵하고 모든 생각이 흐트러져버렸다. 기운이 쑥 빠져 심한 피로가 전신에 확 퍼지고 다리가 휘청휘청하는 것 같았다. 마치 목을 매어 끌려가듯이 영희의 가는 발자국대로 따라 밟으면서 질질 끌려 내려간다.
산비탈을 다 내려와서 세 사람이 한데 모여서 걷게 되었을 제 영희는 서기를 건너다보며,
“여기서 비를 세우려면 곧 될까요?”
하며 물어 보았다.
“글쎄요. 하루이틀에 곧 될지는 마치 몰라도 되기야 하겠지요. 마침 깎아놓은 돌이 있었으면 한 이틀만 하면 되겠지요.”
서기는 이렇게 대답을 하고 나서,
“이번에 비를 세우시게요? 그것도 좋지만 급한 것이 사초이겠더군요.”
하며 서기는 좀 늦은 듯하지만 곧 사초를 하도록 하여야 올 여름을 지낼 터라고 설명을 하고 자기에게 맡기면 몇 푼 안 들이고도 잘 할 수 있다는 말까지 하였다.
“그럼 지금이라도 석공을 불러볼 수가 있을까요?”
영희는 시급하다는 듯이 이렇게 물었다.
“불러오지 않더라도 제가 오늘 저녁에 가서 물어보지요.”
“그럼 어려우셔도 그렇게 해주세요.”
“그러지요. 대강 물어보고 이따가 여관으로 가서 보입지요.”
서기는 홍수삼을 알아서 그랬는지 모든 것을 의외에 손쉽게 알아서 해주마고 자진을 하였다.
군청 앞까지 와서 밤에 만나기를 약조하고 헤어졌다.
저녁이 끝난 뒤에 9시나 되어서 김서기는 영희 내외를 찾아서 여관으로 왔다.
“가서 물어보니까 마침 닦아놓은 돌이 두 개가 있는데 좀 좋은 것은 지경까지 닦고 세우는 데 50원 가량 먹고 그보다 못한 거면 10원 하나가 틀린다더군요. 내일부터 시작하며 모레 저녁 때는 끝이 날 모양이나 회로 터를 다져서 웬만큼 말려야 한다니까 내일 아침 썩 일찍이 시작해야 한다는데요.”
하며 여러 가지 자세한 설명을 더 보태 말하였다.
영희는 당장에 자기가 가지고 온 50원을 내어놓고 좋다는 것으로 우선 착수를 하여 잘하여놓으면 부족되는 것은 일이 끝난 뒤에 치르마고 부탁하였다. 물론 사초까지 하고 일을 시작할 때에 지내는 산신제는 김서기 집에서 조금 차려다가 지내기로 모든 설비가 손쉽게 결정되었다.
“그럼 비문에는 무어라구 쓸까요? 글씨도 저희더러 쓰라고 맡겨버리시지 요.”
하며 서기는 호주머니에서 연필과 수첩을 꺼내었다.
“홍수삼지묘라고 앞에 쓰고 뒤에는 우리 이름하고 연월일만 쓰면 고만이겠지?”
하며 영희는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렇지! 하지만 이름을 안 쓰면 상관있나.”
순택이는 이렇게 대답을 하고,
“쓴다면 영군의 성명만 써두 좋지!”
“그거야 안 되지요. 그래두 두 분 함자를 다 쓰셔 야지요.”
서기는 붓대를 놀리면서 이러한 의견을 제출하고,
“영감 직함은 그저 공학사라고만 하지요.”
하며 물었다. 이것은 서기가 아까 받은 명함에서 본 것을 생각하고 알아차리고 하는 말이다.
“아무려나 하구려.”
하며 순택이는 의미 없이 웃었다.
“부인 함자는 무어라구 쓸까요?”
하며 영희를 쳐다보았다.
“최영희라고 하세요.”
“네? 최영희씨세요? 최씨세요?”
서기는 눈이 뚱그레지며 다시 물었다.
“네 그렇게 쓰세요.”
하며 영희는 생끗 웃었다.
순택이도 웃었다. 서기만은 븟끝을 놀리면서도 어림 삥삥한 모양이다.
“이렇게 하면 좋겠지요?”
하며 서기가 수첩에 쓴 것을 두 사람 앞에 내밀었다.
순택이는 적은 것을 읽어보더니,
“영군의 이름을 먼저 쓰지! 영군이 역시 더 가까우니까.”
하며 수첩을 영희에게 전하였다. 영희는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아요.”
하며 반대를 하다가 결국은 만족한 듯이 찬성하고 나서, 그 대신에 간역가(看役者)로 김서기의 이름까지 쓰자고 발론하였다. 서기가 사양을 하는 모양이나 이의 없이 영희의 의견대로 결정하였다.
영희는 지저분하게 된 것을 다시 정하게 쓰려고 서기더러 연필을 달라고 하여 수첩을 한 장 넘겨서 다시 쓴다.
……최영희(崔榮憙)
공학사 이순택 건지 (工學士李淳澤建之)
감역 김 × ×
임술년 사월 ○일
이라고 써놓고 영희는 한참 들여다보다가 혼자 방긋 웃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까 내가 세우는 비를 공학사 선생이 설계를 하고 김선생이 간역을 해주신 것 같군!”
“홍군에게 대하여는 참 명예로군!”
하며 유쾌한 듯이 또 한 번 깔깔 웃었다.
이튿날 아침에 영희 내외가 겨우 세수를 하고 앉아서 서울서 온 신문을 보며 있으려니까 김서기가 찾아와서 벌써 인부들을 끌고 올라가서 일을 시작시키고 내려오는 길이라 한다.
영희는 그만큼 열심히 일을 보아주는 김서기의 후의가 반갑고 감사하였다.
“참 여러 가지로 미안합니다. 김선생을 못 만나 뵈었더라면 어떻게 하였을지…… 그것두 무슨 적지 않은 인연이 있어서 그런가 보외다.”
영희는 진정으로 감사하다는 뜻을 표시하며 아침이나 같이 먹자고 붙드니까 출근 시간이 바빠서 곧 간다 하며 낮에는 틈이 없기 때문에 믿을 만한 사람에게 부탁은 하고 왔지만, 나중에 좀 올라가서 보라는 말까지 이르고 나갔다.
서기가 간 뒤에 순택의 부부는 밥상을 받았으나 별로 이야기도 없이 잠자코 먹었다. 목포에서 떠난 뒤로는 신혼여행 같은 생각이 피차에 없어지고 무슨 볼일이나 보러 가는 사람처럼 여행이나 내외의 재미라는 것보다는 의무적 관념이 앞장을 섰다. 하기 때문에 대개는 서로 덤덤히 앉았을 때가 많다. 순택이에게는 영희가 하는 일이 그다지 불유쾌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껄껄대며 흥에 겨워할 형편도 못 된다. 또 영희로 말할지라도 미안하다 생각하고 될 수 있는 대로는 온화한 낯으로 일부러 이야기도 끌어내지만 역시 제각기 자기 혼자대로의 기분 속에서 노는 수밖에 없다.
지금도 아침밥을 먹고 났으나 순택이는 별로 갈 데도 없어서 매우 무료한 듯이 집 안을 빙빙 돌아다니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서 벌떡 나가자빠져버렸다.
이 거동을 보고 앉았던 영희는 딱하기도 하고 또 산에 올라가기 전에 해야 할 일도 있어서 겸두겸두하여,
“심심하시건 어디든지 산보나 하시구 오시구려. 그동안에 머리두 빗구 옷두 갈아입을 테니!”
하며 남편을 나가도록 충동였다:
“나가면 같이 가지. 그동안 기다릴게…….”
순택이는 이렇게 대답을 하고 여전히 드러누웠다가, 머리는 빗을 생각도 안하고 멀거니 자기만 바라보고 앉았는 영희를 보고 여자에게 보통 있는 일로 혹시 혼자 할 일이 있어 그러지나 않는가 하는 생각이 나서,
“좀 나갔다가 들어올까.”
하며 벌떡 일어나서 양복을 주섬주섬 입었다. 영희는 어쩐지 남편을 내쫓는 것 같아서 미안하면서도 옷 입는 것을 거들어주었다.
순택이가 암말 없이 나가는 쓸쓸한 뒷모양을 방문 밖에 나와서 바라보며 섰던 영희는, 문간에서 구부리고 구두를 신은 남편이 길러 나서는 것을 보고 자기 방으로 들어와서 자기의 가방이 놓인 앞에 펄썩 주저앉았다.
영희는 옆에 있는 손주머니 속에서 열쇠를 저그럭저그럭하며 찾아내어서 가방 뚜껑을 열고 옷 한 벌을 꺼내놓고 나서 다시 쑤석쑤석하더니 하얀 나무 궤짝을 꺼내어 열어본다. 그 속에는 수지 뭉텅이 한 봇짐하고 자기의 사진 한 장이 들어 있다. 이것은 서울서 떠나오던 날 자기 방에서 가지고 나와 마루에서 가방에 넣은 것이다.
영희는 우선 사진을 꺼내어 한참 들여다보다가 가방 속에 툭 던지고 나서 그 수지 뭉치도 꺼내어 허리에 비끄러매인 노끈을 끄르더니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서 펴본다. 여기저기 눈에 띄는 대로 주워 읽어보았으나 끓는 사랑을 하소연한 아름다운 글귀를 볼 적마다,
’나도 이런 말을 쓴 때가 있었나?’
하고 생각을 하고 혹자 웃고 앉았다가 날짜를 찾아보고,
“오 이건 그때 쓴 거로군!” 하며 먼 날의 흐릿한 기억을 생각하여보며 얼빠진 사람처럼 앉았다.
이 수지 뭉치에는 영희의 손으로 쓰지 않은 것이 한 장도 없다. 수삼이하고 만난 뒤에 자기의 타는 가슴 끓는 열정을 역력히 기린 기념탑이 이것이요, 수삼이에게 향한 한 조각 붉은 마음의 꽃다운 흔적이 있었다는 것을 보증하는 것도 이 묵은 수지 속에 적힌 글자밖에 또다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보아주던 그 사람―이것을 기념하여서 일생의 보배로 잘 간수하여줄 그 사람―이 넓은 우주 가운데 꼭 한 사람이던 그 사람이 없어진 오늘날에―그 글을 쓴 임자는 있어도 그 글을 볼 임자는 없는 오늘에, 그 글은 그대로 흐트러져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으로 옮아다니게 내버려두는 것은 영희의 영원한 고통이다. 그리하여 수삼이가 죽은 뒤에 그 관 속에 넣지 않은 것을 섭섭히 생각하며 수삼의 아우의 손을 거쳐서 찾아다가 둔 것이었다.
그러나 임자를 잃은 이 사랑의 폐허(廢墟)를 영희 자신이 자기의 가슴에 품고 다니는 것은 한층 더 비참한 일이요 가슴이 저린 일이었다.
영희는 드디어 이 수지 뭉치의 임자를 찾아왔다. 이 사랑의 폐허를 인간의 폐허에 묻으려고―영원히 떠나신 님의 가슴에 품어 두려고 영희는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 속에는 수삼이와 동경에서 마지막으로 이별한 후에 매일 서로 교환하던 일기도 함께 섞여 있었다. 그중에는 훌륭한 감상문도 있었다.
영희는 또다시 한번 모조리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났으나,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없애버려야 하겠다 하고 종이 뭉치를 두 손으로 휩싸서 들고 벌떡 일어나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어디서 태울까 하고 이리저리 호젓한 곳을 찾아다니다가 하녀를 불러 데리고 온돌방 아궁이를 찾아갔다.
영희는 아궁이 앞에 종이를 수북이 싸서 놓고 성냥을 확 그어댄 뒤에, 하녀더러 자기 방에 가서 흰 종이를 가져오라고 일렀다.
불은 당기기가 무섭게 보기 좋게 훨훨 타기 시작한다. 세차게 치받쳐 오르는 시원스러운 불길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앉았는 영희의 얼굴은 점점 상기가 되고 눈이 화끈화끈하여졌다.
한참 타오르던 불길은 별안간 확 꺼져버리고 까맣게 탄 재가, 차고차곡 종잇조각을 접은 대로 가랑잎처럼 뻗친 속에는 불기가 아직 남아서 반짝거리며 몽긋뭉긋 속으로 타들어간다. 영희는 좀 먹어 들어가듯이 불빛이 번져가는 것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앉았다가 까만 재 위에 아직도 잉크로 쓴 글자가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들어서 읽어본 뒤에 그대로 사뿟이 놓았다. 어쩐지 태운 것이 아깝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였다.
영희는 하녀가 가져온 반지⁸ 몇 장을 펴놓고 타고 남은 재를 둘이서 그러모아 봉지봉지 쌌다.
“이건 무얼 하세요?”
하녀는 이상한 듯이 물었다.
“약에 쓸 거야.”
“무슨 병에요?”
“글쎄? 무슨 병에 쓸구? 상사병에 쓴달까!”
“하……”
하녀는 깔깔깔 웃으며 종이 봉지를 들고 영희를 쫓아 나왔다.
자기 방에 와서 영희는 돈 몇 푼을 꺼내서 하녀에게 주고 조선 백지를 석 장만 얼른 사오라고 이르고 나서 자기는 가방에 던져둔 4년 전의 자기 사진과 만년필을 꺼내 들고 머무적머무적하다가 사진 뒷장에 이렇게 썼다.
‘가신 님의 아직도 따뜻한 품에 안기고자. 님의 모든 것이요, 나의 모든 것인 이 몸을 대신하여 바치나이다. 계해년 사월 ○일, 최 영 희.’
라고 꼭꼭 박아 써가지고 또다시 들여보다가 하녀가 사가지고 온 백지를 받아서 우선 사진을 네모반듯하게 싸놓고 또 한 장에는 재를 모아서 쌌다.
‘그건 그렇게 싸서 무얼 하세요?”
뒤에 섰던 하녀는 기웃이 들여다보며 또 물었다. 영희는 무심코 앉았다가 깜짝 놀라며,
“무얼 하든지, 어서 나가!”
실없는 말처럼 웃으며 이렇게 소리를 질러서 내쫓았다.
하녀가 나간 뒤에 영희는 재를 싼 봉지를 궤짝 속에 넣고 그 위에 싸서 놓았던 자기 자신을 집어넣으려다가 그래도 미진한 것이 있던지 그 사진을 다시 혜치고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앉았다. 영희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하여졌다. 지금 영희는 자기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이아니라 먼 데 가는 친구와 작별이나 하는 모양이다.
얼이 빠져 앉았던 영희는 이러고 앉았을 때가 아니라고 정신을 차리고 펴보던 사진을 얼른 싸서 궤 속에 넣고 뚜껑을 딱 닫은 뒤에 그 위를 백지로 또 한 번 싸서 보자에 다시 쌌다.
영희가 자기의 할 일을 마치고 머리를 막 빗으려니까 순택이는 재미 없었다는 듯이 머쓱해서 들어왔다.
“어때요? 무어 볼 게 있어요?”
영희는 웃으며 남편을 쳐다보았다.
“무어 아무것도 없어…… 그런데 머리는 왜 이때까지 못 빗었더람?”
“고동안이 얼마나 되기에·……옷 벗지 마세요, 곧 나설 테니.”
영희는 경대 앞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서 손을 싸게 놀린다. 순택이는 잠자코 바라보며 앉았다가
“내일 낮에는 떠나게 될까? 순천까지라도 갔으면 좀 낫겠군.”
하며 갈 생각부터 한다.
“하루만 더 참으면 될 터인데 나두 있구 싶어 있는 줄 아슈?”
영희는 이렇게 핀잔 같은 위로를 하고 경대 앞에서 일어나서 손읕 씻고 들어와 옷을 갈아입었다.
“군수가 초대를 한다지? 가볼 테면 얼른 다녀와야지.”
“글쎄 김서기더러는 폐가 되니 고만두라고 하였지만 어떻든 얼른 다녀오십 시다.”
두 사람은 방에서 나오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영희 옆구리에는 나무 갑을 싼 보자기가 끼여 있다.
“그건 무어야?”
순택이는 앞장을 서서 나가다가 돌아서 보며 물었다.
“먹을 것! 하……”
“먹을 거라니 점심을 가지고 간단 말야?”
순택이는 유심히 그 보따리를 들여다보며 웃었다. 영희도 생긋생긋 웃기만 하면서 대답은 안 한다.·
영희의 부부는 어제 다녀온 길을 몇 번씩이나 물어가며 겨우 찾아 올라갔다.
아닌 게 아니라 꽤 분주히들 왔다 갔다 하며 떠들썩한다. 영희 내외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여러 일꾼들은 손을 멈추고 돌려다들 보았다. 토성 위에 앉아 간역하던 갓장이는 이 일행을 보더니, 뛰어내려와 맞으면서 ,
“영감께서 이 일을 시키시지요?…… 저 김주사가 친히 보질 못한대서 제가 대신합니다. 오늘은 한나절만 하면 사초두 거의 끝날 테요 지경도 다 되겠지요. 저기 저렇게 파놓기까지 하였으니까 곧 됩니다.”
하며 묻기도 전에 설명을 하였다. 순택이는 응응 하며 듣고만 있다가 아무 흥미도 없는 듯이 이리저리 거닐며 서성거렸다. 그러나 영희는 진정으로 기뻤다.
자기의 사랑하던 사람을 위하여 죽은 뒤일망정 자기의 힘으로 하여주고 싶은 것을 해주게 된 것이 무엇보다도 기쁘지만 잔칫집 모양으로 엉정벙정하는 것을 보고 이 속에 누웠는 이 사람도 좋아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 마음에 더욱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희는 신기가 좋은 듯이 남편 앞으로 가서 서며,
"우리가 결혼을 하고 여기 찾아온 것을 헝군의 영혼이 알았다 하면 노할까? 자랑이나 하러 온 줄 알고…… 너희들은 내 머리 위에서 춤을 추러 왔느냐 하지는 않을까?”
하며 두무미하게 이렇게 한마디를 하고 순택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뭘 그렇게야 알까. 그러게 이렇게 우리들이 비라두 세우려고 애를 쓰지 않나?”
“그래요. 참 그러기에 될 수 있는 대로는 잘해주어야 할 거예요…… 내일 비를 세우건 차례라도 한번 지내구 싶건만…….”
영희는 남편의 눈치를 보려는 듯이 나란히 섰는 순택이의 얼굴을 곁으로 쳐다보았다.
“아무려나 하지 못할 게 무엇 있나.”
하며 순택이는 찬성 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오늘 내려가서 김씨더러 부탁을 해두지…….”
“그러는 게 좋겠지.”
순택이의 대답은 힘이 없었다.
이때에 저 아래편에서 감역한다는 아까 만난 갓장이가 올려다보면서,
“아씨! 이리 와보시오. 지금 묻습니다.”
하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영희는 깜짝 놀라며 달음질을 하여 내려갔다. 인부들은 네모반듯하게 파놓은 구렁에 백회며 새벽이며 조약돌을 섞어서 반죽을 한 흙을 부삽으로 퍼부어가며 달구질을 한다.
영희는 한참 들여다보다가 반쯤 긁어 넣은 것을 보고 잠깐 기다리라 하더니 보자에 싼 것을 꺼내어 달구질하던 인부에게 주며 꼭 한가운데에 파묻고 그 위로 흙을 부으라고 일렀다.
이와 같이 하여 영희의 사랑의 전량(全量)과 반생의 청춘을 성냥 한 개비로 살라버리고 검은 재와 사랑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의 기념이던 영희의 사진은 영희의 정성으로 세우는 한 조각 돌멩이의 비석 밑에 천재지변이 있을 그때까지 고요히 감추어지게 되었다. 홍수삼의 살과 뼈가 시신도 없이 녹아버리고 최영희의 몸이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는 날에도 털끝만치 변함없이 이 땅 위에 아직 남아 있을 것은 백지에 싼 이 궤요 이 궤 속의 그 사진이며 그 재뿐일 것이다.
9
영희의 내외가 H군에 온 지 사흘째 되는 날이다. 순택이는 어젯밤에 군수의 집에서 늦게 돌아와서 곤하기도 하고 일찍이 일어난대야 별로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느 때까지 자리 속에 머뭇거리며 누워 있었다.
영희는 오늘 지낼 다례에 제문이 있으면 더욱 좋겠다는 김서기의 말에 끌려서 제문을 써볼까 하고 남편이 누워 있는 동안에 붓대를 들어보다가, 자기 감정을 너무 과장하는 것 같기도 하고 쓰고 싶은 대로 쓸 것 같지도 않아서 붓대를 던지고 잠깐 드러누었다.
얼없는 사람처럼 개지도 않은 자리 위에 가만히 가로누웠다가 별안간 사키짱 생각이 나서 벌떡 일어나서 부산에 있는 사키짱에게 편지를 썼다.
영희에게 대하여 반갑고 기쁜 것은 지난날의 정랑을 생각게 하는 모든 것이었다. 이것은 아마 영희의 일생에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중에도 살아 있는 여자로서 수삼이를 사랑하던 사람은 자기 외에 오직 사키짱 하나뿐이다. 영희의 생각대로라면 이 세상에서 수삼이를 사랑한 사람은 자기와 사키짱밖에 없으나, 자기는 마지막의 승리를 얻었다는 자만이 있으니만치 사키짱을 귀엽게 생각하고 동정하고 섭섭하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영희는 지금 자기가 어째서 H군에 왔다는 것과 며칠 있으면 부산으로 가서 만나보겠다는 사연을 간단히 알려주려는 것이다.
순택이는 10시나 지나서 겨우 일어나서 아침을 먹은 뒤에 신문을 뒤적거리 다가,
“오늘은 몇 시면 떠나게 될 텐구?”
하며 또 물었다. 영희는 송구스럽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으나,
“어떻든 곧 떠나게 되겠지요. 왜 그렇게 조바심을 해요.”
하며 좀 짜증을 내어 보였다.
점심 때쯤 되어서 김서기가 데리러 왔다. 비도 다 세우고 제물도 올려 보냈다 한다.
영희 내외는 활기 있게 서기를 따라나섰다.
산에 올라와보니까 아직 인부들도 남아 있고, 촌에서 구경들을 왔다는 사람들이 엉정벙정하는 것이 영희 마음에 우선 좋았다. 여러 사람을 좌우편으로 좍 헤치고 김서기의 선도로 ‘홍수삼지묘’라는 다섯 자가 또렷한 비석 앞에 우뚝 설 제 영희는 무슨 엄숙한 제단에 제주로서 올라선 것같이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흡족한 마음과 비창한 생각이 서로 얽혀서 눈물이 핑 도는 것 같기도 하고 머리가 저절로 수그러지는 것 같기도 하였다. 이십 명 가까운 사람이 푸르게 새로 꾸민 분상과 넓적하고 커다란 돌멩이 한 조각과 그 앞에 선 소복한 젊은 아씨를 에워싸고 섰건만 누구나 입술 하나 발끝 하나를 꼼짝하는 사람도 없다.
영희의 가슴은 가볍게 잠깐 떨렸다. 영희는 이삼십 분이나 검푸른 돌멩이에 음폭음폭 파인 ‘홍수삼’이라는 글자를 자획이 돌아간대로 쳐다보고 또 쳐다보다가 뒤로 돌아가서 자질구레하게 새긴 자기 내외의 성명을 들여다보았다. 순택이와 서기도 쫓아왔다. ‘최영희’라고 선명히 새긴 자기의 이름을 보고도 영희는 반가운 생각이 났다. 그러나 그 반가운 것은 ‘홍수삼’이라는 석 자를 대할 때의 반가운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어서 제물을 괴어서 지내지.”
순택이는 덤덤히 섰다가 서기와 영희를 반반씩 쳐다보며 재촉을 하였다.
“다 차려놓았으니까, 곧 지내시지요.”
김서기는 영희를 보고 물었다.
“내가 지 내요?”
영희는 어떠한 절차를 밟아야 좋을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별게 있습니까. 약주 한잔만 부어놓으시면 고만이지요.”
하며 서기는 인부를 시켜 제물을 괸 젯상을 갖다놓고, 그 앞에 배석을 깔아놓았다. 영희는 머뭇머뭇하다가 구두를 벗고 배석 위에 조용히 꿇어앉았다. 김서기는 그 옆에서 제주를 부어서 분향을하고 난 후 영희의 손에 쥐여주었다. 영희의 손은 으르르 떨렸다. 심서기는 다시 그 잔을 받아서 놓을 자리에 갖다놓았다.
영희는 향이 타서 오르는 것을 잠깐 보다가 일어섰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동시에 눈에는 눈물이 그득히 고였다. 어깨가 또 한번 흔들렸다. 그러나 그 눈물은 수삼이에게 대한 애도의 정에서 나온 것이라 하는 것보다는, 긴장한 기분에 끌려서 나온 것이다. 순택이는 영희의 거동을 일일이 바라보며 곁에다가 영희의 어깨가 떨리는 것을 보고 외면을 하였다. 한숨이 저절로 휘하며 나왔다. 그러나 한번 껄껄 웃고 싶은 생각이 났다. 순간에 별안간 자가 부친이 폐백도 안 드리고 다례도 지내려 하지 않았다고, 화를 내고 떠나던 혼인날 밤의 광경 이 눈에 떠올랐다.
순택이는 역시 껄껄껄 웃어보고 싶었으나 쨍쨍한 볕에 비쳐서 아지랑이같이 날아오르는 향로의 연기를 바라보며 잠자코 섰다.
-끝-
2016년 6월 25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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