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호남진흥원’은 ‘전라유학진흥원’으로 통합되어야 하는가?
김 상 윤(‘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고문)
2017년에 어렵게 설립된 ‘한국학호남진흥원’(이하 ‘진흥원’)이 흔들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전북 부안에 설립 예정인 ‘전라유학진흥원’으로 통합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진흥원’은 2017년에 설립되었지만 우리 지역에서 ‘진흥원’을 세우기 위한 움직임은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8년에 출발한 ‘무등산권문화유산보존회’(이하 보존회)에 이어, 이 단체를 중심으로 2002년 2월 ‘한국학진흥원’ 설립추진위원회(위원장 이상식)가 발족되면서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이러한 움직임은 경북 안동시에 ‘한국국학진흥원’이 설립된 것에 자극받은 까닭도 있었을 것이다.
2005년에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이하 ‘재단’)은 ‘진흥원’ 설립과 ‘광주문화수도’에 대응하는 것을 정관에 명시하고 출발하였다. ‘보존회’와 ‘한국학진흥원’ 설립추진위는 ‘재단’에 힘을 실어주고 해산하였다. 이때부터 ‘재단’이 중심이 되어 ‘한국학호남진흥원’ 설립추진위원회를 다시 만들고 박광태 광주광역시장, 박준영 전남지사가 공동대표로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민관이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박광태 시장은 ‘진흥원’ 설립 기본계획 용역비 2억 원을 지원했고, 박준영 지사는 전라북도 김완주 지사에게 협력을 요청하는 전화를 해주었다. 그러나 김완주 전북 지사는 ‘진흥원’의 설립에 전북은 참여하지 않겠다고 거부 의사를 확실히 밝혔다. 의외였다.
3개 이상의 광역지자체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단체나 기구는 국비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안동에 있는 ‘한국국학진흥원’도 국비 지원을 못 받아, 매년 경북이 30억, 안동시가 10억 원을 지원하고 있었다. 전북이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광주광역시와 전남이 ‘진흥원’ 운영비를 매년 지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는 처음에는 진흥원 설립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으나, 경비 지원이 부담이 되자 서로 미루기 시작했다. 결국 ‘진흥원’은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의 미진한 자세 때문에 추진위원회를 만든 지 10년도 더 지난 2017년에야 가까스로 출범하게 되었다.
관의 소극적 자세와 달리 대학과 시민사회는 매우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진흥원’ 설립추진위 공동 대표였던 전남대 강정채 총장은 전남대 안에 ‘호남학연구단’을 신설했고,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은 문화부로부터 총 20억 원 정도의 지원을 받아, 2010년부터 2017년까지 전남대 ‘호남한문고전연구실’과 함께 ‘호남기록문화유산’을 발굴 정리하고 데이터화하는 작업을 완료했다.
전북은 부안에 ’전라유학진흥원‘ 설립을 위해 이미 100억 원 정도의 예산을 확보했다고 한다. 아직 ’전라유학진흥원‘ 설립을 위한 조례 제정도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100억 원의 예산을 확보한 전라북도에 비해, 이미 ’진흥원‘을 설립한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는 왜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것인가?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는 어찌하여 추진위원회 구성 후 10년 동안이나 설립을 미루고, 설립 후에도 제대로 된 지원도 하지 않다가, 이제 전라북도에 ‘상생’이란 미명 아래 진흥원을 던져버리려 하는가? 문화재로 지정된 유물이 ‘지역을 벗어나게 되어’ 지정문화재가 취소되거나 혹시라도 어떤 기증자가 유물 반환 청구를 하게 되면, 이는 ‘상생’이 아니라 오히려 지역 이기주의로 폄하될 우려도 있지 않을까?
‘진흥원’의 지난한 설립 과정을 보더라도 그동안 노력한 시민사회와 연구자들의 여론 수렴 절차도 거치지 않고, 공청회 한 번 없이 통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는 이제부터라도 ‘진흥원’이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옳다. 전라북도가 부안에 ‘전라유학진흥원’을 설립한 후, 필요하면 차후 양 기구의 통합을 차분히 진행하면 좋겠다. 한국학의 일부분인 ‘호남학’은 역사 문화 종교를 모두 포괄하는 분야다. ‘유학’을 연구하겠다는 ‘전라유학진흥원’과 ‘한국학호남진흥원’은 포괄 범위와 연구 방향 자체가 다르다. ‘유학’이라는 하나의 틀 속에 ‘호남학’ 전체를 집어넣는 것은 장 종지에 항아리를 담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닌가, 심사숙고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