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 존 윌리엄 / 알에이치케이
독후감을 쓰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흔적이라도 남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정리하지 못한 생각을 옮겨본다. 생각과 마음의 차이는 무엇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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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남들 눈에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일 자신의 삶을 관조했다. 그는 우정을 원했다. 자신을 인류의 일원으로 붙잡아줄 친밀한 우정. 그에게는 두 친구가 있었지만 한 명은 그 존재가 알려지기도 전에 무의미한 죽음을 맞았고, 다른 한 명은 이제 저 멀리 산 자들의 세상으로 물러나서……. 그는 혼자 있기를 원하면서도 결혼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열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열정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열정이 죽어 버렸다. 그는 사랑을 원했으며, 실제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 사랑을 포기하고, 가능성이라는 혼돈 속으로 보내버렸다. 캐서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캐서린.”
그는 또한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지만, 거의 평생 동안 무심한 교사였음을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Dispassionately, reasonably, he contemplated the failure that his life must appear to be. He had wanted friendship and the closeness of friendship that might hold him in the race of mankind; he had had two friends, one of whom had died senselessly before he was known, the other of whom had now withdrawn so distantly into the ranks of the living that... He had wanted the singleness and the still connective passion of marriage; he had had that, too, and he had not known what to do with it, and it had died. He had wanted love; and he had had love, and had relinquished it, had let it go into the chaos of potentiality. Katherine, he thought. "Katherine."
And he had wanted to be a teacher, and he had become one; yet he knew, he had always known, that for most of his life he had been an indifferent one. He had dreamed of a kind of integrity, of a kind of purity that was entire; he had found compromise and the assaulting diversion of triviality. He had conceived wisdom, and at the end of the long years he had found ignorance. And what else? he thought. What else?
What did you expect? he asked himself.
숨을 거두면서 스토너가 던진 질문이다. 스토너는 그의 인생을 정리하는 순간에 "넌 무엇을 기대했나?"고 자문한다. 그리고 생각하고 생각한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생각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마치 성경에서 예수님이 한 제자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그 질문을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세 번 연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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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첫머리에 주인공 스토너의 일생이 적혀 있다.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일생이 소설 거리가 될까?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 사람의 일생을 다룬 소설이기에 여러 가지 갈등이 들어있다. 가난한 빈농의 아들로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 지나가는 시기를 겪었고, 늘 젊음에 둘려 쌓여있는 대학이 활동 무대이니 얼마나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상상할 수 있으나, 그리 요란스럽지 않다. 즉 소설 속의 각각의 사건들과 등장인물들이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지지만 마지막 책 표지를 덮으며 느끼는 것은 모든 사건이 하나하나 굵직하게 떠오른다. 그것이 이 소설이 주는 힘인데 나는 왜 그렇게 느끼는가 하는 것은 잘 모르겠다.
누구나 자신의 삶은 평범하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나의 삶이 지루하지 않고 평범하지 않기를 원하는 것은 어쩌면 헐리우드 영화와 같은 흐름에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삶에서 특정한 무엇을 기대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짠"하고 나타나거나 그 상황에 나를 들여보내지 않는다. 보통은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내 앞에 나타난 갈림길이나 선택의 순간에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나의 삶이 바뀐다. 그 결정이라는 것 또한 오롯이 나만의 결정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니, 인생이란 더 오묘하다 할 수밖에 없다.
그의 인생에 굵직한 일이 몇 개 있다.
1. 대학에 입학하는 것, 어느 공무원이 아버지에게 권유한 대로 농업기술을 배우기 위해 입학한다.
2. 전공을 변경하고 아처 슬론 교수에 의하여 자신을 발견 당한 그는 박사과정에 들어간다.
3. 친구 2명이 입대한다. 한 명은 전사하고 다른 하나는 같은 대학에서 평생 친구로 지낸다.
4. 첫눈에 반한 이디스에 구애하여, 결혼한다. 그러나 자라온 환경의 격차로 원만한 결혼 생활은 유지되지 않는다.
5. 찰스 워커에게 F 학점을 준다. 이로 인해 20년 넘게 그의 지도 교수 로맥스 교수와 담을 쌓고 지낸다.
6. 캐서린 드리스콜과의 외도로 사랑을 배우지만, 그 희생은 캐서린이 감당한다. 글쎄 희생일까?
7. 딸, 그레이스와의 거리. 그 시절에 딸에게 아빠란, 아빠의 위치란. 지금 가정에서 아빠의 위치는?
스토너는 굵직한 갈림길 가운데 현재의 자리에서 탈출하기 위해 결정을 내린 적은 없어 보인다. 현재의 자리에서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길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에 반하여 그의 아내가 된 이디스는 자신의 환경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결혼을 선택한 듯 보이고, 그의 딸 그레이스는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친하지 않은 친구와의 하룻밤으로 아이를 갖고 집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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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어떤 소설인가. 결국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남자) 인간의 사랑이란 인간과의 사랑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좋아하는 것과의 사랑도 사랑의 범주에 넣어달라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적인 교감이 아닌 다른 교감도 있으며, 그 사랑 그 교감으로 인생은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첫 매듭은 아처 슬론 교수에 의해 맺어졌다. 그가 진정 사랑했던 것은 문학이고 가르치는 것이었다. 스승이 지적했던 사랑, 가르치는 능력, 박사과정 학생에 F 학점을 주는 행위, 그 결과 로맥스 교수와 20년간 소원했던 관계까지 그는 그 사랑으로 호흡 할 수 있었고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었다.
그가 생을 마감하는 시간에 삶을 돌아보면서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라고 고백하지만, 그는 중요한 것을 지켰다고 생각한다. 인간적인 사랑의 측면에서, 그는 결혼했으나 그것은 그저 함께 하는 것에 불과했고 사랑은 캐서린을 통해 확인한다. 남자의 입장에서 인생과 사랑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지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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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군대에 가더라도, 제발 부탁이니 하느님이나 조국이나 친애하는 미주리 대학을 위해 가지는 말게. 자기 자신을 위해 가는 거야." 50 메스터스가 스토너에게
전에는 죽음을 문학적 사건 또는 불완전한 육체가 세월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조용하게 마모되어 가는 과정으로만 생각했다. 전쟁에서 터저 나오는 폭력이나 파열된 목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를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이처럼 다른 종류의 죽음이 존재하는 까닭, 그리고 그 차이가 지니는 의미가 궁금했다. 57
마치 죽음과 영생의 약속이 삶을 망가뜨리는 못된 장난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58
그녀가 받은 교육의 전제는 살다 보면 불쑥 만날지도 모르는 거친 일들로부터 보호받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런 보호를 해주는 사람의 우아하고 세련된 장식품이 되는 것 외에는 다른 의무를 수행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75~76
한 달 도 안 돼서 그는 이 결혼이 실패작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1년도 안 돼서 결혼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렸다. 그는 침묵을 배웠으며, 자신의 사랑을 고집하지 않았다. 105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단 하루도 혼자 힘으로 자기 몸을 돌본 적이 없고, 자신이 다흔 사람을 돌보은 책임을 지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 또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녀의 삶은 나지막한 진동처럼 전혀 변화가 없었다. 77
나이 마흔 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이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 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270
젊다 못해 어렸을 때 스토너는 사랑이란 운 좋은 사람이나 찾아낼 수 있는 절대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사랑이란 거짓 종교가 말하는 천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재미있지만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부드럽고 친숙한 경멸로, 그리고 당황스러운 향수(鄕愁)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 이제 중년이 된 그는 사랑이란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272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서는 사랑에 빠져보아야해요. 274