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9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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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도나토(Donatus)
축일 8월 19일
프랑스 오를레앙(Orleans)에서 태어난
성 도나투스(또는 도나토) 신부는 프랑스 남동부
프로방스(Provence)의 시스테롱(Sisteron) 부근의
쥐라(Jura) 산에서 은수자로서 고적한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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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디모테오(Timothy)
성 아가피우스(Agapius)
성녀 테클라(Thecla)
축일 8월 19일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그리스도인을 상대로
계속하여 강경책을 펼 때였다.
성 티모테우스(Timotheus, 또는 디모테오) 일행은
팔레스티나(Palestina)에 살던 그리스도인이다.
티모테우스는 용감하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며
비인간적으로 매를 무수히 맞았으며,
쇠사슬로 묶인 채 가자에서 천천히 타오르는
불길에 휩싸여 장렬히 순교하였다.
성 아가피우스(Agapius)와 성녀 테클라(Thecla)는
맹수의 밥이 되는 형을 받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들은 맹수에게서 살아났으나 즉시 노예로
팔려갔다가 주인의 손에 의해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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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루도비코(Louis)
축일 8월 19일
성 루도비쿠스(Ludovicus, 또는 루도비코)는
찰스 2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1284년
그의 부친 찰스가 아라곤(Aragun) 왕과의
해전에서 포로가 되자, 석방 조건으로 그의 아들
세 명을 보내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져 루이도
인질로 잡혀갔다. 그는 7년 동안 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Barcelona)에서 지내면서 여러 가지
운동으로 체력을 단련하는 한편, 작은 형제회
회원들의 영향을 받아가며 공부하였다.
이윽고 그는 작은 형제회 회원과 함께 기거하면서
밤낮으로 기도하고, 철학과 신학 공부에 매진하였다.
1295년 그는 석방되었으나 아라곤 국왕의 딸과
결혼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러므로 그는
가난하고 겸손하신 예수를 따르기 위해 세속적인
모든 것을 물리치고는
“나의 왕국은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 후 그가 툴루즈(Toulouse)의 주교로
임명되었을 때,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
(Bonifatius VIII)로부터 관면을 받고 23세의
나이로 사제 서품 후 착좌하였다.
그런 다음 그는 로마(Rome)로 가서 프란치스코
회원으로서 서원하였다. 그는 가난한 수도자로서
주교직을 수행하였으나, 툴루즈 사람들은 그를
왕 못지않게 공경하였다. 그의 신심과 자태는
만인의 심금을 울렸다. 그는 주교관의 모든
화려한 물건은 배격하고, 작은 형제회의 회원답게
오로지 프란치스코 회원에 알맞은 의복과
음식으로 만족하며 살았다.
그는 마르세유(Marseilles)의 작은 형제회
수도원에 안장되어 있다.
1317년 요한 22세(Joannes XXII)로부터 시성될 때
그의 모친도 생존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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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루피노(Rufinus)
축일 8월 19일
이탈리아 만투아의 사제였던 성 루피누스
(또는 루피노)는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 동안에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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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뇨(Magnus)
축일 8월 19일
프랑스 아비뇽에서 태어난 성 마그누스
(또는 마뇨)는 그 지방의 통치자였으나
상처한 후 레랭(Lerins)에서 베네딕토회
수도승이 되었다가 656년에 아비뇽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아비뇽의 주교인
성 아그리콜라(Agricola, 9월 2일)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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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리아노(Marianus)
축일 8월 19일
성 마리아누스(또는 마리아노)는
프랑스 앙트래그(Entraigues) 숲에서
은수자로서 살았다.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가 그의 생애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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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모크타(Mochta)
축일 8월 19일
브리튼 출신인 성 모크타는 그리스도인
부모를 따라 어릴 때에 아일랜드로 건너갔고,
거기서 성 파트리키우스(Patricius)의 제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로마(Rome)를 순례했는데,
아마도 그 동안에 교황 성 레오 1세(Leo I)에
의하여 주교로 축성된 듯하다. 아일랜드로
귀향한 그는 루트에 수도원을 세우는 한편
성 파트리키우스에 의해 그곳의 주교로 착좌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성 파트리키우스의 열렬한
추종자이자 협력자로서 일생을 살다가 거의
90세가 되어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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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르툴포(Bertulf)
축일 8월 19일
성 베르툴푸스(Bertulphus, 또는 베르툴포)는
원래 신자가 아니었으나, 그의 친척인
메스(Metz)의 성 아르눌푸스(Arnulphus)에
의하여 개종하였다. 그는 620년경에
뤽세이유(Luxeuil)에서 은수자가 되어
7년을 살다가 이탈리아의 보비오로 가서 원장이
되었다(627년). 후일 그는 보비오에 관한
관할권을 주장하는 토르토나의 프로부스 주교와
논쟁을 벌였다.
이때 교황 호노리우스 1세(Honorius I)가 직접
중재하여 교구의 관할 밖에 있는 수도원
면속제도가 생기게 되었다. 그는 기적을 행한다는
소문이 자자하였고, 성덕이 뛰어났으며,
그의 규칙은 매우 엄격하여 모든 이들이 그를
우러러 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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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세발도(Sebald)
축일 8월 19일
독일 바이에른(Bayern) 지방
뉘른베르크(Nuremberg)의 수호성인인
성 세발두스(Sebaldus, 또는 세발도)는
라이크스발드에서 은수자로 살면서 인근의
주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다.
처음에 그는 비첸차(Vicenza) 교외의
은수자였으나,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 2세
(Gregorius II) 때에는 로마(Rome)에서 지냈고,
성 그레고리우스 3세와
성 빌레발두스(Willebaldus, 7월 7일)가
독일로 갈 때 함께 갔다.
한번은 눈 오는 밤에 어느 농부의 헛간에
들었으나 추위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성 세발두스는 주인에게 불을 조금 피워달라고
청했지만 그 농부는 너무나 가난하여 불씨만
꺼지지 않을 정도로 산다고 말했다. 이에
성인은 농부의 부인에게 추녀에서 고드름을
따다가 불 위에 놓으라고 하였는데, 그 부인이
시키는 대로 하자 불꽃이 크게 피어올랐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이외에도 맹인을 눈뜨게 한
기적을 비롯하여 그에게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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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식스토 3세(Sixtus III)
축일 8월 19일
로마(Rome) 성직자단의 일원이던
성 식스투스(또는 식스토)는 432년 7월 31일에
교황 코일레스티누스 1세(Coelestinus I)를
승계하여 교황 위에 올랐다. 그는 펠라기우스
이단과 네스토리우스 이단을 모두 배격하였지만,
이들 이단에 대한 친절한 태도가 그를 의심하는
계기가 되어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그는
성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을 복원하고,
사슬의 성 베드로(Petrus) 성당을
봉헌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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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드레아(Andrew)
축일 8월 19일
페르시아를 대항하여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파견한 갈레리우스(Galerius) 부대의
호민관이던 성 안드레아(Andreas)는
전투 중에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싸움으로써
승리를 거두자, 자신과 그의 부하 다수가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카이사레아(Caesarea)의 베드로(Petrus)
주교로부터 세례를 받고 실리치아 군사령관이던
셀레우쿠스(Seleucus)에 의해 체포되었다.
안드레아는 동방에서 ‘위대한 순교자’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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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에밀리아 비치에리(Aemilia Bicchieri)
축일 8월 19일
에밀리아 비치에리(Aemilia Bicchieri)는
강제로 결혼시키려는 부친의 강압을
물리치고, 수도원을 세워야 한다는 확신을
부친에게 설득하여 마침내 도미니코 율수
3회의 첫 번째 수도원을 세우고 원장이 되었다.
그녀는 자주 성체를 모시기로 유명하였는데,
그 이유는 당시의 교회는 성체를 자주 모시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는 자주
탈혼에 빠졌고 환시를 보았으며,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 그녀의 신심이 뛰어남을
입증하였다고 한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769년부터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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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제키엘 모레노 이 디아즈
(Ezechiel Moreno y Diaz, 또는 에제키엘)
축일 8월 19일
성 에제키엘 모레노 이 디아즈
(Ezechiel Moreno y Diaz, 또는 에제키엘)는
1848년 4월 9일 에스파냐 타라조나(Tarazona)
지방의 알파로(Alfaro)에서 태어나 신심
깊은 가정에서 성장하였다. 1864년 9월 21일
나바라(Navarra)의 몬테귀도(Montegudo)에서
아우구스티노회에 입회하였고, 후에
그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1871년 6월 3일 필리핀의 마닐라(Manila)에서
사제로 서품된 후 유명한 선교사가 되었다.
1893년 10월 23일 교황대리이자 콜롬비아
피나라(Pinara)의 주교가 된 그는 같은 해
12월 2일에 콜롬비아 파스토(Pasto)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교구 신자들에게
관대한 애덕을 베푼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06년 8월 19일 사망한 그는 1975년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92년 10월 11일
도미니카 공화국의 수도인 산토도밍고
(Santo Domingo)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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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에우데스(John Eudes)
축일 8월 19일
성 요한 에우데스(Joannes Eudes)는
1601년 프랑스 노르망디(Normandie)의
아르장탕(Argentan) 근교 리(Ri)라는
마을의 유복한 가정에서 외과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4세 되던 해에
캉(Caen)에 있는 예수회 학교에서
공부하였으며, 결혼하기를 바라는 양친의
소망을 뿌리치고 1623년에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하였다. 파리(Paris)와 오벨빌리엘에서
수학한 그는 1625년 12월 20일에 사제로
서품을 받은 뒤 노르망디 지역에서
본당 사목에 전념하였다. 1625년과
1631년에 노르망디 지역을 급습한
전염병의 희생자를 돌보기 위해
활약하기도 했던 그는 이 시기에
설교가로서의 명성을 떨치기 시작하였다.
또한 얀센주의(Jansenism)의 강력한
반대자로서의 명성도 획득하였다.
그밖에도 고해성사 등의 성무 활동을
통해 다양한 계층의 신자들과 교류하였다.
오라토리오 회원으로서 사목활동에
종사하던 요한은 당시에 나타난 교회의
악한 표양을 날카롭게 비판하기도 하였다.
또한 점차 성직자 교육을 등한시하던
오라토리오회의 활동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되었으며, 만약 각 성당의 사제가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본당 사목
활동은 단지 일시적인 성공만을 할 수
있을 뿐이라며 성직자 교육을 강조하였다.
그는 또한 타락한 여성들을 구제하기 위한
사목에도 흥미를 보여, 1641년 평신도였던
장 드 베르니에르(Jean de Bernieres)와
가스통 드 렌티(Gaston de Renty)와 함께
성체회, 성모 방문 수녀회의 도움을 받아
캉에 ‘회개한 죄인들을 위한 보호소’를
세웠다.
요한은 1643년에 오라토리오회를 떠나
캉에서 새로운 사제회를 설립하였다.
그가 창립한 사제회는 재속 사제회로서
교구 신학교에서 성직자 양성과 본당
선교 활동을 통해 신자들에 대한 사목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러나 오라토리오회 총장과의 불화
등의 이유로 그의 새로운 사제회는
오라토리오회와 얀센주의자들로부터
큰 도전을 받아 교황청의 인가를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1650년
쿠탕스(Coutance)의 주교가 교구 내에
신학교를 설립해 달라고 요청하여
활기를 띤 이 사제회는 1851년에
교황청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후
‘예수 마리아 수도회’로 공식 명칭을
정하였으며 ‘에우데스회’
(the Eudists)로도 불린다. 또 같은 해
2월 8일 교구 주교로부터 캉에 개설한
보호소를 새로 구성해 ‘착한 목자회’로
승인을 받았으며, 1666년에 공식적인
수녀회로서 교황의 인가를 받았다.
이 수녀회는 주로 ‘타락한 여성들’을
위한 구제 활동을 전개하였다.
요한은 1653년에 리지외(Lisieux)에,
1659년에는 루앙(Rouen)에, 1666년에
에브뢰(Evreux)에, 1670년에는
렌(Rennes)에 신학교를 세웠다.
오늘날 그가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예수 성심의 환시를 체험하고 그 신심을
전파시킨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Margarita Maria Alacoque)처럼
예수 성심의 신심을 전파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는 후에 예수 성심의 공경과 신심이
전파되고 축일이 제정되도록 하는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성모 성심 공경의 보편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요한 에우데스는
1909년에 시복되었으며 1925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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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율리오(Julius)
축일 8월 19일
성 에우세비우스(Eusebius)와
성 폰티아누스(Pontianus)는
로마 원로원 의원으로서 순교의 월계관을 쓴
성 율리우스(또는 율리오)에 대해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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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하이모(Haymo)
축일 : 8월 19일
하이모 타파렐리는 라냐스코 집안 출신으로
매우 매력적이고 재치가 넘치는 청년으로,
한동안은 결혼생활을 하다가 도미니꼬회에
입회하였다. 그느 또리노에서 공부하고
유명한 설교자가 되었는데, 특히
이단자와의 화해와 훌륭한 크리스챤 교육에
남다른 성과를 얻었다. 또한 그는
사보이의 공작인 복자 아마데우스의 주의를
끌게 되어 궁중에서 설교하는 권한도
부여받았다. 그가 즐겨 사용한 말은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최선의 통치"라고
설파하여 궁중 관리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별로 말이 없는 과묵한 사람이었으나,
복음을 선포할 때에는 놀라운 화술을
발휘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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