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2: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 - 여기서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의 반대적 의미는 막 9:40과 눅 9:50에 의하면 '우리' 또는 '너희'를 '위하는 자'이다. 그런데 이것은 마가복음에서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에게 무관심한 자들에 대해 언급한 것이며 누가복음에선 예수를 따르기를 거부하는 어떤 사람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이에 비해 본문의 논지는 매우 직선적으로 중립적인 태도가 있을 수 없음을 말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권세와 사단의 권세가 서로 투쟁하는 와중에서 중립적 입장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본문의 '함께 아니하는 자'에 대해 크리소스톰은 '마귀'로, 벴겔과 네안더는 앞에서 나온 '유대 마술사' 등을 언급한다고 본다.
이 중에 크리소스톰의 견해가 환영받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함께 아니하는 자'란 단순히 예수와 그의 가르침에 대해 무관심한 자, 예수와 연합하기를 싫어하는 자를 말한다기 보다는 좀더 적극적인 의미에서 바리새인들과 그의 추종자들처럼 '공공연히 예수를 비난하고 서로 의문을 제기하는 자'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 - 구약에서 흔히 하나님이 추수하는 분으로 묘사되었듯이 신약에서 예수는 마지막 날에 이르기까지 계속적으로 모으고 또한 추수하시는 분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기적행위를 보고 그를 메시야로 고백하려는 자들에 대해 예수가 바알세불의 힘을 입은 자라고 거짓 증언함으로써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하려는 것을 방해하였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전진과 확산을 막기 위해 예수로 부터 사람들을 흩으려는 자들이 바로 '모으지 아니하는 자', 곧 흩어버리는 자들인 것이다. 실로 예수의 위대한 사역은 바로 잃어버린 양을 찾아 모으고 또 모으는 것이다. 이에 비해 사단은 되찾은 양 조차도 다시 빼앗고 될수 있는 대로 그들을 흩으려는 악한 본성을 지니고 있다.
여하튼 본문은 예수의 사역에 있어서 결단코 중간적 입장에 머무를 수 없음을 강력히 시사해 주고 있다. 정녕 예수의 사역에 적극 동참치 않는 자들은 예수의 나라를 전면적으로 반대하는 자들인 것이다.
[눅 11:23]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함께 아니하는...모으지 아니하는 - 이 말씀은 매우 급박한 상황을 반영한다. 즉 예수와 사단과의 전쟁은 시작되었으며 이 전쟁에서 중립적인 자리는 없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의 편에 서든지 사단의 편에 서든지 결단해야 한다. 따라서 예수를 시험하거나 비방하는 자는 반대하는 자요 사단의 편이요 성령의 훼방하는 자들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흩어놓는 자이다. 이것은 양떼를 모으는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데, 위급한 상황에서 양떼를 모으는 일에 목숨을 걸지 않는 자는 양떼를 죽이는 일에 협조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 말씀이 9:50의 말씀과 모순이 된다고 하나 그것은 문맥, 또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문자적인 이해에 얽매이는 데서 오는 오류이다.
9:50의 상황은 어떤 사람이 예수께 대해 중립적인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하셨고 또 하려고 하는 일을 그가 행했던 것이고, 여기서는 선과 악, 진리와 반진리가 싸우는 상황에서 중립지대는 없으며 분명히 어느 한편에 서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눅 9:50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금하지 말라...위하는 자니라 - 그 사람은 예수에게서 특별히 권위를 부여받지는 않았지만 예수께 대한 진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야 11:23의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해치는 자니라"는 말씀과 모순이 되지 않는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바의 요지는 이러하다. 익명의 귀신 추방자는 귀신들려 고통당하는 자의 참경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았고 그가 확신하는 바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것이다.
결국 이 사람의 행위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했던 일을 한 것이므로 예수와 제자들을 위하는 자인 셈이다. 이것은 어느 집단에 소속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행하는 일의 내용과 지향점이 중요함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