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들어선지 2년 반이 지났다. 나라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고 있다. 어떤 이들은 87년 이후 30년 동안 건설해 온 선진 한국이 2년만에 처참하게 무너졌다고 탄식한다. 소위 진보, 보수의 관점 차이라고만 할 수 있을지 심히 걱정이다. 여러 분야에 심각한 분열과 침체가 나타나고 있지만, 통일 분야의 분열과 퇴행은 참으로 심각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이후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더욱 불편한 진실은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극우 유튜버 수준의 극단적 편향성을 지닌 사람들이 통일부 장관, 국방부 장관이 되어 먼저 북한을 자극시킨 것은 잘 알려진 진실이다.
남과 북은 상호 북진통일과 적화통일을 전면에 내세우고 자칭 정통성의 이름으로 흡수통일을 주장해 왔다. 흡수통일은 전쟁을 통해 상대방을 제압하든지 또는 압도적 경제력을 통해 상대를 붕괴시키든지 둘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불가능 하다는 것은 오랜 역사와 국제정세를 통해 이미 상식화되었다. 국제적 상식의 바탕 위에서 남과 북은 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통해 통일은 반드시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
그 후 어언 반세기가 흘렀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조국의 통일은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요지부동의 원칙이었다. 남과 북이 모두 평화통일을 헌법화했는데 1991년 9월에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의 영향으로 남과 북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다. 그 때 이론적으로는 이미 1민족, 2국가 체제가 국제적으로 인정(공인)되었다. 그러나 반만년 역사를 같은 민족으로 살아온 남과 북은 1민족, 2국가 체제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남과 북은 이 문제를 같은 해(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평화통일을 이룰 때까지 남북은 1민족, 2국가라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하므로 이론적 모순을 해결했다.
이 원칙이 지난 30여년 동안 지켜져 오다가 윤석열 정부가 들어와서 남과 북은 급속히 경직되었고 마침내 올 초에 김정은 위원장에 의해 적대적 두 국가론이 등장한 것이다. 올 8.15 경축사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 중심의 남북통일을 언급함으로 실제적인 흡수통일 입장을 공식화했다. 남북의 긴장수위가 높아진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와같은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 첫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씨는 최근 ❝통일하지 말자❞, ❝통일보다 평화체제 구축이 먼저다❞라는 이야기를 함으로 보수주의자들에게 마치 임종석이 진보주의자들의 통일 담론을 대신한 것 같은 빌미를 주었다. 임종석의 주장은 이런 것이다. 이미 남북은 실제적으로 1민족, 2국가 체제로 가고 있으니 민족을 앞세워 자꾸 통일 이야기를 하면 결국 남북은 충돌하게 되어 있으니 통일은 먼 훗날의 역사적 과제로 미루고 평화공존을 우선 과제로 하자. 이런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하지 말자❞는 그의 주장은 매우 미숙한 표현이었다.
윤석열 정권의 반평화주의 노선을 비판하는 함축성이 있다 할지라도 그의 주장은 김대중 이후 진보주의자들이 애써 구축한 선평화 후통일의 민족정신을 담기에는 너무나 거칠고 지혜롭지 못했다. 필자는 윤석열 정권의 무모한 평화통일 정책을 명백히 반대한다. 예컨대 현 정부가 전쟁 수준이라고 비난하면서 긴장을 높이고 있는 풍선 사건도 해결이 간단하다. 남쪽에서 북한을 비난하는 풍선을 보내지 않으면 된다. 자유라는 이름을 빙자해서 남북 긴장을 촉발시키는 미련하고 의도적인 도발을 즉시 중단시키면 된다.
여러 정황상 남북의 전면전은 상상하기 어렵다. 다만 우발적 전쟁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는 없다. 어떤 이유로든 전쟁은 안 된다. 전쟁만큼 비인도적이고 반역사적인 것은 없다. 전쟁을 예방하는 노력없이 전쟁을 맞이해 보라! 그 때의 통곡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