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정부가 발표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의 중심에는 교사와 학교가 있다. 사실상 교사와 학교의 권한을 강화해 학교폭력의 칼자루를 쥐어준 것이다. 주요 대책을 보면 학교장이 학교폭력 가해학생에게 즉시 출석정지 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권한을 줬으며 ‘복수담임제’를 도입해 담임교사의 역할을 강화하고 생활지도 여건을 조성하기로 했다. 학교폭력 문제는 일선 교사의 학생 생활·인성지도가 무엇보다 관건인 만큼 정부의 대책 중에서도 교사 권한 강화를 위한 ‘복수담임제’에 눈길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학교현장에는 생소한 복수담임제가 교과부의 취지대로 잘 운영되기 위한 방안을 찾아봤다.
교과부 교원정책과 최흥윤 행정사무관은 “복수담임제는 담임교사를 정‧부로 두는 것이 아니라 2명의 담임교사가 학교 실정에 맞게 업무를 분담하고 담임학급에 대해 공동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사무관은 “현재의 부담임제가 실패한 것은 제도화되지 않은 문제도 있다”면서 “현재 중학교의 40%인 비담임 교사(보직교사 포함)에게 담임 역할을 부여하고 수당도 지급하는 등 제도화를 하면 책임 소재가 분명해 진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런 방침에 대해 담임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는 교원 대부분이 공감했다. 한미숙 경기 남양주송라초 교감은 “당장은 교사가 힘들어도 두 명의 교사가 함께 한 반을 지도한다면 생활지도 면에서 실효를 거둘 수 있다”면서 “학교폭력 문제를 담임교사의 역할 강화 방향으로 풀었다는 점에서 복수담임제를 적극 찬성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원들은 복수담임제 운영 방식, 특히 교과부 안대로 학교 실정에 따라 담임의 업무를 나누는 방식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한광웅 서울사대부설초 교사는 “복수담임제의 취지를 살리려면 A담임이 지금까지 수행했던 학력관리, 생활지도 업무를 수행하고 B담임이 문제가 되는 학생에 대한 집중 관리를 맡는 것이 좋다”고 했다. 반면 이한배 서울 가산중 교사는 “업무의 영역, 책임의 한계가 불명확해 현실적으로 담임 업무를 나누기는 어렵다”며 “학생들에게 혼란만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교사담임제 방식으로 운영하자는 의견도 많았다. 권순영 충북 청주 서원고 교사는 “학급 학생을 반으로 나눠 각각 지도를 맡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며 “실제로 담당할 학생들이 분명히 정해져 학생·학부모에게도 혼란을 주지 않고 두 담임이 서로 협력해 효율적으로 학급을 운영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10여 년 전 대전시교육청 정책사업 ‘소인수 학급 담임제’로 복수담임제를 경험했다는 나태순 학교교육지원과 장학관은 “한 반을 둘로 나눠 담임을 배정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학생대비 교사수가 2배인 고교에 비해 중학교는 1.5배밖에 되지 않는데다 유휴교실이 부족해 당장 운영하기는 어렵다”면서 “학교에 재량권을 준다면 여건에 따라 학생지도가 어려운 학년부터 선별해 우선 실시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1학년을 대상으로 복수담임제를 운영하고 있는 서울 선사고(교장 이영희)의 경우 학급 학생을 절반으로 나눠 전교사가 담임을 맡는 방식을 적용했다. 선사고는 지난해 신설학교로 8학급으로 인가받았지만 수업 외 모든 시간은 16학급으로 운영했다. 한 학급(30명)을 A, B 두 반(15명씩)으로 나눠 담임교사 및 교실을 배치, 현재 이 학교는 교무·연구·혁신부장 3명을 제외하고 전 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다. 남녀교사 비율이 비슷해 A반에 여교사, B반에 남교사를 둠으로써 생활지도 면에서 서로 보완할 수 있도록 했으며 수업은 두 반이 함께 받아 교사들의 수업시수가 늘지는 않았다.
수업 외에 학교 행사나 학급별 테마여행, 체험학습 등도 A, B반이 함께 떠나 교사들은 기존에 운영하던 대로 계획을 세워 업무가 늘지 않으면서도 30명 학생을 2명의 인솔교사가 지도함으로써 학교 외부에서의 생활·인성지도를 강화할 수 있게 됐다.
1년간 복수담임제를 운영한 결과 선사고 학생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설문조사 결과 학생들은 복수담임제의 장점으로 ‘작은 학급 규모(35%)’, ‘개개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25%)’, ‘교실활용이 용이(16%)’, ‘친밀도가 높아짐(11%)’, ‘우정이 돈독해 짐(10%)’ 등을 꼽았다.
하지만 선사고는 복수담임제를 1학년만 실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지난해에는 유휴교실이 있었지만 2학년 신입생이 들어오고, 내년 3개 학년이 모두 채워지면 교실·교사 수가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이영희 교장은 “복수담임제는 선사고 교사들의 사명감과 희생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라며 “올해 2학년까지 32학급(본래 16학급)을 복수담임제로 운영할 수 있지만 내년에는 불가능할 것 같아 학생 혼란을 막기 위해 1학년만 운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선사고처럼 성공적으로 복수담임제를 운영하는 곳도 있지만 ‘전교사 담임제’를 실시했던 서울 청담중(교장 김제범)은 이 제도를 올해는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 청담중은 인가학급수가 20학급(급당 학생 수 37~41명)이지만 1교사 1교과교실제에 맞춰 담임학급을 28학급(급당 학생 수 25~26명)으로 편성해 전 교사가 담임을 맡았다. 하지만 증설 학급에 대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상의 업무처리, 담임교사 수당 예산 확보, 늘어난 수업시수 대체 강사료 확보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김제범 교장은 “담임 수당이 확보되고 제도화가 됐으니 개선책을 찾아 다시 한 번 실시해 보겠다”고 밝혔다. 선사고 이영희 교장도 “교실마련, 수당 지급, 경력인정, 업무경감 등 교사들이 담임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복수담임제 성공의 조건임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최 행정사무관은 “교사가 수업과 생활지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복수담임제 후속 대책으로 교원업무 경감 방안을 곧 내놓겠다”며 “다음 주 중 시·도교육청 담당자와 현장교원들을 만나 효율적인 복수담임제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과부는 이밖에도 학교별 생활지도전담팀 운영, 법률상담지원 등 다각적인 지원책을 마련해 현장 교사들을 돕겠다는 방침이다.
‘정‧부’ 아닌 공동 책임 의미 초6도 복수담임제 실시 가능 ▨ 복수담임제 어떻게 적용되나=교과부는 복수담임제를 학생 수 30명 이상 학급의 중학교에 우선 실시할 예정이다. 하지만 학교 여건에 따라 복수담임제 실시를 결정한다면 담임교사 수당 등 예산지원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당초 올해는 중학교만 실시하고 내년에 고교, 초등 6학년으로 확대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예산에는 초등 6학년 실시 분까지 반영돼 있어 학교에서 원하면 초6학년도 복수담임제를 운영할 수 있다. 교과부는 전문상담교사 예산 800억 원(전문상담교사 배치 135억, 계약직 전문상담인력 배치 665억) 다음으로 가장 많은 예산 624억 원을 복수담임제를 위해 배정했다. 정부가 복수담임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복수담임제는 일반 비담임교사 외에 보직교사도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이렇게 되면 교장·교감과 주요 보직교사 1명 등 2~3명을 제외하고는 전 교사가 담임을 맡게 된다.
<복수담임제 해외 사례는…> 담임은 저경력 부담임의 ‘멘토’ ▨ 중국 ‘부반주임제’=2000년대 초에 시작해 대부분의 초·중학교에 ‘부반주임(副班主任)’이라고 불리는 부담임교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학생 생활지도를 위한 담임교사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부담임교사는 담임교사의 업무를 돕고 주로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담당한다.
가장 큰 특징은 학교장이 신규임용 교사나 저경력 교사를 부담임교사로 임명한다는 것이다. 신규·저경력교사는 담임교사를 도와 학급 일을 처리하면서 경험을 쌓고 담임교사는 담임 업무를 경감할 수 있게 된다. 담임교사가 부담임 교사의 ‘담임 멘토’가 되는 셈이다. 부담임교사는 저경력 교사들이 담임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예비단계로 부담임 기간 동안의 업무수행 실적은 이후 해당 교사의 담임교사 임명에 주요한 근거가 된다. 각 학교별로 능력이 되는데도 일정 기간 부담임을 맡지 않은 교사는 교원평가에서 불이익을 주고 이후에도 담임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부담임의 업무는 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지만 학교마다 자체 규정을 만들어 역할을 명시하고 있다. 이 규정은 담임·부담임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돼 학급 안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갈등을 미연에 방지한다. 부담임은 담임교사 부재 시 업무 대행, 정치사상·도덕·심리교육, 체육활동 등 학생 교내 활동지도, 담임교사회·부담임교사회 회의 참석, 학부모 상담, 학부모회 참여 등의 업무를 맡는다. 부담임에게는 부담임 수당과 실제 상황을 고려해 추가 수당까지 지급된다.
중국 산동성 태안시 신문중 부담임의 경우 의무적으로 매학기 10차 이상 학생과 개별상담을 해야 하며 3~5차례의 학급주제반회를 개최해야 한다. 기숙사를 방문해 학생 생활지도를 하는 것도 업무에 포함돼 있다. 학교는 부담임 교사 업무 수행을 기록으로 남기고 학기별로 학생회·담임교사회 등을 통해 업무를 평가한다. 이를 통해 업무태도가 성실하고 학급 업무를 잘 수행한 부담임교사는 표창해 인센티브를 주며 그해 교원평가에 우선 반영한다.
중국 인터넷포털사이트에 ‘부담임교사 업무 결산(副班主任工作總結)’이라는 한 부담임 교사의 경험담을 찾을 수 있는데, 이 글을 읽어보면 아침에 출근해 해당 반 학생들의 건강상태 및 교실 환경을 체크하고, 점심에는 학생들의 글자쓰기를 보조하며, 하교 후에는 부진학생을 지도하고, 학부모에게 연락하는 등 담임교사를 보조하는 교사로서의 중국 초등학교의 부담임교사의 역할이 잘 묘사되어 있다.
도움말=구자억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평가연구본부장, 김정호 서울 백석초 교사, 전춘련 중국 교육문화유한공사 대표이사
부담임 일지·상담 업무 분담 ▨일본 ‘담임·부담임제’=우리나라보다 먼저 ‘이지매’ 등 심각한 학교폭력 문제를 경험한 일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담임제도를 적용해왔다. 현재 일본 대부분 학교는 우리나라 부담임제도와 복수담임제도의 중간 형태 정도로 볼 수 있는 ‘담임·부담임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일본에서는 부담임이 학급운영에 일정 부분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수당도 지급받는다. 일례로 일본 오사카 난이와중고교에서는 부담임이 학습일지 지도, 학생상담 등의 업무를 분담하고 있다. 교사가 부족할 경우는 보조담임제도도 활용된다. 오사카 성남고는 8명의 보조담임을 두고 종합코스반, 특별진학코스반 등으로 나눠 담임의 업무를 보조하고 있다. 업무를 고정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업무와 반을 바꿀 수 있도록 해 운영상의 유연성을 확보한 것이 특징이다. 보조담임교사에게도 수당이 지급된다.
학교부적응 등의 문제로 수업일수가 부족해 졸업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교육기관 ‘단위학교’에서는 학생 기준으로 담임을 배치한다. 문제 학생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학급을 기준으로 담임을 두기보다 학생별 담임을 두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 활용되는 제도다. 일본 교육관계자들은 복수담임제 운영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으로 업무영역의 모호함으로 인한 교사 간 갈등을 꼽았다. 이론적으로는 담임의 업무를 생활지도, 성적지도 등으로 명확히 나눌 수 있을 것 같지만, 대부분 상호 연관이 깊은 문제여서 업무 간 틈새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한 두 명의 교사가 같은 학급의 학생과 학부모에게 비교되며 평가를 받는 과정에서 느끼게 될 중압감도 고려해야 할 문제로 지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