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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계획은 압해도의 송공산이였지만 산행시간과 코스가 어중간하여 끼운 산이 유달산이다.
그런데 이 두 산은 이미지가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
유달산은 산세가 험하고 층층기암과 절벽이 많아 호남의 개골(皆骨)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지만 압해도의 송공산은 완전한 육산의 산세다.
여러가지 사정을 감안 신안군 압해도의 송공산과 산행순서를 바꿔 유달산을 먼저 오르기로 하였다.
유달산(228m)은 예부터 영혼이 거쳐가는 곳이라 하여 영달산이라 불렸고, 태양이 떠오를 때 봉우리가 마치 쇠가 녹아내리듯 하다고 유달산(鍮達山)이라 하였다.
노령 산맥의 맨 마지막 봉우리이자 다도해로 이어지는 서남단의 땅 끝에 자리한 산으로 대부분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표고 50m이하가 대부분이다.
목포시와 다도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므로 산정에 두 개의 봉수대를 설치해 멀리 바다에서 들어오는 외적을 경계하였다.
지금의 이름인 유달산(儒達山)으로 부르게 된 건 구한말 대학자 무정 정만조가 유배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유달산에서 시회를 연 뒤부터이다.
어민동산에서 노적봉에 이르는 주능선에는 1등바위와 2등바위가 솟아있으며, 5개의 정자와 근대문화, 그리고 곳곳에 일제강점기의 흔적들이 산재해 있다.
그 흔적들을 엮어 스토리텔링으로 꾸며져 있어 짧은 코스임에도 불구하고 산행재미를 쏠쏠하게 만들었다.
산행코스: 어민동산-(능선)-2등바위(2봉)-소요정-1등바위(유달산 정상)-관운각-마당바위-유선각-천자총통-오포대-대학루-노적봉(2.4km,1시간 40분)
산행궤적
약 2.4km의 거리를 천천히 1시간 40분이 걸렸다.
고도표
개념도
가까이에 있는 삼거리에서 곧장 능선으로 붙을 수도 있었지만 어민공원으로 오르기 위해 어민공원 앞에 차를 멈춘다.
날짜와 시간이 에러가 났다. 정확한 날짜와 시간은 2018.03.14. 10:41.
어민공원은 어민들의 풍어를 기원하며 원도심에 가족들이 함께 노닐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 어민동산 휴게소가 있는 곳.
바다는 모든 죽어가는 것을 거부한다.
오직 살아있는 것만을 받아들인다.
죽은 생명은 뭍으로 내보낸다.
평온한 바다는 때없이 폭풍을 일으켜
인간의 이기심을 남김없이 쓸어버리고 어루만진다.
바다는 때로 회초리를 드는 어머니 같다.
밤이 새도록 무릎 고이고 누워도 말없는 내 어머니 같다.
명품 '유달산둘레길'안내도
분수대는 자동 센스인가, 우리들이 지나가지 시원스레 물을 뿜는다.
김지하의 시 '바다'의 일부를 새긴 시비가 있다. '살아서 가겠다 / 죽어 넋이라도 가겠다'
야트막한 산자락으로 올라...
능선에 올라 붙는다.
유달산둘레길 안내판.
많은 사람들이 밟고다녀 등로는 빤질빤질.
이정표에는 3등바위도 있다.
우측으로 공간이 열리며 목포대교가 보이고...
뒤로 눌도(訥島 율도)와 작은 섬 구례도.
압해도로 통하는 압해대교와 목포시가지가 내려다 보인다.
압해대교를 살짝 당겨 보았다.
진행방향으로 온갖 형상의 기암들이 도열해 있고...
돌아보니 북항을 가로지르는 목포대교가 보인다.
고개들어 암봉을 바라보다...
바위를 타고 올랐더니...
잠시 숨을 돌리며 쉴 만한 공간들이 턱을 고이고 있고...
턱앞으로 몇 발자욱 앞으로 나서면 바다로 뚫린 공간.
고하도로 이어지며 달리는 목포대교.
그 뒤론 안좌도와 팔금도.
옛날 무슨 용도로 쓰인 듯한 인공적인 바위홈.
도드라진 바위는 자라인 듯, 거북인 듯.
목포시가지.
2등바위 방향으로...
우리의 박 고문님이 포즈를 잡았다.
2등바위를 향하다...
어깨를 나란히 한 2등바위.
길쭉하게 제방을 쌓은 듯한 곳은 고하도. 그 우측 끄트머리는 고하도의 용머리.
공기바위가 있는 2등바위.
2등바위에서 바라보는 1등바위. 그 아래에 보이는 정자는 소요정.
암봉 공간에 자리한 작은 표석. 이 표석을 보았다면 능선 앞으로 바로 내려서지 말고 우측방향 90도 이상으로 꺾어 우회하여야만 한다.
고하도와 용머리와 목포대교. 여긴 충무공의 전사(戰史)가 있는 곳.
2등바위에서 우회하는 길은 내리막으로 안부에 소요정 정자와 도드라진 1등바위가 보인다.
안부에 있는 이정표.
안부에 있는 정자는...
소요정(逍遙亭). 낙관엔 병오신춘 전남지사 신용우. 병오년이면 1966년으로 그가 전남지사에 재임한 기간은 1963.12.19 ~ 1966.01.28.
보리를 이 높은 바위에까지 지고 올라왔겠느냐마는 옛사람들은 제법 너른 공간을 보면 으례히 농사와 관련한 생각을 하게되는 법.
돌아본 2등바위.
제법 이목구비가 선명한 얼굴의 옆면으로 보이지만...
남자가 포효하고 있다니... 그저" 얘들아, 조심해서 올라와." 했겠지.
돌아보면 내내 푸른 바다를 가로지르는 목포대교와 고하도의 모습. 그리고 가려진 달리도와 율도와 섬처럼 돌출된 곳은 해남군 화원면.
더 뒤 수평선을 그리는 곳은 안좌도인 듯.
안내판.
자연석굴을...
안내판은 산신제를 지내던 '유달산 산왕대성전터'라고 적혀있다.
내내 돌아보았던 사진과...
안내판을 비교하면 자세히 알 수 있을 것.
고하도 뒤로 신항. 충무공 유적지가 있는 고하도는 왕복 5~6km의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다.
안전난간을 오르면...
사방이 뻥 뚫린 유달산 정상(1등바위)이다.
2등바위와 목포시가지, 그리고 압해대교.
중앙에 있는 작은 동산은 입암산(갓바위), 우측 끄트머리에 뽕긋한 삼학도가 보인다. 삼학도는 원래 세개의 섬.
목포대교와 북항. 좌측 장좌도와 우로 율도. 더 뒤 바다 중간에 솟은 봉우리는 다음 산행지인 압해도 송공산.
흡사 매를 닮은 듯한 암봉에서...
계단을 따라 우회하여 내려와...
관운각 정자에서 마당바위로 간다.
선돌(立石)을 지나려다 돌아보니...
정자의 편액은 구름을 바라본다는 관운각(觀雲閣). 낙관엔 '2015년 서유천(徐儒泉)'.
마당바위에서 바라보는...
암벽에...
마치 절집 천왕문에 있는 사천왕상을 닮은 모습이다.
'부동명왕(不動明王)'이라 새겨진 각자가 있어 자료를 확인해 보니 일본에서 제일 오래된 불상의 이름이라카네. 그렇다면 일본 불교의 잔재.
1920년대 말 일본인들이 일본불교의 부흥을 꾀하기 위하여 일등봉 아래쪽 암벽에 조각했다고 한다.
철퇴를 들고있는 모습 위에 '不動明王'이라 새겨져 있는데, 홍법대사가 중국에서 유학하고 일본으로 돌아올 때 배를 타고 모시고 왔는데 이 부동명왕이
대사의 항해 안전을 지켜줬다고 하며 홍법대사가 안치된 곳에는 어김없이 부동명왕상이 함께 있다.<자료인용>
저쪽 암벽에도 새겨진 또다른 색다른 조각상은 홍법대사상(弘法大師像)이다.
일본 진언종의 개조로 이름은 공해(空海), 속성은 좌백진어(佐伯眞魚)이며 홍법은 시호이다.
774년에 태어나 835년에 열반하였는데, 20세에 출가하였으며 804년 30세 되던 해에 중국 당나라에 건너가 수행하였다.
806년에 귀국하여 불법(佛法)을 전해 일본불교의 선각자로 칭송받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일반 서민들에게 특히 친숙하고 존경받는 승려이다.<자료인용>
마당바위에서 관운각으로 내려서다 좌측 아래로 또다른 암각이 새겨져 있어 둘러 내려갔더니...
훼손된 글자를 자료를 찾아가며 해독을 해보니...
정일위 도하 대명신(正一位 稻荷 大明神): 최고인 벼를 책임지는 크고 밝은 신.
ㅇㅇㅇㅇ/ 수천 출신(須川 出身)/ 목포(木浦)/ 고곡승평(高谷勝平)
소화육년(昭和 六年): 1931년/ 이월초오(二月 初午): 2월 5일/ 建立(건립)
대분현(大分 縣): 오이타 현/ 중진출신(中津 出身): 나카쓰 출신/ 목포(木浦)/ 판본호민(坂本祜敏
석공(石工)/ 원전승조(原田勝造)
이나리 신사(도하신사 稲荷神社)이다.
일본어 稲荷(いなり)는 신(神)의 명칭이자 여우의 딴 이름이다.
일본 신토의 신인 이나리신(稲荷神)은 곡식의 신으로 여우와 관계가 깊으며, 때로는 여우 그 자체와 동일시되는 일도 많다.<나무위키>
도리이(鳥居 torii)가 세워졌던 흔적. * '도리이'는 우리나라의 홍살문처럼 신사의 앞에 세워진 문이다.
마치 익선관을 닮은 바위를 지나...
돌아보는 1등바위(좌)와 2등바위(우).
종바위를 지나고...
다시 고래바위를 지나면...
널따란 공터에서 정자로 나아가 보니...
(이정표)
유선각이다.
유선각(儒仙閣) 현판은 신익희 선생이 썼다. 해공 신익희(海公 申翼熙, 1892년~ 1956년)는 정만조의 제자이자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 정치인이다.
우측에 '민국주(州)삼중추'로 보이지만 자료를 뒤적여 보았더니 '민국삽삼중추'가 음이란다.
이를 알기위해 이리저리 자료를 뒤적여봐도 모두가 제각각. 그 중에서도 '구자훈'님의 의견이 제일 신빙성이 있어 그대로 옮겨본다.
<'민국삽삼중추'가 음입니다. '삽'의 훈은 '서른'입니다. 1919년부터 33년째면 1951년입니다.
저는 어제(2017.5.13) 이 현판을 처음 봤습니다.
저는 2016년에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소설 부문 당선자입니다. 그리고 정년까지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습니다.>
민국(民國)연호는 기미년(1919)에서 기산을 한다.
1919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을 계승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1919년에 수립(건국)되었고, 정부는 1948년에 수립한 것으로 인식한 것이다.
따라서 해공 선생이 1951년 목포에 왔다가 쓴 것으로 보인다.
우측으로 삼학도(三鶴島)가 보인다. 지금은 매립되어 육지가 되었지만 세개의 섬이 확연히 드러난다.
‘♪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 드는데/부두의 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
가수 이난영(1916∼65)이 1935년 발표한 대중가요 ‘목포의 눈물’의 가사로 목포사람들의 꿈이자 미래였던 셈.
안내판.
입암산(갓바위)을 당겨보고...
삼학도도 당겨본다.
천자총통(天字銃筒)은 조선시대 대형 총통 중에서 가장 큰 총통으로 천ㆍ지ㆍ현ㆍ황 중 가장 대형 화포였다.
안내판
오포대(午砲臺)에 관한 안내판. 시계가 흔치않던 시절에 목포의 오포대는 일본 시차에 맞춰 11:00에 정오를 알리는 데 쏘았던 포.
한국의 오포 안내판.
세계 각국에서도 오포가 있었다.
달선각(達仙閣).
유달산 입구에서 유선각까지 가면서 중간에 쉬어가라고 1959년 세워진 것.
유달산 현세가 풍수적으로 ‘선인무수형국’이라 신선이 춤추는 모양이라고 하니 그와 관련하여 이해해보면 되겠다.
달선각에는 바닥에 방위를 나타내는 나침반이 그려져 있어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아 목포 시내를 관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돌난간은 생소하게 보인다.
유달산은 목포에 거주하는 일본인이 즐겨 찾는 공원이었다.
그들은 이곳에 ‘유달산신사’를 조성하고 신사로 오르는 길에 돌계단을 쌓았다. 신사와 함께 일본의 식민지배 흔적이다.
이난영 노래비를 지나며...
'목포의 눈물' 노래비를 올려다 보았다.
대학루로 내려서다 석주처럼 생긴 표석으로 가까이 갔더니...
유달산 표석.
오포는 지금 멈추었지만 시계가 귀한 당시엔 밥먹는 시간까지 오포의 발포에 맞춰서 생활하였다.
오포대 안내판.
오포대 안내판.
삼학도를 내려다보며 학을 기다린다는 대학루(待鶴樓). 편액은 2006년 여름 이곳출신 서예가 유천(儒泉) 서종견(1938~ ) 선생이 썼다.
이제 노적봉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가까이 눈길을 준다.
임란 때 바위에 이엉을 엮어서 덮어 식량을 쌓아둔 모습으로 위장을 하였다는 전설이 있어 노적봉( (露積峯)이라 부른다.
지형을 이용한 충무공 이순신의 고도의 심리전이 돋보인 곳이다.
또한 군사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전술로 주민들에게 군복을 입혀 위장을 하였는데, 이것이 지금의 전통문화인 '강강수월래'로 발전하게 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곳은 이순신 장군의 전술과 강강수월래의 전설이 담긴 곳이라 할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
처음엔 노적봉과 유달산이 능선으로 이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중간에 차도(주차시설)가 나면서 끊기고 말았다.
도로에 내려섰다 노적봉을 오르며...
고개를 들어야만 보이는 거석바위가 노적봉.
길 옆 나무 한 그루에도 스토리텔링이 덧입혀져 있다.
'노적봉 여자나무(女人木)' 안내판에는 멀리 임진왜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400년이 훨씬 넘은 그때에도 이 나무가 있었다고 하니 수령이 600년은 됐다는 말인가?
목포 'MBC'옛터.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나팔수 역할을 한 데 대해서 시민들이 방송국을 파손하였다. 지금은 '5.18 민중항쟁 목포 사적지 제11호'
노적봉의 뒤에서 바라본 모습.
산행 마감시간에 맞춰서...
버스가 대있는 곳을 내려다 보니 대원들은 벌서 하산이 완료된 듯하다.
이제 시간을 맞춰 압해도의 송공산으로 이동을 하여야 한다.
◇ 압해도 송공산 ☞ http://cafe.daum.net/phanmaum/FXy6/716
- 바 다 -
가겠다
나 이제 바다로 / 참으로 이제 가겠다
손짓해 부르는
저 큰 물결이 손짓해 나를 부르는
망망한 바다 / 바다로
없는 것
아득한 바다로 가지 않고는
끝없는 무궁의 바다로 가는 꿈 없이는 없는 것
검은 산 하얀 방 저 울음소리 그칠 길
아예 여긴 없는 것
나 이제 바다로
창공만큼한
창공보다 더 큰 우주만큼한
우주보다 더 큰 시방세계만큼한
끝간 데 없는 것 꿈꿈 없이는
작은 벌레의
아주 작은 깨침도 있을 수 없듯
가겠다
나 이제 가겠다
숱한 저 옛 벗들이
빛 밝은 날 눈부신 물 속의 이어도
일곱 빛 영롱한 낙토의 꿈에 미쳐
가차없이 파멸해 갔듯
여지없이 파멸해 갔듯
가겠다
나 이제 바다로
백방포에서 가겠다 / 무릉계에서 가겠다
아오지 끝에서부터라도 가겠다
새빨간 동백꽃 한 잎 / 아직 봉오리일 때
입에 물고만 가겠다
조각배 한 척 없이도
반드시 반드시 이젠 한사코 / 당신과 함께 가겠다
혼자서는 가지 않겠다
바다가 소리 질러
나를 부르는 소리 소리, 소리의 이슬
이슬 가득 찬 한 아침에 / 그 아침에
문득 일어서 / 우리 그 날 함께 가겠다
살아서 가겠다
아아
삶이 들끓는 바다, 바다 너머
저 가없이 넓고 깊은, 떠나온 생명의 고향
저 까마득한 화엄의 바다
가지 않겠다 / 가지 않겠다
혼자서라면 / 함께가 아니라면 헤어져서라면
나는 결코 가지 않겠다
바다보다 더 큰 하늘이라도
하늘보다 우주보다 더 큰 시방세계라도
화엄의 바다라도/ 극락이라도.
<김 지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