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의 봄
시인 이생진은 ‘거문도’란 시집의 전문에 이렇게 썼다.
‘아름다운 곳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시인의 몫이다. 거문도는 참 아름답다. 거문도에 가면 처음엔 자연에 취하고 다음엔 인물에 감동하고
나중엔 역사에 눈을 돌린다.(중략) 적어도 열흘쯤의 여유가 있다면 사흘은 자연에 취하고 사흘은 인물에 취하고 나머지 나흘은 역사에 취해볼 만한
곳이다.’
시인의 말대로 거문도는 구석구석 볼거리가 많다. 거문도엔 남풍이 불어오는 비취빛 바다가 있고, 봄빛을 튕겨내는 하얀 등대도 있다.
120년 된 영국군 묘지와 100년 된 학교도 있다.
산허리를 메운 동백숲은 윤기나는 ‘비로도’처럼 반짝거리고, 해안절벽의 기암마다 전설 한토막을 가지고 있다.
세월이 변해 선술집의 젓가락 장단 육자배기 가락은 들을 수 없을지 몰라도 포구앞 다방에선 1,500원짜리 커피를 놓고 걸쭉한 사투리로 농을
주고받는다. 야무지고 맵던 바닷바람이 헐렁해진 봄날 거문도를 찾았다. 뭍에선 때아닌 봄눈이 몰아쳤지만 동백이 지천으로 피어나는 거문도는 봄이
한창 영글어가고 있다.
분교도 등대도 나란히 100년 세월을 늙었다
거문도는 올해 의미가 깊다. 거문도 등대와 거문도 초등학교 서도분교가 들어선 지 올해로 꼬박 100주년이다. 서도의 북쪽 끝자락에 서 있는
등대와 남쪽 끝자락에 앉아 있는 분교는 풍광도 좋다.
#서도분교
교실에서 창문을 열면 바다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 작은 학교. 4각형 2층건물인 서도분교는 아담하고 예쁜 학교다.
학교 귀퉁이에는 1905년 학교를 세운 김상순 선생 공적비가 있다. 영국군이 거문도를 불법 점령하는 등 열강들이 호시탐탐 거문도를 노리는
것을 봤던 그는 인재 교육만이 나라를 부강시킨다고 믿어 학교를 세웠단다. 당시 이름은 낙영학교. 1912년 공립보통학교로 승격했다. 4학년제에서
6학년제로 바꾼 것은 48년. 초창기 학생기록부는 없고 21년 졸업생 기록부터 남아 있다. 당시 졸업생은 남학생 12명, 여학생 1명 등
13명이었다. 올해 졸업생은 단 2명이라고 했다. 70년대 초반엔 전체 학생수가 400여명에 달했단다. 지금은 선생님 3명에 학생은 모두
17명이다.
학부모 운영회장 김일용씨는 “99년 분교로 전락했지만 폐교를 시킬 수 없는 것은 아마도 깊은 역사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학생들과
선생님을 만나 두런두런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봄방학에 들어갔다. 여객선 선착장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모처럼의 짬을 얻어 뭍에 간다고
했다.
서도분교 뒤편으로는 아이들의 놀이터나 다름없던 녹산등대가 서 있다. 녹산등대 길은 초원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산책로다. 목책을 세운 산책로는
등대 앞까지 이어져 있다. 무인등대라 등대지기는 없지만 남쪽바다를 향해 튀어나온 절벽 위에 서 있다. 거문도등대만큼이나 녹산등대도 아름답다.
등대 앞은 광활한 초원이다. 주민들이 야생 흑염소를 잡아 묶어놓았다. 수십 년 전에는 아이들이 쇠꼴을 먹이며 뛰어다니던 놀이터였다.
초원에서는 마을과 거문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저물 녘엔 황금빛 바다를 가르며 고깃배를 몰고 오는 아버지를 기다리던 곳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함성이 잦아진 녹산등대 길은 풍광이 좋아 언제부턴가 연인들이 찾기 시작했다.
#거문도등대
녹산등대에 비해 거문도등대는 너무나 유명하다. 1905년 4월 처음 불을 밝힌 거문도등대는 남해에서는 가장 먼저 생긴 등대다. 프랑스제
프리즘 렌즈를 단 등대의 불빛은 최저 5만5천촉광 최대 9만8천촉광의 불빛을 40㎞ 밖까지 비춘다. 등대의 불빛은 1분에 4번 돈다. 바다에서는
15초에 한번씩 깜빡거리는 불빛을 보는 셈이다. 안개가 끼는 날은 압축공기를 이용한 경적 ‘에어혼’으로 뱃길을 알리는 데 소리가 무려 10㎞
밖에서도 들린다고 한다. 거문도등대 옆에는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현재 높이 33.4m의 새 등대를 세우고 있다. 아쉽게도 등대는 현재
공사중이라 정문까지만 개방된다. 올해 말 완공예정인 새 등대에는 일반인들을 위한 전망대도 들어선다. 등대에서는 백도가 한눈에 보인다. 등대 앞의
정자 ‘관백정’도 백도를 바라보는 정자란 뜻이다.
등대지기는 어떻게 살까. 등대지기의 삶을 엿보고 싶었다. 현재 등대에는 한병남 지소장(51) 등 모두 3명의 등대지기가 살고 있다.
한소장은 백야도등대에 있다가 부임한 지 불과 두 달밖에 되지 않았다. 등대지기는 외로움과 싸우는 직업.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으로 요즘은 등대지기
생활도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낭만적인 생각으로 등대지기가 되겠다는 젊은이들도 있지만 석 달도 못 버티고 간다고 했다. 등대지기는 보통 한
등대에서 2년 정도를 보내고 다른 곳으로 옮긴다. 처음 거문도에 등대지기 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다시 부임한 등대지기 김계인씨는 20년 전 처음
거문도에서 등대지기 생활을 할 때만 해도 나무를 베어 땔감을 썼다고 한다. 지난해 서울 직장생활을 접고 거문도에서 등대지기가 된 막내
한현성씨(29)는 “등대지기는 그저 좋아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거문도등대는 옛날에도 명소였다. 토박이들에게도 소풍 때마다 놀러 가던 놀이터라고 한다. 거문도 출신의 여행사 사장 박춘길씨는 봄이면 등대
아래 절벽에 수선화와 야생 유채가 피어 장관이었다고 회상한다.
손깍지를 끼고 등대로 가는 길. 봄바람이 달다.
▶여행길잡이
#거문도(지역번호 061)
거문도는 여수항과 고흥 녹동에서 들어간다. 뱃길은 고흥 녹동이 빠르지만 서울에서 출발하자면 여수 쪽 교통이 편리하다. 용산역에서 여수행
새마을호 3편, 무궁화호 8편 등 전라선 열차가 하루 11차례 다닌다. 센트럴시티 호남선 터미널에서 여수행 고속버스가 수시로 다닌다. 뱃시간은
오전 7시40분과 오전 10시10분 두차례. 거문도에서는 오후 2시20분과 오후 4시에 나온다. 뱃삯은 2만8천2백원(편도).
온바다(665-7070). 거문도 현지에서는 버스는 없고 택시를 타고 다녀야 한다. 스타렉스 승합차 택시는 딱 2대다. 거문도 등산로는 2시간
코스부터 8시간 코스까지 다양하다. 보로봉 코스는 2시간~2시간30분이면 된다. 초입을 제외하고는 가파르지 않다.
거문도는 대부분 민박집. 서도 끝자락에 있는 장촌타운(665-1329)이 깨끗하다. 장촌타운에서는 녹산등대까지 걸어서 다녀올 수 있다.
반면 거문도등대는 조금 먼 것이 단점. 낚싯배도 운항한다. 여행사의 패키지를 이용하면 자유여행보다 더 값싸게 다녀올 수 있다. 여수에서 거문도에
들어가 백도유람선을 타게 되면 뱃삯만 8만9백원. 거문도여행사(665-4477)의 경우 가이드 비용과 백도유람선, 거문도등대 해안유람선, 거문도
왕복뱃삯, 점심을 포함 9만5천원. 당일 코스. 1박2일 코스엔 거문도 등산코스가 포함돼 있다. 첫날은 유람선과 백도관광을 하고 이튿날 산행을
한다. 12만1천9백(4인실)~14만9백원(1인실).
#여수(061)
여수에서는 오동도 주변에 숙박시설이 몰려 있다. 여수파크 관광호텔(663-2334), 여수관광호텔(662-3131),
샹보르관광호텔(662-6111) 등이 있다. 밤차로 내려갈 경우 여수여객선터미널에서 찜질방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백옥해수찜질방(642-5006)은 여객선 터미널에서 승용차로 10분 거리. 6,000원. 여수 여객선터미널 뒤편의 칠공주식당(663-1580)은
장어요리를 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